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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상25회 여상13회 원문보기 글쓴이: 엄창수
레
가는길
1. 첫째날
마날리에서 레에 가는 길은 버스와 지프가 있다. 풀타임 24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길이다.
인도의 철인같은 버스 운전사들은 교대 해주는 사람도 없이 이 길을 24시간, 혹은 1박2일(36시간)으로 다닌다.
24시간에 다니는 버스는 너무 위험 할 것 같아, 지프를 전세내기로 했다. 1박 2일에 10,000루피가 7로 안 나눠지니까(일행이 7명이니까) 200루피를 깎자고 해도 안 깎아 줘 한참을 실갱이 하다가 결국 승리했다.
1인당 1,400루피씩 9,800루피에 계약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지프를 탈려고 보니, 그 많은 배낭을 실을 자리가 없다. 아침부터 비는 쏟아지는데, 배낭은 어디다 실어야하나? 그러나 기사는 만병통치약, 노프러브램~ , 지프의 지붕에 싣고 포장을 덮어 묶어 버린다. 그리고 9인승이라는 지프에 8명(기사포함)이 쑤셔 박힌 채로 빗속을 뚫고 장정이 시작되었다.
출발하고 산을 오르니 절경들이 펼쳐진다. 모두 창밖의 경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저 감탄사만 터트릴 뿐이다.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이 이것이로구나, 보고 있는데, 출발한지 한시간만에 버스가 멈추는데 내릴려고 보니 너무 춥다, 우리는 차안에서 껴입을 수 있는 옷들은 껴입고, 그래도 추워서 담요들을 뒤집어썼다.
내리고보니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사고가 났는가 하고 보니, 내린 비에 도로가 유실되었단다. 뭐 걱정한다고 도로가 복구될 것도 아니고 우리는 마음 편하게 먹고(?) 춥고 배고프고, 추위에 떨며 배고프고, 사진 찍고 춥고 배고프며 두시간을 버텼다. 길을 보수한지 두시간 만에 사람들이 모여서 못 올라가는 차를 밀어서 출발시키고 환호하며, 우리도 출발했다.
모두 담요 둘르고
갈 길이 바쁘다, 모두 영차, 영차
아침도 못 먹고 출발을 해서 모두가 배가 고픈데도 휴게실은 나오지 않고 절경들만 펼쳐진다. 배가 고파지니까 히말라야도 식후경인데~~
배가 고파도 산위로 올라갈수록 구름과 산의 조화는 절묘하다.
신선들만 사는 곳
근데 신선들만 사는곳에 왜 선녀가????
히말라야의 선경
산이 산으로만 아름다운게 아니라 구름과 어울려 선경(仙境)을 만들어 낸다. 한시간을 더 달려 마침내 휴게소에 도착했다.
산속의 휴게소
산정에 있는 휴게소는 너무나 춥다. 밥은 먹어야겠고, 춥기는 하고, 옷은 없고, 마침 휴게소에서는 따뜻한 옷을 판다.
저 옷을 샀다가 레에서 안 추우면 엄청난 부피의 짐인데, 저 옷을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엄청난 고민에 휩싸인다. 삶은 늘 선택의 순간에 선다.
점심을 탈리를 먹을까, 후라이드 라이스를 먹을까, 비싼데 이 옷을 살까, 말까의 작은 선택에서부터,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지, 저 사람과 결혼해야할지, 이혼을 해야 할지, 그냥 참고 살아야 할지, 등등의 커다란 문제까지 늘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나 선택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들은 그것이 선택하기 어려운 고민일수록 아무것도 아니다. 둘 다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다. 선택이란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 때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는가? 둘 중의 하나가 현저하게 좋고, 하나는 보기도 싫을 지경이라면 고민하지 않는다. 즉 잘 생기고 교양있고 매너있는 백마 타고온 왕자와, 애꾸눈에 못생기고, 더럽고, 욕만 해대는 거지의 두사람이 동시에 청혼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할지 고민하는 여자가 있을까?
둘 다 비슷하고 서로 장단점이 있을 때 고민한다. 서로 거의 비슷할 정도로 장단점이 비슷하면 심각하게 고민한다. 잘 생각해보면 아무거나 선택해도 된다. 왜냐하면 장단점이 비슷하니까. 그런데도 어리석은 우리들은 잠도 못자고 밤새 고민해서 선택하고도 지나고 나면 후회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안사기로 결정했다. 며칠간이니까 그냥 한번 가보지요, 뭐~~
우리는 그렇게 구름과 산이 어울린 속을 쉬다가 달리다 하며 멀리서 보이는 설산이 차츰 가까워져 간다고 생각되어지는 어느 땐가부터 나무들이 사라지더니 풀들도 차츰 적어지고, 마침내는 벌떡 일어선 사막(황무지?)로 변해 버린다. 이제 주위는 풀 한포기 제대로 보이지 않는 굴곡 있는 타르사막처럼 보인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오후 7시에 해발 4,200m가 넘는 사추에 도착, 이곳에는 이제 마을도 집도 없다. 히말라야 깊숙이 들어와 텐트촌이 유일한 숙박지이다. 어두워져가는 산중에 버스에서 내리자 완전 겨울날씨 같다. 옷은 여름옷뿐인데, 추위에 덜덜덜... 그래도 옷을 안 사기로 한 내 결정에 후회없이 머물고자하는데, 아니, 이곳의 숙박비가 저녁식사를 포함해 1인당 500루피를 달라고 한다. 그냥 가겠다느니, 춥고 배고픈데, 이 산중에서 어디로 가느냐 그냥 주고 자자는둥, 실갱이와 흥정 끝에 텐트숙박 1인당 200루피, 개인의사에 의한 저녁식사는 탈리 100루피에 합의를 보았다.
비싸게 주고 잔 해발 4,300m의 텐트
결국 저녁은 각자의 선택에 의해 비싼 밥을 먹고, 나는 저녁을 먹지 않은 채로 가지고간 위스키만 텐트 안에서 조금씩 마시며, 고산병으로 숨이 가빠오는 상태로 텐트속의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첫날을 보냈다.
2, 둘째날
새벽에 잠이 깼는데 오줌이 너무 마렵다. 그런데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어도 춥다.
춥고 따뜻한 옷도 없고, 참고 있으니 오줌은 더욱 마렵고, 그러다가 결국은 나갈건데 참으면 참을수록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나서 텐트 밖으로 나가니 산소가 희박해서 숨쉬기가 어렵다.
숨쉬는 속도가 자꾸 빨라지고 숨쉬는 내 모습이 자꾸 의식된다.
너무 추워 무려 20루피짜리 짜이 한잔을 마시고, 출발을 하려는데, 차에 이상이 있다.
어제밤 도착 직전 앞바퀴 연결축이 부러졌는데, 부속을 파는 곳도, 차를 고칠 수 있는 곳도 없다.
그래도 기사는 만병통치의 ‘노 프로브럼~’으로 출발하고, 우리는 ‘매우 프로브럼인’채로 앞바퀴축이 부러진 차를 타고 까마득한 절벽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좁은 길에 차가 만나면 교차를 못해 넓은 곳을 찾아 한대가 뒤로 후진을 하는데, 그나마 인도의 차들은 백미러를 한쪽밖에 안 달고 다닌다. 약간의 넓은 곳을 찾아 차가 교차하는 순간 내려다보면 차가 절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순간에 메모지를 꺼내 유서를 쓰기 시작하면 유서를 다 쓰고나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까하는 황당한 생각을 하며 해발 5,300m 세계의 도로중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타그랑라에 도착했다.
멀지만 가야할 길
가는 길의 경찰초소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해발 5,300m의 타그랑라 표지석
타그랑라 주변
레 입구의 아름다움
백두산 높이의 두배 가까이 되는 5,300m! 고산병에 대해 약간 걱정했는데,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한명이 심하게 어지러워 계속 누워만 있지만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말을 하면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한편으로는 술을 많이 마셔 취한 듯 약간 몽롱한 상태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서 마침내 오후 7시 아침 7시에 출발해서 다시 12시간만에 해발 3,500m에 위치한 ‘레’에 도착했다.
해발 3,500m의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도시 ‘레’ 이상하게도 레에 도착하니 전혀 춥지가 않다. 오는길의 ‘사추’나 ‘타그랑라’의 추위 같은 것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전혀 춥지 않은 도시 ‘레'에서 우리는 오는 도중의 추위, 고산병, 앞바퀴축이 부러진 차의 공포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졌다. 와! 겨울옷을 안 산 나의 이 탁월한 선택!!!
레
1. 레 스케치-1·
아침 일찍 왕궁으로 산보를 나갔다. 3,500m의 고산지대인데도 전혀 춥지가 않은게 신기하다.
그러나 숨은 가쁘다. 빨리 걷기가 힘들다. 아주 천천히 걷는다. 특히나 산위에 있는 왕궁을 올라가기는 너무 숨이 가빠서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아장아장 천천히 걸어가는데,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일행이 된 청년둘이 전력질주로 달려오더니 그대로 달려 올라간다. 나는 달려 올라가는 청년들의 뒷모습을 그냥 미소만 띠고 바라보다, 힘겹게 한발씩 왕궁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왕궁은 문이 닫혀있다. 그래도 산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레' 시가지의 전망이 참 평화롭다. 해가 뜨면서 햇볓이 비치는 곳과 안 비치는 곳과의 명암이 뚜렷이 대비되고 도시를 둘러싼 식물없는 산들은 8월의 매우 더운 날씨에도 녹지 않는 눈들을 머리에 이고 있다. 도시 곳곳에 조림한 숲이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사람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도 물만 있으면 나무를 심고, 채소를 재배하며 살아간다.
왕궁에서 내려다본 레의 모습
레의 한낮은 마치 자이살메르의 사막처럼 뜨겁다. 해발 3,500m의 고지대에 어떻게 이런 더위가 가능할까? 안 짜고 널어둔 빨래가 한시간만에 마르는 이런 뜨거운 날씨에 도시를 둘러싸고 안 녹고 있는 저 눈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나 레는 추위가 빨리 오고 늦게 물러간다. 5월이 되어야 길이 열리고, 9월 하순이면 길이 닫힌다. 그 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델리에서 연결되는 비행기뿐이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와 봐도 너무 추워서 모든 가게와 숙소들이 문을 닫고, 움직이기도 어렵단다. 그러니까 이곳 사람들은 4개월 동안 관광객들이 뿌린 돈으로 긴긴 겨울 잠을 자야한다.
2. 레스케치-2
밥을 해먹기로 했다. 일행이 7명이나 되나까 밥을 해먹는 일도 활기가 있다. 이 고지대에 평지보다 오히려 야채가 많이 보이고 보기 힘들었던 배추 비슷한 것도 보이는게 참 신기하다.
야채시장과 노점 시장을 거쳐 쌀, 감자, 양파, 양배추, 그리고 배추(?), 달걀 등을 사고, 육류를 사고 싶은데 파는 곳을 알 수가 없다. 숙소 주인에게 이야기하니, 심부름하는 아이가 앞장을 선다. 전혀 가게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닭을 달라고 하니까 따라오라고 하더니, 어떤 집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서 닭을 잡아 판다. 다시 그 가게 같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니 닭고기를 신문지에 싸서 가지고 들어온다. 우리는 아주 비밀스러운 아편을 밀거래하듯이 닭고기를 사서 조리에 들어갔다.
김치담고, 달걀찜하고, 감자볶음하고, 양배추 찌고, 양념장 만들고, 닭도리탕을 만드니, 완전 풍성한 식탁이다. 여기에 레의 명물 살구까지 곁들인 식사를 소문듣고 찾아온 다른 숙소의 사람들까지 모여서 신나게 먹었다. 역시 여행의 최고 재미는 먹는데 있는가 보다.
준비한 식사
그러나 사람 사는 일이 좋은 일이 있으면 반대급부가 있는 법, 숙소주인에게 부엌을 사용하겠다고 하니까 무료로 사용하라고 하더니, 다 먹고 나니까 부엌사용료를 하루에 150루피를 내라고 한다. 잘 통하지도 않는 말로 실갱이 끝에 하루 50루피를 주기로 합의하고 50루피를 줬는데 다음날 아침부터 숙소주인의 표정이 영 떨떠름하다.
오후에는 노골적으로 기분나쁜 표정으로 흘겨본다. 우리 일행들이 불편해서 못 있겠다고, 다른 곳으로 방을 옮기자고 해서 방을 보러 다녔는데, 의견이 일치가 안 된다. 결국 스님만 따로 방을 옮겨 버렸다. 그리하여 맛있는 밥을 맜있게 먹은 결과로 일행은 여섯명으로 줄어들었다.
라다크 민속공연
나도 함께
3. 레 스케치-3
남은 여섯이서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나를 제외한 다섯명은 스리나가르로 가겠다고 한다.
가이드북 100배에 의하면 스리나가르는 파키스탄과의 분쟁지역으로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가장 많은 대단히 위험한 지역이니 가지 말라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만 기를 쓰고 간다고 나와 있더니, 과연 다섯명 모두가 왔던 길을 어떻게 그대로 돌아내려 가느냐, 다른 길로 가겠다 한다. 결국 표를 예매하러 함께 가서 다섯명은 스리나가르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나는 마날리로 돌아가는 표를 예매하려다 혼자서 버스로 왔던 길로 다시 돌아내려 가자니, 너무 힘들 것 같아, 비행기를 생각해 보았다.
히말라야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며 며칠 걸릴 길을 한시간만에 델리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델리에서 레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은 고도차이 때문에 적응하기가 힘들지만 레에서 델리로 내려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 일단 경비를 계산해 본다.
비행기가 4,000루피 정도 된다고 하는데, 버스로 내려갔을 때의 경비, 레에서 마날리까지 버스비 1,400루피, 텐트 200루피, 마날리 2박 숙박비 500루피, 마날리에서 델리 교통비 350루피, 5일간 식비 500루피, 잡비 300루피 합계 3,250루피, 비행기와 버스의 명백한 차이, 4,000루피대 3,250루피, 소요시간 1시간대 5일, 명백해 보이는 이 계산서에서 과연 유리해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좋은 것일까?
우리 삶에서 멍청해 보이는 시간들, 없었으면 좋은 시간들을 다 빼버리면 우리 인생에 정말 기쁘고 좋은 시간들은 몇시간이나 될까? 이 여행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6시간, 버스를 타고가는 시간 15시간 등등을 없애버리고 싶어하면 이 여행에서 남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우리 삶이라는 여정은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때 빛나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는 비행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비행기에서 히말라야를 내려다보고 싶었으므로... 그런데... 내가 듣기로 델리까지 항공료가 4,000루피라고 분명히 들었는데, 여행사에서 물어보니 5,800루피라고 한다.
너무 황당해서 공항에 가면 표가 좀 싸겠지, 수수료가 없으니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그러나 공항에서는 총을 맨 군인이 문도 안 열어준다. 비행기표는 여행사에서 사고, 공항은 비행기 탈 때만 문을 연단다. 할 수 없이 돌아와서 5,800루피에라도 살려고, 5,800루피를 주니, 그 사이에 가격이 올라서 7,200루피란다,
헉!!!ㅠㅠㅠ, 세상에 이런일이~~ 아! 여기는 인도구나! 하는 느낌이 진하게 다시 온다. 다른 여행사에도 몇군데를 들러 봤는데 모두 7,200루피다, 달라이라마가 방문하기로 해서 가격이 그렇게 올랐단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우리 상식이 통하는 한국이 아니라 이곳은 인도니까~~
어쩔수 없이 1박 2일짜리 마날리행 버스표를 1,400루피에 예약하고 공중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보다는 돌아가는 길에 오면서 놓친 히말라야를 구석구석 보는게 더 멋 있을거야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아! 인도니까~~
4. 레스케치-4
이른 아침에 혼자서 왕궁을 올라가서 해 뜨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 어제 남은 닭고기에 밥을 볶고, 달걀사다가 후라이하고 등등 열심히 맛있게 만들어서 아침 먹자고 깨우러가니, 세명이 안 보인다.
아침을 함께 먹기로 했는데 왜 안오나 기다리다 배고프다해서 나머지 셋이서 아침을 먹었다.
세명 분을 남겨두고 기다렸는데 한참 후에 돌아온 세명은 밖에서 사 먹고 돌아왔단다.
순간적으로 미운 생각이 든다. 아니 이런 사람들과 어떻게 다니나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돌이킴도 함께 왔다.
아침 준비하느라 150루피 들어서 1인당 25루피씩 내라고 할려고 했는데, 내 생각대로 안 되니까 75루피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그냥 내가 150루피를 내면 되는데 적은 일에 갇혀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여행에서 얻은 값진 소득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길에서 스님을 만났는데 숙소를 다시 한국절로 옮기는 중이고, 그 절에서 오래 머물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모두는 스님의 공부가 잘 되기를 축원해주며, 1명이 빠진 5명이서(절대 자리 때문 아님, 자리는 언제나 한명은 더 탈 자리가 있는게 인도의 탈 것임) 빵과 바나나를 사고, 달걀 한판 사다가 쪄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워낙 작은 마을이라 레스토랑도 없는 순박한 라다끼가 사는 작은 마을 알치에 택시를 1,300루피에 대절해 갔다.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한 아름다움을 거쳐 가다보니, 인도의 다른 곳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군부대들이 곳곳에 보인다. 새삼 이곳이 세계에서도 몇 곳 안 되는 분쟁 지역 중의 하나인 케쉬미르임이 부각되어진다.
알치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다. 기념품 가게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관광지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뒤로 급류가 흐르고 산이 어울려지는 모습과 그 산 아래서 타작을 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참 정겹다. 급류가 흐르는 강변으로 내려가다가 자두보다 조금 큰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린 사과 과수원 옆을 지나게 되었다. 하나 따먹어보고 싶은데, 한국사람 도둑놈이라고 소문 날까봐 매우 조심스럽다.
그때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는 할아버지가 우리를 부른다. 할아버지는 집안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더니, 방바닥에 사과를 따다가 계속 부어 놓는다. 마음껏 먹으라고 이야기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얼마나 정겹든지!! 인도에 온지 한 달이 넘었는데 인도 사람이 사는 집에는 처음으로 들어와 본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라다크는 지금은 인도에 속해 있지만, 본래 인도는 아니다. 티벳의 영토였다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인도로 편입되었고, 라다크의 사람들도 인도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티벳 사람이면서 라다끼로 분류되는 인도 사람들, 그러나 우리들은 티베탄이나 라다끼를 너무 좋아한다.
그들의 너무 순박해 보이는 모습과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고향의 정취처럼 느낀다.
집안에는 신앙을 위한 제단이 차려져 있고, 의자와 소파 등을 보니, 잘 사는 집인 것 같다.
우리는 자두보다 조금 큰 별로 맛없는 사과를 맛있는 척 먹고, 일어서는데 가지고 가라며 또 사과를 싸준다.
얼마를 주면 되냐고 물어보니 절대 사양한다.
근데 또 우리가 돈을 달라면 깍고 또 깎는데 그냥 가라면 후하게 준다. 도저히 그냥 가지고 갈 수가 없어 200루피의 거금(?)을 주고 풀 숲에서 우리가 싸간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1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사과를 들고와 부끄러워하며 먹으라고 내민다. 이 정겨움이 왜 이리 좋은지!! 아마도 인도 사람들에게 늘 사기당하고 시달리며 이런 정겨움을 찾고 있었는가보다며, 우리 모두는 알치행을 너무 즐거워하며 레로 돌아왔다.
알치 가는 길
알치에서 만난 라다크 소녀
알치의 산
이제 내일 새벽 레를 떠나야 한다. 유행가 가사처럼 모두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이라고 돌아왔는데, 레에는 새로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8.15 광복절을 맞이하여 광복절을 노리는 폭탄테러가 심하기 때문에 당분간 스리나가르행 버스는 운행을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그러면 마날리로 내려가는 길밖에는 없는데도 모두가 광복절이 지날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어이 스리나가르로 돌아서 오겠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길이 달라서 헤어질 수밖에 없어 새벽 2시까지 함께 놀다가 새벽 6시 혼자서 마날리로 떠나기 위해 혼자서 출발했다.
산 꼭대기에 있는 곰파
첫댓글 님의글을 읽노라면 내가 그곳에 있는듯하네여^^ 적은예산으로도 행복하게 여행하는 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세세하고 솔직담백한 글을 읽노라면
가슴에 진한 감동이 흐른답니다..
그래 이거야....
진실...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건 진실,,,
잘 봐주셔서 그렇겠지요
지금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운 글들이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