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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계 사랑방
수필정신의 표상, 유병근 수필가
대담 : 홍억선(수필세계 주간)
진행 : 정성화(수필가)
기록 : 주인석(수필가)
만남
세상의 많은 낱말 중에 만남이라는 단어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단어도 드물다. 며칠 전부터 들뜬 마음을 승용차에 앉히고 나니 흥분이 조금 가라앉는다. 산뜻한 가을 햇살이 차창을 넘어 들어와 토닥거린다.
세월에 요동하지 않는 가을 햇살 같은 만남으로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복을 지으러 가는 길이다.
길 끝에는 십만 가지 이상의 아름다운 색을 품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가 있다. 또, 바람만 맞아도 파랗게 염색될 것 같은 바다가 있고 하얀 갈매기가 쉴 새 없이 구름을 물어다 나르는 아름다운 곳에 경치만큼이나 좋은 사람이 있다.
바로 유병근 수필가이다. 그리고 또 한 분은 정성화 수필가이다. 두 분은 서로 존경하고 아끼는 수필 동료 사이다. 정 수필가는 오늘 진행을 발 벗고 도와주실 예정이다.
부산이라는 이정표가 보였고 도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길치로 유명한 홍 선생님의 눈과 마음이 정신없이 뺑뺑 돌기 시작했다. 예상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출발했음에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결국 정 수필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사히 광안대교를 들어섰다. 남천동 송원일식집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 시간보다 빨랐다. 한 수필가를 뵈러 가는 설렘과 낯선 도시의 길에 대한 걱정으로 서둘러 나선 탓이었을 것이다. 가방을 내려놓고 대담 나눌 내용을 점검하는 사이 선생님과 정 수필가가 들어섰다. 북구 화명동에 사시는 선생님께서 이곳까지 오시기에는 꽤 먼 거리인데 일찍 나섰던 모양이다.
유 선생님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가 들어오실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너무 젊으시고 말끔하셨다. 연세에 비해서 참 건강하시고 깨끗하셨다. 편안한 옷이 아니라 정장 차림이셨고, 후배를 대하는 말씀마다 공손함이 가득 묻어 있어 수필가의 인품을 저절로 배우게 되었다. 자리에 앉으실 때도 후배들에게 먼저 권하시고 앉는 헤아림이 있었다. 선배 작가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소년 같은 웃음과 정 수필가의 다정한 웃음이 긴장감을 한 방에 날려 주었다.
정 수필가와는 지난여름에 수필세계 행사 때 보고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분이라 어제 만난 듯 정겹기가 평소의 두 배다. 맞은편에 선생님과 정 수필가가 나란히 앉았다. 허물없어 보이는 선배 후배 그리고 사제지간의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가장 친한 사람이 누구냐는 물음에 바로 여기 이 사람이오, 하면서 정 수필가를 가리키는 선생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그 말에 정 수필가도 빙그레 웃었다.
근황
선생님은 요즘 몇 군데 문학 강좌를 하시고 특강을 나가신다. 수필 동료들의 모임인 부산에세이문학에도 가끔 나가신다. 아마 내일 문학 기행이 예정 되어 있는 듯 정 수필가가 선생님께 여쭈었다.
―내일 문학 기행 함께 가시지요?
―아, 내일인가요? 못 가겠는데요. 중요한 일이 있거든.
무슨 중요한 일인가 모두 궁금해서 귀를 세우고 있는데 선생님의 한마디에 모두 웃고 말았다.
―무슨 중요한 일인데요?
―예방 주사 맞으러 가야 돼요.
예방 주사 맞으러 간다고 문학 기행을 빠진다는 소리에 정 수필가는 얼른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제가 말해 놓을게요. 세상 사람 다 못 맞아도 선생님 주사약은 남겨 놓으라고 말하고, 다녀와서 맞게 해 드릴게요.
―아냐, 아냐, 아냐. 허, 안 돼요.
정 수필가의 말에 손사래를 치신다. 그런 사소한 일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친근한 수필가가 근무하는 병원인데 뭐 그리 피해가 되느냐고 말씀 드려도 막무가내다. 그래도 정 수필가가 끝까지 맞혀 드리겠다 하고 우리도 거들었더니 슬그머니 딴말씀을 하신다.
―문학 기행 가면 말이야, 자꾸 노래를 시켜요. 노래만 안 시키면 갈 만한데.
선생님의 속마음은 따로 있었다. 관광차를 타면 노래 시키는 것이 제일 싫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모임에서 관광 가는 것을 꺼려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바깥나들이가 뜸하다나. 아마도 정 수필가가 억지로 달래서 문학 기행에 모시고 갔을 것이다.
가장 가까이 지내는 문인이 누구냐는 말씀에 한참 생각하시더니 없다고 하신다. 뜨악한 표정을 짓자 “동아대학교 법철학 교수였던 김병규 박사와 ‘수필문학’ 주간을 한 박연구 씨인데 모두 이 세상에 없어.” 하시면서 쓸쓸한 웃음을 보이신다.
―박연구 씨는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출근한 뒤에도 집에 남아 밥 먹고 놀고 있었지.
절친한 친구가 모두 저 세상에 있고, 이 세상에는 가까이 지내는 벗이 없으니 더욱 외롭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얼굴에 슬쩍 그늘이 진다. 친구가 없으니 다닐 일도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시더니 이내 웃으면서 정 수필가를 가리킨다.
―친구는 없어도 가까이 지내는 수필 동료가 바로 이 사람이오. 그렇지 이 양반이 가장 잘 이해하지. 그리고 또 여러 사람이 있는데 모두들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문학과의 인연
―고향이 어디시지요?
―통영입니다.
―그런데 왜 부산에 사시는지요?
―세상살이에 살 곳이 어디 예정해 놓고 이루어지는가요? 어쩌다 부산에 자리를 잡게 됐지요. 이제는 부산 사람이지요. 태어나기는 경남 통영이고 32년생입니다. 자녀요? 1녀 2남인데 딸과 큰아들은 미국에서 살고 막내아들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부산부두에서 군 생활을 했어요. 육이오 나던 해 12월에 해군에서 통신 계통 일을 했어요. 그때 전자 장비를 만지는 것이 인연이 되어 제대하고 국제개발주식회사(Interntional Development Corporation)에서 전자기사로 한 30년 근무했지요. 마이크로웨이브 통신 장비를 운영하는 회사인데 당시에 첨단 통신 기기였지요. 거기 근무하는 덕에 전자공학을 독학으로 공부하여 대학 과정에 준하는 전자 계열 면허도 땄어요. 지금은 모두 썩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그 또한 문학 하는 일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은 되었어요. 그런데 어쩌다 문학과 인연을 맺었느냐가 궁금하겠네요.
처음 시를 접하게 된 것은 역시 내가 태어난 통영 출신의 시인 김춘수 선생의 ‘구름과 장미’였어요. 그리고 문덕수 선생이 중학교 시절 국어를 가르치셨어요.
내가 부산 해군본부에서 근무했을 적에 윤일주 시인이라는 분과 같은 해군본부에서 근무했어요. 우연히 알게 되었지요. 그분이 대위였을 때니까 장교와 사병 사이였어요. 윤 대위는 윤동주 시인의 친동생 되는 분인데 사상계로 등단한 쟁쟁한 시인이었어요. 그분이 조영서, 김규태 시인과 자주 만났는데 그 자리에 자주 끼어 문학적 영향을 받았지요. 그러다가 1954년 12월 부산대 국문과 학생이던 평론가 고석규 씨가 주관하는 ‘신작품’동인에 가담하게 되어 문학 활동을 시작했지요.
등단은 1970년 월간문학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한때 김병규 박사님을 모시고 ‘木筆’이란 동인을 한 적도 있어요. 그때의 동인으로는 정명수, 한영자, 조희순 씨 등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옛날 회상에 잠겨 있을 즈음, 음식이 들어왔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곧 바다로 뛰어나갈 듯한 싱싱한 해산물들이다. 투명한 살점들은 벌써 사람의 미각을 자극해 입 안 가득 달콤한 침이 고였다. 미리부터 준비해 주신 정 수필가의 정성스런 마음 맛과 요리사의 손맛과 해산물들의 몸 맛이 합해져서 지상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생선회 하면 빠지지 않는 나도 선생님께는 지고 말았다. 부산 사람답게 회를 아주 맛있게 잘 드셨다. 홍 선생님과 정 수필가는 육지 사람이라 회 맛을 모른다고 했다. 어찌나 푸짐한 상이었던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님과 나는 살판났고, 홍 선생님과 정 작가는 쪼르륵 소리를 냈을 것이다.
수필관, 새로운 세계로의 인식
―수필은 새로운 인식이지요. 세계를 어떻게 새롭게 보느냐 하는 것이 바탕이지요. 오늘 아침, 글을 한 편 썼어요. 거실에 앉았는데 햇빛이 거실 안까지 들어오는 거예요. 날이 추웠지요. 햇빛이 추워서 거실에 들어오는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히터를 틀어 줄까 이런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햇빛이 오후가 되니 슬그머니 나가더란 말이야. 아마도 햇빛이 남의 집에서 오래 있기 미안해 돌아가더란 말이지요.
이처럼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수필이지요. 수필가들은 수필 정신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수필에 인용이 필요할 때 시나 소설을 인용하지 말고 수필을 인용해야 해요. 그것도 수필 정신의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수필은 직업이지요. 바깥에 나가 돈 버는 일을 사이드 잡이라는 정신을 가져야 해요. 이 정신이 꼭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수필을 취미라고 생각하잖아요. 수필은 사람의 문학이니까 수필에서 수필 정신을 잃어버리면 인간이 정신을 놓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다, 가령 이렇게만 뜻 매김을 한다면 수필은 과거 지향성의 올가미에 허덕이는 문학으로 다루어지기 쉬워요. 가령 ‘늪’이라는 체험을 든다면 숲 속의 고즈넉한 늪, 고생지대 같은 여러 식물이 기생하는 천연기념물 보호 지대 같은 늪, 사회생활에서 겪는 엄청나게 힘들었던 삶의 늪, 이런 양상이 쉽게 체험의 바다에 떠오를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늪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면 일종의 소재주의에 지나지 않는 설익은 수필이 되기 쉬워요.
수필이 보다 당당하려면 세상 보기에 투철해야 해요. 시인 릴케는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해서 사람들은 많은 도시를 보아야 한다.”고 했어요. 랭보의 견자(見者)라는 말 또한 다시 경청하고 음미할 필요가 있어요. 시인만이 아니라 수필가 또한 사물을 응시하고 사물의 내부를 꿰뚫는 나름대로의 혜안이 요구돼요. 수필에서 체험을 들추는 일이란 지나간 체험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새로운 세계를 보려는 눈이에요.
수필에서 체험은 과거인 그 자리에만 고정시켜 두는 것이 아니지요. 체험은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면서 새로워져요. 수필은 과거와 현재와의 접붙이기인데 그 길은 체험이 변형되어야 해요.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고 하는 옛말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체험은 새로움을 더 새롭게 하려는 미래 지향성을 띠고 있는 걸 알아야 해요. 그래서 수필은 과거의 문학이 아닌 현재의 문학 그리고 미래를 보는 문학이란 말이지요.
수필 정신이 담긴 말씀에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모두들 몸을 바르게 하고 귀를 기울였다.
―수필평론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평론가들은 수필을 논할 때 작품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어요. 산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고 숲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그래요. 수필은 전체가 의미의 덩어리인데 한 구절을 인용해서 평가하면 전체의 맛을 알기 힘들어요. 수필은 종합 예술이지요. 그 속에 시도 있고, 소설, 미술, 건축, 여행 모든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요. 그 좋은 문학을 두고 수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딱한 일이에요.
―대학에서 물러난 분들이 요즘 수필 판에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것도 문제 중에 하나이지요. 퇴임한 후에 슬며시 들어와서 수필을 아끼는 듯한 자세를 하는 분이 간혹 있어요. 이분들은 사실 수필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도 없으면서 대학 경력을 배경으로 소리를 내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는 수필 같은 거 전혀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수필에 자리를 깔고 앉아요. 대학 교재를 보세요. 수필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만약 수필을 시와 소설에 다름없는 문학으로 생각했다면 그런 교재 편성이 있을 수 있겠어요? 수필 문단 자체도 반성이 필요해요. 특히나 요즘 수필가가 너무 쉽게 돼요. 적어도 수필 300편 정도는 쓴 다음에 등단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해요.
작품 세계
선생님은 원래 시를 쓰셨다. 지금은 시인, 수필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는 1978년에 발간된 『연안집』을 비롯해 10여 권이 있고, 수필집으로도1980년에 발간한 3인 수필집 『협주곡』 외 10여 권이 있다. 마침 선생님은 대담을 위해 작품집 여러 권을 준비해 오셨다.
―내 작품 세계는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이 이러저러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사물의 내면을 추구하고 거기서 새로운 사물을 창조하려는 것이 내 문학 세계의 기본 정신이지요. 나는 시와 수필을 함께 쓰고 있는데 수필은 산문, 시는 운문 구조라는 것 외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봐요. 수필을 쓸 때도 시적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모든 예술의 바탕에는 상상력이 깔려 있어야 하는데 시적 분위기는 상상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지요. 그것이 깔려 있어야 미적 향기가 감도는 수필이 된다고 봐요. 수필에서 제기되는 허구 문제를 상상력과 함께 생각할 수는 없어요.
―내 작품의 소재는 자연이에요. 돌멩이, 햇빛, 강물 이런 것들이 주로 등장합니다. 주변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는 거의 없는 편이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현실성이 없다는 말을 해요. 아니지.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는 것으로 이미 현실 참여 하고 있어요. 자연을 이야기해도 현실 참여에요. 자연 속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자연이 있지 않아요?
수필에서 사회 참여, 현실 인식이 희박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이는 수필의 문제가 아니라 수필가의 문제라고 봐야 해요. 수필은 지성의 문학이라고 누누이 말하지요. 지성이라는 말은 저항할 곳에 당당하게 저항하고 불의에 항거할 줄 알 때 쓰는 말이지요. 즉 인간의 본질을 지켜 나가자는 것이지요. 이런 문학 정신을 익히는 마당이 수필이란 장르가 아닐까요.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생각의 탄생』이란 책이 있어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리처드 파인먼, 버지니아 울프, 나보코프, 제인 구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이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한 책이지요. 이 책을 읽고 작가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학 건축 등 다양한 곁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글을 쓸 때 소재가 빈곤한 것은 견문이 좁은 탓이라고 보아요. 체험이 없으면 독서를 통해 견문을 넓혀야 해요. 왜 그 간접 체험이란 말도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평생 첨단 전자 장비를 다루었던 직업도 내 문학의 배경이 되는 셈이지요.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대담을 마치고 자리를 옮겼다. 좀 더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광안리 바다가 창 너머로 훤히 내다보이는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이 많은 정 수필가께서 창가에 자리를 잡기 위해 발품을 먼저 팔았다.
찻집에 들어가기 전, 잠시 사진 촬영을 했다. 폭신한 모래밭과 가을 하늘과 마주한 푸른 바다와 길게 누운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하여 그동안 감추어 두었음 직한 웃음을 얼굴 여기저기에서 끄집어내 치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대담할 때의 딱딱함을 벗어나 함께 웃고 팔짱을 끼면서 아주 친해졌다.
늦은 가을, 스산한 오후인데도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녀노소 없이 흥성거리는 인파에 눌러 두었던 이십대의 젊음이 느껴지고, 그곳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만 그러할까. 산책에 나선 털이 좋은 개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어지간한 사내보다 멋진 개를 보고 정 수필가와 나는 홀랑 반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개한테 정신이 빠져 있는 사이 선생님은 찻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아마도 개를 싫어하거나 사진 찍으며 갖가지 포즈를 잡는 것이 어색하셨던 모양이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찻집에 앉자 선생님은 수필세계 이야기를 끄집어내셨다. 우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편집 방향이 바르게 설정되었다고 하셨다. 필진들이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발표되는 작품들의 수준이 높다고 하셨다. 문예지를 내기가 어려울 텐데 어떻게 운영하는가를 물으셨다.
홍 선생님이 수필세계 편집 방향과 운영 전반에 관하여 세세히 설명을 했다. 수필세계가 수필가들은 물론 수필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과 등단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수필 교과서가 되도록 편집 방향을 잡고 있다고 했다. 엄정한 심사 과정을 통한 일 년에 상·하반기 각 1명씩 신인을 배출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잡지를 만드는 사람보다 글을 쓰는 사람 즉 작가를 귀하게 여기는 자세가 수필세계의 발간 정신이라고 했다.
구독자가 많지 않다는 말에 선생님과 정 수필가는 크게 놀라면서 걱정과 안타까움을 표시하셨다. 정 수필가는 ‘이쑤시개 여인’을 예로 들면서 앞으로는 수필세계가 구독자가 많아질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씀 하셨다.
그럼에도 초지일관 씩씩하게 홍 선생님은 앞으로 체계적인 관리와 홍보에 힘을 쓸 것이며 다섯 살을 넘긴 수필세계가 넘어지기보다 달리기를 더 잘할 것이라는 말로 희망적인 의욕을 대신했다.
수필가들에게 하실 말씀이 없으시냐고 여쭙자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서로가 인정하는 풍조가 아쉽다고 하셨다.
―서로를 경시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풍조가 안타까워요. 우리끼리 서로 인정해 줘야 해요. 인정해 주는 것을 두고 자신이 낮아진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문학에는 참 좋은 점이 있어요. 그것은 돈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서로 오래 친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문학이 가령 돈이 생기는 길이라고 생각해 봐요. 어떻게 되었겠어요. 아마 이전투구나 다름없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을 거예요.
그리고 아쉬운 작별 인사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뒤를 더 많이 돌아보게 하는 사람이 있다. 자동차 바퀴를 잡고 늘어지는 것은 광안리 바닷바람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정이 그것이다. 짧은 만남으로 긴 인연의 고리를 걸었다. 이 고리에 우정의 사슬이 촘촘히 엮여지길 바라 본다.
일행은 다음에 다시 꼭 만나자고 몇 번씩 손을 만지며 헤어졌다. 스승을 모시고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는 정 수필가의 어깨가 다정했다. 어느새 해가 광안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우리도 광안대교 쪽으로 차를 몰았다. 홍 선생님의 길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바, 과연 우리가 광안대교를 한 번 만에 건너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