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하림 출신 조태래(1955년생), 조성래(1959년생), 조병래(1953년생)의 고조부는 3형제였다.
다음 내용은 조성래(星來,1959년생)가 한문으로 되어 있는 족보내용을 후손들이 알기 쉽도록 번역한 것이다. 조성래의 조부(세말할배)에 대한 내용은 부친과 조모님께 들은 것을 기록했다.
지금(2020년)으로부터 약 120년 전, 조선말(朝鮮末)에 조사식(趙司植, 1818-1896, 78세亡, 매동)할아버지가 계셨다. 조사식(매동)할아버지 산소는 함안군 군북면 수곡리(넙실)에 있던 것을 2010년경에 군북면 하림리 욋골로 이장했다.
그 할아버지 밑에 1. 조성주(趙性冑, 1839-1863, 25세亡, 조태래의 고조부), 2. 조성가(趙性家, 1844-1906, 63세亡, 조성래의 고조부), 3. 조성곤(趙性坤, 1849-1917, 69세亡, 조병래의 고조부) 등 나이가 5살씩 차이 나는 3형제가 있었다. 맞이는 24살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와 셋째는 각각 63세, 69세까지 살았다.
1. 조성주(趙性冑, 1839-1863, 25세亡, 조태래, 삼래, 조상래, 조춘래, 조율래, 함래의 고조)할아버지 밑에 조종규(趙鍾奎, 1878-1959, 82세亡, 도무실)할아버지가 계셨고, 도무실할아버지 밑에
1) 청동할아버지(조용수鏞壽, 1901년생, 조찬제, 희제, 일제, 욱제, 경제의 부친)와
2) 서욱할아버지(조용삼鏞三, 1909년생, 조태제의 부친, 조영미, 조율래, 봉혜, 함래의 조부),
3) 기산할아버지(조용정鏞正, 1917년생, 조근제의 부친),
4) 일본할아버지(조용태鏞泰, 1922년생, 일본으로 건너감. 자 1. 조동제東濟 1950년생 2. 조중제仲濟 1954년생, 일본에서 의사를 함)
5) 조동할아버지(조용성鏞晟, 1925년생, 조은제, 해제의 부친) 등 5남4녀가 있었다. 위의 차남과 3남 사이에 1녀와 2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장남 집은 장남 조성주님이 1863년에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또 그 다음 대인 조종규(도무실)할아버지 대에서 도무실할머니가 31세의 나이에 태어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조용삼,서욱할배)를 남겨두고 돌아감으로써 가세는 점점 기울어갔다.
2. 조성가(趙性家, 1844-1906, 63세亡, 조철래, 조성래, 정래, 상래의 고조)할아버지 밑에 조대규(趙大奎,1871-1921, 51세亡, 봉도)할아버지가 계셨고, 조대규할아버지 밑에
1) 조용태(趙鏞泰, 1893-1913, 21세亡, 모라 조철래의 조부, 부인의 택호는 매실댁)와
2) 조용기(趙鏞奇, 1907-1943, 37세亡, 세말할배, 부산 구서동 조성래의 조부), 두 형제 할아버지가 계셨다.
또 조용태할아버지 밑에 조창제(趙昌濟, 1911-1964, 54세亡, 정수)아제가 계셨고, 조창제아제 밑에 조철래(1956년생)가 있다.
조용기(1907-1943, 37세亡, 세말)할아버지 밑에 조임제(1932-2003, 73세亡, 정산)아제가 계셨고, 조임제아제 밑에 조덕래(1955년생,여), 조성래(1959년생), 조덕희(1961년생), 조정래(1963년생), 조상래(1966년생), 조선희(1969년생)가 있다.
조성래(1959년생) 고조부 대의 3형제 중 차남 조성가(趙性家) 집의 문제는 조대규(51세亡) 대와 조용태(21세亡), 조용기(37세亡) 대 이 2대에 걸쳐서 집안 남자가 다 단명한 것이었다. 조대규(봉도)할아버지(조철래, 조성래의 증조부)의 큰 아들 조용태(조철래의 조부)님은 결혼한 지 3년 만에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 다음 해에는 조대규님의 부인이 4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 이후 7년 뒤인 1921년에 조대규(봉도)할아버지(조철래, 조성래의 증조부)마저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때 조용기(세말)할아버지(1907년생, 조성래, 정래, 상래의 조부)는 15살이었다. 즉 조용기 할아버지는 7살에 21살인 형을 잃었고, 8살에 46세인 어머니를 잃었으며, 15살에 51세인 아버지를 잃었다. 조용기(세말)할아버지는 8살 이후에는 형수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자랐다. 그 때 조용기(세말)할아버지의 형수 해주정씨(1890년생, 조철래의 할머니)는 32세였다. 형수와 시동생의 나이 차이가 17살이나 났다. 어머니뻘 되는 나이(그 당시에는 조혼早婚을 했기 때문에 17세가 되면 충분히 첫 아이를 낳았다. 이 형수의 아들 조창제와 시동생은 4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의 형수는 시동생이 16살 되던 해인 1922년에 결혼시킨 뒤 분가해주지 않고, 시동생과 동서인 세말댁, 그리고 동서가 시집오면서 데리고 온 몸종을 밤낮 없이 독하게 부려먹었다. 시동생은 결혼한 지 15년이 넘었는데도 끝까지 분가시켜주지 않는 형수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 부인을 하림 집에 남겨두고, 혼자 부산(문현동)으로 내려가 처가의 도움을 받아서 담배인삼공사 전매사업을 하였다. 약 3년을 잘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밤에 강도 2명이 권총을 들이대며 들어와 몇 일간 수금해 둔 돈과 담배, 인삼 등을 몽땅 다 털어갔다. 그 이후 겁도 나고, 부산에 있기가 싫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전국을 떠돌다가 1943년 추석날 37세의 나이로 전남 여수에서 열차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조용기의 부인(세말댁, 1907년생)은 남편의 2살 아래 6촌 동생인 서욱(조용삼)할아버지와 함께 여수로 가서 장대비를 맞으며, 유골함을 안고 하림으로 돌아왔다. 조용기(세말)할아버지의 처가는 그 당시 진주에서 인삼당한의원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진주시 장대동에서 그 손자(이동렬)가 3대째 인삼당한의원을 하고 있다. 조용기의 장인은 그 당시 진주 지역 최고의 학자라고 할 수 있는 동암(東庵) 이현욱(李鉉郁, 1879-1948, 70세亡)선생이다. 이현욱을 인터넷검색해보면 수많은 글이 올라와 있다. 그래서 처가의 도움으로 담배인삼공사 전매사업을 할 수 있었다. 조성래(1959년생)의 조부(祖父) 조용기님이 37세로 돌아갔을 때 조성래의 부친 조임제(1932년생,정산아제)님은 12세였고, 조철래의 부친 조창제(1911년생, 정수아제)님은 33세였고, 조철래의 조모님은 54세였다.
3. 조성곤(趙性坤, 1849-1917, 조병래, 욱래, 조증래, 일래, 중래, 조경래, 상래, 재만, 조상균, 남준, 동준의 고조)할아버지 밑에
1) 조정규(趙廷奎, 1882-1950, 신산)할아버지와
2) 조동규(東奎, 1888-1908)할아버지 두 형제분이 계셨다.
조정규(趙廷奎, 1882-1950, 신산)할아버지 밑에
1) 조용식(鏞式, 1882-1950, 시옷할아버지, 자 1. 조영제, 2. 조웅제, 3. 조승제, 4. 조백제, 5. 조선제, 6. 조함제, 7. 조경제, 8. (사위) 허호, 9. 변근식, 10. 박석주),
2) 조용권(鏞權, 1905?년생, 내인할아버지, 자 1. 조우제, 2. 조양제, 4. 조혜제, 5. (사위) 조曺정호, 6. 김창근),
3) 조용민(鏞泯, 1914년생, 용암할아버지, 자 1. 조형제亨濟, 2. 조광제珖濟, 3. 조욱제, 4. 사위 허령許鈴),
4) 조용재(鏞載, 1918-1950, 진주할아버지, 자 1. 조학래, 2. 조효제 1942년생 스님, 3. 사위 김석곤, 4. 최익호) 등 4형제 할아버지가 계셨다.
조용식(鏞式, 1882-1950, 시옷할아버지, 부인 분성허씨 1899-1932 33세亡, 장인 허윤구許胤九 총관공摠管公 동립東岦의 후손, 후부인 재령이씨 1914년생, 장인 이현만李鉉萬, 시옷)할아버지 밑에 다음과 같이 10남매, 7남3여가 있다.
1) 조영제(英濟, 1923년생, 부인 전주최씨 1932년생, 장인 최호관崔浩觀, 子 1. 조병래 1953년생, 2. 조욱래 1957년생),
2) 조웅제(雄濟, 1925년생, 부인 밀양정씨 장인 정운표鄭運杓, 子 조증래 1947년생, 조일래 1950년생, 조중래 1958년생, 1女 조현래 1945년생 사위 박무희朴茂熙 밀양박씨 부친 박부근朴復根 외손자 박영규朴永奎, 2녀 조정혜 1960년생 ),
3) 조승제(昇濟 1928년생, 부인 광주廣州이씨, 장인 이종성李鍾成 子 조경래瓊來 1955년생, 조상래庠來 1957년생, 조재만宰晩 1959년생, 1女 조은래 1953년생, 2女 조진희 1962년생 남편 류근갑 서울대출신 울산대교수 子 류승준 서울대출신 의학전문대학원수학중),
4) 조백제(伯濟, 1938년생, 부인 풍천임씨豐川任氏 1944년생, 장인 임봉재任鳳宰 변호사, 子 1. 조상준 1970년생, 2. 조남준 1974년생 뇌과학자 싱가포르 난양공대 주임교수, 3. 조동준 1977년생)
5) 조선제(先濟, 1940년생),
6) 조함제(咸濟, 1947년생),
7) 조경제(勁濟, 1949년생),
8) 1녀의 남편 허호(許壕, 덕촌고모부, 분성허씨 부친 허엽許燁, 子 1. 허종영宗英 부산대상대졸업 공인회계사, 2. 허종문宗文),
9) 2녀의 남편 변근식(卞根植 밀양변씨, 부친 변영순卞永珣),
10) 3녀의 남편 박석주(朴錫柱, 부친 박영헌永憲, 子 박성돈性暾, 박성욱性郁) 등이다.
조용권(鏞權, 1905?년생, 내인할아버지, 부인 재령이씨 1907년생, 장인 이수훈李壽勳, 내인)할아버지 밑에
1) 조우제(禹濟, 1930년생, 부인 광주노씨 1933년생, 장인 노준용盧埈容, 子 1. 조창래昶來 1956년생, 2. 조형래亨來 1959년생 3. 조환래桓來 1961년생)아제와
2) 조양제(亮濟, 1933년생, 부인 청주한씨 1941년생, 장인 한연석韓涓石, 子 1. 조준래晙來 1966년생 2. 조현래炫來 1968년생),
3) 조혜제(惠濟, 아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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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조성곤(趙性坤, 1849-1917, 조병래, 조증래, 조경래, 조상준의 고조)할아버지 밑에 조정규(廷奎, 신산)할아버지와 조동규(東奎)할아버지 두 형제가 있었다고 했다. 조정규(신산)할아버지의 후손은 바로 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럼 조정규(신산)할아버지의 동생인 조동규(趙東奎)할아버지의 후손에 대해 알아보자.
조동규(趙東奎)할아버지 밑에 조용보(鏞甫)와 조용우(鏞禹)가 있다.
* 이 글은 80% 작성된 글입니다. 작성하다가 오늘은 마감하고 내일 계속 작성합니다.
혹시 이 글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이 글은 수십년 전에 나온 족보책을 보고 작성한 것인데, 그 이후에 출생한 자녀 및 손자손녀, 사위, 외손주들의 이름과 생년, 직업 등을 문자 또는 댓글로 넣어주시면 이 글에 올려드리겠습니다. 010-9317-9199 조성래 올림
첫댓글 이 글을 함안조가 감찰공파 가족, 친지, 형제자매분들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위의 글을 참고하면 형제가 많은 집안도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족보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 이런 식으로 자기 소집안 족보를 만들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놓으면 인터넷에 본인 이름과 생년만 쳐 넣으면, 쉬운 말로 되어 있는 자기 족보를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승래 형님 해보시다가 족보내용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전화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