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7-20)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바울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고 섬겼습니다. 고난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난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주변에 있는 다른 교회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살전 2:19“고 하면서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20)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놀라운 복음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바울의 말을 단순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서 10:17절을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건강한지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드는 사람은 건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건성 듣는 사람은 그의 믿음이 건강하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하여 건강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건강할 때 행복합니다. 건강할 때 은혜롭습니다. 건강할 때 평안합니다.
누가복음 8장을 보면,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땅은 백배의 열매를 맺지만, 어떤 땅은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씨앗이 어떤 땅에 떨어졌는가가 수확의 양을 결정합니다. 길가, 바위,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면 안됩니다. 그 곳에 떨어지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옥토여야 합니다.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받아들이기 위해서 잘 기경되어 있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아 엎어야 합니다.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수확의 기쁨을 알 때 수고할 수 있습니다. 열매의 풍성함을 맛본 사람만이 희생할 수 있습니다. 열매 없는 삶이 아니라 열매 맺는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쁜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것은 받아 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비결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백배의 열매를 거둘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불순종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약 3주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더 오래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고난과 환난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어서 급하게 도망치듯 빠져나왔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바울은 급하게 도망쳐 나온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많은 걱정과 염려를 했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복음을 잘 간직하고 있을까?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을까?” 그런데 뜻밖에도 환난 가운데에서도 그들이 믿음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의 믿음의 본이 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7-20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했습니다.
염려했던 교회가 오히려 믿음을 지키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었기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염려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사도 바울이 그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그들을 향하여, 한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길을 막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바울의 복음 사역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다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비록 그들 곁에 갈 수 없었지만, 마음만은 그들에게로 늘 향하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다”고 하면서, 그들의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는 나의 영광이요 나의 기쁨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믿음으로 기쁨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를 맺으며 나아갈 때,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