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벳부지옥 순례
지옥으로 : 버스 정류장에는 지옥으로 가는 시간표가 적혀있다. 버스는 아주 뜸하게 온다. 20분은 기다려야 한다. 내릴 때 시간표를 적어 두었더라면 해변에 좀 더 놀 수 있었다. 낡은 아파트의 샷시와 베란다의 가름대가 벌겋게 녹슬었다. 아마 염분 탓일 것이다. ‘왜 베란다에 이중창을 안 했을까?’ ‘한 겨울에도 영상인데 뭐 하러 하겠어!’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어떻게 집권했지?’ 나는 열국지의 반복인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와 대망으로 번역된 도꾸가와 이야기 시바료따로의 명치유신 이야기를 밑도 없이 시부렁거리는데 나도 집사람도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에 시큰둥하다.
11시30분 버스는 15분이나 늦었다. 鐵輪을 ‘간나와’라고 읽는가 보다. 아무튼 학생증 같은 1일 버스표를 보여주고 간나와에서 내려 우선 백수온천으로 들어간다. 지옥은 모두 8곳인데 각각 400円 - 합계 3,200원인데 通票[중국말이다]는 2,000円이다.
백수지옥
1. 12시20분 백수온천은 옥색의 온천수에 새하얀 수증기를 뿜는데 고개를 숙이고 보면 하늘에 구름이 피어오른 것 같다. 그 구름을 손으로 잡아본다. 쥐어지는 것은 없다. 솜사탕같은 뜨거운 구름을 어린애처럼 바라본다. 무색투명한 끓는 물이 찬물위로 떨어지면서 온도와 압력 차이로 푸른색이 된다니 물도 추위를 타면 파랗게 질리는 것일까? 과학선생에게 물어 보고 싶지만 매사를 딱딱하게 보는 이 선생님은 선녀가 된 듯 나보다 더 파란연못의 흰색 꽃구름에 넋을 잃고 있다. 통로에는 대왕어가 어항에서 고독한 유영을 즐기고 있었다. 뜰에는 상록의 열대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마치 常夏의 나라에 온듯하다.
2. 귀산지옥에서 사람들은 귀신의 배꼽을 어루만지며 복을 빌고 사진을 찍는다. 그 옆에 이 산 이름이 본래 何直山이라는 안내문과 소설가 사사키 노부쓰나[佐佐木信綱]의 유람시비가 서 있다. 엄청난 증기가 강력하게 대기의 압력과 용트림을 한다. 공기가 저항하지 않으면 저 증기가 온 하늘을 덮어버릴까? 한 순간 숨을 멈추면 목숨을 끊는 공기가 하늘을 덮고 있는데 나는 벌레처럼 한 숟갈의 산소로 연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하늘을 가린 수증기 안개 속에 갇혀 있다. 1923년이라면 거의 100년이 되어 가는데 그때 이미 온천을 이용해 악어를 기르겠다는 발상이 희한하다. 이제 150여 마리가 되었다는데 악어의 껍질은 핸드백에서 보는 것만큼 곱지 않다. 죽은 것 같은데 눈을 껌벅거리거나 갑자기 물로 뛰어든다. 순간 점프력이 대단하다. 이 짐승을 보고 있노라면 손자병법의 매복과 기습이 생각난다. 이곳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3. 걸음을 옮겨 엄청난 솥이 입구를 가로막은 가마또[かまど]지옥으로 발을 옮긴다. 안개로 밥을 짓는다니?! 이 안개밥을 가을철에 지어 ?王神[부엌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니 두 번 놀랜다. 그 조왕신은 제주도와 남해안에 널리 퍼져있다. 가마도 하치만[?門八幡]이라는 ‘가마’는 ‘?’도 되고 ‘솥’도 된다. 釜山의 ’釜‘가 가마인 것도 마찬가지다. 입구에는 화장실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얼씨구나! 족욕탕도 있다.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 맥주도 한잔 마시고 집사람은 달걀을 사오고 부지런히 사 모았던 모찌와 빵에 쥬스도 한 모금 준다. 알고 보니 이것이 점심이었던가?
주변은 온통 한국 관광객 들...온천에 담배연기를 뿜고 그 기압으로 온천수가 갑자기 끓어오르는 공연[?]을 한 뒤 족욕을 하고 탄산수를 사서 샴페인 놀이를 하고 달걀을 사먹고 또 다30분 뒤에 후쿠오카를 향해 떠난다. 이 사람들은 어제 교또에서 오사카를 거쳐 밤배를 타고 이곳에 왔다. 뒤이어 또 다른 팀이 와서 담배연기를 뿜는다. 며칠 말을 못하고 신문과 TV를 끊고 살았는데 동래 시장통에 온 것 같아 귀가 뚫린다.
집사람은 족욕을 하면서 한마디 한다. ‘어제는 아소의 불구덩이를 보고 오늘은 그 물에 발을 담그네’ 완벽한 시다. 행을 바꾸고 한 자만 바꿔본다.
어제는 阿蘇의 불구덩이 보고 오늘은 그 불에 발을 담그네!
이백의 백제성이라는 시구를 뛰어넘었다.
꽃구름에 우뚝 아름다운 백제성을 아침에 이별하고 천리 물길 강릉은 하루 만에 돌아왔네. 강기슭엔 울려대는 잔나비울음 내 배[舟]는 가볍게 疊疊(첩첩) 산을 가르네!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住/ 輕舟已過萬重山>
백제성은 중국 쓰촨성[四川省] 펑제현[奉節縣] 동쪽, 후베이성[湖北省] 경계 바이디산[白帝山] 기슭에 있는 옛 성으로 유비(劉備)가 오(吳)나라 원정에 나섰다가 패하고 임종한 곳이다. 바로 동쪽에 揚子江 싼샤[三峽]의 서쪽 입구인 취탕샤[瞿唐峽]가 있다.
우리는 발을 말리고 한 바퀴 돌며 온천수도 맛보고 수증기도 마셔보고 담배연기를 뿜어도 보고 사진도 찍어본다.
온실의 연꽃은 흰색 보라 여러 가지인데 지옥에서 열반으로! - 진흙에서 피어낸 불가의 도리를 닮았을까?
4. 이 지옥들은 앞문도 있고 뒷문도 있다. 쉽게 탈출하도록 비상구를 만들어 놓은 것일까? 이번에는 산으로 간다. 산지옥은 1996년 처음 규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운젠[雲仙]에서 한 번 유황냄새를 맡아본지라 친근하다. 돌은 노랗게 유황옷을 입었고 김은 솟아 열대림을 감고 오른다. 붕고풍토기[豊後風土記]에 ‘주민들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불길한 땅’으로 기록 되어있다니 제갈량이 맹획을 七縱七擒하던 당시를 실감할 수 있다. 이곳에는 거의 일본일들 뿐인데 물론 벳부시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겨울 속의 봄을 찾아 나선 행락객들이다. 아래쪽에서 물고기와 악어를 보았는데 코끼리, 아프리카의 紅鶴, 원숭이에 엄청난 뒷일을 마친 河馬 등등 동물원의 눈요기로는 그만이다. 아이들은 그 주변에서 해가 기우는 줄을 모르는데 안타까운 것은 갓 피어난 매화뿐이다.
5. 다시 발걸음을 옮겨 바다지옥에 들르면 기념품 가게는 더 번잡하다. 섭씨98度라는 파란 온천수에 계란을 삶는 장대를 걸쳐놓은 것이 이 지옥의 심볼이다. 집사람은 부라보콘(?)을 한 개 사와서 한 입 떼어준다. 今 東光[곤 도꼬우] 스님은 ...이곳에서 한 번 미끄러지면 지옥의 솥보다 더 뜨거울 거라 생각하니 지옥에 가고 싶다는 根性[곤죠?]같은 것은 다 없어진다면서...지옥에서 부활한 인간이야말로 진짜 인간이라고 선을 향한 의지를 설파하셨는데...맑스는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은 열 배의 이익이 있으면 기꺼이 단두대에 오른다.’ ... 지옥에서 단련한 놈은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어떤 도둑놈은 ‘시원하다!’면서 형장의 끓는 물에 뛰어들면서 ‘내 뒤를 이을 놈은 줄을 서있다’고 외쳤다고 한다.
이 옥색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평화롭다. 붉은 색을 칠한 도리가 줄지어 있고 大正9년11월 昭和天皇이 들렀다는 기념비가 있다. 온실에는 연꽃이 화사하고 정원에는 하늘을 가린 야자나무를 배경으로 분홍과 순백의 매화가 한껏 피었다. 그 사이 온천물은 시내를 이루고 흐른다. 해가 기웃하다.
6. 가는 곳마다 通票의 뒷면에 스탬프를 찍는다. ‘鬼石坊主地獄’은 ‘오니이시보즈’라고 읽는 모양인데 진흙에 빠진 축구공 같아 스님의 대머리가 연상되는가 보다. 한 장 한 장 근접 사진을 찍으면 훌륭한 조각 작품이 탄생한다. 상하이에서 IT산업을 하는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려왔는데 매우 품위가 있어 보였다. 우리는 여행작가 余秋雨 이야기를 나누며 피로를 풀었는데 부인은 일본어 전공이었다.
우리는 걸을 만큼 걸었다. 아직도 표가 2장 남았는데 피의 지옥과 간헐천...그리고 산쪽으로 묘반온천이 있고 이곳에도 매화그늘아래 무료 족욕과 400원円만 주면 온천탕이 있는데 집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옷도 갈아입고 화장실에도 가고 또 바다도 보면서 독탕이나 마찬가지니 그편이 오히려 편하다.
저 뜨거운 진흙덩이가 스님의 깎은 머리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벳부를 떠나는 밤 : 단군버스-즉 가메노이[龜の井] 버스는 이번에는 산기슭을 따라 공원을 지나며 유후인에서 오던 길을 따라 벳부역 그 자리에 우리를 내려준다. 오후 4시! 역앞 전자상가에서 잠시 카메라를 구경하고 어제의 음반집에서 ‘荒城の月’을 샀다. 길 건너 재래시장은 집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시장이 아니었다. 백엔샵에서 종이와 붓을 샀는데 중국제 -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한다. 집사람은 김밥 안에 무슨 깨와 생선을 말려 넣었는지 고소하다면서 기어이 그것을 시킨다. 일본 된장을 따로 주문해 주었다. 나는 충무로 신세계백화점에서 흔히 보는 돈까스 정식을 시킨다. 일본사람들의 튀김은 기름이 맛있고 바삭바삭하고 간장이 어울린다.
집에 돌아와 온천물에 잠시 몸을 맡기고 맥주를 마시고 5분 거리에 있는 벳부에서 제일 유명한 다께가와라[竹瓦-원래는 대나무를 쪼개 지붕을 했을까?]온천을 구경했다. 신사를 닮은 거대한 목조건물은 100년의 전통만큼 아름다웠다. 이 목욕탕은 100円인데 목욕을 마친 앞집 할머니가 더운 김을 뿜으며 턱 담배를 맛있게 빨고 대문을 밀고 있었다. 그 옆에 신사가 있고 빨강-분홍-파랑 이렇게 네온이 얄궂은데 ‘無料案內所’라는 간판이 있고 그 뒤로는 다리가 길고 허연 아가씨가 잠시 스쳐간다. 집사람이 세차게 팔을 나꿔 챈다. 단테의 煉獄을 상상하고 있는데 벳부의 煉獄에 들어가고 싶으냐는 표정이다. 시커먼 고양이가 ‘냐옹!’하며 담을 뛰어 넘는다. 골목을 나서자 바로 ‘그대와 나’ - 어제 예습을 했으니 일사천리로 기념품을 샀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지만 무엇인가 기념품을 가져가야하는데 사진이나 엽서는 씨알이 안 먹히는 세상이 되었다. 외손주 선물로 건반을 누르면 히라가나가 나오는 책 한 권과 이 아이들이 돼지와 소띠니까 그 인형을 사고 집사람 앞치마를 샀다. 집사람은 식료품가게에서 머뭇거리고 나는 문밖정류장의자에서 아픈 다리를 달랜다.
낭독의 재발견 2 : 비가 내린다. 내일 오후 3시에 그친다는데 견딜 만하다. 우산처럼 귀찮은 짐도 없다. 공원을 가로질러 돌아와 TV를 켜는데 NHK에서 ‘어머니의 임종일기’가 방영된다. 지긋한 나이의 남녀 성우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절제를 잃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마지막 나날을 읽어 내려간다. 일기의 주인공인 아들 -그리고 투병하는 어머니의 침상과 고인의 거실이 간간 비치고 다시 성우의 얼굴이 비친다. 남자가 읽으면 여자가 울고 여자가 읽으면 남자가 눈물을 닦는다. 거짓이 없는 눈물! 우리 모두를 울리는 그 눈물에는 어머니라는 공통의 의미기호와 죽음이라는 숙명의 函數가 있다. 이 방송은 한마디로 품위가 있다. 이것을 國格이라고 부를 만하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공을 들인 교육과 사회적 약속과 뼈저린 전통의 固守를 우리는 본다. 진정이 되고 나서야 빈 맥주캔을 오래도록 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산지옥의 열대숲-입추의 여지없이 나무는 하늘로 또 빈틈으로 가지와 잎새를 뻗고 있다.
<다음은 규슈횡단특급열차>
|
출처: 주막의 등불 원문보기 글쓴이: 양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