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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큐슈 여행기
2011.08.06(토)-09(화) 3박4일
1) 8월6일 오후6시 :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일본배인 하마유 승선(1박)
2) 8월7일 오전 8시 : 일본 시모노세기항 도착
오이타현의 우사신궁 견학 - 일본최대 온천지대 벳부의 유황재배지 유노하나와 가마도 지옥 견학 - 점심식사 후 유후인(긴린호수) 견학 - 3시간 거리의 구마모토현의 아소팜 빌리지 호텔 도착(1박)
3) 8월8일 오전8시 : 아소산 국립공원 중 나카다케 화구 및 주변의 초원인 쿠사센리 견학 - 오후오카현의 후구오카로 이동(3시간 소요)하여 다자이후 텐만궁 견학 - 점심식사 후 면세점 쇼핑 - 4시 시모노세키항 도착 - 6시 한국배인 성희호 승선(1박)
4) 8월9일 오전8시 :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도착
8월6일 오후1시15분 우리가족은 3년만의 해외여행에 부풀어 부산행 KTX를 탔다. 태풍 ������무이파������가 북상하면서 많은 바람과 높은 파도로 인해 혹시나 배가 출항하
< 천안아산 KTX 역사 및 실내에서 >
지 않을까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이번 일본여행이 두 번째여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덜했지만 여행자체가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 2시간30분이 짧게만 느껴졌다. 4시경 부산역에 도착해 이른 저녁을 먹고 5시에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
까다로운 수속을 밟으면서 일본 배인 하마유에 승선했다. 그동안 비행기로 해외여행을 하다가 배를 타고 가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지 않을까 하여 선택했는데 우리숙소인 1등 4인실(양실)과 부산항의 야경을 보며 좋아하는 찬우, 예슬이를 보니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우리 부부 또한 부산항의 아름다운 야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배가 항구를 빠져나와 망망대해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워서 앉거나 서 있을 수 없게 되어 누워있었다. 저녁9시가 되어 이른 저녁을 먹어 속이 출출하여 무엇인가를 먹여야만 멀미를 덜 할 것 같아 가지고간 컵라면과 요구르트, 빵을 먹었다. 어느 정도 먹고 나니 멀미가 진정되고 우리가족도 배에 익숙해지면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하마유 4인실 >
< 하마유 선상에서(부산항의 야경) >
※부관훼리는 1969년 8월에 설립한 한일간 최초의 카페리 항로를 개설한 국내최초의 선박회사로 16,000톤급의 정원500명 수용에 부산-시모노세키를 운항하며 홀수 날에는 한국(성희호)가, 짝수 날에는 일본(하마유)가 운항되고 있다.
8월7일 아침 7시 일본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8시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했다. 시모노세키항은 일본의 본섬인 혼슈섬의 서남쪽 남단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과거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 지역이다. < 시모노세키항의 대기실 >
관광버스를 타고 혼슈섬과 규슈섬을 연결하는 관문대교를 지나 규수지방의 동부해안 을 타고 오이타현의 우사신궁으로 향했다. 마을마다 일본의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고 전통기와를 이용하여 전통가옥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 전통가옥을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나라보다 남쪽에 위치하여 산마다 울창한 삼림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만나니 일본의 자연에 애착을 다시 한 번 느꼈다. 5년전 일본을 여행했을 때도 느꼈지만 어디를 가나 잘 다듬어진 도로와 마을, 정갈한 풍경이 내 나라와 비교되었다.
< 일본의 전통가옥 >
마을마다 골목마다 자동차가 가득한 우리나라의 풍경을 보다가 넓지 않은 땅을 잘 활용하여 자동차 주차장을 만들고 도로가에는 주차된 자동차를 볼 수 없어 좁은 도로가 오히려 넓어 보였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차를 살 때는 주차장을 확보해야(2km 이내) 차를 등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될 것이며 주차 위반 범칙금을 높이면(자가용 약20만원) 불법주차로 인한 도로 혼잡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높은 과태료로 불법주차가 없어지면서 주차사업이 번창하여 공급 과잉으로 어디를 가나 주차비가 저렴하다고 한다.(30분에 100엔, 하루 500엔, 환율 1,400원)
약2시간을 지나 우사신궁에 도착했다. 일본은 섬나라로 섬이 많고, 산이 많으며, 신이 많은 나라다. 사람도 신이 될 수 있는 나라다. 신궁은 왕과 왕의 직계조상을 모신 곳으로 우사신궁은 일본의 3대 신궁(메이지신궁-1868년 축조됨, 이세신궁) 중 하나로 15대왕 응신왕을 모신 곳이다. 응신왕은 백제 왕자설이 있는데 광개토태왕에게 죽음을 당한 백제 게로왕의 동생이라는 것이다. 생전에 백제 복식과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응신왕의 무덤은 오사카에 있는데 무덤의 길이가 425m로 규모가 광대하다고 한다. 신궁 입구 양쪽에는 우리나라의 해태와 비슷한 개모양(고마이노)의 석상이 있는데 고구려의 개를 가져와 수호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개를 여우로 표현하여 음식과 농업의 풍요를 빌었다고 한다. 일본의 신 중 7대 신이 있는데 가야의 김수로왕의 7왕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최고의 신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 우사신궁 입구 >
< 우사신궁의 조리 >
우사신궁은 전국하치만신의 총본궁으로 725년 응신왕의 전당이 고쿠라산의 현 위치에 모셔졌다. 양 옆에는 3공주와 진구황후(왕의 어머니)가 모셔져 있다. 경내에는 738년 창건된 미륵사지터가 있고, 우사신궁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구라산 일대의 이치떡갈나무 숲은 일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일본인의 마음의 고향이라 불리우고 있다. 신궁의 붉은 빛과 울창한 숲이 잘 어울려 있어 본전이 장엄하게 서 있다.
일본의 많은 관광객들이 네번 박수를 치고(신을 깨운다) 기도(소원)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본당 입구에는 운수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고 옆으로는 운세에 따라 말그림 뒤나 표주박 속에 소원을 적어 걸어놓은 곳과 안 좋은 운세는 나뭇가지에 메달아 놓은 곳이 펼쳐져 있다. 본당 왼쪽 옆에 수령이 천년이 넘는 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는데 세끼 줄이 쳐져 있고 번개 모양의 종이가 걸쳐 있다. 번개는 악령을 퇴치하기 위함이란다. 신궁의 지붕은 편백나무로 향이 좋고 견고하여 최고의 목재로 쓰인다고 한다. 본당 입구에 다다를 무렵 손과 입을 씻는 공간이 있다. 우리조상들이 신을 경배하기 위한 하나의 목욕재개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우사신궁의 본당 앞에서 >
태풍 ‘무이파’의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많은 바람과 비가 내린다고 하지만 이곳 큐슈지방은 약간 흐리지만 비가 오지 않고 그렇게 덥지 않은 날씨에 관광하기 딱 좋은 날이라 우리가족은 좋아했지만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걱정이 되었다.
< 우사신궁의 신년운수 보는 곳과 운세를 매달아 두는 곳 >
일본식 점심(시원한 우동과 닭 튀김, 각종 야채 등)을 먹고 우리는 다시 3대 온천 중의 하나인 벳부로 향했다. 벳부는 인구13만명의 온천 관광도시인데 연간 1,000만명의 관광객이 오는 최대의 관광지이자 휴양지이다. < 점심식사 >
지나가는 차를 보니 경차가 대부분이었다. 일본에서는 30%(약660cc정도)가 경차로 노란색의 넘버가 해당된다. 일반차는 흰색의 넘버인데 거의 노랑색의 넘버를 볼 수 있었다. 일본은 물가가 비싸고 교통비가 비싸 경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월급은 한국과 비슷한데 집값은 비싸므로 월세가 많다는 것이다.(전세는 없다. 금리가 제로이므로) 후쿠오카 등의 대도시에는 월세도 비싸(원룸6평,6만엔, 직장인 평균월급25만엔 정도) 혼자 살기 어려워 동거인이 많다. 자가주택을 선호하지만 3,4천만엔의 목돈이나 30년 할부(월7,8만엔) 능력이 되지 않아 임대 주택자가 많다. 월급이 적고 물가가 비싸니 소박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회식도 각자 식사 값을 낸다. 어떻게 보면 선진국인 일본의 서민이 사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고 있으며 그 삶이 오늘의 일본을 일으킨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버블경제를 겪은 오늘날의 일본 모습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사회전반적인 과소비 풍조 등에 하나의 경종을 울리는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40분을 지나 벳부의 유노하나(유황 꽃)재배지에 도착했다 벳부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유황이 재배되는 데 그 경관이 마치 구석기시대 집처럼 짚으로 만들어 져 있었다. 땅이 노란색으로 덮여 있는데 온천 속의 유황이 올라와 수증기가 증발한 후 노란색의 유황이 남아 형성되었다고 한다. 유황의 채취방법은 온천의 수증기가 올라오는 곳에 돌을 깔고 그 위에 청정토를 깔면 그 위에 하얀색의 유황꽃이 피는데 빗물에 녹지 않도록 볕짚을 세워 문을 닫아 보호한다고 한다. 유황은 피부 염증이나 아토피 등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유황이 적어 유황온천은 인위적으로 썩어 만든 온천이 많아 효능이 적다는 것이다. 산 곳곳에 마치 연기가 피오 오르는 것처럼 수증기가 나오는 곳이 많이 있는데 관정을 뚫어 온천수를 개발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에는 약2600개의 온천수가 있다.
이어 벳부의 지옥온천순례 중 가마도지고쿠(솥 지옥)에 도착했다.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벳부의 최고의 명소이다. 지하 250-300m 깊이에서 100℃ 전후의 열탕과 분연이 분출되는 모습이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지옥순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온도(92℃-102℃)에 따라 물의 색깔이 다른 6개의 크고 작은 연못으로 이루어져 잇다. 담배 연기를 뿜으면 연못의 안개가 피어나 사라지는데 담배연기가 대기 중의 습기와 결합하면서 안개가 더 많이 피어나는 원리인데 매우 신기했다.
< 가마도 지옥 입구 > < 100℃가 넘는 온천 및 족욕 모습 >
이곳에서는 약10분간 족욕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여유있게 주변의 풍광을 보고 즐겼다. 7년 더 오래 살 것을 확신하면서 유황계란을 먹었다. 2개 100엔(1,400원). 일본인이 장수하는 요인 중 하나가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유행처럼 한때 건강 비법 중 하나로 자리잡은 반신욕을 발견한 것도 일본인이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유후인이다. 오이타현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온천마을로 이곳에는 미술관과 갤러리, 레스토랑, 아기자기한 잡화점과 카페들이 많이 있고 마을 한켠에 긴린코(金鱗湖)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호수의 물고기가 수면위에 뛰어오르는 모습이 석양에 비쳐 그 비늘이 금빛으로 보인다 하여 긴린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호수바닥의 온천수가 뽐어져 나와 일교차가 큰 계절에는 호수 주변의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한다. 주변의 마을과 상점이 매우 아름다웠다. 일본 젊은 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겠다.
< 긴린코 호수 입구 및 호수 > < 호수주변 온천탕 및 가장 예쁜집 >
이어서 우리일행은 숙소가 있는 아소산을 향했다. 산 속에 잘 놓여져 있는 도로를 타고 오르는 데 도로 옆에는 방풍망이 설치되어 있다. 바람이 세게불면 바람을 차단하는 시설이라고 한다.
규수의 상징이자 구마모토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아소산은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1933년)이자 세계 최대의 칼데라 화산으로 매년 6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200만년전에서 60만년전 분화로 함몰 후 큰 호수가 형성되었고 그 후 10만년전 호수 중앙에 화산 폭발로 지금의 분지를 형성하였다. 그때의 화산재가 북해도에까지 쌓였다고 한다. 아소산은 5개의 봉우리로 형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칼데라 분지로(둘레128km, 동서18km, 남북28km) 1만9천여명이 논농사를 하면서 거주하고 있다. 5개 봉우리는 평균 1,300m정도로 그 중 가슴부위에 해당하는 봉우리가 1,592m로 가장 높다. 분지를 향하면서 곳곳에 목장이 아주 많았다. 이곳은 목초지가 매우 질이 좋아 유제품 또한 아주 질이 좋다. 일본인들은 사골과 소꼬리를 먹지 않아 사골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지하수질이 좋아 구마모토에는 유명한 맥주 공장이 많다.(예 산토리 맥주) 지난 1958년과 1979년에도 화산 폭발이 있어 활화산이다.
< 아소산 분지 >
2시간을 달려 우리는 아소산 중턱에 있는 아소팜 빌리지 숙소에 도착했다. 숲속에 만든 스머프집 같은 돔형의 323개 숙소가 넓게 펼쳐져 있어 프론트와 식당, 온천 등에 가려면 5분간격의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멀리서 보는 하얀색의 스머스집이 자연과 어울려 펼쳐진 모습은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 아소팜 빌리지 입구> < 아소팜 숙소 > < 입구 앞 야경 >
짐을 풀고 식당으로 향하는 길 각각의 조명이 동물의 형상을 하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어 동화속의 나라에 온 것 같아 찬우, 예슬이가 무척 좋아했다.
< 아소팜 빌리지 야경 >
저녁뷔폐로 약100여종이라고 하는 갖가지 요리가 나왔는데 모두 맛나고 좋아 간만에 포식을 하면서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냈다. 이어 피로를 풀기 위해 온천욕을 했다. 5년 전 일본여행 때 센다이 부근의 작은 온천마을에서 전통다다미 방에서 숙박을 하고 작은 규모의 동네 온천욕을 한 적이 있었는데, 대목욕장에서의 온천은 다른 묘미를 주었다. 유황냄새로 역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온천에 빠져들어 피로를 풀고 매끄러운 피부와 머릿결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숙소 내부는 천정 가운데 자연채광을 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져 있고 창이 3개가 나 있다. 원형의 돔이기 때문에 맞은편에서의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듯하다. 산속이라 저녁에는 선선하여 일본의 많은 여행객들이 피서지로 이용하는 관광지이며 대다수가 가족단위의 일본인이 많았다. < 숙소 내부 >
큐수에서 본 일본인은 작고 피부가 대체로 검고 동남아시아계 처럼 느껴졌다. 5년전 혼슈섬에서 여행할 때는 우리민족과 비슷한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일본 민족은 크게 3민족으로 구성할 수 있다. 북해도에 거주하는 아이누인(원주민)으로 순수혈통이 약 1만명이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도래인이다. 도래인은 고대 백제와 신라(가야), 고구려 유민을 말한다. 오키나와에 거주하는 유규인은 남방인으로 피부가 검고 작으며 동남아의 혈통을 갖고 있다. 우리가 큐슈에서 본 체구가 작고 검은피부의 이국적인 마스크를 갖고 있는 이들은 유구인들 이었다.
8월8일(월) 아침 8시30분 전망대에서 아소팜 빌리지를 관망하고 우리는 아소산의 활동 중 인 분화구를 보기위해 약40분정도 버스를 타고 아소산에 올랐다.
< 아소팜 빌리지 전경 >
구마모토현에서 1958년 케이블카를 아소산에 설치하였는데 아소산서역(1,150m)에서 약900m 거리(높이차 108m)를 케이블카로 올라 화구서역(약1,258m)에 오르는 코스다. 5월 중순이면 나카다케 분화구 주변에 철쭉이 아주 예쁘게 피어 또 다른 경관을 보인다고 한다. 나카다케 분화구에 가는 길에 넓게 펼쳐져 있는 초원과 2개의 호수, 호수 주변에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말과 소들이 있는 쿠사센리(草千里)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호수는 비가 올 때만 유지되고 깊이는 1m도 안된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이 초원을 순회하는 승마체험을 하고 있었다. < 쿠사센리 초원과 2개의 호수 >
아소산 서역에서 4분간 케이블카를 타고 나카다케(中岳) 분화구에 오르니 짙은 안개가 몰려오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화구에 다다르니 유황냄새가 역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곧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몰려왔다. 동서 400m, 남북1,100m, 둘레4km, 깊이 150m에 달하는 거대한 분화구 안에는 부글거리는 마그마와 새하얀 분연을 볼 수 있지만 날씨가 흐리거나 화산활동이 심한 날에는 분연과 함께 독한 유황가스가 분출되어 케이블카 운행도 중지된다고 한다. 분화구 모양이 귀모양을 닯았다고 한다. 활화산의 분화구를 보고 비가 올 것 같아 내려오는데 구름이 걷히고 날씨가 맑아지고 있어 해발 1,260m의 고도에 변화무쌍한 일기를 실감했다. 약 20분을 트레킹을 하며 마치 제주도의 올레길을 걷는 것처럼 여유롭게 주변의 경관을 보면서 내려왔다. 제주도보다 저위도에 위치하여 겨울에 눈이 많이 오지만 눈은 곧 녹는 다고 한다.
< 나카다케 분화구 서역 > < 분화구(귀모양) > < 케이블카에서 분화구 가는 길>
< 분출하고 있는 분화구 > < 나카다케 분화구에서 내려가는 길 >
주변에는 목장을 위해 조성한 목초지가 형성되었는데 주로 육우를 키운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고메즈카(米塚)라는 분화구를 보았는데 제주도의 오름 같았다. 고메즈카는 아소산의 신이 쌀을 수확했을 때 쌓아둔 것이 지금이 언덕이 되었다고 전해오며 높이는 954m로 목초로 덮여 있는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다.
< 고메즈카 분화구 >
이어 우리는 후쿠오카를 향했다. 후쿠오카는 중국과 한반도 대륙을 접하고 있어 예로부터 대륙의 문화가 발달해온 곳이다. 규슈의 경제·학술·문화의 중심지로 기능이 집적된 도시이기도 하다. 후쿠오카 근처의 넓은 평야에는 녹차밭이 많았다. 큐슈지방의 녹차도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많이 생산된다. 일본의 가정집에서는 녹차를 우리네 보리차처럼 즐겨 마셔 소비가 많아 생산도 많이 한다. 세계에서 중국과 일본이 녹차 생산을 많이 하는데 일본은 안전하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생산하는 녹차는 값싼 중국산을 수입하기 때문에 안전성이 떨어진다.
후쿠오카의 다자이후시에는 고대 백제가 멸망할 무렵 일본군 32,000명의 지원군이 백제를 도와 백촌강(백마강) 전투에서 패하여 백제가 패망하자 지휘군들 만이 살아 돌아와 신라와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해 대마도에 성을 쌓고, 후쿠오카에 수성(水城)을 쌓았다고 한다. 다자이후시에는 1,300년전 규슈 전체를 다스리는 관청이 설치되어 500년동안 내려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 당시의 많은 유적(수성, 절, 신사 등)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다자이후텐만구(太厗府天滿宮)가 대표적이다.
< 다자이후텐만구 가는 길 > < 가장 오래된 조리 > < 소 동상 > < 텐만구 본당 >
텐만구 신궁은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미치자네를 모시고 있다. 800년대 말 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스가와라노미치자네는 우대신이라는(재상)에 올랐으나 신라계 대신들의 반대로 901년 좌천당하여 이곳의 관료로 오게 된다. 903년 갑자기 별세하자 소가 끄는 마차에 관을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묻혀달라는 유언대로 묘를 쓰고 그 묘위에 세워진 것이 텐만구 신사로 현재 본전은 1591년에 건축한 것이다. 넓은 경내에는 하얀 매화나무가 서 있는데 그가 죽자 그의 고향 오사카에서 날아온 매화가 피었다고 전해진다. 백매화는 붉은 매화보다 10일 먼저 핀다고 한다. 또한 주변에는 녹나무, 꽃창포 등의 아름다운 꽃이 핀다. 생전에 매화를 아주 좋아하였다고 하는데 입구에는 시비가 있다. 내용인 즉 ‘동풍이 불어 향기가 가득하니 주인 없어도 봄을 잊지 말아라’. 그가 죽은 후 역병이 출현하여 많은 사람이 죽자 917년 큰 신사를 지으니 역병이 진정되었다고 한다. 입구에는 시비와 함께 소가 앉아 있는 동상이 있다. 소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여 많은 학생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이 신사를 찾는다고 한다.(소를 신격화 함) 입구에 조리라고 하는 석조 돌문이 있는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돌문으로 약1,200년 초반에 건설된 것이다.(가마쿠라 막부시대) 조리가 있으면 신사고 조리가 없으면 일반 절을 의미한다고 한다.
< 본당의 내부(중앙 거울) > < 본당 외편의 백매화 > < 본당 입구 연못 >
본당에는 그의 무덤이 있고 중앙에는 거울(왕의 3종신기 중 하나, 옥구술, 검)이 있고 양쪽에 부적이 있다. 본당에 들어가는 입구는 3개의 다리를 건너는 데 주변의 연못과 잘 어울려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본당의 뒤에는 왼쪽으로 부인, 스가와라, 네 아들 순의 사당이 위치해 있다. 오른쪽으로 식칼의 무덤(생명, 혼령을 달래 줌), 붓의 무덤이 차례로 놓여 있다. 주변의 도구에도 사람을 위해 희생한 넋을 기리기 위한 무덤을 만드는 일본인의 정신에 새삼 놀랍다. 사당 뒤에는 1,500년 수령의 부부나무가 손을 잡고 우람히 텐만구를 지키고 있다. 매화 모찌가 유명한 곳이다. 그 맛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가이드가 알려줬으면 맛을 보았을 텐데...
일본에는 천년이 넘는 고목이 아주 많이 있다고 한다. 나무를 소중히 여기고 경제수림이 아주 많고 석유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집집마다 좁은 마당에 나무를 꼭 심어 가꾼다고 한다. 기념품 가게에는 고양이를 소재로 하는 다양한 기념품이 많은데 일본에서는 고양이를 길한 동물로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관람을 마치고 본당 뒤편에 있는 식당에서 일본식 도시락(생선가스, 각종 어묵, 밥, 일본 된장국 등)을 먹은 후 사진을 찍으며 되돌아 나오는데 일본 노래에 끌려 원숭이 묘기를 잠깐 보았다. 5살의 지능을 가진 원숭이의 갖가지 묘기를 보고 시모노세키를 향했다. 큐슈섬과 혼슈섬을 연결하는 관문대교 아래의 휴게소에 들러 텐만궁에서 먹지 못한 매화 모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모찌를 샀다.(약1만원)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모찌가 아니었고 맛도 별로였다.
< 관문대교에서 >
8일 오후 4시30분 시모노세기항에 도착해 오랜 기다림 끝에 오후6시 마침내 한국배인 성희호에 올랐다. 선상에서 오랜만의 한국식 저녁을 먹으니 고향이 온 것처럼 편안했고 피로가 회복되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시모노세키항을 빠져 나가는 수평선을 한동안 바라보며 3일간의 여정을 추억했다. 1등 4인실은 일본배보다 넓어 보였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들 무렵 편안할 것 같았던 배의 요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TV를 켜보니 우리나라 서해상에 태풍 ‘무이파’가 지나가 서,남해안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편안히 여행을 하는데 한국은 태풍으로 국내가 어수선하다는 소식으로 한동안 우울했지만 거친 파도에 요동치는 배의 멀미로 앉아 있을 수도 없어 우리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 성희호의 숙소 >
< 노을 지는 선상에서 시모노세키항을 배경으로 >
8월9일(화) 오전 8시30분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또 부산역사에서 1시간가량을 기다리다 10시 서울행 KTX를 타고 12시에 천안에 도착했다. 부산은 맑았으나 김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영동,옥천을 지나 대전, 천안까지 비가 내리고 있었다.
< 부산역 KTX 역사내에서 > < 커피숖에서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