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미조개, 구이와 전골로 만나는 맛의 '절정'
겨울의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확 풀리는 그런 맛. 부산 명지의 명물 갈미조개가 겨울 맛으로 제격이다. 갈미조개는 1∼2월에 맛의 절정을 이루고 3월이 되면 산란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살이 빠지면서 맛과 향이 떨어진다.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부산 강서구 명지동 동리어촌계. 이곳 어민들에게 겨울철 갈미조개 잡이는 생계를 건 투쟁이다. 어민들은 보통 부부가 2인1조가 되어서 작은 형망어선을 타고 한겨울 바다로 나가 작업한다.
할아버지 때부터 조개잡이를 해왔다는 최복두 동리어촌계장은 "젊었을 적에 한번은 겨울 바다에 빠졌는데 갈미조개가 계속 올라와 신이 나서 작업을 하다 보니 턱 밑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더라"며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렇게 못하겠다"고 옛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민들에게 조개는 생명이다. 어민들은 바다속에서 캐올린 조개에다 집에서 가져간 솜이불을 덮어놓는다고 했다. 물속보다 훨씬 추운 물 밖에서 혹시 조개들이 얼어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사람보다 귀한 조개, 겨울 맛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속살이 갈매기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갈미조개. 하지만 문헌(국립수산과학원에서 펴낸 '수변정담')에는 '새조개'가 정식 명칭이고 방언으로 '갈매기조개' '오리조개'라 불린다고 풀이돼 있다. '갈매기'가 되었든 '오리'가 되었든 맛만 있으면 그만이지, 무슨 상관이랴.
민물과 바닷물이 겹쳐진 낙동강 하구 일대에서 생산된 덕분에 갈미조개는 육질이 부드럽고 달착지근하며 담백한 것으로 이름 높다. 일본인들은 갈미조개살을 초밥에 얹어 먹길 좋아한다. 이 때문에 그동안 거의 일본에 수출해 오다 몇 년 전부터 내수로 판매처를 돌리며 국내에서도 갈미조개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70% 이상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갈미조개는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는 '명지살'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명지의 갈미조개는 전국적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생산량은 많지 않다. 5년 전에 비하면 생산량이 10분의 1로 줄어 고민이다.
명지에 가면 그날 잡은 신선한 갈미조개를 바로 먹을 수 있다. 갈미조개들은 선착장 부근의 작업장에서 하루 동안 숨을 죽이고 모래를 빼낸 뒤 유통된다. 명지 선착장 인근에는 어민들이 직접 부선(艀船) 위에서 영업하는 음식점과 명지 선창회타운의 식당을 비롯해 갈미조개 전문 음식점이 10여곳을 헤아린다. 부선 위의 '불타는 조개구이' 집에 들어가 보았다.
갈미조개를 재료로 구이부터 수육, 샤브샤브, 갈삼(갈미조개+삼겹살)까지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불 위에서 조개는 소리를 내며 구워졌다. 바다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조갯살만 살짝 빼내 옛날식 도시락에 올려놓고 땡초를 넣어서 익히자 국물이 흘러나왔다. 국물이, 국물이, 끝내주었다.
전골은 미나리, 팽이버섯, 당근, 파, 양파, 마늘, 고추, 고추장을 넣고 얼큰하게 우려낸다. 뭔가 다른 게 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역시 영업비밀이란다.
갈미조개는 말려서 일식집이나 고급 술집 안주로도 사용된다. "갈미조개하고는 어떤 술이 잘 어울리지요?" "역시 소주가 가장 잘 어울리죠." 소주 한두 잔에 금방 어지러워졌다. 이럴 수가? 그제야 이곳이 배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다른 배가 바다 위에 남겨놓은 물자국으로 인해 음식점이 자리한 부선이 살짝 흔들린 것이다. 배가 지나가자 어지러움증은 금방 사라졌다. 조개국물은 숙취 해소에 재첩보다 낫다고 한다.
창밖으로 건설 중인 명지대교가 보인다. 명지대교가 완공되면 이곳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몰려든 갈매기들이 보인다. 아니, 갈미조개가 껍데기를 깨고 날아간 것인가?
갈미조개는 르노삼성자동차 방면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위치한 명지 선창회타운에 10여곳, 그 위쪽 선착장 부근에서 부선으로 영업하는 2곳의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다. 가격은 2인이 먹을 만한 기준으로 수육·구이 각각 3만원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