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토요일 아침 10시. 지칭개님, 허모영 선생님, 송미선 선생님, 고마리님, 그리고 나. 올 여름부터 예정되어 있던 독서문학여행, 1박 2일로 동행을 했다. 목적지는 전라남도 고흥, 나에게는 십 수년간 가보았던 남도의 땅이지만 토론회 회원들 다수와 동행하는 건 처음이다. 여행의 초입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해 보는 건 무의미하다. 될 대로 되겠지,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기를 바랄 뿐이다. 발을 떼면 어디라도 걷겠지.
책이 가득한 방에서 한달 동안 책에 파묻혀 있고 싶다길래 후배에게 백석의 초판본 시집 「사슴」 을 우편으로 보냈다. 한달이 지나서 시집은 읽었냐고 물었더니 안 읽었단다. 그 때 알았다. 후배 놈은 그런 방이 필요했지 책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백석의 초판본 시집 「사슴」이 오타로 인해 출판사에서 다시 보내 준다는 것도 알았다.
지칭개님의 추천으로 전남 구례, 섬진강변에 위치한 '섬진강 북카페'에 들어섰다.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헌책방에서는 자신의 질서를 가져야 한다. 주인의 손끝을 떠나온 책처럼 사람도 각자의 표정과 걸음을 가지고 생을 견뎌 온 책을 골라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책방에서 찍힌 내 뒤통수가 갓 나온 신간처럼 낯설다. 나에겐 아직 비닐 랩도 뜯지 않은 백석의 초판본 시집 「사슴」 두 권이 눈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다.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건 꼭꼭 숨겨야 했던 내밀한 비밀을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럽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여자는 매운탕을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남자에게 성을 낸다. 자기는 매운탕이 싫다며 다른 음식들은 다 명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 음식은 맵다라는 형용사를 이름을 쓰냐며, 이도 저도 아닌 것이 꼭 자신의 인생을 비웃는 거 같다며 한탄하고 푸념하고 운다. 시래기가 덕장처럼 널려있는 식당에서 점심 끼니를 채우기위해 매운탕을 시켰다. 감탄하고 칭찬하며 잘 먹었다. 그래, 인생은 매워야 제 맛 나지.
고흥에 도착해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건배를 한다. 여행에서는 뭐든 손에 들리면 건배를 해야 너도 좋고 나도 좋다. 섬진강을 나서자마자 커피가 마시고싶다고 칭얼대던 고마리님의 웃음 샷 추가는 공짜, 좋지 아니한가! 저 짝에 왜 달려있는지 모르겠는 자개 문짝도 이유 없이 또 좋지 아니한가!
20년 지기, 박호민 시인과 합류하여 펜션에 짐을 풀고 녹동항으로 향했다. 팔뚝만한 참돔 한 마리가 7만원, 아나고 3킬로에 3만원, 식당 상차림이 일인당 8천원, 도합 14만원의 값에 저녁을 흥정하고 인생을 흥청한다. '건축학 개론'의 매운탕엔 인생이 담겨있다면 우리가 먹는 매운탕엔 인생이 섞여 있다고 결론을 내리불면 여성분꺼서 섭섭하시것는가? 삶은 담기는 게 아니라 섞이는 거이랑께.
해상공원 마실 후에, 허모영 선생님의 초인같은 참을성 덕분에 운전대를 벗어났다. 펜션에서 여성동지들의 부지런한 손놀림 덕에 안주가 차려지고 사람이 차려진다. 술이 길면 밤이 짦아지는 여행의 하룻밤이 시작도 하기 전에 아쉬워진다. 대화가 깊으니 사람이 깊고 밤이 깊고 술도 깊어진다. 몇 병의 술이 돌자 박호민 시인이 돌연 허우적대신다. 그 모습이 왜 그리 서글펐을까.
허모영 선생님의 시조창에 호흡이 다스려 지실라나. '쑥대머리' 첫 소리에 사람을 알고 산다는 게 참 고맙고 고된 일이라는 걸 느꼈다. 사람이 참 힘든 게 관계를 보정하는 일이다. 몇몇의 어긋남을 당하고 고쳐도 사람의 관계라는 건 개인적인 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 감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때가 있다면 지금 이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송미선 선생님이 우시고 고마리님이 우시는 걸 보고 필름이 끊겨 버렸다. 복기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왜 우셨냐고 물어 보니 결락이 너도 울었다고 한다. "아니, 왜 내가?" 요즘따라 눈물이 많다. 호민 시인도 며칠 전에 전화를 해놓고선 내가 그렇게 서럽게 울었단다. 울었다니 울었겠지. 맨발로 서 있는 네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네 사람이 도대체 찬바닥에 왜 맨발로 서 있는 건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정신이 나가버린 와중에도 나의 마음이 잘 전달 되었을 거라, 그네들의 마음을 내가 잘 받았을 거라 믿는다. 아침에 내 믿음을 누룽지로 보답 받았다. 두 그릇을 뚝딱하고 호민 시인을 모셔다 드렸다.
형님은 지난 밤의 그 주사가 생각 나실까. 임재범의 노래 가사처럼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심정이 난무하던 밤을 아실꺼나. 시인의 뒷모습도 생활을 닮아서 점점 낡아지고 있다. 가난한 시인은 술을 아끼는 맛에 마신다는데 모처럼 풍족한 술살림에 눈치를 놓쳐 버리신 게지. 궁핍의 봉우리가 이젠 칼이 되었는가. 슬픔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대, 살아만 계시라. 봉우리 밑의 평지가 있으니.
금산 바다에는 사는 물결들은 높으신 어르신들의 태평성대에 그로코롬 쫌이 쑤시는가 벌떡벌떡 일어나부요. 바다를 통째로 땅으로 옮기불려고 손에 무신 바람을 들고 밀치고 당기믄서 사람헌티 우우 달려 들더랑게요. 저, 저으짜 저 여인네들 좀 보드라고. 어메, 싱그러바라. 어메, 싱그러븐거.
젊었을 적 '겨울바다'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차갑게 익은 바다에서 수평선을 출렁거리며 넘실대는 감성이 바람을 타고 다시 가슴으로 달려들 것만 같았다. 여의천에서는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금산 바다에 사는 짖궂은 물결들도 이 곳에서는 순한 젖먹이 아이처럼 쌔근쌔근 잠이든다. 아이를 따라오던 바람도 나작나작하다. 여의천 늙은 나무들도 한참 낮잠 중이시다.
여의천은 고흥 사람들도 잘 모른다. 네비게이션의 시간을 거스르며 고흥 바닥을 돌아 다니다가 간신히 찾아 온 여의천 평지의 늙은 느티나무는 아직도 키가 자라는 것 같다. 네 분의 미소를 보니 오길 잘 한 것 같다. 서해에서는 해 뜨는 걸 볼 수 없어서 바다에 담긴 거를 실컷 보라고 해가 수만 개나 된다.해가 담긴 바다에 돌이 튕기면 햇살도 튄다. 동심원이 튄다.
관광버스가 반드시 경유해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대패삼겹살이 고흥의 마지막 식사였다. 갈비탕을 먹은지 세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억지로 우겨 넣었다.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고, 이제는 우리가 집으로 갈 시간이라며. 마지막 컷이 과장되고 유쾌하다면 필시 아쉽기 때문이거나 음식이 정말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가지 다다.
창 밖에서 찍으래서 찍었는데 이렇게 찍혔다. 고마리님은 심령사진 같다며 깔깔 웃었다. 하지만 내가 찍은 사진에 5명이 모두 나와서 참 좋다. 그리움의 모습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맑은 날엔 그리움이 흐리고, 흐린 날에 그리움이 맑다. 흐릿하게 보이는 네 분의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 이모습 그대로 기억 속에 들어 올려질 것 같다. 나이가 들 수록 확실해 지는 것은 관계의 기대치가 낮아 진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내가 낮아질 것이다. 내가 계속 기억되길 바라지 않는다.
별후 別後
-박호민
그대, 모든 헤맬 길
서러움도 마른 뒤엔
살구꽃 피는 동구洞口에서 만나리.
그네들의 삶에 흐린 날이 있다면 가끔씩 내 모습이 맑아지기를, 시간이 흘러 서서히 흐려지면 손톰만큼 이라도 기억에 섞여지기를, 그러다가 흐리면 흐린대로 서로가 잊혀지기를... 아아, 어느새 모두 전생前生이 되어 버렸고나.
첫댓글 멋진 사진도, 적나라한 사진도.
웃었던 순간도 울었던 순간도 고흥을 달고 평생을 따라 다니겠지요.
덕분에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겠네요.
벌써 그날이 그리워집니다.
이렇게 멋지게 올릴 줄 알아쓰으~~^^
오붓한 여행의 찐 행복
만땅 느끼면서
이토록 가슴이 시려옴은 또 다른 무엇이겠지요
부디 안녕하시라 그대!
고흥
또 성큼 다가온다
한해 마지막 날 무작정 달려갔던 그 곳
결락님
세분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