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여행하면..... 바다와 횟집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지만 가 볼만한 문학여행 코스도 있답니다.
창간 25년에 지령이 54집이 된 서산,태안의 문학단체 <흙빛문학>에서 서산, 태안지방의 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가까운 서산과 홍성을 거처 안면도로.... 하루 일정으로 아주 적당한 코스입니다. 날씨도 화창한 5월 마지막 토요일. 흙빛문학회 식구들과 일반인들, 그리고 몇몇 학생들까지 정말 좋은 가족여행이었습니다.
먼저 서산시 문예회관 앞뜰에 세워진 '윤곤강'시인(1911년~1950년)의 시비를 찾았습니다. 윤곤강 시인은 서산 출생으로 많은 시 작품과 평론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 '나비' 라는 시가 유명합니다.
/ 비바람 험살궃게 거쳐 간 추녀 밑 /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 자랑스로울손 화려운 춤 재주도 /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
▶윤곤강 시비 ▶민태원 문학비
두번째 코스로 서산시 음암면 도로변에 세워진 '민태원' (1894~1935)문학비를 찾았습니다. 언론인었던 '민태원' 문학작품 중에서는 '청춘예찬' 이라는 수필이 유명합니다. 청춘을 그 글만큼 힘있게 예찬한 문인은 아직도 없다고 봅니다. 길가에는 늦게 핀 붉은 자태의 영산홍이 가는 봄을 아쉬워 하고 길옆 가로수는 어느새 푸른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을 호객하고 있었습니다. 회원들이 단체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도로에는 주말 나들이 차량이 꼬리를 물고 달렸습니다.
▶생가 마루에서'김옹'과 시를쓰는 '정연희'씨 ▶김좌진 생가
일행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홍성으로 향했죠. 차창으로 스쳐가는 푸르른 신록이 뭉게구름 같았습니다. 홍성은 충절의 고장입니다. 우선 '백야 김좌진'(1889~1930) 장군의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태생으로 삼천석을 하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17세 되든 해 안마당에 노비문서를 쌓아놓고 불태운 뒤 노비들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고난의 길로 스스로 걸어나가셨습니다. 그 유명한 '청산리 전투' 등 장군의 독립운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장군께서는 조선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41세의 나이로 부하의 총탄에 돌아셨죠. 자손으로는 유명한 협객'김두환' 탈랜트''김을동' '송일국' 이 있는데 자손들도 묘역과 생가, 그리고 연변에서 장군의 뜻을 기리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러네요.
▶만해 문학체험관 ▶ 생가 전경. 이팝나무꽃 활짝폈다.
'김좌진' 장군 생가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만해 한용운'(1896~1944)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홍성 출생이신 스님께서 18세에 백담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받으시고 정진하시면서 '불교유신론' 등 당대의 문필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시, 소설, 등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셨습니다. 특히 3 .1 독립운동 때는 33인 중의 한 분으로 참여하시면서 독립선언서의 내용이 유약하다며 공약 3장을 삽입하는데 노력하셨습니다. 당연히 옥고를 치르셨구요. 생존한 33인 중에 유일하게 일제에 변절하지 않은 지조가 대단한 분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님의 침묵'이 있습니다. 기념관은 생가와 함께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생가 앞뜰에는 이팝나무꽃이 한창 피어 있었습니다. 뒷산엔 시비(詩碑) 공원이 조성되어 산책하기 좋았는데 그 시비들의 작품이 '만해' 기념관과는 조금 괴리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제외하고는.......
일본의 침략을 인정하지 않으신 만해선생은 지인들이 마련해준 거처마저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보이는 남산쪽의 남향을 등지고 북향으로 지었을 만큼 지조가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같이 가신 흙빛문학 창립회원인 '김영규옹'께서는 유난히 만해선생을 흠모하시는 분입니다. 불교철학에 조예가 깊은 '김옹'께서 전해주시는 만해선생의 여러 일화를 들으며 우리는 안면도로 출발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역사와 문학이 숨쉬는 유적이 있다는 것 복 아닙니까.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