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내가 사는 동네엔 덩치로 보나 생긴 모습으로 보나 영락없이 고릴라를 닮은 사람이 있었다. 커다란 덩치가 그야말로 산山만 했고, 굵고 시커먼 털이 부슬부슬 덮인, 무릎까지 이르는 긴 팔을 지녔다. 정수리 쪽으로 가파르게 깎여나간 이마하며 툭 튀어나온 눈썹뼈 부위며 다부져보이는 턱과 불거져나온 잇몸 등 생긴 모습이 고릴라를 영판 빼어박았다. 그래서 그에게 ‘안광현’이란 번듯한 이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사람들은 그를 굳이 ‘고릴라’라 불렀다.
80킬로들이 쌀가마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릴만큼, 힘 또한 엄청 세었다. 그러니 힘으로는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런 그에 대해서 동네사람들의 입방아도 잦았다.
“덩치나 힘이 아깝다 아까워. 옛날에 태어났음 단연 장군감이지. 혹 씨름선수나 레슬링선수로 나간다면 어떨까?”
“장군 좋아하네. 장군 해먹으려면 지략이란 게 있어야해. 그리고 통솔력이란 것도 있어야하고…. 그리고 씨름이나 레슬링은 덩치만 크고 힘만 세다하여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고릴라같이 머리가 둔해선 어림도 없어.”
그는 생긴 모습만으론 성격이 꽤나 포악하고 제멋대로일 것으로 보였으나 의외로 성격은 온순하고 느긋하며 웬만해선 화를 낼 줄도 몰랐다. 그러니 우리같은 꼬마들이 떼지어 놀려댔어도 그것이 저와 함께 놀아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헤헤…’ 거리며 즐거워했다.
그는 말도 어눌한 데다 제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줄도 모르고, 또 미련하다 못해 어리석기 그지없으니 시쳇말로 등신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지능이 낮은 데다 요령조차 없어 고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고물 따위를 주워팔거나 허드렛일로 생계를 겨우 잇는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식구라곤 몸이 불편하여 늘 이부자리에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늙은 어머니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지극하여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를 10년 넘게 정성껏 병간호하기를 하루도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 역시 문맹을 못 벗어난 일자무식의 여인으로 쉰 넘어 늦게 낳은 자식이, 게다가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자식이 눈에 밟혀 쉬 눈을 감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심성 고운 여자 만나 혼례라도 치를 수만 있다면….”
죽음을 끼고살다시피하는 어머니의 유일한 소원은 아들이 하루빨리 착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으리라.
온순하고 단순한 데다 힘도 장사인 그를 동네사람들은 힘들고 험한 일이 있을 때마다 푼돈을 쥐어주며 예사로이 부려먹었다. 심지어는 공사현장의 하루일당 6만 원짜리 일거리를 얻어주고 실제론 그에게 2만 원만 건네주는 식으로 중간에서 품삯을 갈취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들로서는 푼돈을 쥐어줘도 마냥 고맙다며 허리굽혀 치하하기를 잊지 않는 그였기에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짓이야말로 그를 등쳐먹는 아주 교활하고 나쁜 짓이란 걸 인식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도와 준 것으로 생색내기에 바빴다.
“고릴라가 일은 엄청 잘 해. 군소리도 없이….”
“맞아. 그만한 일꾼도 없지.”
“내가 이 달에만도 한 십만 원 돈 보태줬을 걸?”
“나도 공사장에 소개해줘서 생활비를 벌어 쓰게 해 줬네.”
3년 전, 밤 8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9월에 접어들고 추석이 낼 모래인데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게다가 오후부터 궂은비가 질척이며 내리고 있었다.
그는 종일 일하고 돌아온 터라 젖은 옷을 벗을 새 없이 발부터 씻고 있었다. 얼른 발을 씻고는 어머니와 늦은 저녁을 함께 먹을 생각뿐이었다.
“광현아!”
“어매, 나 불러써여?”
그는 발을 씻다말고 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옹냐. 나 오늘따라 귤이 디게 먹고 잡네. 니 푸딱 가서 귤 좀 사오니라.”
“예.”
그는 슬리퍼를 꿰신고 우산도 없이 빗물을 맞으며 문밖으로 나섰다. 골목을 벗어나 막 큰길로 들어서려는 순간, 눈앞에서 뭔가 시커먼 것이 잽싸게 내빼는게 보였고 담벼락에 기댄 사람으로부터 ‘헉헉’ 숨 가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 즉 그는 다름 아닌 동네반장 박칠성이었다.
“바안…자…앙님이라요?”
그 순간 박 반장은 피 묻은 손으로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것도 잠시, 박 반장의 몸은 땅바닥으로 서서히 기울어갔다.
그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박 반장의 복부에 박힌 칼을 발견하고 그 칼을 무의식적으로 잡아뽑았다. 복부의 벌어진 상처에서 벌컥 거리며 피가 뿜어져나왔고, 그 핏물은 곧 질퍽한 빗물에 용해되어 길바닥을 흥건히 적셔나갔다.
그때 검은 우산으로 빗줄기를 가리며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철물점 주인 김명진이란 사람이었다.
김 씨는 뜻밖의 처참한 장면을 목격하고는 흠칫 놀랐으나 곧 나자빠져있는 사람이 동네의 유명한 마당발 박 반장이란 것과 그 옆에 칼을 쥔 채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고릴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씨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고릴라에게 말을 건넸다.
“이게… 우얀 일이고? 니는… 고릴라 아닌가? 니… 반장님한테 뭔 짓을 했노?”
“나… 나… 아무… 아무….”
그 순간 박 반장이 사력을 다해 몸을 반쯤 일으키더니 한 손으로 눈앞의 고릴라를 움켜잡고는 눈을 부릅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맥없이 손을 내려뜨린 채 숨을 거두었다. 더우기 그와 같은 상황을 직접 목격한 김 씨로서는 고릴라가 박 반장을 죽였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동네사람 여럿이 몰려들어 그들을 에워쌌다. 그로부터 10분쯤 더 지나자 119구급대와 112순찰차가 들이닥치고, 또 얼마쯤 더 지나자 본서에서 나왔음직한 사복차림의 경찰관 두 명이 더 가세했다.
김 씨는 경찰관을 비롯한 주민들 앞에서 좀 전에 자신이 보았던 것을 더욱 과장하여 떠벌였다.
“저기, 저 고릴라가 저 칼로 박 반장님의 배를 푸욱 쑤시는 걸 분명히 보았다니까요.”
그때까지도 넋 나간 채 서 있던 고릴라의 한 손에는 피범벅이 된 칼이 쥐어져 있었다. 경찰관 가운데 하나가 고릴라의 손에 쥐어진 칼을 빼앗고 대신 그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이봐, 니가 저기 저 사람 칼로 찔러 죽인게 맞아?”
“아니…, 아니… 라요.”
그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부인하자, 김 씨가 발끈하며 나섰다.
“아니긴 뭘 아냐? 내가 이렇게 시퍼런 두 눈으로 봤구만. 이 고릴라가 박 반장님을 죽인게 확실해요.”
“너, 이름이 뭐야?”
“아… 아… 과… 과… 현… 아… 과… 현이요.”
“무슨 말인지 통 못 알아듣겠네.”
“아… 아… 과… 현이여.”
“이 사람, 이름이 뭐요?”
경찰관이 주위에 몰려있던 사람들을 둘러보며 묻자 주민 하나가 대답했다.
“뭐, 안… 뭐라더라? 안광… 훈인지 뭔지.”
“이 사람, 어디 살아요?”
“조 쪽… 골목 안 네 번째 집이라던가? 하여튼 조 쪽 골목 어딘가에 사는갑던데.”
그는 자신이 왜 수갑에 채여 끌려가야하는지 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분명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눈치 채고 나름 항의하였다. 그러나 그 항의는 횡설수설로 알아듣기도 어렵거니와 된 발음으로 인해 듣기에 따라선 마치 폭언처럼 들렸다.
어느새 사건현장은 모여든 동네사람들로 술렁거려 장터를 방불케 했다.
“저 고릴라가 반장을 죽였다는구먼.”
“고릴라 저게 생각보단 음흉하네 그려. 좀 모자라보이고 순진하게 보이더만….”
“그러게…. 옛 속담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았나.”
그는 경찰에 의해 끌려가면서도 어머니가 걱정되어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얘기를 동네사람들에게 전하려해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 어매… 어 어매… 지 지배… 지배… 호 혼자… 이 이떠… 어 어매….”
동네사람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기는커녕 그를 두둔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질척이며 내리던 가랑비가 어느덧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그는 경찰관의 손에 꽉 잡힌 채 끌려가면서도 동네사람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나… 나… 아 아무… 모 몰라… 아 아무… 모 몰라… 나… 나….”
경찰 호송차에 강제로 태워지기 직전, 그는 수갑이 채어진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하늘을 향해 포효를 했다. 그때의 모습은 성난 고릴라의 모습이었기에 몰려든 동네사람들 모두가 움찔 놀라 뒷걸음질 쳤다.
동네사람들은 경찰 호송차의 뒤꽁무니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 자리에 계속 머물다가 이읔고 하나 둘 흩어지며 각기 제 갈길을 찾아갔다.
썰물처럼 인파가 모두 빠져나간 텅빈 사건현장엔 고릴라, 그가 남긴 한쪽 슬리퍼만이 흙탕물 속에 나뒹굴었다.
나는 그의 다 닳아빠진 커다란 슬리퍼를 천천히 주워들었다. 그런 나를 마치 빗물로 깔아뭉개려는 듯 하늘에서 퍼붓는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