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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레위기 23장 39-44
주제: 감사의 고백
제목: 초막절의 의의
-서론-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사마휘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다고하는데 어느 날, 그 마을에 전염병으로 아들을 잃은 노인이 몹시 슬퍼하자, 사마휘는 '감사한 일이군요.'라고 해서 노인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에말은 '당신과 부인, 손자들은 다 건강하지 않습니까? 감사한 일이지요'라고 말했답니다.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을 바라본 것이지요.
우리는 커다란 흰 백지는 보지 못하고 그 백지에 찍힌 아주 작은 검은 점 하나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 것처럼, 그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미래에 주실 은혜를 망각하고 현실의 어려움에만 집착하여 감사를 잊고 살 때가 많이 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다음 주에 있을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회복하게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초막절에 임한 하나님에 은혜의 삶
어느나라건 민족이 지키는 명절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는 설과 추석명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삼일절이나 광복절 같은 절기도 있지요. 절기마다 의미하는바가 다르고 그 절기를 지키는 것도 다릅니다. 예를 들면 설과 추석명절이 되면 우리국민의 절반이상이 고향을 찾느라고 교통체증을 이룹니다.
이스라엘에도 7대절기기 있는데 크게는 삼대절기로 지킵니다. 유대에 적을 두고 있는 남자라면 이 절기대에는 원근각처를 불문하고 절기를 지키기위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그 절기는 이렇습니다.
유대력으로1월 14일에 지키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건짐을 받은 절기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상징합니다.
두번째로 1월15일 지키는 무교절로 이때 누룩이 없는 빵을 먹는데 이것은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상징 합니다.
세 번째로 1월16일지키는 초실절 인데 처음 수확한 열매를 드리는 절기로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네 번째로 3월 초에 지키는 절기로 오순절 칠칠절 이라고 하는데 초실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로 이는 오늘날 성령강림절을 상징합니다.
다섯 번째 7월 1일에 지키는 나팔절로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고
여섯 번째 7월10일에 지키는 속죄절로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죄지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7월15일 지키는 장막절 초막절이 있는데 이는 천국에 입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알곡이 되어 천국에 입성하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곱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절기가 한번 올라오면 한달가량 머물기 때문에 삼대절기라고 합니다. 유월절(1월 14일)에 올라서와 무교절(15일),초실절(16일)을 함께 드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맥주절, 오순절(3월 초)을 드리고 나팔절(7월 1일)에 올라와서 속죄절(7월 10일), 초막절(7월 15일)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3번을 올라가지만 7대 절기는 지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절기를 율법적이라고 해서 안쓰는 분이 계시지만 절기를 지키는 것은 성경적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절기예인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절기인 초막절 장막절은 유대인의 3대절기중하나로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추수감사절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초막절 즉 추수감사절기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추수감사절에는 세가지 명칭이 있습니다.
1. 초막절
1) 초막절의 의의:
초막절은 광야시대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초막절의 히브리 원어는 ‘짜다, 보호하다, 덮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은 오두막, 초막입니다. 이 절기는 히브리 월력이 7/15부터 22까지 계속된다. 첫날과 마지막날은 성회로 모였습니다.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려나무, 즉 대추야자의 가지로 초막을 짓고 열매로 장식을 합니다. 대추야자는 암놈과 수놈이 있는데 수놈은 위로 쭉쭉 뻗어 올라가지만, 암놈은 가지가 옆으로 많이 늘어집니다.
이렇게 옆으로 늘어지는 암놈의 가지를 꺾어서 초막을 짓습니다. 현대 유대인들은 초막은 옥상이나 공원 또는 광장 등에 짓는데 하늘이 보이게 짓습니다.
왜냐하면 얼기설기 역어진 대추야자 가지의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별빛을 보면서, 오늘의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초막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지켜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는 죄악의 광야에 있는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초막절의 의미를 생해 보면
첫째로 초막절은 광야 40년 동안 초막 생활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시며 보호하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인도해 주신 광야의 40년 초막생활을 기념하는 겁니다.
둘째로 초막절은 즐거운 절기입니다.
오늘 본문 40절에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동안 즐거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들은 그 날에 슬픔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성회의 기쁨을 가지지 않고서는 결코 즐거움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기쁨과 축제의 날이예요. 무엇을 하든지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예요. 허락하는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즐기는 것이예요. 그리고 이웃과 함께 나누며 즐기는 절기입니다.
세째로 초막절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초막절은 모든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순례자의 삶임을 의미해요.
이스라엘 백성의 긴 광야생활은 천막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초라하고 임시적인 삶이어서 그것은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 목적지를 위한 임시적인 거처임을 말해 주고 있어요.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가자고 하시면 초막을 걷어서 가야만 합니다.
이와같이 인간의 삶은 영원한 안식처인 가나안을 향해가는 여정에 불과한 거예요. 알고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현세적인 것은 결국 다 무너지는 임시적인 거예요. 영원한 장막은 예수그리스도밖에는 없어요.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장막이 되십니다. 할렐루야!
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몸은 광야 같은 세상에 있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으로 향해 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광야에 보물을 묻어 둘 것이 아니라, 천국을 위해 사용해야 해요. 또한 우리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애굽 사람들을 데리고 간 것처럼 이웃들과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우리가 누리는 것은 천국생활의 예비적 삶이어야 하기 때문이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천국을 누릴 수 있겠어요?
하룻밤에 삼천만원이 넘는 두바이 칠성호텔에 숙박한다고 해서 그곳에 살림 살이를 넣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이 땅의 삶은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한 삶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내 삶에서 누렸던 천국을 기억하는 것만큼 미래를 기대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 있을 때 가나안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남길까 하는 현세적인 삶이 아니라, 천국에 무엇을 남길까 하는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불로초를 먹었던 진시황제도, 세상을 호령했던 영웅호걸들도, 스마트폰으로 현대인들의 삶의 패턴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던 스티븐잡스도 죽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그토록 추구하는 물질도, 명예도, 권세도 노후대책을 준비하는 각종 보험도 우리가 육체를 벗고 나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에서의 초막이 임시적인 거처였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지극히 유한적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되시고, 영원히 함께하시는 장막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영원하십니다.
우리 연무교회 성도 여러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원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장막 아래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장막절
1) 장막절의 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간의 초막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장막을 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장막절이라고 부를 때는 영원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산 것은 영원한 가나안을 그리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망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장막을 짓고 산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영원한 보호와 안식을 보장 받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막 안에 있으면 폭풍이 불어와도, 창수가 나도 안전해요. 걱정이 없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영원히 보호받고 안식을 누리게 되실 줄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천국이요,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요, 영원한 약속입니다.
2)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끝까지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데반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의 장막을 보았고, 그 장막이 은혜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여러분도 현재의 형편이나 어려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넘어에 있는 영원한 장막을 보시고 소망하면서 천국의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수장절
수장절(추수감사절)이라 할 때에는 알곡을 추수하여 곡간에 들이는 의미로 알곡은 천국의 입성을 의미합니다.
이 초막절은 3대 절기 중에 연중 마지막에 지키는 절기로 이 절기 동안에는 모든 백성들이 초막을 짓고 거기서 7일간을 거합니다.
그 누추한 곳에서 7일 동안 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 편안한 집을 나두고 초막을 짓고 그 곳에서 7일 동안 생활한다는 것이 불편하죠. 그러나 이들은 이곳에서 7일간의 생활은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천국의 삶을 누리는 귀한 시간입니다.
환경은 최악의 상황인데 어떻게 천국의 생활을 느낄 수가 있습니까?
예,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비록 초막 생활이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무엇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과 함께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비록 내 삶이 대궐 같은 아파트가 아닌 단칸방에 산다 할지라도,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이 장막에 7일 동안 거 하면서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고통의 땅에서,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애굽사람이 다 뺏어갑니다. 노동에 댓가가 없었던 땅입니다, 노동을 착취당했던 땅입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 없던 땅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원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했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시고, 전능하심을 경험했던 때를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광야에있을때는어떠했습니까? 농사짓고 싶어도 지을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갔더니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풍요로움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심지도 아니했는데 거두게 하시고 그 안에서 그 많은 과일과 풍요로움이 농사도 지어본적이 없고 또 짓지도 못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가나안 백성들이 미리 농사를 다 지어서 옥토를 만들어 놓았고 그곳에 좋은 과실주를 심어 놓고 모든 것을 풍요롭게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다 만들어 논자리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겁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출애굽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나안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셨지만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뿐만 누렸고 2세대들이 그 축복을 받아 누렸어요. 하나님의 언약을 1세대에도 주셨는데 누리기는 2세대가 누렸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누릴 것을 주시지만 다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감사하는 자만이 누릴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절이 되면 이처럼 강단 앞에 온갖 과일들을 쌓아놓고 장식을 하죠. 그 근거가 어디있습니까?
레 23:40에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는 말씀에 근거해서 장식을 하는 겁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수고한 것에 대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 열매를 자기 창고에 들여서 먹고 나눌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장절의 축복입니다.
수장절에는 초막을 짓고 그 가지에 열매를 달아 놓습니다. 왜냐하면 그 열매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열매를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이 열매는 바로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열매가 되어야합니다. 여러분, 누가 알곡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알곡입니다.
2) 내가 알곡이 되어서 나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일 년 동안 지켜주시고 풍성한 열매를 주신 것에 감사하여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리는 마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풍성한 추수감사절이 될 줄 믿습니다.
3) 사랑하는 여러분, 창고에 수장해 놓은 열매를 감사한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면 어떨까요? 감사는 오늘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예수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나병환자 열 명이 고침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명을 만납니다. 그들이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 모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단 한 사람만이 주님 앞에 와서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에 사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를 하는 것은 직분자들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경륜이 있는 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겁니다.
지금 여러분, 한주간 추수감사절에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될 여러분의 마음과 예물과 영혼을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까지 갈 때에 기업의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다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의 약속까지 갈 수 가 있을까요?
논산에서 서울까지 갈 때 에는 K.T.S 티켓이면 갈 수가 있어요. 또 외국에 간다면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가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자리에 나아가는 티켓은 무엇입니까?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티켓은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를 고백해야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여러분 모두에게도 특별히 기억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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