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생긴 날
드디어 역사적인 날이 왔다. 큰 딸이 시집을 간단다. 아니, 사위가 장가를 온단다.
작년 봄부터 준비한 결혼식은 코로나 영향으로 1년이 지나서야 치뤄지게 되었다.
제일 먼저 상견례부터 이루어졌다.
신랑 신부는 인천에 있는 한 한정식 식당으로 예약을 잡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사돈댁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탐색전(?)에 들어갔다.
신랑측은 모두 다섯명이 나왔다. 남동생이 먼저 결혼한 신랑은, 벌써 남자 조카만 둘을 두고 있었다.
우리도 쌍둥이 동생들 포함 다섯명이 대학교때 미팅하듯이 5대5로 마주 앉았다.
"먼저 식사부터 하시죠?"
사돈댁에서 시아버지가 먼저 선공을 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우리는 그래도 말빨(?)이 좋은 내가 대표로 나섰다.
침묵의 식사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먼저 정적을 깼다.
"우리는 상견례가 처음이라 인삿말도 인터넷보고 살짝 컨닝했어요."
역시나 시아버지가 응수를 한다.
"사람 사는게 다 똑같나 봅니다. 우리도 그리했어요"
그때서야 상견례장 분위기는 화기애애 해졌다.
1년후 어느 봄날, 기다렸던 결혼식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참석 할 수 없는 지인들로부터 축하메시지가 당도했다.
더불어 축의금 도착을 알리는 경쾌한 소리가 핸드폰에서 울려퍼진다.
코로나를 겪고 난 후, 새로운 풍속이 하나 생겼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지인들을 위해 청첩장이나 부고장에 계좌번호를 명시하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송금을 하고 축하메시지를 보내도 흉이 되지 않았다.
결혼식이 무사히 끝났다. 아들만 둘 있는 사돈댁에선 큰딸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손주들까지 아들인 시아버지는 이번엔 손주딸을 보기를 희망했다.
얼마 후, 시댁에 가족 모임을 다녀 온 큰딸이 말했다.
"아버님이 친지들한테 소개할 때, 나는 큰딸이라고 하고, 동서는 작은딸이라고 소개했어!"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
'내 딸은 시댁에서도 큰사랑을 받고 있구나!'
그리고 생각하고 다짐했다.
나도 사위를 아들처럼 챙기고 사랑해 주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