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제대후 江原道 탄광에서 첫 직장생활 시작"
"호로서기 自覺 ᆢᆢᆢ 검도보급 責任感 느껴
청주로 돌아온 뒤 전공(광산과)을 살려 강원도 광산으로 가기로 했다. 강원도 황지에 있는 풍진탄광의 주임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탄광은 함백산(1, 573m)에 위치해 있었는데 맞은 편 함백산과 함께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주위경관이 풍치가 있었다. 비록 탄광이지만 산수가 좋고 공기가 맑아 심신수련의 장소로 그만 이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 생활을 하는 만큼 삶에 대한 또 다른 의욕이 솟았다. 광산에서의 근무는 일이 힘든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광부들을 관리하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전국각지의 사람들이 모인데다 워낙 힘든 일을 해서 그런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그들 중에 젊었을 때 주먹 깨나 썼던 친구들이 서너명 있었는데, 이들은 매사에 시비를 걸어왔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이들을 관리 · 감독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사회 경험이 부족하고 모든 것을 원리 원칙대로 처리하는 줄 알았던 내가 이처럼 극단적인 삶과 삶이 엮어지는 곳에서 첫 사회생활의 발을 들여 놓았다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오직 검도수련을 위해 상무관과 학교를 오가며 생활하다 곧 바로 군대에 입대해 제대한 내가 좀 처럼 복잡하거나 거칠은 세상살이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탄광근무는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 될 수가 있었다.
또한 부모님을 떠나 나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하고 책임져야하는 진정한 사회인으로 [홀로서기] 를 해야하는 첫 무대라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탄광생활에 하루 하루 익숙해 지면서 나는 지속적인 검도수련과 함께 이 지역에 검도를 보급해야 한다는 어떤 책무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먼저 소장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자 곧장 소장실로 달려 갔다. 그런데 막상 소장한테 말을 하려고보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의 제안에 이곳이 어떤 곳인데 그런 점잖은 (검도가 禮에서 시작해 禮로 끝나는 운동이라고 대 개의 사람들이 알고 있음) 운동을 누가 하겠느냐고 반문하면 난감해 질 것 같았다. <정리 李鐘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