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최대의 화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3세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발전의 동력이자 강대국의 침략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됐고 강대국에서는 서로의 민족주의가 충돌하면서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며 양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유럽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말만 나와도 경기를 불러일으킬 정도이니 그 폐해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민족은 뭐고 민족주의는 무엇일까요? 일단 민족의 개념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흔히들 민족을 혈연적 공동체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단일민족이라고 했을 때 혼혈을 얘기하면서 바로 반박하는 것은 이같은 혈연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개념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혈연적인 공동체가 민족의 개념인가 한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민족의 구성원은 일단 학계의 통설로 한반도에 원래 살고 있던 삼한계-고조선 시대 辰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으며 무제가 고조선을 공격한 명분 중 하나가 이 진과 한의 통교를 방해했다는 것이었다-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 살고 있던 부여계, 그리고 예, 맥(옥저·동예) 그외 말갈이라 불리던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제부족들이 초기 한민족의 줄기를 형성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중 말갈은 대체로 하나의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이와 같이 만주와 한반도 연해주 일대에 흩어져 살던 국가를 이루지 않은 부락집단이라고 하며 그것을 하나의 통일된 계통으로 이해하는 것은 많은 오류를 낳을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같은 기본 줄기가 삼국통일 무렵을 전후해서 형성되고 다시 고려와 조선을 넘어오면서 다수의 여진의 귀화를 받아들이고 임란 당시 일본인 다수를 받아들이는 등의 전체 규모에서 크지는 않더라도 끊임없이 외부의 유전자가 유입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흉노나 스키타이, 몽골, 중국의 한족 등도 한반도로 유입되었고 고인돌 중에는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유골이 발견된 것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혈연적 개념으로서의 민족은 참 우습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학계에서 민족을 말할 때는 역사적 문화적 지역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정 지역에서 오랜 기간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며 살아온 공동체 의식을 갖는 집단을 민족이라 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인터넷 사이트 서프라이즈에 모이는 사람들을 스스로 서프폐인라고 혹은 서프라이저라 부르는 것이나 디시인사이드의 인간들을 디시폐인이라 부르는 것과 같이 하나의 공동체를 일컬어 붙이는 관념적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들 사이트들의 역사가 많아야 몇 년이겠지만 한 민족이라고 했을 때 그들이 공유해온 역사는 최소 수백 년에서 많게는 수천 년이라는 것이라는 정도겠죠.
쭐레쭐레 알음알음으로 서프라이즈를 찾은 나와는 달리 먼 옛날 말을 달려 한반도로 들어온 흉노족 선조로부터 무려 50여대 이상 이땅에 살아온 역사의 흔적으로의 내가 태어났다는 차이일 것입니다. 내가 서프라이즈에 들어와서 서프폐인이 된 것과는 달리 민족은 이미 50여대 이상 이 땅에서 살아오며 공동체 의식을 갖게된 연장선상에서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나에게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민족만이 그런 공동체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아닐 것입니다. 지역적인 정체성으로 따진다면 나는 서울사람일 것이고 혈연적인 정체성으로 따진다면 경주 김가가 될 것입니다. 혈연에서도 파를 나누고 몇 세손이니 따지면 더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민족 내부에서의 세부 분류일 뿐이고 대외적으로는 결국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생물학적 개념으로 종과 아종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보면 민족은 뭐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자연발생적 공동체인데 뭐가 그렇게 큰 문제인가? 하는 아주 당연한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당연히 민족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민족성이 더러워서 전쟁을 좋아한다느니 비겁하고 부패했다느니 하지만 뭐 다 헛소리쯤으로 치부해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민족 그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이 민족이 국가와 동일시되거나 구성원 개개인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이 추상적인 관념으로서의 민족을 강제로 실체화하고 국가와 동일시하고 또다시 개인과 동일시하는 것. 이것이 흔히 말하는 민족주의인 것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나는 한국인이다. 한국은 한국인으로 구성된 나라다. 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구성원이다." 이런 삼단논법이 될 수 있겠는데 일반 개인이라면 상관없지만 권력을 가진 자가 이런 생각을 갖는다면 상당히 골치 아픈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히틀러 같은 인간이 출현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한두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봐야 벌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한국은 한국인의 나라다. 한국인에 내가 속해있다. 한국은 곧 나다." 라는 역논리가 성립할 때입니다.
결론은 어찌 보면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한국이라는 국가가 주체가 되어 나를 포괄하는 형식을 띠게 되면 앞서의 내가 주체가 된 국가에 대한 소속과는 다른 결과를 낳게 되어 버립니다. 국가의 이익과 나의 이익을 동일시하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나의 이익을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소위 말하는 전체주의의 모습을 갖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나는 국가민족주의라고 부릅니다. 나치즘으로 대표되는 '국가=민족>개인'이라는 전체주의로서의 민족주의인 겁니다. 어쩌면 민족주의 자체가 전체주의로서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경우는 아니겠지만 많은 경우에서는 그런 속성을 가진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강대국에 적용되었을 때 그것은 배타적이 되고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전체주의적인 민족주의 특성상 당연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현상일 것입니다. 나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순간 국가간의 힘의 우열은 개인간의 우열, 혹은 민족간의 우열로 이어지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난 역사에서의 제국주의였고 군국주의였고 일방주의, 식민주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 문화의 파괴와 인종말살이 자행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물리적, 문화적, 정신적인 외부로의 폭력으로 이어져 전쟁과 파괴를 낳는 원인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힘이 외부로 향하지 않게 된다면, 혹은 못하게 된다면 민족주의는 그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내부 구성원을 향하게 되어버립니다.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개인에 대한 폭력과 억압, 그것은 근대 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만든 수많은 혁명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그 죽음 위에 세워진 피의 역사의 원인 중 하나로서 민족주의를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민족주의의 폐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폐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약소민족, 약소국가에 있어 민족주의는 힘없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단결시키고 힘을 결집시켜 강한 힘을 갖는 외부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강한 적에 상대되는 그들과 싸워야 하는 관념적인 실체로서의 민족은 한 줌의 바람에도 날려갈 듯한 약하디 약한 그들이, 하나로 뭉쳐 힘을 모을 수 있는 촉매제인 것입니다. 설사 부작용을 안다 하더라도 강대국의 공격에 저항하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살아남기 위한 저항수단이 바로 이 민족주의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민족주의는 자신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지키고 스스로의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킴으로서 강대한 군사력과 자본력, 문화를 앞세워 침략해 들어오는 강대국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해주는 약소 공동체의 방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까지 부정하고 약소국도 민족주의를 해체하라는 것은 강대국의 힘의 논리 앞에 옷 벗고 나서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민족주의가 갖는 폐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게 민족주의를 포기하라는 것은 헤비급 권투선수와 싸우는 플라이급 권투선수에게 아무런 안전장비와 보조장비 없이 정정당당하게 싸우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국주의가 민족주의의 해체를 바라는 것은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던 대로 "정복자는 항상 평화를 원한다"는 명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미 정복이 끝난 상태에서의 전쟁은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를 정복한 정복자에게 있어서 귀찮은 잔업일 뿐입니다. 생기는 것도 없이 병력과 돈을 낭비하는 쓸데없는 행위가 바로 전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주의는 항상 피정복지에서의 전쟁을 회피하고 싶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민족주의를 해체하고 싶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지배가 저항 없이 받아들여져 아무런 분쟁 없이 통치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도 아직까지는 민족주의에 의한 저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지만 민족과 민족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민족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적 실체일 뿐이고 내가 소속된 특정 집단의 공동체적 정체성일 뿐입니다. 강제성도 없고 특별한 강요된 의무도 없습니다. 그저 존재할 뿐이고 공동체의식에 따른 무의식적으로 강요되었거나 혹은 자발적인 동의와 봉사를 할뿐입니다.
반면 민족주의는 국가라는 현실적인 실체를 민족이라는 관념적 실체를 매개로 나와 동일시하도록 강요하고 그에 따라 개인의 동의와 봉사를 수탈하는 정치적인 이념체계입니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이처럼 전혀 다른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정당하고 사회의 발전에 따른 아주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지만 민족주의 때문에 민족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것은 이 두 가지를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 말을 지키는 것조차도 민족주의라 몰아붙이는 무지는 민족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어리석음의 소치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는 미국의 애국심에서 민족주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자 애쓰는 동시에 세계화 시대에 휩쓸리는 민족적 현실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민족주의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어리석은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치기 어린 오만함의 표현일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족주의는 물론 민족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민족에 대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민족주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그럴 뜻이 없다 하더라도 권력자가 그것을 이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이용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권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한 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민족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열려있어야 하고 언제든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가 아닌 존재하는 관념적 실체이기 때문에 그것은 고정되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유전적 인자나 문화, 가치의 유입에 대해서 배타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민족 외적인 모든 것에 스스로를 열고 변화된 민족을 위해서, 발전된 민족을 위해서 모든 것에 자신을 열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민족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다른 민족에 대한 외경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는 만큼이나 다른 민족의 훌륭함을 인정하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족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다만 민족이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이 되어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 사회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미래지향적인 열린 민족주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