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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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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제사에 간다. 오늘은 2011년 11월 27일. 날이 흐리다. 춥진 않다.
함께 가자.
어제 신정동 누나에게 문자로 부탁했다.
그러마.
누나가 답했다.
고마워 정말.
얼른 휴대전화 문자 버튼을 눌렀다.
내일 데리러 갈게. 두 시에.
누나에게서도 또 금방 답이 날아왔다.
나 때문에 형제들 모두 문자를 잘한다. 누나는 환갑이 넘었다. 2남 4녀 중 둘째다. 작년부터 나는 글을 읽거나 칠 때만 잠깐씩 돋보기를 쓴다. 누나는 서른 살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해 지금껏 두꺼운 졸보기를 쓴다. 나보다 작은 글씨를 잘 본다. 나는 막내다. 말을 할 줄 모른다.
될 수 있으면 옷은 검은색으로 입어.
알았어. 입구에 나가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말을 못했고 누나는 보지 못했다. 나는 말을 전혀 못했으나 누나는 희미하게나마 보았다. 실눈을 뜨느라 누나는 어려서부터 얼굴을 자주, 몹시 찡그렸다.
병신처럼 저년은…….
아버지가 야단쳤다. 누나는 화들짝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병신이라는 말이 내 귀에 들릴까 봐서였다.
생후 일주일 되던 날 나는 엎어진 채 한나절을 버르적거렸다. 아버지 엉덩이 뒤로, 가는 똥처럼 줄줄이 비어져 나온 새끼가 타래를 틀었다. 아버지는 겨우내 안방에 앉아 가마니 짤 때 쓸 새끼를 꼬았다. 방구들이 따뜻했던 건 안방뿐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추운 건넌방에서 무명을 짰다. 겨울 바다엔 성엣장이 떠다녔다. 염하 건너 연백 땅이 바라보이는 집은 언제나 추웠다.
나는 새끼 타래에 밀려 엎어졌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뇌세포가 많이 죽었다. 말을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일 거라고, 열네 살 적 서울로 올라오고도 4년이 지나서야 처음 가 본 병원 의사에게서 들었다.
계성원 현관까지 갈 테니 나와 있지 마. 추워.
그럼 여기 식구들 다 듣게 현관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불러 줘. ㅋㅋ.
전송 버튼을 누르고 후회했다. 형 제사에 가는 일로 문자를 주고받던 중이었다. ㅋㅋ는 안 어울렸다. 계성원은 내가 사는 시설이다. 좋은 곳이다.
제사라는 말도 안 어울릴지 모른다. 형은 죽은 게 아니었다. 사라졌을 뿐이다.
행불 신고를 한 지 1년이 지났다.
아무래도…….
2주 전 형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을 치러야 할까 봐요.
형수는 상이라고 했다. 죽은 걸로 간주하고 행방불명된 지 1년 만에 치르는 걸 상이라고 해야 할지 제사라고 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형은 병실에서 없어졌다. 폐암 말기 환자였다. 계기판과 약물에 연결된 전선과 호스를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누워 있었다. 그런 형이 어느 저녁 사라졌다.
나는 잠시도 자지 않았다구요. 간병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소변 주머니 비우고 돌아보니 없었다니까요. 가족과 병원과 경찰은 간병인을 의심했다. 의식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1분 만에 빼돌려요? 뭣 하러? 간호기록부를 확인한 경찰과 병원은 간병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병실을 순회한 간호사가 미처 스테이션에 당도하기도 전에 간병인이 먼저 뛰어와 환자가 없어졌다고 소리쳤다.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스테이션에는 네 명의 간호사가 있었다. 복도에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이 오갔다. 그럴 시각이었다. 모든 엘리베이터와 로비에도 적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목격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에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담당 수사관이 했다는 말을 둘째 누님이 나에게 전송했다. 이어 형이 누웠던 자리, 흔적, 상태를 전하며 마무리했다.
떠난 자리가 글쎄 너무도 얌전했다지 뭐니.
나도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삼십 년도 더 지난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난 그냥 사라질 거라구……. 나에게만 했던 말. 형은 나를 믿었다. 내가 형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할 줄 몰랐던 나는 형의 더 많은 말을 기억했다.
친형이 아니었다. 외삼촌의 아들이었다. 형이라고 각인되지도 않았다. 그냥 성근이였다. 어른들이 모두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었다. 성근이. 세 살 때 부모를 다 잃었다.
성근이 형과 한 살 터울인 친형도 형이라 각인되지 않았다. 역시, 그냥, 진호였다. 나보다 열 살 많았다. 형이나 형님은, 말로만 듣던 서울이거나 가풍 있는 집에서나 쓰는 호칭이었다.
간신히 누나들을 누나라 새겼다. 큰 누님은 일흔이 넘었지만, 아직 누나일 뿐이다. 문자를 보낼 때만 누님이고 형일 뿐이다.
외삼촌이 전쟁 때 북한군 물자를 배로 실어 날랐다. 나룻배를 가진 게 죄였다. 마을이 수복되던 날 외삼촌은 자취를 감추었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자유청년단이 외삼촌의 재산을 몰수했다. 외숙모는 외로움과 두려움과 화병이 겹쳐 이듬해 죽었다. 형은 홀몸인 외할머니와 움막에 버려졌다. 외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십 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성근이라는 이름은, 마을에서, 가난을 대신하는 말이었다.
그 형이 세상에서 사라졌고, 오늘 상을 치르는 날이다. 시신이 없으니 상이랄 것도 없다. 초우제인 셈이니 제사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둘째 누나와 함께 이천 형네 집에 간다.
애들도 다 도착했다는구나.
누나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말한다.
형은 자식 넷을 두고 갔다. 원래는 다섯이었다. 아들 하나가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다 트럭에 받혀 죽었다. 둘만 낳는 시류가 시작될 즈음 형은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다. 정말 기가 막혀서. 어머니가 늘 하던 말이었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건사도 못할 거면서 싸질러대긴……. 어머니 말은 욕 같지 않았다. 첫째 둘째를 어머니에게 떠넘기고 형은 형수와 헤어졌다.
부러워. 작은 글씨 읽는 거.
나는 천천히 쓴다. 일요일이라 길이 막힌다. 누나는 운전하며 문자를 읽고 쓴다. 이천은 멀다. 문자가 습관이 된 건 친척들도 마찬가지다. 형은 문자 전송의 도사였다.
나는 노안이 안 와. 지독한 근시잖아.
안 보였던 게 아니라, 누나는 근시였다. 근시라는 걸, 시집가서 애를 둘 낳은 뒤 알았다. 서른 살에 안경을 꼈다.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 누나는 예뻤다.
신기했어. 안경 쓰기 전엔 몰랐어. 원래 세상이 그런 줄 알았단다. 남들도 다 그렇게 보고 살겠거니 했던 거야. 안경 끼고 너무 기뻐서, 지난 세월을 서러워할 새도, 부모를 원망할 겨를도 없었지.
나는 문자를 적어 누나의 코앞에 들이민다. 휴대전화는 내 입이다.
두 번 더 들으면 백 번.
웃느라 누나가 잠깐 핸들을 놓친다. 차가 흔들린다. 누나는 그런 눈으로 애 둘을 낳고 시부모를 모셨다.
누나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얻었다. 나는 글을 쓰며 세상을 알아갔다. 내게 글을 깨우쳐준 게 성근이 형이었다.
형은 스무 살도 안 되어 타지를 떠돌았다. 연륙교도 없던 섬에서 김포와 인천과 서울을 두루 다녀 본 사람은 드물었다. 한 바퀴씩 돌고 와 잠시 머무는 곳이 우리 집이었다.
어려서부터 형은 나의 어머니를 고모가 아닌 고모님이라 불렀다. 아버지를 고모부님이라 불렀다. 깍듯하지 않으면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아버지는 형을 싫어했다. 입 하나 느는 걸 못마땅해했다.
말 못하고 운신도 못하는 내 덕분에 형은 한 두 달쯤 집에 머물 수 있었다. 나는 형의 등에 업혀 개울에 나갔고 버들강아지를 따 먹었다. 그러다 글을 배웠다.
애당초 학교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형제도 부모도 학교 선생들도 그랬다. 학교까지 왕복 20리였다. 휠체어를 탄 것은 서울에 와서였다. 학교까지의 거리도 거리였지만, 세상은 내가 글을 읽고 쓸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나조차 그리 생각할 때 형만은 예외였다.
글쓰기는 간단했다. 대처를 떠돈 형 덕에 나는 글을 깨쳤다. 초등학교에 다니다 만 형이었으나 나를 가르치기엔 충분했다.
형은 둑길 흙 위에다 깍두기공책을 큼지막하게 그렸다. 빈칸에 ㄱ ㄴ ㄷ과 ㅏ ㅑ ㅓ ㅕ 따위를 뒤섞어 넣었다. 버들가지로 짚으며 소리를 조합해 냈다. 나중에는 내가 직접, 그중 움직임이 수월한 왼손으로 버들가지를 잡고, 형이 했던 원리대로 이것저것 번갈아 찍었다. 형은 각! 강! 톡! 소리를 냈다. 찍는 것마다 말이 되었다. 왼손도 움직임이 온전한 건 아니었으나 나는 미친 듯이 찍었다. 퉤! 적! 걈! 형도 미친 듯 소리 질렀다. 새들이 놀라 도망갔다. 해가 지기 전에 나는 스무 개도 넘는 글자를 익혔다. 순서를 거꾸로도 해 봤으니까. 형이 소리를 내면 내가 글자를 찾아 찍었다.
아느냐? 형이 물었다. 동생이 말을 하기 시작했단 것을 말이다! 스무 살도 안 된 소년의 목소리라 할 수 없었다. 형의 음성은 침착했고 서늘했고 어른스러웠다.
알아? 나에게는 형이 안경이었어.
누나가 내 휴대전화 액정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두 번 더 들으면 백 번.
보복하는 누나가 밉지 않다.
나한테 글을 가르쳐 준 게 형이었는데, 그랬다고 아버지는 형을 내쫓았어.
그랬지.
왜 그랬을까?
그러게.
아버지는 걱정이었을까? 말 못하고 운신 못하는 내가 글을 안다는 게? 아무것도 모르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걸 사랑이라 여겼던 걸까?
대처를 떠돈 형은 알고 있었다. 타자기라는 물건. 형은 둑길 위에다 자판을 그렸던 것이다. 정확하게는 아니었지만. 그랬다는 걸,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야 알았다. 중학 2학년 때 경방 크로바 타지기를 샀다.
착하고 말 잘 듣고 일도 잘했는데 결국 형은 떠나곤 했어. 아버지 앞에선 고개도 못 들었어.
고갤 못 든 건 어머니였어.
나도 아버지가 무서웠어. 무지 소심한 사람이었다는 건 돌아가신 다음에야 알았어.
어머니가 맘고생이 심했지.
형 때문에.
형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 때문에.
형이 나타나면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했다. 금방 내칠 수 없었다.
한 삼 일 있다 간다네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형은 그런 말 한 적 없었다.
아버지가 뭐라 하기 전에 어머니가 먼저 형을 홍달구곤 했다. 어머니 맘을 형은 잘 알았다. 어머니의 앞선 지청을 고마워했다. 형이 집을 떠날 때면 아버지의 감시가 심해졌다. 혹시 뭐라도 줘서 보낼까 봐서였다. 형이 동구 밖으로 모습을 감출 때까지 어머니는 대문밖에 오래 오래 붙박여 있었다. 가난하고 소심한 가장이 아버지였다. 모질고 무서웠다.
전쟁 뒤 형이 외할머니와 함께 내쳐졌던, 굴뚝도 없는 움막이 어머니에겐 친정이었다. 길 아랫마을이었다. 아랫마을로 물 길러 가는 큰 누님의 빈 동이 속에 묽은 죽을 숨겨 보냈다. 아버지에게 들킬까 봐 큰 누님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큰 누님도 허기에 시달렸으나 죽에 입을 대는 법 없이 고스란히 외가에 전했다. 어머니는 큰 누님에게 착하다고 착하다고 했다. 몰래 죽을 떠먹고 착하지 않은 딸이 되고 싶었다고 큰 누님은 말했다. 조카를 빈손으로 떠나보내는 어머니 마음을 형이 모를 리 없었다. 형이 떠나고 없는 동구 밖엔, 하늘에 닿을 듯 미루나무만 푸르렀다.
하늘만 봐도 배고팠어.
그랬어.
그래도 진호하고 너는 가끔 쌀밥 먹었어. 아들이라고.
그랬……나?
쌀밥 푸고 난 주걱을 딸들은 서로 차지하려고 싸웠지. 찌꺼기 긁어먹으려고.
두 번 더 들으면 백 번. 쓰려다 그만둔다.
나는 글을 쓸 줄 알게 되었다. 듣고 말하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보기는 해도 듣거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빨리 배웠다. 나는 듣고 보았다. 자음과 모음이 섞인 깍두기공책을 꼭 챙겼다. 더뎠으나 왼손 검지로 힘주어 찍었다. 아홉 살에 학교에 들어갔다. 일기도 썼다. 내가 찍는 대로 성근이 형이 공책에 옮겨 주었다. 형이 떠난 뒤로는 누나들이 해주었다. 나는 글을 쓸 줄 알게 되었다. 글자는 물론 글을 쓸 줄 알게 되었다. 잘 쓸 줄 알게 되었다.
학년 대표로 나가도 되겠는걸.
담임은 나를 1학년 대표로 추천했다. 넷째 누나와 함께 군내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다. 내가 찍었고 누나가 받아썼다. 1등을 했으나 상을 받지 못했다. 한 심사위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내가 쓴 글인지 누나가 쓴 글인지 판명할 수 없다고 했다. 뒤늦게 1등 상이 취소됐다. 나 때문에 대회장이 술렁였다. 내년에 반드시 다시 참가할 것이오. 그때는 경찰이 받아쓰도록 해주시오. 담임이 대들었다. 나는 다음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경찰 앞에서 글짓기 하고 싶지 않았다. 상 받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글은 이미 1등이었으니까요. 담임은 내 머리를 아프도록 쓰다듬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형이 분개했다. 형은 다시 김포와 인천과 서울을 떠돌다 왔다. 더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문제다, 불신 풍조가. 형은 낮게 읊조렸다. 불환인지부기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자고 했다. 형의 어려운 말이 격려가 되었다.
집에 오래 있지 못하고 형은 다시 쫓겨났다. 왕성한 식욕 때문만은 아니었다. 잘난 척하는 게 아버지 눈에 거슬렸다. 그 점을 꼬집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는 자주 인상을 찡그렸다. 불환인지부기지. 이 말이 형의 입에서 튀어나왔을 때 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가당찮아서, 당최 가당찮아서 원…….
형은 말을 잘했다. 학교를 그만두기 전까지 공부도 잘했다. 웅변으로 상을 받았다. 서예 신동이라 불렸다. 열두 살에 마을의 경계비문을 쓰고 면장에게 칭찬받았다.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잘 난 형이었다. 거만할 만큼 표정도 어른스러웠다. 진호형은 그러지 못했다. 또래라 매사에 비교됐다. 나는 사람 축에도 못 들었으니 아버지에겐 진호형이 유일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성근이 형에게 한참 못 미쳤다. 외가가 소멸해버렸어도 처가에 대한 아버지의 자격지심은 끈질겼다.
똥구멍이나 막히던 놈이…….
형을 멸시할 때 아버지가 쓰던 말이었다. 먹을 게 없어 아무 풀이나 뜯어 먹다 항문이 막혔던 적이 있었다. 올챙이처럼 배가 불렀고 시름시름 죽어갔다. 외할머니가 고욤나무 가지로 어린 형의 똥구멍을 파내 살렸다. 그런 놈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냐는 거였다.
나는 형을 좋아했다. 나를 업어주고 글자와 말을 가르쳤다. 형은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모두 나를 야, 얘, 정호야, 라고 불렀다. 형은 점잖았다. 동생이라 불렀다. 동생, 젓가락으로 국수 먹었나? 그런 것 정도는 동생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진호 형도 누나들도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동생이라 불러줘서 나는 동생이 된 것 같았다. 동생이라 부르기 전 나는 동생이 아니었다. 야, 얘, 정호야, 였다. 관계와 유대라는 말도 형에게서 배웠다. 내가 보는 하늘은 두 배로 넓어졌다. 외로웠던 별들이 별자리로 이어졌다. 나도 진작 형을 형이라 부를 것을…….
동생이라 불러서 동생이 되었듯, 노을이라 부르면 노을이 되었다. 없던 노을도 형이 노을이라 말하면 노을이 됐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나는 놀라운 걸 보았다. 형은 요술을 부리듯 내 눈을 손으로 가리고 속삭였다. 동생, 저 앞에 산이 있어. 알지? 그 산 한가운데로 폭포가 흐르게 해줄까? 아니면 거대한 구렁이가 기어오르게 해 줄까? 나는 깍두기공책을 찍었다.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구렁이로 해 줘. 아주 크고 징그러운.
자아, 구렁이! 형이 손을 뗐다. 크고 길고 구불구불하고 징그러운 구렁이가 앞산을 느리게 넘었다. 등 비늘을 번쩍거렸다. 무서워 숨이 막혔다. 형에게 안긴 채 까무러쳤다. 나를 둘러업고 형이 겅둥겅둥 뛰었다. 늑골이 충격받아 숨이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구렁이는 앞산을 넘고 있었다. 형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돈이라고 말해 봐.
어느 날 내가 말했다.
백 원짜리 지폐 백 장이라고 말해 봐.
돈은 왜?
필요하잖아. 그거 한 장이면 오징어 한 마리, 카스테라 다섯 개, 캬라멜 세 봉지, 사이다 두 병을 사고도 남아.
배탈 나겠다.
형도 필요하잖아. 그거 없어서 떠돌잖아. 있으면 좋잖아. 말해봐, 돈이라고.
하하하.
왜 웃어?
내가 필요해서 말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반응이야. 거울 같은 거. 세상의 이치는 아무거나 비추지 않아. 진심만을 비춰.
진심으로 말해 봐.
진심을 말한대도 진심이 아닐 때는 이루어지지 않아.
내가 내 진심을 모를 수 있다는 거야?
역시 내 동생! 돈이라고 말해도 똥을 비출 수 있어. 나 지금 똥 마려우니까.
노을은? 구렁이는?
진심이었던 거지. 무심코 말하는 게 진심일 때가 있어. 그래서 실언이 진심이 되기도 하는 거야. 말은 한숨 같은 거지. 한숨이 말이고.
엉터리, 라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형의 말이 엉터리가 아니라면 엉터리라 말해도 엉터리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형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는 깊어졌다. 그게 소중해서 나는 형의 말을 믿었다. 형도 나를 믿은 까닭이었다. 아버지에겐 가당찮은 일이었겠지만. 가당찮다고 말할수록 가당찮아지는 것은 형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생각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말한 것을 생각하는 거야.
언젠가 형이 말했다.
닭이 먼저가 아니고 달걀이 먼저일 수 있는 것처럼?
너는 멋진 동생이야.
멋진 건 형이었다.
누나의 통화가 5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차는 시속 40킬로미터를 넘지 못한다. 핸들을 잡은 누나의 왼손이 든든하다. 누나도 왼손잡이다.
웬일이라니 그래? 나는 이왕 나선 길이니 뭐, 하여튼, 갈게. 오늘 못 치르면 상 차린 건 다 어떡한다니? 누가 다 먹어.
폴더가 탁 소리를 내며 닫힌다. 누나가 혀를 찬다.
이천 형수?
응.
왜?
목격자가 나타났대.
하필 오늘?
경찰이 만나러 갔대. 제사 못 지낼지도 몰라.
형수도 가나?
안 간대. 상 치를 준비 다 해 놓은 사람이 가겠어?
가끔 목격자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형의 행불사건은 화제가 되었다. 말 못하고 운신도 못하는 폐암 말기 환자의 증발이었다. 유에프오가 데려갔다는 주장이 가장 그럴듯했다. 목격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신문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도 파다했었다. 인터넷에는 아직 형의 모습이 떠 있다. 진지한 말을 툭 던질 것 같은, 근심을 감춘 엄숙한 표정. 그러나 그저 그런 평범한 얼굴.
경찰은 단순 행불사건으로 분류하고 매뉴얼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진척이 없자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건물 진동과 공기 흐름의 관계를 연구하는 건축학자가 병원 창문 수와 모양을 분석했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기류에 휩쓸린 환자가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는 상상을 했다. 측정범위 0.01마이크로미터 미세먼지측정기를 출시한 회사에서는 병실과 병상에 남겼을 형의 흔적을 찾았다. 형이 그 병실에 입원해 있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디엔에이 분석 결과였다. 병원의 폐회로 티브이 담당자도 형수만큼이나 시달렸다. 사건이 코미디처럼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던 병원과 경찰은 가족의 동의를 얻어 한시적으로 병실을 폐쇄했다. 무성해진 건 유에프오 관련 소문이었다. 시공간을 임의로 통제하여 존재의 여부를 조작하는 기술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따금 형이 턱을 떤 건 환자의 무의식이 아니랬다. 이를 부딪쳐 외계와 교신한 거랬다.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라진다, 라고 말하는 형을 떠올릴 뿐이다. 말이 끝나는 순간 ‘사라지는’ 형의 모습을. 형과 형의 말을 믿는 한 그것은 간단하다. 나도 형처럼, 생각을 말하지 않으려는 걸까. 말을 생각하려는 걸까. 이 처지로 이 나이까지 살아온 걸 보면…….
그러다 죽으면 어떡해?
군에 가서 폭발물처리반이 되겠다고 했을 때 내가 물었다. 형은 어언 스무 살이었다.
난 죽지 않아.
죽지 않는다구?
늙어 죽게 되더라도, 난 그냥 사라질 거라구.
그때는 맥아더 원수만 떠올렸었다.
그걸 누가 다 먹어…….
누나는 여전히 남을 음식 걱정이다.
누가 주부 아니랄까 봐.
길이 조금씩 트인다.
음식 남으면 근심이지.
근심이 남은 음식.
해가 지나도 형은 정처가 없었다. 대처를 돌았으나 빈손이었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고 어머니에게 단속당했고 내가 치는 글을 옮겨 적다가 쫓겨나다시피 집을 떠났다. 멋진 형이 아니었다.
어느 곳에도 발을 붙이지 못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고아였다. 정점도 없는 내리막길이었다. 말만 앞세운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형을 구박했다. 말만 앞세우는 건 아니었다. 형의 말은 바람이 되고 비행기가 되고 푸른 딸기를 빨갛게 물들였다.
내가 몇 살 더 나이를 먹어서였을까. 형의 인생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부초 같아 안쓰러웠다.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그런데도 형은 펴지 못한 채 잎마름병으로 시드는 신갈나무 이파리 같았다.
형은 자원하여 입대했다. 스무 살이 되기만 기다렸던 걸까. 군대가 형의 정처였다. 폭발물처리반은 되지 못했다. 박박 기는 일빵빵이란다. 자조 섞인 형의 말이 처음으로 싫었다. 첫 휴가 때 나를 위해 열차에서 샀다는 소설은 값도 수준도 형편없이 낮았다. 형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형도 꼬박꼬박 답장했다. 지금도 형의 부대이름과 군번을 왼다. 육군 제3355부대 7중대 3소대. 군번 11983384. 계급은 철 따라 바뀌었다.
병장이 되어도 형은 제대하지 않았다. 군대를 영구적인 정처로 삼을 모양이었다. 말뚝 박았댄다, 공병으로. 어머니가 말했다. 돌아갈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아버지는 휴가 온 형에게 눈총을 주지 않았다.
형의 계급은 중사에서 더 오르지 않았다. 상사 진급 신원조회 부적격자였다. 휴가 나온 어느 겨울, 형은 나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가 숭어 새끼를 잡았다. 고향에서 동어라고 불리는 그것을, 배도 따지 않고 초장에 찍어 먹었다. 먹기 전에 형은 바닷가에 소주를 뿌렸다. 빤히 바라다보이는 이북 땅을 향해 절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한마디 하고 형은 남은 소주를 쭉 들이켰다. 그리고 제대를 했다.
군에서 사귀었던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내 가족이 고향을 떠나 서울 변두리에 전세를 얻어 살 때였다. 형은 공사판에서 목수 일을 하며 우리 집을 예전처럼 드나들었다. 경방 크로바 타자기가 있어서 더는 형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여자아이 둘을 낳고 형은 형수와 헤어졌다. 바닥을 박박 기는 일빵빵 주특기를 버리지 못했던 걸까. 애들을 어머니에게 던지듯 맡기고 사라졌다. 집에선 난리가 났다.
두 아이를 보육원에 맡겼다.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철 따라 옷가지를 사다 주었다. 직접 가지 않고 큰 누님을 시켰다. 큰 누님은 또 다리가 후들거렸다.
두 애가 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형의 소식이 바람에 실려 왔다. 형수와 재결합했다는 거였다.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 청천벽력이었다. 그새 아이를 셋이나 더 낳았다고 했다. 무슨 놈의 씨알머리가……. 어머니는 분통을 터뜨렸다. 주책을 질질 흘리고 다니나 그래. 남사스러워서…….
두 아이는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
큰 아이는 졸업하고 피아노 대리점에 취직했다.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 보조교사가 되었다. 두 아이가 첫 월급을 타 부모를 상봉하러 갈 때까지 형 부부는 애들을 찾지 않았다.
멀쩡한 게 하는 짓이라곤…….
형을 두고 아버지가 하던 말이었다. 멀쩡하지 않다는 말을 아버지는 멀쩡하다고 했다. 말뜻 그대로 형을 멀쩡하게 본 건 나뿐이었다. 그러나 애 둘을 보육원에 맡긴 채 애 셋을 더 낳은 형이 나에게도 멀쩡하지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래?
휴대전화를 귀에 댄 누나의 목소리가 비틀어진다. 얼마간 통화가 이어진다. 누나는 듣기만 하다가
알았어.
폴더를 닫는다. 이천시입니다, 라는 표지판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아니래?
내가 묻는다.
아니래애.
대답 끝이 흥, 웃음이 된다.
남을 음식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자꾸 깐죽거릴래?
엉뚱한 사람이 또 형으로 오인된 거라고, 형수가 말했겠지. 금방 판명이 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인터넷에서 형 사진을 뒤늦게 본 사람들이 경찰에 전화했다. 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허탕이었다. 떡 방앗간 주인아저씨, 폐휴지 줍는 노인, 양말 행상인들이었다. 상가 건물 여섯 채를 소유한 지역 갑부가 신고되기도 했다. 최근의 신고자들은 대개, 방에 틀어박혔다가 며칠에 한 번 바깥바람 쐬는 인터넷 폐인들이었다. 그들은 자기 집 번지수도, 주변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 어디가 비슷하니, 어디가, 응? 신고된 인물에게 사진을 들이대며 경찰이 물었다. 유에프오가 데려간 게 맞는 것 같아요……. 신고자는 머리를 긁다가 경찰에 대들었다. 신고한 게 죄에요? 대동했던 형수가 간간이 전해오던 내용이었다.
한 번은 형을 만날 뻔했다. 신고한 사람은 젊은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육십 대 초반의 야윈 남자가 보증금 5백에 월세 20만 원짜리 원룸을 찾았다. 행불사건을 익히 알고 있던 중개업자였다. 사진과 똑같았으나 공연한 실례가 될 것 같아 묻지 못했다. 묻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남자가 계약금 50만 원을 내밀었던 것이다. 계약서에 주소 주민등록번호 이름을 적어나갔다.
나이도 같았다. 결정적으로, 이름이 같았다. 강성근. 형수는 경찰과 함께 잔돈 치르러 올 형을 기다렸다. 계약서에 적힌 주민등록번호는 한 자리도 틀리지 않았다.
중개업소에서 세 사람이 떨고 있었다. 단순가출한 사람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임종을 눈앞에 둔 의식불명 자였다. 불가사의한 증발이었다. 만나더라도 귀신일 것 같았다. 약속한 시각이 다가왔고 상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개업자가 미친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누구도 중개업자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후로도 젊은 중개업자는 한 치도 이상한 점을 보이지 않았다. 형은 그런 식으로 왔다갔다. 형에게서 받은 거라며 중개업자는 5만 원권 열 장을 형수에게 건넸다. 무서워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걸로 상을 차리는 거니 오죽 많이 차렸겠니. 못 치르면 어쩔 뻔했어?
누나는 여전히 음식 걱정이다.
제발, 누나.
나, 뭐?
죽은 사람이 와서 먹어주는 거 아니거든. 제사 지내나 못 지내나 같아. 어차피 산 사람들이 먹는 거니까. 걱정도 팔자.
니 말 들으니 그렇다.
바보.
나 원래 투미하잖아. 서른 살까지 세상이 뿌연 줄만 알았어.
오늘은 2011년 11월 27일. 춥진 않지만 세상이 뿌옇다.
형이 가당찮게 보였던 적이 있었다. 형의 아들이 죽었을 때였다.
박살 났어.
내게 조카였던 그 아이는 고등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다 마주 오는 트럭에 부딪혔고 즉사했다. 박살 났겠지만, 박살 났다고 말하는 형이 싫었다. 참척을 당하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 위로하고 싶은 맘이 싹 가셨다.
아들의 영정 앞에 쭈그려 앉은 형은, 멀쩡했다. 아버지가 말하던 그대로였다. 누가 뭐래도 표정없이 말갛던 얼굴. 어머니의 지청에도 하늘 한 번 스윽 흘겨보고 아무렇지 않게 잠잠해지던 낯. 그 무엇도 상관하지 않고 끝 간 데 없는 곳을 응시하던 눈빛. 폭풍우가 쳐도, 그러거나 말거나 맹하게만 서 있던 동구 밖 장승이었다. 청대 같은 자식이 죽었는데 처연하기만 할 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박살 났어, 라니. 형은 가당찮고 비겁했다.
언제 가도 인생 한 번 가는 건데 뭐.
아비가 할 말이 아니었다. 가족과 조문객은 말을 잃었다. 위로의 말을 형이 먼저 가로챘다.
다 그런 거지……. 생각하면 뭣해. 있던 게 없어지는 건, 없던 게 태어나는 이치와 같아. 잊어야지.
예전처럼 말했으나 멋져 보이지 않았다. 초연하지도 의젓하지도 않았다. 몽롱한 눈빛에는 사기꾼 기운마저 비쳤다. 나는 나에게 우겼다. 온 힘을 다해 형은 아픔을 참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우기지 않고는, 형을 후려칠 것 같았다. 다행히 내 팔은 언제나 말을 듣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형의 모습을 주시했다. 안 보는 곳에서 오열하는 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형은 영정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육개장을 먹었다. 새벽이면 남들처럼 새우잠을 잤고, 오줌이 마려우면 비칠비칠 화장실에 다녀왔다. 다녀오는 복도에서 트림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형을 외면했다. 장례 때도, 장례가 끝났을 때도 형은 변함이 없었다. 형수라는 사람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왕래가 없던 친척들을 한꺼번에 봐서 그런지 걸핏하면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는 주방 끄트머리에서 형 부부를 노려보았다. 어머니가 꾸역꾸역 삼켰을 말을 나는 알았다. 씨알머리들……. 형은 가끔 형수의 등을 토닥이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궁금하지 않았다. 세상을 말로만 어물쩍 건너려는, 사기꾼의 심사일 게 분명했다.
거의 다 왔다고 해.
두꺼운 안경을 꼈지만, 누나의 운전 실력은 언제나 믿을 만하다.
거의 다 왔어요.
형수에게 문자를 보내고 폴더를 닫는다.
보내라니까.
다시 폴더를 연다.
보냈어.
손이 더 빨라진 것 같네.
그럴 리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자음에서 모음으로 가는 데 남들보다 세 배쯤 시간이 더 걸린다. 또박또박 누르지도 못한다. 손가락 끝이 흔들려 스마트폰을 쓰지 못한다.
네가 할 수 있는 것 중 그래도 문자 치는 게 가장 빨라.
그러긴 해.
깍두기공책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나는 모든 말을 두드렸다. 고교 2학년 때 경방 크로바 타자기를 버렸다. 소음 때문에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새로 산 르모 투 워드프로세서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스물다섯에 대만산 중고 노트북을 샀다. 멀어서 보이지 않는 사람과도 인터넷으로 연락했다. 문자 전송이 가능한 휴대전화가 나왔을 때 나는 국내에서 열세 번째 구매자가 되었다. 공원에서도 전철 안에서도 나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누르는 대로 말이 되는 기기가 신의 선물 같았다. ㄱ을 누르면 ㄱ이 뜨고 ㅏ를 누르면 ㅏ가 떴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이 나에겐 놀랍고 놀라웠다. 모든 말이 문자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믿기지 않았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숱한 말들을 스물여섯 개의 버튼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게 거짓말 같았다. 열 개로도 충분해요. 휴대전화 판매원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사기 당하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손이 느리긴 해도 어떨 땐 혀보다 빨랐다. 상대가 없어도 끝없이 혼자 말했다. 두드리지 않으면 진짜 벙어리가 될 것 같았다.
타자기 이후로 대필자가 필요 없었다.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이 취소되는 일도 없었다. 나는 자주 상을 탔다. 휠체어에 탄 채 타자기를 들고 나타난 나를 곤혹스러워했지만, 백일장 주최 측은 나를 물리치지 못했다. 문예장학생으로 대학에 갈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의 말을 나도 믿었다. 수없이 대상을 받았고, 문교부장관상과 국회의장상을 각각 두 차례 탔다. 대학엔 가지 못했다. 모든 특기자전형 면접에서 떨어졌다. 결과에 놀란 건 아니었다. 말 못하고 스스로 휠체어조차 작동하지 못하는 뇌병변장애 1급이었다. 놀랐던 건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다.
다 그런 거지…….
습관처럼 손가락이 움직였고, 문자가 되어 내 눈을 찔렀다. 형이 중얼거리던, 비겁한 말이었다.
그 뒤로 그런 말은 생각하지도 적지도 않았다. 체념을 정당화하는 자기암시. 해악이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요즘도 글 많이 써?
형의 집 석면 슬레이트 지붕이 보인다.
지금도 쓰고 있잖아.
주변은 예전처럼 밭이다. 누나가 속도를 줄인다.
그런 것 말고.
따로 없어.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거, 나에겐 구별 안 돼. 눈만 뜨면 쓰잖아.
숨 쉬듯 쓰는 거구나.
숨 쉬듯 누나가 말하는 것처럼.
숨이나 말이나 글이나 같은 건가?
그게 다지. 그거 말고 뭐 있을까?
그게 달까?
삐딱하게 먼 데를 응시하는 형. 스냅 사진을 확대한 영정의 화소가 모래처럼 거칠다. 생전의 느낌을 자아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삐딱한 저 모습이 한때는 멋졌었지. 어째서 늘 먼 곳이었을까가 지금은 더 궁금하다. 삐딱한 것은 먼 곳을 바라봐서이기 때문일 테니까. 사람도 카메라도 형은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눈을 마주쳤다 싶으면 어느새 싱거운 미소의 흔적만 냄새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형수도 형의 자식들도 제사라는 걸 지낼 줄 모른다. 내가 아는 법식에 따라 진설의 위치를 바꾸고 형의 막내아들로 하여금 초헌을 올리게 한다. 축문은 생략한다. 문자는 소리를 낼 줄 모른다. 순서가 바뀔 때마다 상주가 내 휴대전화 액정에 코를 박고 지시를 따른다. 안경 끼고 제사 지내는 거 아니라고 해서요……. 상주가 멋쩍게 웃는다. 이 집 식구들은 저 속없는 웃음이 병이다. 누가 그러디? 누나가 상주를 흘긴다. 초헌과 재배를 끝내고서야 지방문이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친다. 첨잔은 내가 하기로 한다. 형의 세 딸과 손주들은 곡도 절도 안 한다.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부스럭거릴 뿐이다.
까이꺼 뭐…….
그 말을 할 때도 형은 먼 데만 바라봤다. 혼전 임신한 둘째 딸의 결혼을 서두를 때 형은 그 말밖에 안 했다. 둘째 딸은 스무 살이었다. 남편에게 날마다 얻어터지고, 스물둘에 애와 함께 친정으로 영영 쫓겨 왔을 때도 까이꺼 뭐…… 라고만 했다. 지 애비가 급물살 거스르며 똥 빠지게 노 저을 때 똑 저렇게 시부렁거리더니……. 어머니가 말했다. 세상에 별걸 다 닮아……. 어머니가 살아 이 광경을 본다면 또 뭐라 말할까. 아버지라면 가당찮다고 할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둘째 딸도 어느새 사십에 가까웠는가. 눈가에 주름이 늘었다. 둘째만 보면 아직도 까이꺼 뭐…… 형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어머니의 말 때문이었는지, 그 소리를 노 저을 때 나는 소리로 한동안 착각했다. 글자로 찍을 수 없을 것 같은 소리. 그러나 못 찍을 것도 없을 것 같은 소리. 물살을 가르고 강 건너는 소리. 까이꺼 뭐…….
유시가 되니 절로 술 생각이라.
형이 말했다. 말한다.
초우제를 마치니 어둡다. 종일 흐리더니 어둠도 빠르다. 아, 나가수! 밭 가장자리에 나를 놔두고 몇 번째 손주인지 모를 놈이 외치며 집으로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혼자다. 춥진 않다.
저녁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를 유시라 하거든. 왜 그런지 알아?
형이 물었다. 묻는다.
밭 너머 마을의 불빛이 띄엄띄엄 밝아진다. 집 쪽에서 인순이 노래가 들린다.
이유가 있겠……지.
존대할까, 망설이다 말은 놓는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유.
그래서?
유는 술병 모양이야. 삼수변 붙으면 술 주.
한자라면……형이 좀 알았지.
초등학교 때 썼다던 마을 경계비도 한자였다.
공연히 유시가 아니라는 말이지. 술 먹기 딱 좋은 시간이야.
술, 아까 막내가 줬는데 안 마셨어? 나도 반 잔 올렸잖아.
소주가 좋아. 정종이 술이니?
아버지 소주 훔쳐 먹다 들켰었지. 된통 혼났지.
모두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모양이다. 노래만 들릴 뿐 식구들은 조용하다.
나 고모부님 원망 안 해.
그럭저럭 형은 아버지를 견디는 방법을 알았던 것 같으니까.
견딜 것도 없었어.
만날 혼나고 쫓겨났잖아.
고모부님의 언어를 이해했으니까.
언어……. 형의 자리는 여전히 멋스러움과 가당찮음의 경계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모질고 무서웠을 뿐이잖아.
하지만 동생도 알잖니.
뭘?
가난하고 소심했을 뿐이야, 고모부님은.
아버지의 언어라는 게…… 그거라구?
그게 다지.
그나저나 형은 어떻게 된 거야?
형의 집에서도 밭 건너 불빛에서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한 방송을 보는 모양이다. 노래는 어둠과 함께 궁륭을 이룬다.
없어진 거?
산 거야 죽은 거야?
사라진 거야. 그런다고 했잖아.
그런다고 하면 그렇게 돼?
워딩은 그런 거야.
워…….
되묻지 않는다. 한자가 아닌 외래어일 때는 조심해야 한다. 되물으면 숨이 턱에 찬 사람처럼 형의 얼굴이 붉어진다. 붉어졌다. 초등학교 중퇴. 잘못된 거긴 하지만 영어는 영원히 요원하다는 게 형의 믿음이었다. 그러면서도 불쑥불쑥 썼다. 태스크포스, 론칭, 로망, 레시피, 컨셉. 자기도 모르게 썼다가, 썼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뒤늦게 얼굴을 붉혔다. 워딩……. 정확히 어떤 뜻으로 쓴 건지 모르겠다.
진심을 실어 말한다면?
응. 세상의 이치가 진심으로 받아 반응할 수 있는 진심이라면.
그걸 한숨처럼 실언처럼 내뱉는 걸 워딩이라는 걸까. 까이꺼 뭐, 같은 것? 묻지 않는다.
형은 지금 어떤 상태야? 귀신? 영혼 아니면 유령?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니? 그냥 이 상태. 동생이랑 말하고 있는.
노랫소리 들려?
형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들려.
어때?
좋아. 그런데 동생은 왜 여기 혼자 이러고 있어?
걸핏하면 혼자인 걸 뭐. 평생 그러겠지. 이유 따위 있을 리 있겠어?
쓸쓸하잖아.
다 그런 거지…….
내 말에, 형이 나보다 먼저 웃는다. 외래어를 쓰고 얼굴을 붉히던 형처럼 나는 뒤늦게야 형이 웃는 이유를 알고 크게 따라 웃는다. 다 그런 거지……. 내 것이 돼 있었다니. 웃음과 활력이 되다니.
워딩이라는 말의 뜻을 찾는 대신 그냥 내 안 어디에다 담아 두기로 한다.
형이 하는 말의 뜻은 자주 사전과 달랐다. 따지고 보면, 같고 다르고는 영혼과 유령만큼의 차이일 뿐이다. 생각이 되는 말, 현실을 움직이는 말은 언제나 새롭게 쓰이기만 할 뿐 사전 속에 머물 리 없다. 그런, 말밖에 없다. 아무려나 삶의 중압과 죽음의 공포마저 개의치 않고 건너게 할 것은.
밤은 춥지 않고, 불빛은 아스라이 따뜻하고, 노래는 동생과 나를 궁륭으로 감싸고, 시각은 유시라. 정말 한 잔 안 할 수 없어……. 형은 밭길을 더듬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슈퍼까지는 10분쯤 걸릴 것이다.
나에겐 말과 글이 따로일 수 없다. 허공 중에 흩어지되 무시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거듭 뜻을 일깨우는 게 형의 말이라면, 내 말은 언제든 다시 들춰 볼 수 있는 글이 된다. 그렇게 지금껏 적은 글이 6,430개의 파일로 남았다.
말의 궤적이었다. 지나온 자국으로서의 궤적이 아니라, 내 삶이 나아가고자 했던 이정표로서의 궤적. 형이 그랬고 아버지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랬고 누나가 그랬고 내가 그랬다. 말이 생각을 앞질러 갔다.
오늘 이야기를 글로 적는다면 6,431개째 파일이 될 것이다. 파일명은 워딩으로 할까.
저기 밭 끝에서 형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도 소주병의 푸른빛이 선명하다. 나는 말-한-다.
이건 꿈도 환각도 아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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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죽음은 결코 죽음이 아닌.
그해답같아요.
대화가 감각적이에요. 아주 간결한.
아침에 '성근'이라는 이름을 쓰는 남자의 전화를 받았는데. -정성근-
글 속에도 '성근'이라는 이름이 나오는군요.
깍두기공책. 저는 그렇게 부를 줄 몰랐습니다. 맨날 국어공책이라고 했으니까.^^
글이 줄줄줄 읽혀졌습니다.
재밌게, 맛스럽게 선생님 특유의 향기를 맡으며 잘 읽었습니다.
창가에 봄빛이 가득합니다.^*^
막내딸 친구의 엄마이름은 성기.
선생님 글은 읽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할 정도로 혼을 빼앗아가는 거 같아요.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죠. 사람은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우린 영원히 살아요. 사랑하는 이의 기억 속에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희망 속에!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봄날은 좋으네요! sotkfkd님!
앗, sotkfkt님이시당!!
궁굼했더랬어요. 넘 안 보여서리.
내내 궁굼함서도 쪽지 하나 보낼 생각도 몬하고.
주변머리가 없어요, 제가 좀.
오 내사랑님, 반가워요! 자주 들어오세요 네!!!
워딩.
사람들은 이 말을 자주, 또는 많이 쓸까???
소설을 쓰는 사람은 모든 것에 모두에게 촉의 안테나가 작동되는 숙명을 안고 사는가, 싶기도 하고.
고백컨데 샘의 작품들을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제목에서는 묘하게도 작가의 심중을 엿보게 되네요.?
「허공 중에 흩어지되 무시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이건 환각도 꿈도 아닌 현실이다.」로 끝나는 마지막 문장.
한 번만 읽고 탁 접어지지가 않습니다.
암튼..시방 뭔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끙..!ㅠ
워드를 친다?
타이프만 있을 때는 라이팅이라고 했었나? 타이프 잘 치는 사람에게 가서 회사 문서 작성을 해달라 하고 돈을 주었어요. 남대문 특허청근처 담배가게만큼 작은 가게를 했던 타이프라이터. 여자였어요.
말의 궤적 6341 워딩...근데 6341은 어디에 근거해서 나온 숫자일까??......감사히 잘읽었습니다~!^^
5랑2가 빠졌어요. ^^
워딩! 어렵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대학 서클 동기생 이름이 성근입니다. 맑은 사람이지만 세상과의 소통이 조금 어려운 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본인은 잘못이 없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겠지요.
아는 분이 딸은 꼭 공무원과 결혼하기를 바랐는데요. 그곳에 관련한 공무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