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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관청피해자모임-(썩은 판사,재벌,장군 색출) 원문보기 글쓴이: 독립군의 텃밭
삼청교육대 폭로한 기자출신 이적목사가 김앤장 변호사 덜미 잡는데 앞장(복수의 계절 1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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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을 앞세워 사법부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김앤장 변호사 비리 척결을 위해 이적목사님이 소송승계참가자 자격으로 법정에 출석합니다. 억울하게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3년씩이나 고문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어려운 고통을 극복하시고 마침내 삼청교육대를 폭로하므로서 청문회 스카가 되셨던 이적(본명 이기석)목사님께서 억울한 피해자도 구조하고, 예방을 위해 직접 법정에 참석합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참여가 있어 주시길 바랍니다. 증인재판 일시 : 2014년 3월 13일 오후 3시 서울서부지방법원 405호 법정 피해자 증인 : 정현례, 문영심
소 송 승 계 참 가 신 청 사 건 2013가합 10697 손해배상(기) 승계참가인 이기석 직업 : 민족평화교회공동체 공동대표 목사 김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원 고 정 현 례 피 고 1. 소 정 숙 군포시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서울구치소(수감번호 391) 2. 이 월 희 , 3. 홍 종 후 (부부) 위 사건에 관하여 승계참가인은 다음과 같이 권리승계인으로서 소송절차승계참가를 신청합니다. 참 가 취 지 승계참가인은 2014. 3. 5. 원고로부터 이 사건 소송목적물인 소정숙외 2인에 대한 채권을 양수받아 그 권리를 승계하였으므로 이 사건 소송에 참가하고자 합니다. 참 가 이 유 승계참가인은 원고가 피고 소정숙의 말에 속아 1999.부터 총 약 100억원 이상을 투자(원금 보장하는 조건)하였습니다. 피고 소정숙과 이월희, 홍종후는 공동 공모하여 불법행위로 원고가 투자한 위 돈을 투자금 명목으로 편취하였기에 이에 대하여 청구를 하였으며, 그 채권을 양수받은 승계참가인은 이 사건 소송에 승계참가를 신청하는 것입니다. 청 구 취 지 1. 피고들은 연대하여 승계참가인에게 합계 금 315,000,000원 및 그 중 100,000,000원 대하여는 2003. 11. 1.부터, 20,000,000원에 대하여는 2003. 11. 11.부터, 35,000,000원에 대하여는 11. 14.부터, 100,000,000원에 대하여는 11. 25.부터, 30,000,000원에 대하여는 2003. 11. 26.부터, 50,000,000원에 대하여는 2003. 11. 27. 부터 각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의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소송비용은 승계참가인과 피고들 사이에 생긴 부분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3. 제 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청 구 원 인 1. 기초사실 가. 피고 소정숙은 1999.부터 동서증권에, 2000. 2. 11.경까지 삼성증권과 동부증권에 주식 및 선물옵션거래를 하던 중 약 135억 원의 손실을 입자 사실은 삼성증권 소속 펀드매니저가 아님에도 투자자들에게 삼성증권 펀드매니저로서 타 33명의 펀드매니저와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기관과 연계되어 거래를 하기 때문에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하면서 유사수신행위로 많은 자금을 모았습니다. 나. 원고는 피고 소정숙에게 속아 1999. 10. 6.경부터 2003. 12. 30경까지 금9,811,129,960원을 대여하였고, 금 7,723,230원을 변제받았지만, 금2,087,899,791원을 변제받지 못했습니다. 다. 원고는 원금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투자하였는바, 2003. 11. 1.이후로만 보면 2003. 11. 1. 100,000,000원, 같은해 11. 11. 20,000,000원, 같은해 11. 14. 35,000,000원, 같은해 11. 25. 100,000,000원, 같은해 11. 26. 30,000,000원, 같은해 11. 27. 50,000,000원 투자한 도합 금 3억1500만원을 송금했습니다, 라. 피고 소정숙은 선물옵션에서 실패하였다면서 원고를 비롯한 투자자들의 돈을 반환하지 못하고 2004. 2.경 잠적을 하였다가 같은 해 4.경 구속되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죄로 6년을 복역하고, 2010.경 만기 출소 후 다시 다른 투자자의 고소로 재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 원고는 최근에 피고 소정숙과 피고 이월희, 홍종후가 상호 공모하여 투자자들의 투자금 약 350억원을 횡령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피고들을 상대로 이 사건 청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2. 피고 이월희, 홍종후의 불법행위 피고 이월희는 피고 소정숙과 같이 매일같이 소정숙의 아파트에서 선물투자금을 관리해 왔으므로 피고 소정숙이 선물옵션에 투자하지도 않고, 원고들을 비롯한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둘러막기에 바빴던 2003. 5.경부터 피고 소정숙이 구속되기 전 2004. 2. 경까지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본인은 배당금 명목으로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소정숙이 받은 돈 중 상당액을 빼 갔습니다. 결국 피고 이월희는 피고 소정숙과 공모하여 원고로부터 금원을 편취한 것입니다. 피고 홍종후는 피고 이월희의 남편으로서 피고 소정숙, 이월희와 공모하여 원고에게 손해를 끼치고 배당금 명목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불법행위를 한 자입니다.
3. 맺음말 가. 원고는 피고들의 공모 편취 범행에 속아 1999.년부터 총 약 100억원 이상을 원금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하여 피고들에게 투자하였는바 2003. 11. 1. 이후로만 보면 위와 같이 총 금 315,000,000원을 피고 소정숙의 계좌로 입금 하였는바, 피고들로 인하여 입은 손해액은 2003. 11. 1. 이후로만 계산하여 금 315,000,000원입니다. 나. 따라서, 원고는 승계참가인에게 피고들에 대한 채권을 양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승계참가인은 피고들에 대한 채권을 양수한 권리승계인으로서 민사소송법 제81조에 따라서 이 사건 소송에 참가하고자 승계참가를 신청합니다. 입 증 방 법 1. 병 제 1호증 채권양도통지서 2014. 3. 10. 승계참가인 이 기 석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4 민사부 귀중
민통선에서 공부방을 하는 목사? 밤에는 횟집 주인, 낮에는 횟집에서 독거 노인 밥 주는 목사? 붕어빵을 파는 목사?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분일까. 12월 11일 5시, 횟집을 찾아갔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불광천 옆 주택가에 자리잡은 조그만 횟집, <이적 시인의 -‘바다가 된 그대에게’ 사량도 세꼬시>라는 이름으로 된 간판이 보였다.
8평 정도 되는 가게에 탁자가 네 개,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책을 보던 이적 목사가 반겨 주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적 목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한국의 근본주의 교회를 비판했다. 언제 목사님이 되셨냐고 물었다. “80년 대에 전도사 생활을 했습니다. ‘묘한 이유로’ 쫓겨나게 되죠.” 1980년 2월 무렵, 전두환이 집권하고 계엄 때였다고 한다.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 ‘전두환의 안녕과 무궁한 발전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열렸다. 이적 목사는 그 조찬기도회가 잘못됐다는 내용의 설교를 했다. 담임 목사한테 지적을 받았다. 그 길로 이적 목사는 “다시는 교회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고는 전도사 생활을 접었다. 그 뒤 이적 목사는 지방 일간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게 된다 . 그러다가 1980년 10월 느닷없이 삼청교육대로 억울하게 끌려 들어간다. “산꼭대기 동네에 수돗물이 잘 안 나온다, 공원에 깡패들 득실거려 경찰 단속 손길 아쉽다” 하는 시민들 편을 드는 기사를 좀 썼을 뿐이었다. 이적 목사는 삼청교육대에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면서 ‘하나님은 왜 정의의 반대편에 서 있는가’ 하나님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그이는 다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바깥도 감옥이었다. 사기꾼, 빨갱이, 깡패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살아야 했다. 이적 목사는 임근실의 유언을 되새기면서 삼청교육대를 폭로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삼청폭로 미수 사건인 양곡상 침투사건으로 공무원자격 사칭, 공갈 등의 파렴치 죄로 조작되어 다시 8개월, 10개월, 두 번이나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이적 목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198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인 민족문학에 삼청교육대를 폭로하는 10편의 연작시를 발표하고 뒤이어 11월 삼청 실록수기《삼청교육대 정화 작전》(도서출판 전예원)을 출간한다. 국민들은 독재정권의 잔혹성에 몸서리를 쳤다. ] 심지어 군사정권에 아부했던 조중동까지 ‘삼청교육대 사망자 사인 의혹 많다’, ‘생체실험의 수기다’, ‘한국판 수용소 군도의 인권 유린과 참상’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 보내면서 군사정권을 비판했다.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은 그이를 만난 뒤 당내에 ‘삼청교육대 진상규명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군사정권을 압박한다. 이적 목사는 김대중을 대통령 만드는 데도 한몫을 했다. 대변인, 지역선거대책위원장, 중앙당 부위원장, 선거 연설원을 지내며 김대중을 도왔다. 결국 김대중이 대통령이 됐다. 마음만 먹으면 출세 길이 보장될 수도 있었다. “김대중 정권 때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라는 관변단체가 하나 생겼어, 월급은 없었는데 거기 본부장을 맡으라 그러더라고.” 취임식을 하는 날 친인척한테 받은 단체 후원금 때문에 문제 아닌 문제가 생겼다. 법원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싸우면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적은 민통선에 자신이 건립했던 통일 문학관으로 머리도 식힐 겸 잠시 글 쓰러 들어갔다가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 먹는다.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통선에 들어간 날 느닷없이 청빈한 참예수를 떠올렸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때 내가 신학교 출신이라는 게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거야. 기독교가 망하기만 바랄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들어가서 그들과 싸우며 참예수의 변혁 운동을 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니냐. 내가 욕했던 거는 여의도 ㅈ목사와 같은, 한국의 잘못된 기독교 지도자들이 미웠지, 예수님을 미워할 이유는 없는 거 아니냐. 귀신 예수가 아닌, 평화와 사랑의 예수, 그 거룩한 삶을 본받아서 실천해 나간다면 나야말로 참예수의 그림자라도 되는 영광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돌아가자, 이렇게 판단한 거지.” 이적 목사는 신학대를 편입했다. 졸업하자마자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 민통선 마을에 빈민 운동을 자원한다. 그리고 알콜중독자 자녀를 위한 아동공동체와 민통선 공부방을 만들었다. 2002년 11월이었다. 그리고 마을회관을 고쳐 민통선 평화교회도 설립했다. 신자는 해병대 군인들이었다. 헌금이 없으니 아동공동체와 공부방 운영하기가 벅찼다. 무료급식과 아동장학사업, 보육사업, 차상위계층자녀발굴보호사업, 체험학습 등 많은 사업을 벌려 놓았는데 후원금 들어오는 곳은 적었다. 그래서 이적 목사는 공동체 운영하기 위해 불광천에 횟집을 차렸다.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도 공동체와 공부방을 운영하는 것은 힘이 들었다. 더구나 불광천 근처에 사는 독거 노인들에게까지 무료 식사를 대접하는 독거노인급식소까지 만들었다. 그래서 그이의 목회를 좋아하는 서울 교인들과 사랑의 붕어빵 봉사회를 만들어 가게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기도 했다. “예수님이 교인들한테 십일조 헌금 받아서 사랑을 실천했나? 그분 스스로 대중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님 나라 전도하며 평화를 외치며 박애와 사랑을 실천했단 말이야, 목사의 삶이 예수의 삶처럼 그렇게 돼야 하는 거 아녀? 그래서 내가 만분의 일이라도 그분 흉내라도 내 보려고 이렇게 사는 거지.” 그렇구나. 예수란 귀신이 아니고 사람이구나. 한국의 기독교를 싫어하면서 예수가 어디 있나 하고 생각하던 필자는 이적 목사를 보고 예수는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적 목사가 이번에 운영비 마련을 위해 다시 책을 낸다. 《민통선 예수》라는 책이 현재 인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땅에 사는 민중들을 백성으로 여기지 않는 이명박 장로를 비롯해 그 하수인들, 부디 그 책을 읽고 회개를 좀 했으면 좋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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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이지 너무나도 억울한 사람들 많아요.억울함이 없는 세상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