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빌립보서 개론
주제 : 복음 안에서의 교제와 참여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에 개척한 교회요,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기록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옥중에 있는 바울 사도에게 빌립보 성도들이 예물을 보내준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선물의 전달자인 에바브로디도가 중병에 걸렸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하게 되자 그를 돌려보내면서 그의 편에 편지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① 빌립보서의 총 주제는, “복음 안에서의 교제(交際)와 참여”(參與)라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개척한 여러 교회 중에서 복음을 받은 시초부터 교제를 지속해오면서 선교 사업에 동참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서두(序頭)에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3)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4-5) 말씀하고 서신을 끝마치면서도,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4:15-16) 하고 말씀합니다.
㉡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빌립보)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고후 11:9) 하고 말씀함을 봅니다. 이처럼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과 아름다운 교제를 지속하면서 선교에 참여한 교회였습니다.
교제와 참여의 서신
② 그렇다고 마게도냐 교회들이 부요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고후 8:2) 가운데서도 복음전파에 동참했다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서,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1:7),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1:8) 합니다.
㉡ 또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4:1) 합니다. 이처럼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의 심장이 고동치는 “사랑의 서신”입니다.
사랑의 서신
③ 그런데 이제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준 빌립보 성도들이 선물을 또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단순한 물질적인 교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바울을 부르실 때에,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 9:16) 하신 주의 이름과 복음을 위한 바울의, “고난에 동참”함이라는 점입니다.
㉠ 그래서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4:14) 하고 칭찬합니다.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4:18) 합니다.
㉡ 바울은,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2:17-18) 합니다. 바울은 저들의 “믿음의 제물, 사랑의 봉사”가 너무나 귀하고 감사해서,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즉 순교의 피를 전제로 부어드린다 해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는 네 장에 불과하고, 옥중서신이면서도, “기쁨”이라는 말이 16번이나 등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기쁨의 서신
④ 복음을 위한 “교제, 사랑, 기쁨”은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中心)에 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는 전체가 104절에 불과하고, 또한 교리적인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주” 등,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호칭하는 단어가 73회나 등장하는 것이 이를 말해줍니다.
㉠ “주 안에,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도, 15번이나 등장합니다. 옥중에 있는 바울, 순교를 당하게 될지도 모를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무엇인가?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1:20) 합니다.
㉡ 이점이 선물을 받고도 곧바로 빌립보 성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않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4:11) 합니다. 선물을 받은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나는 누군가 면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와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너희가 선물을 보내줘서 고맙다. 나를 생각하는 자가 너희 밖에 없구나”. 이렇게 말했다면 빌립보 성도들은 기뻐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바울을 부르셔서 이방인의 증인을 삼으신 주님의 체면(體面)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그래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하고, 꼿꼿한 자세로 주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중심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서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서신
⑤ 이런 맥락에서 본서를 좀더 깊이 묵상해본다면 빌립보서가, “마음의 편지”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말이 8번(1:7, 2:2, 2, 3, 5, 5, 4:2, 7) 등장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마치 연인(戀人)처럼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1:7) 하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장”(1: 8)으로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 그러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7) 합니다.
㉡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고, 빌립보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울에게 행하기를 그리스도에게 하듯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에는 그리스도의 심장이 고동치는 서신입니다. 이제 각 장의 개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의 서신
⑥ 제1장,
㉠ 복음 안에서 교제와 참여한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기도를 드리면서,
㉡ 자신이 옥에 갇히게 된 것이 복음의 퇴보(退步)가 아니라, 도리어 복음의 진보(進步)가 되었다고 격려합니다.
㉢ 그리고는 자신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죽든지 살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尊貴)히 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 그러므로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하고 권면합니다.
⑦ 제2장,
㉠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본체(本體)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기독론(基督論)을 말씀합니다.
㉡ 이에 근거하여 한 마음 한 뜻이 될 것과, 생명의 말씀(복음)을 밝히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면서,
㉢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충성스러운 종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천거합니다.
⑧ 제3장,
㉠ 할례를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개들, 손할례당”이라 부르면서 자신이 가진 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난 의라고 복음의 핵심을 말씀합니다.
㉡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씀합니다.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과 영화 될 소망을 말씀함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⑨ 제4장,
㉠ 결론적인 권면으로 “주 안에 서라” 합니다.
㉡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합니다.
㉢ 주 안에서 기뻐하라, 관용하라,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라 합니다.
㉣ 끝으로 보내준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면서, 이것이 하나님께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너희에게는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면서 서신을 마치고 있습니다.
⑩ 빌립보서가 우리에게 명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이를 요약하면,
㉠ 최우선적으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4)한 “기쁨”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는 옆으로 밀어놓은 복음이 설교의 중심에 옴으로만이 회복이 될 수가 있는 문제입니다.
㉡ “주 안에 서라”(4:1, 1:27)한 “서 있는” 신앙입니다. 이 또한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한 복음으로 만이 가능하여지는 것입니다.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2:5) 일입니다. 이는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라, 하라” 하는 교훈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운 바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삶,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내는 삶(2:15-16)을 사는 일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입으로는 전하면서 행위로는 복음의 빛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 “개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3:2) 한, “삼가는” 일입니다. 이는 결국 복음을 보수(保守)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3:18) 합니다. 사도 바울이라면 현대교회를 바라보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