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교육청장학담당장학관 안용호
2008년 2월 25일 오전 11시에 메리어트 웨딩홀에서 평소 나를 이끌어 주시고 사랑해 주시며 협조해 주신 분들을 모시고 정년 퇴임식을 가졌다.
6.25 때 피란을 가서 2년을 놀고, 초등학교 졸업 후 2년을 놀면서 소와 말을 키우다가 고향에 있는 중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어머니께서 산후풍으로 편찮으셔서 또 1년을 놀다가 광주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광고에 갔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못 가게 되어 고민하고 있을 때, 만현 스님의 조언으로 교육 대학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교대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68년 3월 1일 모교인 월야북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으나, 2학기에 아버지께서 간경화에 걸리시는 바람에, 부모님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피하 주사와 혈관 주사를 배워서 치료한 결과 아버님은 살렸으나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부모님을 살리지 못하면 죽고 싶었다.
그런데 월야북교에서 근무한 지 6년 만에 함평군 교육청이 추천하는 모범 교사가 되어 ‘전남 교육’이라는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76년 5월 15일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로 광주학운초등학교로 전입하게 되었다. 거기서 매일 학생들의 학력을 올리기 위해서 일제 크라운 가리반에 시험문제를 만들어 압정으로 고정시킨 후 등사를 하여 교육을 시키던 때가 어제만 같다. 참 열성적이었다.
월산초등학교로 옮겨서는 ‘자석판 자료개발과 활용을 통한 학력향상’이라는 1학년 수업연구 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청계천까지 가서 자석을 사 오고 칠판 만드는 기술을 익혔으며 12만여 자료를 만들면서 부장교사가 코피까지 쏟으며 실신했던 일도 기억이 난다. 나를 위하여 수업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 남선생님의 배려는 지금까지도 서로를 존경하면서 사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4년간을 헌신한 결과 새교실 교육 잡지의 상록수 교사에 선정되어 78년 9월호 내표지를 장식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학습에 대하여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서석초등학교로 전출되어 ‘도서관 이용 교육을 통한 학력향상’이라는 연구 주제를 해결하면서 ‘독서 과정에서 지식의 습득생성’이라는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교육대학 부속초등학교로 전출되어서는 초임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절차적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방법의 학습’이라는 학습지도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연구에 매진하였다. 시업 전에 수업을 하고, 4시에 수업 협의회를 시작으로 수업에 대한 질문을 2시간이나 받고, 10분을 쉬었다가 다시 2시간의 협의를 한 후 오복식당으로 옮기는데 여기서도 수업에 관한 이야기는 이어진다. 다시 과별로 맥주집에 모여 수업 이야기를 하다가 학년별로 KBS 방송국 앞 술집에서 새벽 2시까지 협의회를 하고 집에 가서 찬물로 목욕을 한 후 다음날 제출할 수업안을 쓰는 것을 되풀이했던 일이 새롭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이론적인 배경은 너무 약했다. 그래서 나의 공부는 계속되었다.
비아초등학교 교감으로 발령을 받아서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순박한 학부모님들과 고향같은 냄새를 풍기는 주민들,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진다.
금부초등학교 교감으로 옮겨서도 나의 도서관 만들기는 계속되었다. 월산초등학교에서 수업에 도움을 주었던 남선생님을 또 만나서 좋은 교육을 펼칠 수 있었다.
송학초등학교로 교장 발령을 받고 나는 많이 놀랐다. 전체 학생 수가 1백명을 조금 넘었기 때문이다. 6학년은 겨우 19명이었다. 나는 교감선생님과 함께 또 도서관을 만들고 교육장님의 1천만원 지원금으로 도서를 사서 아침독서를 시작하였다. 교감선생님과 나는 지칠 줄 모르고 일을 했다. 독서지도도 함께 했다. 교감선생님은 모범 교원이었다. 졸업식 때는 전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학생 수가 적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시교육청의 부름을 받아 유아·특수 담당 장학관과 장학담당 장학관을 차례로 거치면서 도서관교육, 교수·학습 방법 개선, 장학의 새로운 시도, 시·도교육청평가 등에 헌신하였다. 여기서 나는 구안와사가 오는 등 건강상의 적신호를 받는다.
마지막 보금자리인 금당초등학교로 와서는 도서관 리모델링, 과학실 현대화, 문화체험실 만들기 등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독서과정에서 지식의 습득생성’이라는 주제로 독서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유비쿼터스 수업을 우리나라, 아니 세계 처음으로 실천하면서 교육활동을 펼친 결과 학교경영최우수상과 제5회 광주교육독서대상을 받기도 했다. 졸업생에게 적으나마 장학금도 모두 주었다.
뒤돌아보니 이렇게 해서 나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후회는 없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위글은 친구들이 기억할련지 모르겠으나
신성마을에 살다가 송정마을로 이사온
안용호 선생님이 교직을 맞치면서
쓴글 같아서 올립니다^^
첫댓글 부모님의 효심과 제자들의 사랑이 열정이고 놀난것은 그시절에 유비쿼터스 수업을 처음 실천하셨다니 훌륭하신 스승님이시네요. 요즘 의학과 과학이 발전하여 유비케어로
건강을 체크하는것과도 같네요.
안선생님의 부친이 우리마을에 어렵게 사는모습이 지금도 기억되는데 무척 고생하셨어여...어려운 생활고로 우리일도 마니 해주었던걸로 기억되고 명절때 시골에오시면 우리부친께도 인사차 들리던 기억이 나네여.......^&^
난 안용호 선생님을 잘 알지요 우리 동기들은 지도 하지 못 하셨는데 우리 1년 선배들과 후배들을 지도 하셨어 본인에 실력도 좋으셨지만 제자들위해 틀에 박힌 교습법이 아니고 좀더 나은 창의성 갖고 연구하는 자세로 제자들을 지도하신걸로 알고 있어요... 또 미소와 거움을 표현하면서 수업을 이끌어 가신분이라 선생님 밑에서 배운제자들은 안용호 선생님에대한 존경심이 두배 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도 안 선생님 퇴임식 소식듣고 어떤 후배가 같이 가보자고 했는데 시간이 안돼서 못갔어요.... 아마 다발 동생(신이)그 선생님께 배웠지 안나 싶네.. 울은 어떻게 이글을 구했어 궁금하네요...
우리친구들 담님은 않했던걸로 기억되지만 우리학교 다닐때 월야북교에 계셨어여...1년후배 안용순이라는 동생이 하나있었는데 그친구안테 빵도 얻어 먹었던것 같아...우연히 검색하다가 이름이 기억나서 올려봤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