아마 우리 카페에는 비교적 "다문화" 관점에 대해서 관심있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또 요즘 "다문화"(Multi-culture)라는 말이 많이 사용됩니다만,
이러한 관심이 실은 캄보디아에 대해서만 국한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물론 본 카페 본연의 주제는 "캄보디아"가 틀림없습니다만
"다문화적", 즉 "문화적 유연성 가진 관점"에서의 캄보디아를 주제로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도구는 다른 곳에서도 사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제가 좀 "군기가 빡센" 데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만,
저는 군대식 문화나 나이, 학연, 지연 이런 것을 언급하는 한국문화가 바로
국제화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문화 중 하나라고 보고,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봅니다.
서열 문화가 나쁜 것은 사람을 2중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왠만하면 나이로 들이 밀었다가,
나이가 안 먹히면 학번으로, 학번이 안 되면, 군번이나 모 그렇게
자기한테 유리한 걸 찾으려하는 좀 비열한 문화를 만들게 됩니다.
한 마디로 도구 하나로 여러 군데 쓸 수 없는거죠~
금융제도나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말하지만
저러한 생활문화가 변하면, 제도적으로 낙후되도 더 빨리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여간 우리 카페의 다문화적 시각은 캄보디아에만 국한되지 말고
아무 데나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캄보디아인들과 함게 있을 때는 다문화적 사람이 되었다가
한국인들끼리 모이면 "한국인"으로 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죠~
하여간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래서 앞으로 좀 다양한 문화들을 조금씩 다뤄보고 싶은데....
마침 오늘 좀 게으름을 피면서 음악감상을 하던 차에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음악들이 있어서 함께 공유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곡이 한국인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일본 엔카(演歌)라서~~
좀 거부감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바라볼 때
"우리를 식민통치했던" 일본인들이 아니라
"그냥" 일본인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캄보디아를 "동남아국가" 캄보디아가 아니라
"그냥" 캄보디아로 바라볼려는 것과 유사한 자세입니다.
하여간 이제 각설하고~~
오늘 전해드릴 곡은 이츠와 마유미(五輪眞弓)의
"코이비토요"(恋 人よ: 연인이여!)라는 애절한 곡입니다.
이별한 연인을 그리면서, 비가내리며 낙엽이 지는 가을의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그리움을 달래는 애절한 여인의 마음을 노래한 곡입니다.

이 곡은 피아노를 잘 치는 이츠와 마유미(혹설에는 재일동포라는 설도 있음)가 스스로 작곡하여 부르는 노래인데, 이츠와 마유미의 1972년도 데뷔앨범은 미국에서 유명 미국 뮤지션들이 세션맨으로 참가하기도 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츠와 마유미를 단순한 엔카 가수로만 보기는 무엇하고, 하여간 무언가 재즈나 정통 팝적인 분위기를 함께 가진 가수죠... 한국 가수 중에서는 심수봉 씨와 비교가 가능할듯도 싶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코이비토요"는 2가지 버전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제일 먼저 들으실 버전은 80년대 중후반 데뷔하여 일본의 미소녀로 소문났던, 역시 피아노를 잘 치는 카와이 나오코(河合 奈保子)가 함께 부른 버전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마주보는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데
1절은 먼저 카와이 나오코가 부르고,
2절 초반부를 이츠와 마유미가 중후하게 불러 줍니다.
그리고 2번째 동영상은 바이얼리니스트 카와이 이코(川井郁子)의 연주와 함께 하는
이츠와 마유미의 독창입니다.
그럼 모처럼 일본적 로맨틱 분위기에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집 떠난지 오래 되서 그런지 오늘 따라 이 곡이 가슴을 짖누르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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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카와이 나오코와 이츠와 마유미가 함께 부르는 <코이비토요>. |
恋人よ
作曲者 : 五輪 真弓
枯葉散る夕暮れは 来る日の寒さを ものがたり 雨に壊れたベンチには 愛をささやく歌もない
恋人よ そばにいて こごえる私の そばにいてよ そして一言 この別れ話が
冗談だよと 笑ってほしい
砂利道を 駆け足で マラソン人が 行き過ぎる まるで忘却 望むように 止まる私を 誘っている
恋人よ さようなら 季節はめぐって来るけれど あの日の二人 宵の流れ星 光っては消える 無情の夢よ
恋人よ そばにいて こごえる私の そばにいてよ そして一言 この別れ話が
冗談だよと 笑ってほ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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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번역) 크메르의 세계
연인이여
작사, 작곡, 노래 : 이츠와 마유미
낙엽이 지는 저 석양은 다가올 쓸쓸한 날들을 말해주는데, 찬 비에 젖어버린 벤치에는 사랑을 속삭이던 노래도 없어.
나의 연인아, 내 곁에 있어... 얼어붙은 이 마음, 내 곁에 있어줘... 그리고 한 마디, 이 이별 이야기가 거짓(농담)이라고 웃어주세요.
저 자갈밭을 뛰어오르며 운동하는 사람이 지나 가네요. 마치 망각을 바래는듯이 멈춰선 이 마음을 유혹을 하네.
나의 연인아, 사요우나라... 계절은 돌아서 다시 오겠지만... 우리가 보았던, 밤하늘 유성별 타올라 꺼지는 무정한 꿈이여..
나의 연인아, 내 곁에 있어... 얼어붙은 이 마음, 내 곁에 있어줘... 그리고 한 마디, 이 이별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웃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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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하면 한국어로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운율을 위해 일부 의역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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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첫 만남에 나이부터 물어 보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나이부터 물어 보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대화를 싫어하고, 대화에 밀리면 어린 것이 아니면 싸가지란 단어로 그냥 누르는 습성이 있더군요
하하하, 재미있는 지적이시네여. 아마도 그런 방식의 사고방식이 조금 발전하면 "어느 대학 나왔냐?"라든가 "몇 학번이냐?" 하는 질문으로 나가지 않나 싶네여. 저의 경우엔 아주 드물게 어떤 사람의 학력사항이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무슨 분야를 전공했냐?"고 물어봅니다. 그게 젤 중요하니까요~
나이를 들고 나오는 습성이 한국인의 병페라고 한 말 정말로 맞고요, 우리의 호칭 문제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서 미스터라고 하면 대통령도 다 통하는데 우리의 복잡한 호칭 문제가 저는 젤로 마음에 들지가 않더라구요...
실은 복잡한 호칭은 문제될 게 없습니다. 모 크메르어에도 호칭은 발달되어 있고.... 다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한국어보다 더 예의 바른 말들도 있습니다. 가령 일본어나 티벳어가 그런 류에 속하죠. 그런데, 한국인들은 한국어만 존대말 반말이 있다는 착각을 하는데, 존대말과 반말에 대해서는 아마 일본어와 티벳어가 엄청나게 발달한 언어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잘 모르는 사이일 때 일본인이나 티벳인들은 심지어는 어린이들한테까지도 우선 존대말로 말을 사용하는데, 한국인들은 심지어는 몇살 위로 보이는 사람한테까지 반말로 맞먹어보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요. 이렇게 여러 언어 문화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참 그런 경우 몇번 당하고 나면, 정말로 한국인들의 민족성 자체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곤 합니다..... 슬프게도 말이죠....
지난 근무지가 스페인어권이었는데 거기서는 Amigo하면 다 통하고 또 친밀하고 그러면서도 물론 예의차릴 것은 차리지요.."쎄뇨르","쎄뇨라"하면 다 되는데 극히 존칭이지요 물론,,,거기서 몇년간 거주하면서 느낀 것이 우리나라의 호칭문제였습니다.그렇다고 그사람들이 절대로 무례하지 않거든요...암튼 무조건 상대를 무시할려고 하는 우리의 습성,,,이것이 문제인거 같아요.
그렇습니다. "존중"하려는 마음가짐이 문제인 것이지요. 한국인들끼리는 깍아내리려는 형태로 나타나고, 타 문화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도 부유한 백인이나 미국 같은 나라에 대해서는 비굴함을 보여주는데, 한국인들끼리도 강한 자 앞에서는 비굴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만=비굴=비겁=무례 이런 것들이 사실은 구조적으로 어떤 동일한 기반을 가진 것입니다. 문제는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을가에 대해 저는 오랜 기간 고민을 해보았는데, 사실은 많은 부분이 한국전쟁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져서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또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