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원예용 압축식 분무기라고 하는데,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것이라 일만 이천 오백 원을 투자한다는 게 약간 미덥지 않기도 했지만, 수동식 분무기를 쓰면서 손가락이 아파서 고생했고, 절반도 못 쓰고 병을 가득 채워야 하는 것도 보통 번거로운 것이 아니어서 미나리를 초토화 시키고 있는 진딧물들을 처단할 수만 있다면 이제 우유값과 미나리값을 계산할 여력도 없다. 다 뽑아 버리겠다고 두어 포기 뽑아서 비닐집 한 쪽에 두었지만, 그 향기로운 채소를 고작 진딧물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미나리를 포기해도 샐러리, 겨자, 케일, 나중에 하게 될 고추도 진딧물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해결해야 한다.
아침에 햇볕이 쨍쨍할 때 분무기를 사용해봤다.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대박이다. 1리터나 들어가는 병에 바닥에 깔린 정도가 될 때까지 분무가 계속 된다. 위에 노즐을 몇번 눌러서 공기를 압축해 놓으면 버튼을 조금만 눌러도 계속 분무된다. 훨씬 일이 수월해졌다. 아폴로압축식 분무기. 농자재상회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마트에 수동식 분무기도 없고 해서 산 것이 참 잘했다.
오피카 카페의 시언이라는 사람이 있다. 노지와 비닐집을 비롯해 이천 평 정도 농사하는 사람인데, 부부가 농사 첫 해에 천오백 만 원의 수입을 올리고, 이제 삼 년째를 준비하는 사람인데, 올 해 농사 계획을 올려 놓은 것을 보았다. 작물의 종류, 포기 수, 재배 방법 들을 다 계획해 놓고, 수입금을 삼천 오백만 원으로 올려 놓았다. 나도 계획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작물의 배열이 잘못 되었다. 쌈채소 포장 한세트에 이십여 가지가 들어가는 데, 중구난방 마구 심어놓았기 때문에 종류별로 수확하려면 찾아다녀야 한다. 채소의 크기도 너무 작아서 삼천원 한 세트 만드는 데 수백장의 채소가 들어간다. 크기를 조금 더 키우면 숫자를 훨씬 더 줄일 수 있고, 일도 훨씬 줄어든다. 지금은 하루 열 세트 정도 포장하면 적당하고, 스무 세트를 포장해서 배송하려면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이건 아니다. 비닐집에 왔다갔다 하면서 어떻게 배열할까 고민했다.
자연순환농법의 특성상 화학비료나 공장 유기질 비료, 축분 같은 것도 쓰지 않기 때문에 땅에 있는 영양을 집중적으로 빼앗으면 안되기 때문에 여러가지 작물을 골고루 심어야 한다. 초기에 줄 지어 심었던 케일을 보았다. 비닐집 끝에서 끝까지 대략 몇 포기를 심을 수 있는지 세어 보았다. 그래, 줄 지어 심어야 겠다. 케일 한 줄, 상추 한 줄, 겨자 한 줄 이런 식으로.
집에서 종이에 숫자를 쓰기 시작했다. 계산 싫어하고 늘 주먹국구였던 나에게, 시언의 철저한 성격과 나눔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무조건 내가 할 생각만 하고, 누가 따라할까봐 공개하지도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품목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대충이라도 올려야 겠다. 내가 도움을 받았으면 나도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지....그래도 아깝긴 하다.
추위가 너무 심해서 채소값이 올랐다고 하길래 내 채소가 너무 싼가 싶어서 쌈채소 가격 검색하다가 장안농장의 모습을 보았다. 류근모씨? 친환경쌈채소로 년간 오백 억을 올린단다. 딸램이가 싱거워서 못먹겠다고 하는 마트용 채소에서 오백억을 올린다면, 소비자와 일대일로 관계하는 나에게도 승산이 있다. 누구나 먹는 쌈채소. 거기다가 착한 가격이라는 평가. 너무 맛이 있다는 소비자의 반응.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판로는 걱정하지 말라는 나의 맨 처음 소비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해 보자. 올해는 나도 이천 정도는 해보자. 나 혼자 힘으로.
서둘러 씨앗들을 주문했다.
장안농장에 또 들어가 보았다. 농장 사진은 보도 자료에서만 부분적으로 보이고,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거대한 시설에다, 바닥에 물 시설을 하고(그래봐야 분수 호스를 깔아 놓았을 것이다) 구멍이 일정하게 뚫린 하얀 부직포를 덮고, 구멍에다 모종을 심어 놓은 것이다. 두 가지 채소를 한 줄 씩 교대로 배열해 놓았다. 맞다. 한 줄 씩 심는 것. 나는 내가 생각한 배열에 만족했다. 장안농장에서 그 외 다른 모습은 볼 수 없다. 판매하는 제품과 소비자 반응은 볼 수 있다. 그것만도 많이 얻은 것이다. 그렇다. 자기 노하우를 지키려는 것이다. 나도 지금 중구난방일 때는 마구 공개하지만, 멋있게 배열이 되면 좀 아껴야 되겠다. 부직포. 나는 볏짚과 왕겨다. 풀은 더 많이 나지만, 상품으로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물론, 벌레도 잡아야 하지만, 수고는 몇 배로 더 하더라도, 품질은 최고로 만들 수 있다.
장안농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잠금처리가 되어 있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씨앗을 더 사야겠다. 가지. 항암배추.
장안농장에서 주력하는 채소는 양배추 종류인 것 같았다. 양배추와 브로콜리...나는 케일이다. 양배추와 브로콜리보다 더 키우기 쉽고 더 생명력 강한 케일...벌레를 잡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나는 케일을 많이 기를 것이다. 쌈케일이다. 녹즙을 짜서 팔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겠다. 그거 할 시간은 없다.
장안농장 대표는 사업 부도를 내고 빚을 삼백만 원 얻어서 농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농업이 규모화, 기업화 되어서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가 시작할 때 누가 그런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틀렸다. 규모화, 기업화가 아니라, 작지만 강한 농업, 소규모 자연농업이다 이사람아. 나는 그렇게 작게 시작한다. 규모가 커 지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주변에서 따라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노하우도 전수한다. 하지만, 품군을 들여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 내 것은 내가 직접. 왜냐하면 한잎 한잎 내 손으로 수확하고 포장하면서, 식물들이 원하는 것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쁘다. 빨리 씨앗을 주문하자.
처음 씨앗을 주문한 곳은 아시아종묘.
루꼴라를 파는 곳이 없어서 가장 큰 종묘사로 보이는, 이름만 보아도 다국적 기업이 분명한 그곳을 이용했다. 대신 무료배송 단위인 삼만 원 어치만 주문했다. 이번에는 규모가 아주 작고, 대표가 직접 종자를 개발하는 것으로 보이는 제일종묘에 주문을 하려고 한다. 아마 무슨 생각으로 종묘사 홈페이지를 이따위로 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아시아종묘에서 상품 분류와 설명해 놓은 것과 비교가 된다. 몇 년 안에 망할 수도 있는 곳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강점은 있다. 파슬리 씨앗은 제일 종묘 밖에 없다. 그리고, 직접 개발한 당조마일드고추가 있다. 항암쌈배추도 있고.
종자의 설명도 별로 없는 제일종묘에서 삼만 사천 원 어치의 씨앗을 주문했다. 항암쌈배추, 토마토, 가지, 단호박, 파슬리를 포함해서. 가지는 빨리 심어야 한다니 언니가 했던 것을 따라 빨리 육묘장을 만들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