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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화리 고분의 북두칠성 |
다음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두칠성 별자리 이름은 탐랑성, 거문성, 녹존성, 문곡성, 염정성, 파군성으로 불리워져 왔으며,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북두칠성이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고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주는 별로서 신성시 되어 왔다.
칠성당(七星堂)이니 칠성원군(七星元君)이니 하는 말도 다 북두칠성을 이르는 말이며, 정화수(淨華水) 한동이를 떠다 칠성단에 바쳐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오니 부디 금두꺼비 같은 아들하나 점지해 주옵소서..”하고 빌던 우리 할매들의 기자(祈子) 신앙의 대상이 바로 북두칠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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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두칠성의 별자리도 |
고대 아라비아나 동방세계에서는 북두칠성이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별로 보아왔고, 사각형을 이루는 네개의 별(탐랑성, 거문성, 녹존성, 문곡성)을 시체를 담는 관으로, 일자형을 이루는 손잡이 부분의 나머지 세 개의 별(염정성, 무곡성, 파군성)을 관(棺)을 끌고 가는 저승사자로 보았다.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이라는 널판을 관 밑바닥에 깔고서 그 위에다 염을 한 시신을 눕혔는데 이것도 북두칠성과 연관되는 고래의 풍습이다.
특히 마지막 7째별 파군성(破軍星)은 생사에 관계되는 무시무시한 별로서 일명 수명장원성(壽命長遠星)으로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의 승상 제갈량이 오장원(五丈愿)에서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자신의 생명을 10년만 더 연장시켜주면 천하통일을 이루겠노라는 서원을,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7개의 촛불에 실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도의 마지막 날 언젠가는 반역할 상이라고 예상했던 위연(魏淵)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사마중달(司馬仲達)의 대병이 쳐들어 왔다고 고(告)하면서 촛대를 엎는 바람에 촛불이 모두 꺼지고, 하늘의 유성이 7번째별에 떨어져 파군성이 타오르는 것을 보는 순간 제갈량은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복각천상분야열차지도각석' (보물 제837호, 1687년, 숙종13)
환인 한국 7세에 나타난 칠신기화(七神氣化), 환웅 신시시대에 신지(神誌) 벼슬에 있던 발귀리(發貴理)의 아들 자부선인(紫剖仙人)이 만든 달력과 제사의 기초법으로 칠회제신책력(七回祭神冊曆)과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가 있는데 이 역시 북두칠성과 관계가 있다.
북두칠성과 관계있는 하늘의 숫자 7, 즉 칠천생수(七天生數)가 우리말에 스며들어 있는데 “칠칠치 못하다”는 하늘같지 못하다 또는 변변치 못하다는 뜻이고,“며느리가 칠칠맞게 잘한다”는 말은 하늘의 법도대로 질서 정연히 빈틈없이 일을 잘 치루어 낸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북두칠성과 관련된 신라와 김유신 장군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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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신 장군 생가터(진천읍 상계리 게양마을) 앞 기와집이 장군의 생가 '화랑정'이고, 뒤에 보이는 산이 장군의 태를 묻은 태령산이다. |
신라말의 태학자 선유(仙儒) 해운 최치원은 신라의 원래 이름이 ‘시라’(尸羅) 였다고 주장했는데 따라서 일본인들은 신라를 ‘시라기’라 부른다.
시라‘(尸羅)라고 할 때 그 사전적 한자의 의미는 주검이 (그물처럼)펼쳐진 땅이 되는데, 그러나 이 시(尸)는 북두칠성의 국자모양과 똑같이 생겼으며 북두칠성 별빛내릴 시의 의미로 북두칠성의 빛이 땅과 사람의 머리 위에 충만히 내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라’는 북두칠성의 별빛이 그윽히 내리는 복받은 땅이라는 의미이다. 서기 595년(진평왕 17년) 신라 만노군 태령산밑 담밭안(현 진천군 상계리 게양마을)에서 등에 칠성무늬가 새겨진 사내아이가 태어났으니, 이 분이 바로 삼한일통의 주역이요 한민족 불세출의 군웅인 순충장렬개국공태대각간흥무대왕 김유신 호태대장군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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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 네모선 안 낮은 구릉지대가 장군이 어려서 말을 훈련시켰던 '치마대'라고 하며, 말타고 화랑놀이를 하던 곳이다. |
*********************************** <박만호/경주 황내과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