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하다. - <미암일기>에 기록된 허준의 행적.
허준의 젊은 시절 모습이
1568년 1월 29일부터 1574년 5월 18일까지 <미암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허준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활동했었을까?
○ 1568년(무진-선조 즉위년) 1월 29일,
곧 서문으로 나와 사직동으로 가서
새 해남(海南) 군수 이사영(李士英)을 찾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허준도 왔다가 갔다.
○ 1568년(무진-선조 즉위년) 2월 20일
허준이 와서 인사를 했다.
○ 1568년(무진-선조 즉위년) 2월 22일
허준이 『노자(老子)』, 『문칙(文則』,
『조화론(造花論)』의 세 책을 보내왔다.
아주 고맙고 또 기쁘다.
○ 1568년(무진-선조 즉위년) 4월 7일
허준이 왔다가 갔다.
○ 1568년(무진-선조 즉위년) 4월 20일
허준이
『좌전(左傳』 10책과 당본(唐本) 『모씨시(毛氏詩』를
보내왔다.
○ 1568년(무진-선조 즉위년) 6월 24일
허준이 와서 인사를 하므로 부채를 줬다.
○ 1568년(무진-선조 즉위년) 7월 17일.
김흥조가 찾아 와기에 부채를 줬다.
허준도 왔다가 갔다.
낮에 소나기가 한번 왔다.
○ 1569년(기사-선조 2) 6월 6일.
허준을 초청하여
나(羅士愃)형의 병을 가 봐 달라고 했더니 와서 하는 말이
“기(氣)가 허(虛)해서 중풍이 된 것인데
아직 치료가 가능하고
강활산(羌活散)이 가장 묘합니다.” 하였다.
○ 1569년(기사-선조 2) 6월 23일.
내가 이진탕(二陳湯) 3첩을 먹었더니 날로 그 효과를 본다.
노(老)의녀 사랑비가 와서
부인의 백희열에 침을 놓아 피를 뺐다.
부인이 설종을 얻어 여의를 불렀다.
허준이 부름을 받고 와
(부인의) 설종병을 논의하고 갔다.
○ 1569년(기사-선조 2) 6월 29일.
내가 어제부터 얼굴의 좌측에 종기가 생겨
허준의 말을 듣고 지렁이의 즙을 발랐다.
○ 1569년(기사-선조 2) 윤6월 3일.
허준을 위하여
이판(吏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의원으로 천거를 해준 것이다.
○ 1569년(기사-선조 2) 7월 2일.
허준이 와서 말하기를
"신흔(申昕)의 병이
비록 중(重)하지만 치료 될 수 있다."고 했다.
○ 1569년(기사-선조 2) 7월 2일.
허준이 와서 인사를 하기에
송사재(宋四宰) 순(純)의 병을 가보게 했다.
○ 1569년(기사-선조 2) 7월 15일.
허준이 와서
나덕명(羅德明)의 약재를 이야기하고 갔다.
○ 1569년(기사-선조 2) 9월 9일.
어제 저녁에 이경국 최광호가 와서 인사를 하고
허준도 와서
소토사(小兎絲)의 환약 지을 일을 의논했다.
○ 1570년(경오-선조 3) 5월 7일.
아침에 허준이 와서 인사를 하고
부인이 먹을
오수유환(吳茱庾丸)을 상의하고 갔다.
○ 1570년(경오-선조 3) 6월 6일.
허준이 나의 부름을 받고 와서
한경두(韓景斗), 김진(金晋)을 봐주고 갔다.
○ 1570년(경오-선조 3) 6월 30일.
허준이 와서
나중부의 아들 습약인 위령탕(胃笭湯)을 논의하고 갔다.
위령탕의 값 백미(白米) 3두(斗)를
우선 허준에게 보냈다.
○ 1570년(경오-선조 3) 8월 12일.
허준이 왔다가 갔다.
○ 1570년(경오-선조 3) 8월 23일.
우선 사약방(司藥房)으로 들어가
고산리 첨사 이우(高山里 僉使 李遇)를 만나고
또 허준을 불러다가
송군직(宋君直)의 약을 논의했다.
○ 1570년(경오-선조 3) 9월 22일.
허준이
8량의 이황원(二黃元)을 지어 가지고 왔다.
강원(姜源) 계청(季淸)이 술을 가지고 와서
은근하게 마셨는데
허준, 김진(金晉), 한경두(韓景斗)도 참여했다.
○ 1570년(경오-선조 3) 9월 25일.
허준이 강심탕(降心湯) 10첩을 지어 보냈다.
○ 1570년(경오-선조 3) 11월 3일.
허준이 왔다가 갔다.
허준이 준 이황원의 8량 1제(劑)를
부인에게 주어 먹게 했다.
○ 1571년(신미-선조 4) 7월 15일.
(서쪽에서 동으로 28리를 행하여
김제군(金堤郡)에 이르러서 동루에 앉아 있 었을 때)
참례찰방(參禮察訪)이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김요서(金堯敍)가 나의 후하게 준 것을 아주 감사해하고
허준은 2향(香)을 보내왔다.
○ 1571년(신미-선조 4) 11월 2일.
첨지 이린(僉知 李潾),······
내의 첨정 허준, 생원(生員) 허성이 모두 왔다가 갔다.
○ 1571년(신미-선조 4) 11월 7일.
허준이 와서 말하기를
전라도의 약재 우황(牛黃)을
오늘 무사히 내의원에 바쳤다고 한다.
○ 1571년(신미-선조 4) 11월 27일.
집에 돌아오니 허준이 뵈러 와 있었다.
팥 1두를 허준의 어머니에게 보냈다.
○ 1571년(신미-선조 4) 11월 29일.
희춘은 주강(晝講)의 특진관이므로
약방에서 잠시 쉬면서 허준과 만나 보았다.
○ 1572년(임신-선조 5) 12월 6일.
권득경(權得卿)과 허준이 와서
나는 술을 대접해서 보냈다.
○ 1573년(계유-선조 6) 1월 1일.
원일(元日)에 명함을 던지고 간 사람은
신여즙(申汝楫), 양대수(楊大樹),······,
의원 허준,······30명이다.
○ 1573년(계유-선조 6) 3월 8일.
허준이 와서 정(鄭)판서의 편지를 받아갔다.
이는 내의원 제조처에 녹용을 구하는 것이다.
○ 1573년(계유-선조 6) 7월 5일.
아침에 광문(光雯)을 시켜
소병사(蘇兵使) 흡에게 가서 사례를 하게했더니
흡이 녹용을 보내왔다.
때마침 허준이 왔기에 나는
작말(作末)을 해달라고 맡겼다.
○ 1573년(계유-선조 6) 11월 3일.
내의 정(正) 허준과 석수도(石守道)가 와서 인사를 했다.
○ 1574년(갑술-선조 7) 3월 26일.
내의 허준이 와서 인사를 하므로
나는 광룡(光龍)의 병을 보라고 했더니
준이 말하기를
평위원(平胃元)에 맥문동(麥門冬)을 가하고
청폐음(淸肺飮) 등의 약을 써야 한 다기에
이를 명하였다.
○ 1574년(갑술-선조 7) 5월 18일.
어제 허준으로 더불어
청폐음(淸肺飮)의 습갈증(濕渴證)을 논하자
건갈상지탕(乾葛桑枝湯)이 좋다고 하더니
오늘은 상지탕 몇 첩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