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어른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동화
김영훈
이재철은, 그의 이론서에서 아동문학을 '특수문학'으로 개념정리하고 있다. 문학을 일반문학 특수문학으로 규정하는 자체가 좀 우습기는 하나 아동문학의 주 독자층이 어린이로 지칭되고 있다는 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은가 한다.
어린이는 분명한 인격체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심리적인 면이나 지적, 정서적으로 발달과정에 처해 있다는 특성을 가진다. 아직은 가치관이나 역사의식이 뚜렷하게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 발달을 거듭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어린이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 즉 그들에게 예술혼을 불어넣어 주는 동시에 바른 가치관이 형성될 수 있도록 교육적인 측면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바로 아동문학은 특수문학(?)으로 규정되어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만큼 일반(성인)문학에 비하여 아동문학은 창작과정에서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선 어린이의 성장 발달단계에 맞아야한다. 동심이 내재 된 소재 선택도 그렇고 사건의 조직이나 문장 호흡과 유연성도 어린이 수준에 맞아야 한다. 또한 언어 수준이나 사고(思考)의 폭, 선호하고 관심을 표하는 대상이나 분야 등 여러 면에서 성인을 독자로 하고 있는 일반문학과 차별화된다. 특히 문학이 추구하는 예술성과 교시성 중 어느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늘 논의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주독자인 어린이에 비해 그 작품을 평가하는 이가 제2차 독자인 성인에게 있다는 점은 아동문학을 하는 이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어린 독자는 재미있어 환호하는 작품이 자칫 어른의 안목으로 볼 때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이 갖는 보편성을 충족하는 작품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만족감을 준다. 더구나 동화나 아동소설의 경우는 서사적 골격을 갖추면서 독자에게 감동으로 다가들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굳이 일반 소설과 구별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동화나 아동소설을 창작할 때 작가가 유의해야 할 점은 있다. 우선 어린이에게 흥미가 있는 소재이어야 한다. 아동문학에서의 재미는 필요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 소재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또 어린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생성해 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활 속으로 뛰어 들어가 생동감 있게 장면이나 상황을 묘사하거나, 그들의 언어로 꿈꿀 수 있는 환상의 세계를 그려내야 한다. 정체된 세상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옛날에 비해 오늘날 성장하고 있는 어린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다르다. 앞으로 태어날 어린이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런 잣대로 바라볼 때, 이번에 논의 될 작품 다섯 편은, 확실히 양분되고 있다. 일단은 소재 선택 면에서 그렇다. 지난 4월호『월간문학』에는「배불뚝이 선생님」(김현우),「내 호주머니속의 별」(양점열),「내 마음의 풍선」(김윤숙) 세 편과『계절문학』에「하늘만 쳐다보는 소」(심후섭),「도깨비굴」(김용인) 등 모두 다섯 편이 발표되었는데, 이중에「배불뚝이 선생님」,「내 호주머니속의 별」은 아이들 생활 현장에서의 생동감 있는 소재를 선택한 경우이다. 그에 비해 「내 마음의 풍선」,「하늘만 쳐다보는 소」,「도깨비굴」은 현대 어린이의 생활공간과는 좀 거리가 있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맞추어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작품화 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이야기냐, 과거의 이야기냐에 따라 문학성이 달라지고, 감동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생성된 작품에 담겨 있는 주제가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오느냐, 표현 기법이 훌륭하냐에 달려 있다. 또한 동심을 바탕으로 했느냐 하는 점과 이야기의 조직이 긴박하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재미를 줄 수 있느냐 하는데 있다고 본다. 나아가서 동화가 갖는 예술성과 함께 아직은 미숙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어린 독자에게 교시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면을 고려하면서 이 다섯 편의 작품을 살펴본다. 먼저 현실감 있는 작품으로는 양점열의 「내 호주머니속의 별」이다. 이 작품은 학교폭력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눈길을 끈다. 학교 폭력은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아픔이다. 그런데 양점열은 이 학교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동화라는 그릇에 담고 있는데, 오히려 아주 상큼한 맛이 나도록 연금술을 발휘하고 있다. 힘센 이웃학교 학생에게 폭력을 당하는 소년이, 학교 앞에서 뜻밖에도 새로 열은 '꿈을 파는 가게' 할아버지에게 구한 '별'을 호주머니에 넣고 문제의 폭력적인 아이를 만난다. 그 별을 소유하고 꿈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용기를 얻은 소년은, 폭력 앞에서 굴하지 않는다. 다시 그곳에서 먹이사슬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중학생의 이중 폭력을 만난다. 하지만 두 약한 힘이 합해지면서 그 큰 폭력까지를 물리친다는 게 결말이다.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는 '별'이, 기적을 낳게 해준 셈이다. 꿈과 용기가 이루어낸 결말이지만 완결되기까지는, 조직이나 표현 그리고 언어 수준 등에서 작가적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 편은 김현우의 작품「배불뚝이 선생님」이다. 이 이야기는, 교실 학습 현장에서 배불뚝이 담임이 극화 학습을 자기주도적으로 하게 함으로써 학습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이야기이다. 학습우수아, 열등아를 구분하지 않고 학급 전원을 등장인물로 하되 주인공은 오히려 평범 이하 수준의 아이를 발탁해 동기를 부여하게 함으로써 '흥부와 놀부'를 퓨전극으로 소화해 마침내 상연까지 하게 한다. 이 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참여해 일체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는 데 강점이 있다.
다음은 이미 역사화 된 어느 시점의 이야기이다. 그 중 눈에 띄는 작품은 심후섭의 「하늘만 쳐다보는 소」이다. 그는 가난했던 시절 오래전 이야기를 꺼내어 형상화 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과 우리만의 정서를 복원하려 한다. 7남매의 출산과 몹쓸 병마로 인한 어린이 조기 사망, 시집가는 누나에 대한 이별의 애틋함, 시냇가 빨래터, 송아지를 내다판 후 어미 소의 처절한 자괴감 등 지금은 이미 사라진 풍경들이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해묵은 수채화를 낡은 틀에 끼워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독자에게 주는 흡인력은 있다.
문학은 지나간 시대를 치밀하게 재구성함으로서 사라져가고 있는 세상을 복원해 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또한 지나간 세월을 회상케 하는 이야기들은 현세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은 그 당시 유년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성인 독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만 전혀 성장 배경이 다른 어린 독자에게는 얼른 공감대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흠이 있다.
김용인의「도깨비굴」역시 오늘날의 어린 독자들의 공감대를 얼른 얻기는 쉽지 않을 작품이다. 마을에서의 결혼식이라는 해묵은 장면을 발단 부분으로 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주인공 덕보는 평소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다. 게으름쟁이인 그는 잔칫집을 전전하거나 이웃집에서 뭘 얻어먹으려고만 한다. 끝내는 도깨비에 의해 큰 부자가 되었다는 최부자에게 가서 기웃거리며 자신도 그 덕을 누리려는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덕보가 마지막에 이르러 자기의 게으름을 깨닫고 부지런히 일을 하게 된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기는 한다. 그러나 소재의 선택 면이나 조직 면에서의 이야기의 일관성 그리고 주제 설정 면 특히 결말 부분이 보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TV가 최초로 설치되던 시대를 그린 김윤숙의 작품「내 마음의 풍선」역시 앞에서 제시한 평가 기준으로 볼 때 좀 더 정진했으면 하고 당부한다.
동화 창작은, 작가가 준비하고 고뇌하는 그 만큼 독자의 이목을 끌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만 재미가 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성인의 평가를 의식한다 해서 가작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동화 작가는 어린이와 어른에게 함께 재미와 감동을 주는 동화를 쓰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더욱 갈고 닦으면서 창작에 열정을 쏟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