朗州 崔氏 由來碑
朗州 崔氏는 中國제나라 때 太望公의 後裔가 崔氏姓을 가졌었고, 제나라 말 때 그 後孫의 一部가 移住하여 百濟時代(588년) 때 全羅南道靈巖郡 郡西面 聖基洞에 자리 잡아 靈巖地方의 豪族으로 繁盛하였다.
이후 新羅말에 元輔相지낸 崔昕의 아들 知夢(본명은 聰進)이 王建의 三韓 統一을 도운 高麗의 開國功臣으로 63년간 여섯 임금을 섬기다 987년(成宗6년)에 81세로 死亡하였다. 사망 후 太子太傅 또 太師로 追贈되고 諡號는 敏休라 했으며 성종 13년에 景宗의 廟廷에 配享됐다.
高麗 成宗 14년(995)에 崔知夢이 “어둠을 밝게 비치는 달빛 같이 나라를 밝게 하였다”고 하여 業績을 後世에 전하기 위하여 靈巖을 朗州라 바꿔 부르게 하고 安南都護府를 設置하였다.
그 이후 昕을 始祖로 하고 本貫을 朗州로 하는 朗州 崔氏가 誕生하였다.
朗州 崔氏의 本據地는 靈巖으로 우리 家門에서는 1970년에 靈巖 鳩林에 門中祠宇 國巖祠를 지어, 敏休公 知夢을 비롯하여 4世 安雨. 13世 鎭河. 17世 夢嵓 등 四位를 배향하여오다, 2014년에 鄕中 儒林의 再發議로 5世 雲을 追配하고 成均館과 湖南 四掌館의 薦定을 받아 國巖書院으로 昇格하였다.
羅州 왕곡면 동산사에 知夢. 安雨. 德福 三位를 寶城 靑龍齋에 配享하고 祖上의 功績과 學德을 推仰하고 있다.
朗州 崔氏는 現在 靈巖 羅州 寶城 長興 康津 光州 務安 新安 靈光 全州 井邑 高敞 咸安 仁川 富川 白翎島 等 全國에 널리 分布되어 있으며 家門의 發展은 勿論 祖國과 民族의 發展에 獻身하고 있다.
2015. 4 朗州崔氏 大宗會
낭주최씨조형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