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Buonarroti Michelangelo(1475~1564)시스티나 성당 천정화(구성도)
시스티나 성당 천장작업 미켈란젤로는 천장(총 면적 약 520평방 미터) 프레스코 작업을 교황 율리우스 2세와 계약한 날짜인 1508년 5월 10일에 시작하였다. 그는 입구에서부터 시작함으로써, 천장 중앙에 묘사된 창세기의 9가지 이야기 순서와는 역순으로 작업을 하였다. 그가 첫 번째로 그린 것은 1508년 9월에 시작한 홍수 이야기이다.
노아의 생애에 대한 3가지 그림과 배경 그림은 조수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린 반면, 삼각 소간과 루넷에 그려진 5명의 선지자, 4명의 이그누디, 예수의 조상들은 미켈란젤로 자신이 직접 그렸다. 그리고 동시에 천장 벽화와 다윗과 유디트의 이야기를 그렸다. 원죄 그림을 시작한 1509년 말엽에 미켈란젤로는 그의 모든 동역자들을 내보내고 제자들의 도움만으로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는 제자들로 하여금 틀이나, 원형 창 혹은 푸티 같은 부차적인 일들을 시켰다. 1510년 8월에 프레스코 작업의 반이(입구에서 이브의 창조까지) 끝났다. 이 일을 끝내고 미켈란젤로는 몇 달 동안 쉬었다. 성모 승천 축일인 1511년 8월 15일에 천장 일부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해 모든 성인의 날인 11월 1일에 모든 작업은 끝났다.
라파엘로 Sanzio Raffaello(1483~1520)성모자(오를레앙의 성모)
성모자가 실내를 이례적으로 배경으로 하고 나타나 있다. 모자가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정을 주고 받고 있는 장면으로 되어 있다. 종교적 인물인 성모자는 세속적인 모자의 친밀감으로 묘사되어 모정의 따스함을 감지케 한다. 종교적인 위엄과 숙명의 비애는 전연 없고, 성모는 다정하고 자애스러운 표정과 자세를 보이며 아기를 얼싸안고 애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아기의 자세는 모정에 이끌리는 일상적인 상으로 되어 양자의 자연스러운 호응을 나타내고 있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실내 배경은 더욱 가정적인 분위기를 이고, 흔히 볼 수 있는 가정내의 다정한 자상을 연상 하게 한다. 정이 감도는 훈훈한 분위기는 온화한색조와 색채의 조화로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라파엘로 Sanzio Raffaello(1483~1520) 성 모자와 아기 성 요한(방울새가 있는 성모)
성모자 주제의 라파엘로 작품 중에서 가장 고전적인 풍미를 나타내는 그림이 방울새가 있는 이 성모자 작품 이다. 우선 구도면에서 성모가 화면 중심이 되어 크게 지배하고 있고 그 좌상의 안정감이 그림의 틀을 잡아 주고 있다. 성모 앞의 두 아기는 성모와 함께 삼각형의 구도를 형성하고, 그 좌우로 자연 풍경이 넓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 그림은 다른 성모자화에 비해 명암의 대조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고, 명쾌한 색채보다 통일된 색감을 주로 삼고 있다. 한편 라파엘로 특기의 부드러운 선이 묘사에서 음악적인 선율을 보이며 감미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성 요한이 잡고 있는 방울새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미술의 이론가인 바자리에 의하면, 라파엘로의 친구인 타데오 타데이를 위하여 제작한 것이라 한다.
고야 Francisco Goya(1746~1828)- 聖 가족
제작 연도는 명확치 않다. 성 요셉과 마리아, 어린 예수와 요한의 4인을 그린 것이며 하나의 집단체로서 표현 한 것이다. 네 사람의 얼굴 표현이나 색감은 리얼하게 표현했으며, 제각기 다른 표현에서 그 인물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요셉의 깊이 있는 표정, 마리아의 자애로우며 사랑에 넘치는 듯한 표정, 두 어린이의 청순한 표정과 부드러운 살결의 표현도 놀랍다. 요셉과 마리아가 입은 늘어진 옷과 마리아의 청색 옷의 대비적인 효과도 촉각적이며, 부드러운 질감 표현도 뛰어난 작품이다. 고아는 이후 종교화를 순연(純然)한 상징화로서만이 아닌 인간 드라마의 표현 형식으로 승화시켰다.
성 모자상, 피렌체 피티미술관 소장.
이탈리아 화가 돌치의 그림. 세밀화풍의 섬세한 끝마무리를 한 작은 화면의 성모자 반신상으로서 감미로운 애조를 간직한 솜씨를 자랑하였다. 성녀의 얼굴에서는 감미로운 정감을 물씬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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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Francisco Goya(1746~1828) 聖 요셉의 죽음
종교 도시 발라돌리드의 산타아나 교회의 요청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이 그림의 밑그림이 남아 있으나, 그것은 이 작품과는 많이 다르며 고민하는 성요셉을 그리스도가 부둥켜 안고 있는 드라마틱한 발상으로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는 신인 그리스도가 지상에 있어서의 아버지 요셉의 시신 앞에 조용히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손을 모은 요셉의 양손에 그리스도가 오른손을 펴서 어루만질 듯한 부분이 그림의 중심을 이루었다. 왼손은 벌려 위쪽에서 내려 흐르는 빛과도 연결짓는 구도법으로 작품을 제작했으며,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엄숙하며 자애로움이 화면 가득히 감싸 주고 있다. 고야가 제작한 종교화 중 귀중한 작품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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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Paul Gauguin(1848~1903) 황색의 그리스도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에 건너가기 이전의 최고 걸작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려진 그리스도 상은 퐁 다벵에 가까운 트레마로의 교회당에 있었던 것이다. 원경에 보이는 것은 퐁 다벵 마을과 생트마르그리트의 언덕일 것이다. 세 사람의 부르타뉴 여인도, 십자가도, 붉은 색 나무들도, 모두 하나의 상징적 풍경의 요소로 화하고 있다. 야성이 가득하고 자만에 부푼 그가 이 작품에 임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견고하게 화면을 구축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비친 어떤 화재 (畵材)도 그가 나타내려는 의도대로 변형되고 추상화 (抽象化)되어 버린다. 옥타브 미르보는 여기에 그려진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 그리스도의 우울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얼굴에는 무서운 슬픔이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무렵의 그의 심정이 바로 그랬으리라고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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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Pater Paul Rubens 성 게오르기우스와 악룡(惡龍)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를 받고 참수 (斬首)된 로마의 군인이며 순교자였던 성 게오르기우스가, 카파도키아의 수도에서 악룡(惡龍)을 퇴치하여 왕녀를 구출하였다는 전설은 루벤스 이전에 많은 화가들에게 많이 다루어졌었다. 이 그림은 신앙심이 강한 루벤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을 보인다. 그것은 색채의 다양성과 동(動)과 정(靜)의 대조이다. 루벤스의 이탈 리아에서의 수련은 특히 색채의 회화적 가치를 인식케 하였고, 색채로 이루어지는 화면 구성을 중요시하게 하였다. 빛과 색과의 관계, 빛과 어둠의 대조에서 형태가 부상(浮上)한다는 사실이다. 한편 동적인 장면의 구성은 정적인 면과의 대비에서 그 효과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회화적인 요소가 이 작품에서 발휘되고 있으며 극적인 성격을 주고 있다
※ 루벤스 Pater Paul Rubens(1577~1640) 지겐 출생. 10살때에 고향인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왔고 20세 초반에 안트베르펜 화가조합에 가입했다. 이태리에서 8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통해 고대미술과 르네상스의 화가들에 대해 연구했고 고향으로 돌아와 궁정화가로 활동했으며 안트베르펜에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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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Salvador Dali(1904~1989) 십자가의 聖 요한의 그리스도
갈릴리의 땅을 연상케 하는 리가트 항. 하늘 높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그렸다. 더욱이 예수가 위에서 내려다 보이도록 그린 변형된 구도가 특이하다. 달리는 크리스찬은 아니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놀라운 지혜로서 종교화를 제작하였는데, 그 공통점은 편집광적 비판 방법과 자기 도취에서 벗어나 매우 정교하고도 수려한 필치의 사실적묘사를 보이며,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포착한 구도를 도입하여 형이상학적 작품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의 사실묘사로 이루어졌기에, 이전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던 괴이한 공포감과 처절한 느낌보다는 엄숙하고 신비로워 숙연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면에서 '현대의 종교화'라 일컬을 수 있겠다.
// 라파엘로 Sanzio Raffaello(1483~1520) 천사-브레샤 토지오 마르티넨고 미술관 소장
확실히 라파엘로의 작품이라고 인정되는 최초의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의 감미롭고 품위있는 표현의 영향을 볼 수 있으나,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제작하기 이전에 레오나르도와 접촉이 있었고, 그의 작품을 열심히 연구한 바 있어, 작품의 고귀한 풍은 이러한 관계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작품은 1500년 12월 10일 카스텔로시의 성 아우고스티노 성당의 경당 제단화(祭壇畵)로 제작이 의뢰된 것이나, 1789년의 지진으로 제단화는 손상되고, 그 후 남아 있는 부분이 이 그림의 <천사>이다.
라파엘로, 聖 母子와 아기 聖 요한
라파엘로의 성모자 회화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여기에 소개되는 그림이다. 시원한 초원에 한가하게 앉아 있는 성모는 아기 예수와 아기 성요한이 서로 어울리고 있는 장면을 애정에 넘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일견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 성모자상은 아기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로 성모의 연민어린 모정이 은연히 이 장면을 지배하고 있다. 전원적인 자연 풍경은 멀리 마을이 있는 산천을 넓게 보이게 하고 있으며, 자연 공간성에 대한 라파엘로의 이해를 시사해 주고 있다. 라파엘로는 정적이며 종교적 분위기를 온건한 색조로 조절하고 있으며, 인물의 동세, 묘사적인 선, 색채 등에서 강렬한 성격을 배제하고 있다. 성모의 동세는 부드러운 어깨의 곡선에서 아기까지 연결되어 합류돼 있고, 독특한 음악적인 리듬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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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Marc Chagall(1887~1985)아담과 이브
이 작품 샤갈의 작품 중에서 면을 가장 세분화한 작품 일 것이다. 당시 그는 벽에 세잔의 복제화를 몇 장이나 붙여 놓을 정도 세잔의 만년의 입체파의 모체가 된 조형 이념을 동경하였고 "우리들은 모두 세잔에서 출발했다."고 고백한 레제, 브라크에 가장 심취해 있었다. 일찍이 제작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의 기하학적인 해체를 철저히 파고 들려고 결의하고 있었던 것을 이 작품을 통해서 추측할 수가 있다. 이 작품은 형태가 그렇게 세분화되어도 유동적이고, 음상이 또렷 또렷한, 마치 바하의 토카타를 듣는 것처럼 장엄하다. 이러한 수법은 후일 렝스 성당이나 메쓰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제작에 되살아난다. 샤갈의 다른 작품에도 그러하지만, 인물의 표정에 있어서 음산한 면은 금단의 열매를 딴 악의 주 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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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방문 - S 보세 작
대부분 인도인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 간 세사람의 현자 중1인 이상이 인도인이었다고 믿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앞쪽의 페르시아 인을 제외하곤 뒤의 두 사람은 인도의 제사장 계층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은 힌두교 잡지(Madhuir)에 실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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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매장(埋葬)- 루벤스 Peter Paul Rubens(1577~1640) 이 작품은 세 폭(幅)으로 된 제단화의 중앙 부분의 그림이다. 중세기부터 이 그림의 소재는 많이 이용되고, 여러 가지의 작품이 산출되었다. 루벤스는 여기서 그의 특유의 인체 표현과 함께 감정 표현으로 장면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사자(死者) 그리스도의 육체와 그의 안면 표정의 일치, 그리고 후면에 있는 인물들의 비통한 모습은 자세와 표정의 일치를 또한 보이고 있다. 루벤스는 그림의 주인공인 그리스도를 화면 중앙부 전체에 두고 조명을 집중시켜 사자의 비참한 모습을 정면으로 비춰주고 있다. 따라서 정면과 배후의 명암 관계는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색조의 조화는 이와 같은 명암의 대조 밑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인물의 표정이 이에 부상되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루벤스의 서정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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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Peter Paul Rubens(1577~1640) 최후의 심판(小)
앞서 보아왔던 <최후의 심판>과 비교가 된다. 저주를 받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장면이 지배적인 그림이다.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같은 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작품이다. 큰 무더기를 형성하는 수많은 인체의 움직임은 격하고 다양한 개개인의 동태로 되어 속도감을 나타내며,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다. 집체(集體)로 된 개개의 인체는 360 도의 각도에서 포착되었으며, 또한 하나의 인체도 여러 각도의 시선을 요구하는 형상으로 되고 있다. 이것은 육체적인 표현과 함께 표출되는 심리적이며 감성적인 표현 까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루벤스는 명암의 색채감을 이용하여 여러 육체적 특징을 강조하고 부상시켜 장면을 혼잡한 극적인 상태로 표출하고 있다. 이상의 여러 회화적인 요소는 바로 그 미술의 성격이 되고 있다.
루벤스 Peter Paul Rubens(1577~1640) 그리스도와 참회하는 여인
작품 <불신의 토마스>에서 본 그리스도의 모습을 여기서 되찾게 된다. 그리스도 앞에서 죄를 뉘우치고 있는 여인은 막달라마리아이다. 참회하는 여인까지도 루벤스는 주제나 내용에 관계없이 육체의 찬미와 관능미의 표출을 잊지 않고 있다. 도리어 관능적인 육체의 여인상이 죄를 참회하는 자연을 타당화할 것 같다. 루벤스의 위대함은 육체를 자유자재로 정신과 심리적인 상태에 예속시켜 표출한다는 점이다. 탐욕의 육체, 성을 표상하는 육체, 절망의 육체, 모성적인 육체, 향락의 육체 등 다양하다. 여기서도, 여인은 타락된 육체를 가려, 뉘우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인물의 표정으로 좌우되고 있는 장면이 여러 종류의 인체 표출을 보게 하는 것이다. 감격, 놀라움, 존경 등의 표정이 이 그림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에 밝고 아름다운 색채가 장면을 명쾌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루오 Rouault - Henri(1871~1958) 受難(수난)에서(너희들은 이 세상의 어려움을 아느냐?)
앙드레 슈아레스의 종교 시집 '수난'(1939년)의 삽화 12매 가운데 10매를 뽑아 동판화를 새로이 유화로 제작한 것이다. 슬픈 사연에 잠긴 여인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박진감에 넘쳐 흐른다. 멀리 달이 떠 있으며 엄숙한 분위기 표현에 성공한 작품이다. 루오의 작품이 모두 그러 하듯이 단조롭게 보이지만, 내용에서 풍겨 나오는 이야기는 보다 깊은 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젖먹이는 聖母 레오나르도 Leonardo da Vinci(1452~1519) 이것은 엄격히 따지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 아닌지도 모르지만, 굳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라고 그의 목록에 첨가한 것은 이 그림과 같은 레오나르도 자신의 작품의 존재가 다른 데상을 통해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제작 연대는 1490년경으로서 <암굴의 성모>와 같은 시대 작품일 것이다.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의 주제는 12세기말부터 되풀이하여 그려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아기 예수가 왼손에 갖고 있는 작은 새로서, 그것은 '영원'을 상징하고 있다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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岩窟의 聖母 레오나르도 da Vinci(1452~1519)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암굴의 성모>에 비하면 인물상이 확대되고, 보다 대상에 접근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상하의 부분이 잘린 것처럼 되었고, 암굴이 하늘에 솟아 있는 부분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각 인물에는 천사를 제외하고 후광이 그려졌고 아기 예수, 성 요한에게는 십자가뿐만 아니라 천(布)도 그려져 있다. 천사가 내밀고 있는 손이 없어지고, 휘날리는 빨간망토가 단순한 푸른 옷이 되어 있다. 루브르 미술관 작품이 가지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독자적인 표현이 일반에게 알기 좋게 변경되어 있다. 제작 연도가 1506년부터 1508년 사이로서 루브르 소장 작품이 1490 년경에 그려진 것이므로 그 후에 또다시 제작한것이라 측정된다.
동정녀 마리아의 임종, 카라밧지오, 1605∼06년, 캔버스에 유채, 369 x 245cm
이 작품은 당대의 플랑드르 화가 루벤스가 직접 구입하기도 했던 걸작이다. 루벤스는 카라밧지오의 회화 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카라밧지오의 강렬한 빛의 사용과 극적인 사실감에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에 이러한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성모 마리아의 죽음을 주제로 삼아 제작된 작품이지만, 이 그림의 실제 모델은 티베르 강에서 빠져 자살을 한 로마 소녀였다. 회화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성모상은 경건하고 신비한 존재로 부각되는 것이 상식이었던 당시에, 카라밧지오는 부풀어오른 몸과 발이 드러난 평범한 처녀를 성모로 설정하였다. 이는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카라밧지오의 극적인 사실적 자연주의는 하나의 주제를 인물에 집중해서 투영하고자 강렬한 빛으로 무대를 설정하고, 뒷배경들은 레오나르도풍의 "스푸마토 기법"처럼 멀리 희미해지거나 어둡게 처리한다. 이 작품에서도 죽은 성모의 육체와 바로 앞에서 슬프게 우는 여자와 사도의 표정만이 빛에 의해 드러나고, 죽음을 상징하는 어둠 속에 몇 사람이 있을 뿐이다.
성스러운 신앙의 세계가 지배하던 16세기 사회를 완강히 거부하며, 속세의 신앙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했다는 것을 <성모의 죽음>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성모를 지켜보는 머리가 벗겨진 사도를 통해서만이 죽은 자가 성모라는 것을 확인해 주면서, 카라밧지오는 위선적인 종교의 권위나 맹신에 대한 저항을 회화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Sodoma作 Il Italian painter, Sienese school (b. 1477, Vercelli, d. 1549, Siena)1510년대 작품
소도마 Sodoma (본명 : Giovanni Antonio Bazzi)이탈리아의 르네상스시대의 화가. 북이탈리아의 베르첼리 출생. 본명 Giovanni Antonio Bazzi. 소도마는 별명으로 ‘남색(男色)’이라는 뜻이다. 1490년경 밀라노에 나와, 당시 이 곳에서 활약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1499년 밀라노의 스포르차가(家)의 몰락으로 다 빈치가 밀라노를 떠나자 시에나로 나가 그 곳에서 한창이던 페루지노의 화풍을 흡수하여 《십자가에서 내리신 예수》(시에나미술관 소장)를 그리고 시에나와 가까운 몬테 올리베트의 수도원에 일련의 벽화를 그렸다. 그 후 로마에서 바티칸궁의 교황 서명실 천장화를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1508년 이 일은 라파엘로가 계승하였다. 주요작품 : 《십자가에서 내리신 예수》 《성(聖)세바스찬의 순교》(1525∼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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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 "The Flagellation of Christ"
Caravaggio, Michelangelo Merisi da 1573∼1610 이탈리아의 화가. 혁신적인 명암법을 사용하여 카라치와 더불어 바로크 회화의 확립에 공헌하였다. 아르피노에게 배웠으나 스승의 화풍에서 벗어나 사실화를 개척하였다. 자연묘사를 바탕으로 조소적(彫塑的) 형체와의 긴밀한 구성에 의해 마니에리스모의 주관주의를 극복하였다. 또한 빛과 형태의 사실적 원칙에 입각하여 심각한 종교감정과 인간성의 표현으로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17세기 회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성 마태오를 부르심, 카라밧지오, 1599∼1600년, 캔버스에 유채, 337.8 x 348cm
이 작품은 "성 마태오의 생애"를 주제로 삼아 연작으로 만들어진 세 작품 <성 마태오와 천사><성 마태오의 부르심> <성 마태오의 순교> 중 하나인, <성 마태오의 부르심>이다. 화면의 오른쪽으로 그리스도와 사도가 다가오고 있으며, 동료들과 탁자에 앉아 있는 세리 마태오는 이해의 몸짓으로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고 있다. 사도의 몸에 가려 옆얼굴만 비치는 그리스도의 손은 세리 마태오로 향하고 있어서,무언가 절박하면서도 엄숙한 메시지가 전해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 그림의 오른쪽 위에서 정확한 대각선을 그리며 쏟아지는 강한 계시의 빛이 그리스도의 머리 위를 통과하면서 인물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데, 이 빛으로 인해 어둠 속에 묻혀 있던 각각의 표정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카라밧지오가 창안해낸 "테네브리즘(Tenebrism)", 즉 실체만을 조명하는 기법이 적용되었다. 어둠과 빛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어둠에 숨어 있던 세리 마태오가 돈을 세는 장면, 바오로가 찼던 칼이며 깃털 달린 모자, 그리고 인물들의 감춰진 표정들까지 드러나게 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실내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이 공간 속에서 서치라이트처럼 비추는 빛의 효과는, 이제 곧 십자가에 못 박힐 운명을 지니게 될 그리스도의 절박하면서도 신성한 부르심을 하나의 드라마처럼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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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프레스코 625*661cm 바티칸궁 파올리나 경당 천장 부분
그림은 바오로의 다마스커스에서 있은 회심(回心)사건 을 다룬 것이다(사도행전 9장). 70살 가까운 미켈란젤로는 교황 파바오 3세의 명에 따라서 "최후의 심판" 벽화가 거의 완결되려 할 때 이것을 다시 제작하게 된 것이다.그는 교황의 이름에 따른 바오로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크리스챤에 강한 반감을 가진 바오로가전도하는 제자들을 박해하려고 대사제(大司祭)의 편지를 가지고 그들이 활동하는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도중,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내려와서 눈이 어두워지고 땅에 넘어졌다. 그때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의 소리가 들려와서 누군가고 물었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그 후 기도한 그가 3일 후 다시 눈이 뜨이게 되자, 그는 개종(改宗), 이름을 바오로(Paulus)이라 하였다. 화면에는 하늘의 빛으로 넘어진 사울이 부축을 받고 있고, 하늘에는 예수와 더불어 이 기적을 보는 성자들이 있다.
Lorenzo Monaco, Italian painter, Florentine school (b. cca. 1370, Siena (?), d. cca. 1425, Firenze)1405년도 작품
로렌초모나코 [Lorenzo Monaco, 1370 ~ 1425] 이탈리아의 화가, 주요작품 《성모대관(聖母戴冠)》《성모의 생애》 본명 조반니(Piero di Giovanni). 시에나 출생. 1388∼1422년에 활약하였다. 피렌체로 가서 카말돌리파(派)의 수도사가 되었다. 젊은 시절 가디를 비롯한 시에나파의 회화를 배우며 그들과 가깝게 지내고, 15세기 초 국제 고딕양식을 받아들여 우아한 장식적 작품을 그렸으며, 조토 이래의 조형전통이 있는 피렌체에서 특색 있는 화풍을 보였다. 그의 문하생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 안젤리코나 필리포 리피 등에게서 그 영향을 볼 수 있다. 큰 화면보다 소품에 뛰어났고, 많은 미니아튀르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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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다빈치 Leonardo da Vinci 그리스도의 세례(洗禮 Il Battesimo di Cristo)
1473년에 그린 것이라 추정되는데 작품의 주문자는 성 사르빅 성당이라고 전한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제 3장 13절부터 17절까지 기록된 그리스도 세례의 장면이지만, 천사가 곁에 그려져 있고, 더욱이 등을 보이며 머리를 옆으로 묘사하는 수법은 이미 레오나르도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손을 들고 있는 그리스도의 옷은 그리스도와 천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몸의 움직임과 더불어 가운데 세례 장면을 강조하려는 배려가 보인다. 이들은 조형적인 의미이지만 풍경도 요단강의 연장이고, 물 또한 정화(淨化)의 상징이며, 암벽의 돌은 신의 존재를 지칭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스도의 탄생
10세기 임벽에 회반죽을 밑바탕으로 해서 그린 벽화, 벽화폭이 약 1.4m. 카파도키아. 하기오스 데오도루스 성당 전정, 도판의 부분은 복도 평천정의 제실 건너 북측 상단부분으로 좌측의 성모가 침대에 옆으로 누운 모습을 위에서 내려보는 것 같이 그리고 있다.
그 좌상에는 성자와 소,당나귀가 그려져 있고 요셉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하는 두명의 산파(살로메오 메야)가 성자를 목욕시키는 장면이다 (외경 [위마태복음]13장,[야곱의 원복음서](19-20장). 우측에 서 있는 살로메는 항아리에 물을 붓고 있다. 좌측에 앉아 있는 메아는 성모의 처녀분만을 믿지 않아 손이 저린 것을 성자에게 접촉함으로 고침받은 여자(위쪽에 명문:외경에서는 살로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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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탄생- 11세기초 벽화,좌우 3.50m 피라스 대성당 북쪽 측량 내벽에 있던 것. 카트툼(수단) 국립미술관.
성모는 중앙에 호화스런 침대 위에 누워있고 성자는 말굽형의 창문이 달린 석조건물같은 말구유위에 누워있다. 그 위쪽에 소와 당나귀가 있다. 성모자 좌우에 세명의 대천사가 서있고 성모의 발 밑에는 아주 작게 그려진 성 요셉이 보인다. 그 위쪽에는 두명의 목동(알니아스 및 레코데스)이 있고 그 뒤에 3명의 동방박사의 말을 탄 모습이 보인다. 그 위쪽에는 매우 손상되어 있지만 탄생을 축복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보이고 좌하에는 한 명의 왕이 있다. 전체적으로 중앙 아시아의 불화의 느낌이 든다.
주의 공현 패널. 프라도 미술관 소장 유화. 중앙 131*72.1cm 좌우 131.1*33.0cm.
중앙패널은 동방박사의 경배. 여기에 나온지 좌우 패널은 여러 성자와 기증자의 상이있다. 중앙 패널의 원경에는 예루살렘이 보이며 들판에는 군대가 행진하고 있다. 마굿간에서 호기심에 찬 눈길로 거룩한 풍경을 보는 군중. 지붕 위의 병사들. 이러한 정경은 일반적으로 미사의 알레고리로 간주되고있다.
렘브란트- 목자들의 경배 캔버스.유화.65.5*55cm 1646년 제작.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렘브란트의 이 그림에는 수소와 나귀는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복음서의 기술을 기초로 해서 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대 기독교이후 마굿간에는 수소와 나귀가 그려있는 것이 통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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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목자들의 경배, 1645∼1650년, 캔버스에 유채, 107 x 131cm
화면에서 빛을 발산하는 유일한 광원인 촛불은 오른편의 노인의 손에 가려진 채, 확산되지 않고 막 태어난 아기만을 비추고 있다. 어둠 속에 환한 빛으로 부각되고 있는 아기 예수는 철야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 초라한 차림새의 사람들은 누가 동정녀 마리아인지, 누가 요셉 혹은 목자인지 알 수 없으며, 그림의 제목만이 예수 탄생의 거룩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짐작케 한다.
라 투르는 이 작품에서 전통적으로 아기 예수 탄생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기 예수의 후광이나 천사들의 찬양, 그리고 장엄한 건축물을 그려 넣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예수 탄생(Nativity)의 주제를 전통적인 성화의 도상(iconography) 대신에 농촌 생활의 일상을 담은 장르화로 변형시켰다. 라 투르는 카라밧지오와 유트레히트 화가들이 즐겨 썼던 뚜렷한 명암 대조법을 계승하였으나 전혀 다른 분위기로 소화하였다.
카라밧지오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격렬한 감정의 울림 대신에, 초시간적인 고요함이 작품 전면에 흐른다. 인물들의 절제된 움직임과 인체의 단순한 양감 표현, 그리고 세밀한 묘사의 억제 등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특징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고전적인 양식과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고전적인 고요함을 넘어서서 종교적인 숭고함과 그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장르화의 리얼리즘이 이루어내는 묘한 조화에 있다.
지거 쾨더 신부는 표현주의의 강렬한 기법으로 많은 성화를 그리고 있다. 떨기에서 불꽃이 피어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는 겸손의 표지로 신발을 벗고 두 손을 가린 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다. 이 작품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 앞에 있는 작은 인간의 모습을 강한 대비로 표현하였다.
램프를 바라보는 막달라 마리아 조르주 드 라 투르 1635∼45년 캔버스에 유채 128 x 94cm
인간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희생, 플로리스, 1562년, 캔버스에 유채, 165 x 230cm
프란스 플로리스의 서명이 들어간 이 작품은 매너리즘 화가들의 전형적인 우아함이 뛰어난 부드러운 스타일로 그려졌는데, 자연그대로 남김없이 복잡한 종교적인 메타포로 변형되어 나타나 있다. 밝은 색채로 입혀진 빨간 옷을 입은 세례자 요한은 앞쪽에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데, 예수는 거대한 암탉의 날개가 단 채 포도덩굴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데 그를 중심으로 성 루크와 성 마태오의 복음으로 상징된 어미 닭처럼 주변에 죄를 회개하려는 수많은 죄인이 모여있다. 이는 완벽함과 신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신도들을 나쁜 길로 이끈 그들 자신이 불쌍한 양치기였던 교황과 바리새인들 위에는 악마의 정령이 떠있고, 반대로 왼쪽 위에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천국을 향해 서 있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보수적인 구교와 프로테스탄트 신교의 경계선 위에서 인간의 진실한 믿음의 문제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성 이라리온 1455년경 제작. 137*134cm 우피지미술관 소장.
안나레나 수도원을 위하여 그린 이 그림의 앞면에 위치한 성가족의 견고한 인체 표현은 도나텔로의 조각에 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고딕적 요소가 강하다. 천사들의 취급 등은 완전히 안젤리코의 수법을 상기시킨다. 왼쪽에 무릎꿇은 노인이 성 아라리온이고 오른쪽은 막달라 마리아이다.
코레지오-아기 예수를 예배하는 성모 캔버스.유화. 81*67cm 우피츠 미술관 소장.
아기 예수를 감싼 보리짚이 광륜처럼 빛을 내어 성모의 전 모습을 밝게 비춘다. 배경은 박명으로 희부옇다. 이 명암의 미묘한 대조. 감미로운 성모의 얼굴. 모자의 두터운 애정의 교환이 풍기는 화면은 코레지오 특유의 화법이다. 그의 이러한 화법속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만테냐의 영향이 보인다.
그리스도의 세례, 코르넬리스 반 할렘, 1588년, 캔버스에 유채, 170 x 206cm
매너리즘 화가 반 할렘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그리스도의 세례>가 완성된 때는, 1588년 그의 나이가 불과 26살밖에 안되었다. 이 작품에는 인물의 과장된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매너리즘 기법이 잘 나타나있다. 즉, 세례를 받기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아카데미 풍의 누드 기법, "좌우 대칭", 그리고 동작의 과장된 표현 등이 그림 전면에 부각되어 나타난 반면, 그림의 전반적인 내용과 형식에서 제일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이 그림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세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위치와 내용으로 표현되어 있다.
뻣뻣한 손가락들, 둥글게 굽은 근육, 그리고 더러운 발바닥 등의 묘사를 반 할렘은 남김없이 자연그대로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구성의 신선함과 뜨거운 정열로 가득 찬 이 그림은 회화의 사실성을 구현했던 카라바지오를 연상하게 한다.
천국, 틴토레토, 1578∼79년, 캔버스에 유채, 143 x 362cm
이 작품은 베네치아에 있는 "팔라조 듀칼레"의 대형 회의실 벽화 작품인 <파라다이스>를 제작하기 위해 그려진 초벌 그림이며, 루브르 박물관이 1799년에 베네치아에서 입수한 컬렉션이다. 놀라운 창작력과 창의력을 가진 틴토레토는 당시에 유행하던 고전적인 우아한 회화 양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티치아노의 색채와 미켈란젤로의 소묘 기법을 자신의 회화에 도입했다. 다수의 티치아노 작품에서 강렬한 터치와 창의적인 각도로 그림의 주제를 분석하는 시도가 엿보이는데, 이 작품에서도 틴토레토의 성서 해석이 기존의 회화 방식을 벗어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
"지상 천국"을 말해주는 이 그림의 제목을 따라가면, 천국이 존재하는 곳은 하늘 위가 아니라 지상이라는 것이 틴토레토의 해석이다. 나선형으로 한 점을 향해 올라가는 배치는 공간 원근법을 극대화시켜 한 점을 향해 수많은 인물들과 구름들이 모아지는 그 소실점을 절대적 공간, 즉 신이 주관하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소실점이 위치한 주위로 신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은 틴토레토의 기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성과이다.
초벌 형태의 이 그림은 이처럼 하나의 완성된 주제를 회화 형식과 주제를 결합시켜 표현하고 있는데, 현실 세계를 벗어난 천국의 신비스런 공간이 모호하게 묘사되어 있다. 강렬한 색채가 지상과 천국의 경계를 구별짓지 못하게 하고, 겹겹이 띠를 두른 무겁게 떠 있는 구름들과 지상의 것으로 보이는 바위들, 또 그 위에 여기저기 포즈로 자리한 인간 군상들은 한층 더 이 그림을 초자연적인 세계로 이끌어간다. 강렬한 빛이 가운데로 모이게 만드는 원근법이 효과적으로 적용된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말년의 작품 <최후의 만찬>이 있다.
발 성당의 제대, 작가미상, 11세기 초, 금속
미사 집전 때 사용하던 탁자로, 이 제대의 전면부는 금으로 된 판을 원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나무로 모형을 만들었으며, 이후 이 모형의 모양이 금판에 깊이 새겨지도록 오랫동안 금판을 두드렸다. 또한 이 제대의 전면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보석(진주)을 덧붙였다.
다섯 명의 인물들이 사원의 기둥 아래 그려져 있는데, 중앙에 있는 인물이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이 인물이 가장 중요한 인물임을 나타내 준다. 이 인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축복을 내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날개로 알아볼 수 있는 세 명의 대천사와 왼쪽 끝 부분에 있는 브누아 성인 (Saint Benoit; 수도원을 창설하고 수도승들의 생활 규범을 제정하였던 성인)에게 둘러싸여 있다. 브누아 성인을 나타내는 두 가지 상징물은 수도원장임을 의미하는 아목 지팡이와 그의 책이다. 그리스도의 발 밑에는 몸을 오그린 채로 있는 아주 조그맣게 형상화된 두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앙리 2세와 그의 부인이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을 이러한 자세와 크기로 표현하도록 명령했는데, 그 이유는 비록 자신들이 왕과 왕비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위대성 앞에서는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르바빌 세 쪽 상자, 작가미상, 10세기, 상아
이 작품은 상아로 만들어진 독특한 상자로, 일단 닫히면 손상의 위험 없이 운반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상자를 열면 중앙부에 움직이는 두 개의 덮개로 둘러싸인 판이 나타난다.
비잔틴 예술가들은 상아를 귀중하게 여겼으며, 정밀한 기술을 이용하여 이 재료에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을 할 줄 알았다. 이 작품이 만들어졌던 당시에는 화려함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작품 전체에 색이 칠해져 있었다.
이 제단화에는 여러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중앙 상단부에는 성 세례자 요한과 동정녀에 둘러싸인 채 옥좌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가 그려져 있다. 이들은 하단부에 그려진 다섯 명의 사도들, 그리고 덮개에 그려진 여러 순교자들과 성 군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기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상자를 닫으면 그리스도의 영생을 상징하는 두 그루의 실편백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천국의 정원이 보이고, 또한 그 정원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축복하는 예수, 벨리니, 1460년, 패널에 유채, 58 x 46cm
템페라(색채 안료에 달걀을 용매제로 쓰는 기법)로 작업하던 벨리니는 1475년을 기점으로 유화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유채를 사용하여 색채가 풍부한 독특한 베네치아 화풍을 전개하였다. 이 작품은 1460년경 템페라로 그려진 패널화로, 1912년 루브르 박물관이 베네치아에서 구입한 소장품이다.
지오반니 벨리니는 종교적 감동을 일깨우는 주제들을 주로 그렸는데, 이 작품도 제목이 말해주듯 그리스도가 축복하는 장면을 담았다. 축복하는 장면이라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채가 흐르고 있어서 축복의 밝은 분위기를 연상하기는 힘들다. 가시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의 표정은 무덤에서 부활한 근엄한 신의 모습이 아니라, 삶에 지쳐 고통스러워하는 현세의 인간의 모습이다. 창에 찢겨진 옷과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의 상처에 흐르는 핏자국, 밝은 여명이 아닌 저무는 저녁으로 채색된 음울한 풍경은 그림 제목과는 상치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에서 인물은 단 하나 그리스도뿐이다. 저주와 고통의 현실 세계를 바라보며 이를 구원하고자 하는 인간 그리스도의 표정 속에서 절제된 비통함이 엿보인다.
그리스도가 바라보는 화면 왼쪽의 열린 공간으로 현실 세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벨리니는 좁은 화면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플랑드르 화파의 기법을 훌륭하게 응용한 것이다.
신전에서 예수를 끌어내는 상인들, 요르단스, 1650년, 캔버스에 유채, 288 x 436cm
751년에 이 거대한 작품 <신전에서 예수를 끌어내는 상인들>을 구입하게 된 루브르궁은 박물관 설립을 더욱 앞당기게 되었다. 신성한 장소에서 물질과 타락한 죄인들을 정죄하는 예수의 그림은 신앙의 복음을 훌륭하게 표현해내면서, 야콥 요르단의 이 작품은 루브르 궁을 신성한 곳으로 장식하는데 더없이 훌륭한 그림이 되었다.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화단의 주요인물이자 왕실 화가였던 나투아가 사들인 이 그림은, 안트워프에서 루벤스의 최대의 경쟁자이자 후계자인 야콥 요르단의 감동적인 힘이 느껴지는 걸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사실적으로 묘사된 인물의 감정, 화폭 가득 담긴 찬양의 메시지, 인물들의 역동적인 구성, 그리고 치밀하면서도 건축적인 표현이 한데 세련된 조화로 짜여져 있다. 또한 풍부한 질감과 밝은 색채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조각적 깊이와 교양과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면서, 바로크 회화예술의 정점으로 높이 평가받는 작품으로 통한다.
마사초 <그림자로 병자를 고치는 성 베드로> 230 x 162 cm, 1426 -27, 피렌체, 카르미네 성당
예수의 열두 사도 중에서 가장 연장자라는 이유로 늘 흰머리에 흰 수염으로 그려지는 베드로가 파란색 튜닉에 누런 색 망토를 걸치고 뒷골목을 지나가고 있다. 배경은 서민들의 주거지이다. 베드로의 뒤를 요한이 따르고, 그들 옆에는 이 사도들의 그림자만이라도 스치기를 고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빨간 모자를 쓴 중년남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맨발의 남자, 어깨를 휜히 드러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헐벗은 늙은이, 마지막으로 앙상한 다리를 드러내놓고 있는 나이 어린 앉은뱅이. 이들의 경제적, 신체적 상태는 화면 앞쪽으로 올수록 더욱 악화되어 보인다. 화가는 앞 쪽의 가여운 두 남자에게 그들의 병을 낫게 해줄 기적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마사초는 피렌체에서 40킬로미터쯤 떨어진 카스텔로 산 조반니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겨우 스물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미술사에는 요절한 천재 화가들이 많지만 마사초만큼 짧은 시간 안에 회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화가도 드물다. 당시의 그림을 보면 마치 동화책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복장의 귀족이나 성인들이 주로 등장한다. 산골 마을에서 소박하게 살아온 마사초에게 이 같은 화풍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가난과 빚 독촉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사는데 급급했던 그로서는 현실의 문제를 그려내는 것이 더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구걸하는 거지, 헐벗은 가난뱅이, 앉은뱅이 등은 그의 그림의 단골손님들이다. 마사초는 성화(聖畵)에 미천한 사람들을 등장시킨 최초의 화가이다. 신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범하기를, 누구나 신에 의해 구원 받을 수 있기를 그는 열망했는지도 모른다. [출처 고종희 - 명화로 읽는 성서]
마에스트리히의 성서 보관함, 작가미상, 11세기 초, 금속
이 작품은 독일의 마에스트리히(Maestricht) 시 성당의 귀중한 성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자이다. 당시 전사공들과 장식공들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다. 그리고 책은 제작을 위해 많은 돈이 드는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대한 책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을 찾았다. 이 상자는 성스러운 보물인 성서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자는 공을 들여 이 상자를 멋지게 장식하였다.
중앙에 있는 얇은 금판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이 표현되어 있으며, 그 테두리는 많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네 귀퉁이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복음서의 저자들의 상징물들이 그려져 있다. 마태오의 천사, 요한의 독수리, 루가의 황소, 마르코의 사자 등으로, 이 상징물들은 에나멜로 실현되었다. 금속판 위에 상징물의 형태에 따라 작은 경계 벽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유리와 금속 가루로 된 재료를 뿌렸는데, 이 재료에 열을 가하면 에나멜로 전환되었다.
그리스도의 수난 장정판, 작가미상, 10∼11세기, 상아
이 상아판은 십자가의 네 방향으로 구분되어 "그리스도 수난"의 네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성 요한과 성모 마리아가 이 수난에 참여한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그들의 시선을 통하여 그들이 그리스도와 의사 소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그리스도 매장 며칠 후인 부활의 아침에 성녀들이 무덤에 나타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성녀들은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알리는 천사를 영접하고 있다. 오른쪽 윗부분에는 하느님이 그의 아들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은 채 그를 맞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두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떠받치고 있는 듯하다. 천사의 발 밑에는 12명의 사도들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보인다. 마지막 그림은 성서의 복음서를 쓴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축복하는 장면이다.
옷의 접힌 부분, 천사 날개의 깃털, 건물의 돌 모양 등 조각가가 상아 속에 새겨 넣은 많은 양의 작고 세밀한 조각은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상아에 부조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런 종류의 판들은 성서나 기도서와 같은 책들을 장정하기 위하여 쓰였다.
수르바란-성 보나벤투라의 장례, 1629년, 캔버스에 유채, 245 x 220cm
1598년 스페인에서 출생, 1656년 생을 마감한 수르바란은 화가이자 조각가로 활동하였는데, 생애나 활동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성 보나벤투라의 장례식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성 보나벤투라는 중세 시대 알렉산더의 제자였으며,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을 연구한 신비적인 경향을 띠던 금욕주의자였다. 수르바란이 그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중세 시대 성인들을 주제로 그린 것들인데,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가운에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채가 드리워진 배경에 인물들만 빛에 의해 부각되고 있다. 특히 관에 뉘어진 죽은 보나벤투라의 하얀 성의는 시체의 색깔인 검붉은 얼굴과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어, 성자의 성스럽고 순결한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를 애도하는 신도들과 수도자들, 주교의 표정에서는 극도로 절제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수르바란이 즐겨 쓰는 인물 묘사로써, 감정의 과잉을 배제시킴으로써 내면화된 감동을 더 강력하게 전달하는 효과이다. 인물들은 빛을 받는 부분만을 드러낼 뿐 나머지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데, 이는 카라밧지오의 "테네브리즘"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죽은 성인 앞에서 취하는 경건하고 조용한 이 의식을 통해, 수르바란은 더욱 진실한 신앙심을 일깨우고 있다
수르바란-성 보나벤투라의 장례, 1629년, 캔버스에 유채, 245 x 220cm
1598년 스페인에서 출생, 1656년 생을 마감한 수르바란은 화가이자 조각가로 활동하였는데, 생애나 활동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성 보나벤투라의 장례식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성 보나벤투라는 중세 시대 알렉산더의 제자였으며,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을 연구한 신비적인 경향을 띠던 금욕주의자였다. 수르바란이 그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중세 시대 성인들을 주제로 그린 것들인데,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가운에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채가 드리워진 배경에 인물들만 빛에 의해 부각되고 있다. 특히 관에 뉘어진 죽은 보나벤투라의 하얀 성의는 시체의 색깔인 검붉은 얼굴과 극적으로 대비되고 있어, 성자의 성스럽고 순결한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를 애도하는 신도들과 수도자들, 주교의 표정에서는 극도로 절제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수르바란이 즐겨 쓰는 인물 묘사로써, 감정의 과잉을 배제시킴으로써 내면화된 감동을 더 강력하게 전달하는 효과이다. 인물들은 빛을 받는 부분만을 드러낼 뿐 나머지는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데, 이는 카라밧지오의 "테네브리즘"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죽은 성인 앞에서 취하는 경건하고 조용한 이 의식을 통해, 수르바란은 더욱 진실한 신앙심을 일깨우고 있다
미켈란젤로 Buonarroti Michelangelo(1475~1564)-聖요셉이 있는 聖家族 피렌체의 부유한 예술 애호가인 도니(A. Doni)의 혼례를 위해 그린 그림으로 속칭 <도니의 톤도(Tondo: 메 달형)>라고 한다. 여기에서 성 안나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아기 요한이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같은 주제의 성가족 그림(파리 루브르 미술관 소장)과 비교할 때 그 특징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뒤에 우뚝 솟은 성 요셉의 상에서다. 전통적인 구성에서는 요셉이 이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바닥에 앉은 성모 마리아가 중심이 되어 몸을 뒤로 젖혀 요셉이 받들고 있는 그리스도를 안아 내리려는 모습에서 주요 인물 세 사람의 보다 밀접한 구성체가 성립된다. 이와 같은 군상의 구성체를 통해 드러나는 인체의 젖히거나, 굽히거나, 기대는 포즈는 그의 조각 작품에서 즐기는 기본 포름의 경향으로, 여기서 이미 그 기미 가 드러나고 있다.
롤랭의 마리아 - 얀 반 아이크, 1435년, 패널에 유채, 66 × 62cm
얀 반 아이크 (Jan van Eyck 1395?~1441.7.9) 1422∼24년 헤이그의 바이에른후(侯) 요한의 궁정화가, 이어 25년 이래 부르고뉴공(公) 필립[善公]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한때 필립과 포르투갈의 왕녀 이사벨의 결혼을 위한 사절단과 함께 리스본에 간 일도 있다(1428∼29). 종래의 양식이나 구도에 구애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자연 그대의 리얼리즘을 주지하였으며, 냉엄하고 신비적인 분위기로 종교적 경건과 신앙을 표현하였다. 또 플랑드르에 초상화 장르를 확립하였는데, 새로운 시야와 기교는 후세 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작품의 제작 연대는 확실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그림이 그려질 당시 롤랭의 나이가 50세 였다는 기록과 작품의 양식, 작품속의 롤랭의 외모를 바탕으로 대략 1435년경에 그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작품은 부르고뉴 공국의 고위 재상이었던 롤랭이 오텅 대성당의 추기경으로 추대된 그의 아들을 위해 주문 제작하여 성당에 봉헌한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얀 반 아이크는 이 작품에서 왼쪽으로는 롤랭과 그 뒤로 수도원과 집, 그리고 포도를 수확하는 일군들을, 오른쪽에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및 수많은 교회가 밀집한 도시를 배치하고 있다. 즉 인물과 배경을 작의적으로 이분하여 현세와 천계를 한 화면 안에서 보여주려 하고 있으며, 화면 중앙의 아치형 다리를 통해 이 이원적인 두 세계를 연결하려는 상징적인 의미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성 삼위일체, 마사치오, 1427∼28년, <프레스코, 667 x 317cm>
이 벽화는 "성 삼위일체"라는 주제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하느님, 양옆에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 렌치 가(家)의 사람들로 밝혀진 봉헌자들을 그린 것이다.벽화 아래에는 묘소와 접하는 부분에 해골이 그려져 있으며, "나도 일찍이 그대와 같았노라. 이제 그대도 나와 같으리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높이가 다른 채플과 제단으로 이등분된 이 그림의 구조를 보면, 위쪽의 채플은 공간이 안으로 들어가 있고 아래 석관은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따라서 채플 뒤의 원형 아치까지 모두 합하면 최소한 여덟 겹이나 되는 복잡한 공간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그를 부축하고 있는 두 팔 벌린 하느님은 마치 실제로 매달린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 자연스런 사실감이 느껴진다. 이는 마사치오가 적용한 단축법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인물들의 의상의 색감과 주름, 옷 속에 들어 있는 신체의 각 부분들은 자연광선의 명암으로 처리하여 실제적인 공간감을 재현하였다.
이 제단화 속에 적용된 투시도의 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소실점(The Vanish Point)은 바로 그리스도의 머리 부분이다. 과학적인 선원근법을 시각적으로 성공적으로 적용한 이 작품 이후로 르네상스 회화는 혁신적인 발전을 꾀하게 되었다.
미켈란젤로 "원죄" 1509~10년 프레스코 280*5700cm 바티칸궁 시스티나 경당 천장 부분
여기서는 두 가지의 장면이 동일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중앙의 지혜의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은 나무를 감고 있는 뱀에 유혹되어 이브와 함께 나무 열매를 따려는 아담, 오른쪽에는 천사에 의하여 낙원에서 추방되는 두 남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거기에 열매를 따려는 아담의 뻗은 파로가 유혹하는 뱀의 팔, 그리고 천사의 검 (劍)을 피하려는 아담의 뻗은 팔에서 다시 양 면(面)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지선악수 나무를 이중(二重)으로 감고 있는 여자 얼굴의 뱀과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천사로 두 부분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오른편의 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는 브란카시(Brancasi) 경당의, 울면서 쫓겨나는 마사치오(Masaccio)의 같은 주제의 상을 방불케 하는 바 없지 않다. 그러나, 젊은 시절 흠모하던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은 감정이 흐르고 있다.
겐트 제단화, 얀 반 아이크, 1432년, 패널에 유채, 146 x 205.6cm
총 20개의 목판으로 구성된 제단화로서 닫혀있을 때와 열렸을 때의 두 부분으로 나뉘며, 얀 반 아이크의 형인 후베르트가 먼저 그리기 시작하여 1432년에 얀 반 아이크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중앙 상단의 대제단화에는 금관을 쓴 그리스도를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모시고 있으며, 금관 위로 '이 분이 그리스도이시며 거룩하고 선하시며 온유하시고 전능하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양옆과 하단 4개의 패널에는 각각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는 천사들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어린양의 경배'가 그려져 있다. 상단 날개를 이루는 '아담과 이브'는 원죄보다는 신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인간으로 창조되어 그려지고 있다.
공기원근법을 사용한 웅장한 풍경을 배경으로 100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과 50여 가지의 식물들이 다양한 색채로서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그 웅대한 스케일과 각 도상들이 들려주는 메타포 때문에 많은 논쟁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걸작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암굴의 성처녀 (루브르)
1453년 프로랑스에서 그리기 시작하여 1490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구성은 암브로죠드 플레디에 의해 그려져 오늘날 그것은 런던 내셔널 미술관에 있다. 이 의뢰 받았다 라고 생각되는 1625년에 폰텐브로에서 발견되었다. 구성은 빛이 화면속에서 침투해서, 엄숙한 성 처녀들이 있는 곳에 닿는다. 식물 차 지질학의 긴 연구의 끝이 아름답게 그려진 나무들과 꽃,상세하게 표현된 바위표면의 분위기는 마치 사람이 알지 도 못하는 대변동 후인것 같다.
오토 2세와 테오파노의 대관식, 작가미상, 982∼983, 상아
원형 기둥으로 받쳐진 천개(天蓋) 아래에서 그리스도가 오토 2세와 그의 아내 테오파노에게 왕관을 씌워 주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들이 황제 부부임이 알려지게 된 것은 상아판에 새겨진 라틴어 비문을 통해서이다. 황제의 발 아래에는 한 인물이 그리스도를 향해 꿇어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의 기도 내용이 그리스도의 오른쪽 다리에 희랍어 문자로 기입되어 있다.
우리는 이 기도문을 통해 이 작품의 기부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 작품을 성당에 배치하도록 명령한 사람으로, 바로 황제의 측근이었던 요한 주교이다. 이 도판은 황제의 궁정, 즉 로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구성과 주제가 비잔틴 도판의 그것들과 동일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당시 로마에서 일하던 비잔틴 출신의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기도문이 새겨진 이 도판은 당시 로마와 비잔틴을 연결해 주던관계를 증거해 주는 몇 안 되는 작품들 중 하나인 것이다. 395년에 있었던 분열에도 불구하고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은 여전히 서로마 제국에게 매혹적인 대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