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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연숙이 떠난 정맥의 능선 낙동정맥11구간
가사령(555m)-744.6m봉-776m봉-통점재(540m)-706m봉-간장치(570m)-785m봉-665m봉-585m봉-580m봉-질고개(430m 914번 지방도)-549m봉-547m봉-600m추정 봉-571m봉-549m봉-피나무재(490m 914지방도로)
이 구간은 지금까지와 달리 방향이 수시로 바뀌므로 일기가 불순해서 시야가 가릴 때는 독도에 주의 하여야할 구간이다
가사령 에서 665m봉 까지는 큰 줄기로 볼 때 북쪽으로 달려가고 이후 질고개 까지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나간다
질고개서 다시 북쪽으로 향하던 정맥의 능선은 霧抱山(무포산716m)직전의 600m 추정 봉우리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어지다가 피나무재 직전 북쪽으로 떨어진다
포항시 죽장면에서 청송지역으로 들어섬으로서 산세가 더욱 오밀조밀해지는 느낌이며 靑松이라는 지명에 어울리게 소나무들이 많다
가사령에서 절개지로 올라서도 되고 절개지 좌측의 임도를 따라 올라가도 임도 상단부 에서 정맥의 날 등과 만날 수 있다
임도를 지나 744.6m봉의 정상까지 가지 않고 정맥은 우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항상 꼭대기까지 오르는 산행습관으로 볼 때 실수하기 쉬운 곳이다
다시 776m봉을 오르고 나면 고도를 낮추게되며 622.9m봉을 내려서면 확 포장공사가 한참인 912번 지방도로상의 통점이재 에 내려선다
포항시 죽장면과 청송군 부남면의 이정표가 서있는 통점재에서 우측을 내려다보면 포장된 도로와 상옥리의 먹방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절개지 우측으로 올라서면 706m봉으로 이어지며 이후 평탄하던 능선은 서북쪽 구천저수지 쪽으로 681m봉으로 이어지는 지능선 분기점을 지나서 북동쪽으로 내려서면 사거리 소로가 나있는 간장치를 지나간다
간장치를 지나서 사면을 휘돌아 다시 785m봉을 오르는 능선위로는 융단같이 푹신한 풀밭이 계속 이어져서 눕고 가고픈 마음이 들 정도이다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785m봉을 지나면 다시 두 군데의 헬기장을 거치게되고 억새와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룬 안부를 지나 665m봉을 지나면 정맥의 능선은 방향을 서쪽으로 바꾸며 나아간다
이곳에서 질고개까지 500m대의 능선은 굴곡이 심해 초반의 700m대 능선보다 힘이 들고 665m봉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꿀 때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710m봉 능선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이후 585m봉과 산불 감시탑이 있는 580m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뚝 떨어져 내린 후 힘겹게 올라서야 한다
넓은 배추밭이 나타나면 바로 포장된 도로가 지나가는 질고개로 내려선다
질고개에서 549m봉을 오르기까지 잡목과 빽빽한 소나무 숲으로 답답하다
549m봉 꼭대기는 오르지 않고 사면을 돌아 547m봉을 지나서 잠시 서쪽으로 휘어지던 정맥의 능선은 남쪽의 화장리로 뻗은 지능선 분기점을 지나면 평탄해진다
동쪽아래 좌지동 골짜기와 임도가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이르면 북서쪽 멀리 주산재(우설령)과 그 왼쪽으로 주왕산 국립공원의 암봉이 멋지게 바라보인다
한동안 큰 나무가 없이 뙤약볕아래 억새와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을 지나면 무포산을 바라보며 무포산 직전의 600m봉을 향해 올라선다
무포산 사면의 임도를 전면으로 바라보며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내려서면 571m봉 과 549m봉 을 힘들지 않게 통과한후 북쪽의 피나무재를 향해 방향을 바꾸는데 이 즈음에서 동남쪽 내룡리로 뻗어 내린 능선을 타지 않겠금 주의해야한다
북쪽으로 방향을 꺽어 내려서면 시멘트로 일부 포장된 임도가 나타나고 임도를 건너 다시 능선을 타고 내리면 해발490m의 피나무재에 내려섬으로서 이 구간 산행은 끝난다
산행기에 앞서 우선 지난 7월1일 낙동정맥 완주를 끝내고 동해안에서 쫑 파티중 파도에 휩쓸려 이 세상을 떠난 멋진 산꾼 고 이연숙씨의 명복을 빌면서 그녀가 남긴 많은 산행기중 일부만 발췌해본다
눈덮힌 창수령이 굴복 시킬수없는 마치 거인처럼 내앞을 가로 막았다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물은 오래오래 기억속에 보존된다
물론 그때의 창수령은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이 남아있다
...<창수령 해발 칠백미터 --아아~ 나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보았다
창수령을 넘는동안의 세시간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세계의 어떤지방 어느 봉우리에서도 나느 지금의 감동을 다시 느끼지 못하리라
우리가 상정할수있는 완성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을 나는 바로 거기서 보았다
오~그 아름다워서 위대하고 아름다워서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신성하던 그 모든것들...
...아름다움은 모든 가치의 출발이며, 끝이없고, 모든 개념의 집체인 동시에 절대적 공허였다
아름다워서 진실할수있고 진실하여 아름다울 수 있다
아름다워서 선 할수있고, 선 해서 아름다울 수 있다
아름다워서 성 스러울 수 있고, 성 스러워서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않다
그러면서도 모든 가치를향해 열려있고, 모든 개념을 부여하고,수용할 수 있는것 거기에 아름다움의 위대성이 있다~~~
이번의 출발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감격은 미쳐 그 재를 벗어나기도 전에 돌연 암담한 절망으로 바뀌었다
내 모든 외형적인 방황도 불구하고 언제부터 나를 사로잡고있는 예감중의 하나는 내가 어떤 예술적인 것--
아름다움의 창조와 관련이 있는 삶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였다
입으로야 무어라 말하든 아름다움은 내가 마지막까지 단안 하기를 주저했던 가치였다
그런데 그 감격에 뒤이어 돌연히 나를 사로잡은 아름다움의 또다른 측면은 그것이 어떤 신진적인것, 인간은 본질적으로 도달이 불가능한 하나의 완전성이라는 것이였다
인간은 한 외소한 피사체 또는 지극히 순간적인 인식 주체에 불과하며,
그가 하는 창조라는것도 기껏해야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모사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예감하는 삶의 형태는 처음부터 불가능을 향해 출발하는 셈이였다
그런 삶을 채워가야 한다는것은 그대의 나에게는 참을수 없을만큼 어리석고 무모해 보였다
그런 창수령 자래목이 다 얼른 가보자...
서둘러 떠나는 길에는 밟히는 눈도 없다
왼쪽으로 길은 휘어진다
-------- ------ 등등
(낙동정맥 구간의 산행기 일부를 발췌한 것임)
사람의 몸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니,
산다는것은 소모적인 것이니...
장욱진의 말 대로라면 그의 생애가 그러 했듯이 나는 평생 산 으로 살게될까?
산 은 나의 일이고,유식이 되었으니까?
산은 내게서 무엇일까?
그 산에서 나는 어떤 정수를 뽑아내어 내 삶을 단순하게 가꾸어 갈수 있을까?
(금북정맥 산행기 중에서 발췌)
어제 우리 거인산악회의 금북정맥 제 13구간은 비가 많이 내린 탓에 6km 남짓도 못걷고 (너무나 다행스럽게) 산행을 그만 두었답니다
저같은 경우는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우중산행을 한 터라 빗 속을 걸어가는 마음이 짜증으로 일관되었는데 대장님의 결정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서울에 돌아왔답니다
일찍 돌아와 빨래며 이런 따위의 일을 하려고 했는데 급작스럽게 저녁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그 모든 일을 못하고
아침에 눈 딱 감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지요
우중산행은 너무 싫더라구요
기록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위의 전망 그리고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의 집요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속박된 걸음 우중산행은 모든 기쁨을 앗아가버리는 것 같아요
대간을 할 때만 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그날이 되면 죽어도 대간에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우중산행이든 설산산행이든 가리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우중산행은 정말 싫어요
그래서 당분간 저는 장마가 끝날 때까지는 혼자 산행을 접을까 합니다
빗속에 가사령까지 가시느라 고생 많으셨겠네요
오늘은 따뜻한, 어제의 우중산행에서 느꼈을 모든 한기를 앗아가버릴 따뜻한 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만 총총
4334년 6월 25일 달의날에 해이 드림
(그녀에게서 마지막으로 받은 메일 원문이다
낙동정맥 블랫재-가사령의 10구간을 끝낸 다음날(6월25일)이다)
내가 그녀를 알았던것은 불과 몆달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얼굴도 모른다
인터넷상에 산에 대한 글을 몇 번 올렸는 데 나의 메일주소를 알고 우연히 그녀에게서 메일이 날아왔고 산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사이버상에서 글을 몇 번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녀는 거인산악회의 보배 같은 존재 였으며 많은 대간과 정맥꾼들이 그녀의 해맑은 미소와 산에 대한 열정 때문에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가 올린 산행기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산에 대한 전문지식 거기에다가 대단한 문학적 소질을 담아 올리니 산에빠진 왠만한 산꾼들이라면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수 없었던것같다
거기에 비하면 나의 산행기는 어린 아이들 기행문 수준에 불과하다
그녀의 지인인 누가 그랬듯이 너무 할것도 많고 바쁘게 살다보니 육신의 꺼풀이 너무 무거웠나 보다
그래서 가볍게 새털같이 하늘로 올라간 것 일거다
그녀가 너무 좋아했던 산 들을 아주 높은곳에서 내려다 볼수있게 말이다
그녀의 육신은 항상 그녀를 염려하며 하루에도 몆번씩 전화를 하던 그녀의 아버지와 가족들이있는 한라산의 품으로 날아갔고
그녀는 한라와 백두를 날아다닐것이고 그녀를 알고있던 많은 산꾼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것이다
아마 당분간은 그녀같은 산꾼을 만나볼수 없을것이다
고 이연숙씨의 명복을 빈다
- 산행 후기 -
2001.7.8(일) 날씨 : 맑 음(무지무지한 햇볃 내려쬠)
낙동정맥 11구간
가사령-744.6m봉-통점재-706m봉-간장치-785m봉-665m봉-585m봉-580m봉-질고개(914지방도로)-549m봉-547m봉-600m추정 봉-549m봉-임도-피나무재(914번 지방도로)
도상거리 : 20km
소요시간 : 9시간48분
참가인원 : 왕초.팔쉐이.늦도날.나졎소.나광인.순지니.구상사.고르비.진가락 9명
한 여름의 뙤약볕을 조금이나마 피해 보려고 새벽 3시부터 하려든 산행은 이번에도 무산되고 말았다
정말이지 다음부터라도 모두들 시간을 지켜서 21시에는 서울을 떠났으면 좋겠다
또 한가지...
출발 모임 전에 술을 마시지 말고 차안에서 마시든지,
차안에서 마시지 말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지,
산행 시작전의 컨디션은 대체적으로 엉망이다
오랫만에 구상사,(민수)가 참가했다
직장관계로 자주 산행을 하지 못하는 민수는 참여에 뜻을 두어야 할 것이고,
실제 질고개에서 하산하고 말았다
또 낙동4구간부터 참여하기 시작한 막내 진가락은 차차 정맥의 날등 타기에 재미를 붙인것 같다
그에 반해 작년 한중기맥 종주부터 참여하기 시작한 두병반은 이제 낙동종주및 정맥 종주에는 참여치 않을 모양이다
결혼 안한 젊은 여자들은 이래서 산행 무리들 속에서 깊은 정 을 주면 안된다
04시22분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대는 가사령을 출발한다
전면의 가파른 절개지를 올라서니 산길은 잘 뚫려있고 잠시후 내려서니 가사령 에서 올라온 임도와 만난다
전면의 능선으로 붙으며 서서히 오름길이 이어진다
지난번 구간부터 아파 왔던 왼쪽 다리는 2주일 내내 상태가 좋지 않더니만 산행 시작부터 아파오기 시작한다
산행을 많이 해서 중반부터 아픈게 아니라 시작부터 아파 오니 도상거리 20km를 어떻게 주파할지 암담하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미련 곰탱이(?)같이 그런 다리를 하고도 피나무재까지 주파했으니 미치긴 단단이 미쳐버린 것 같다
서쪽으로 올라서던 능선은 744.6m봉 정상을 앞두고 북동쪽으로 휘어지면서 내려서게 된다(04시59분)
이 지점에서 지도를 보지 않는다면 744.6m봉 을 향해 올라설 수 있는 우를 범 할수있다
산은 항상 높은 곳 을 향해 오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05시18분
폐 무덤이 있는 지점을 통과한다
사실 낙동정맥을 시작하면서 당고개 이후 구간서부터는 폐 무덤을 자주 만난다
그러나 일일이 기록하자니 수도 없이 멈춰야 하기에 특정한곳이 아니면 생략한다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오름길이 이어지고
05시44분
776m봉에 올라선 후 다시 내리막으로 떨어진다
방향은 북동쪽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폐 무덤을 지나니 능선은 평탄하게 지나 가다가 내려선다
06시05분
622.9m봉 능선 분기점에서 북쪽으로 떨어져 내린다
06시10분
청송군 과 포항시죽장면 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있는 통점재에 내려선다
도로 확 포장 공사를 하는지 굴삭기 와 불도저가 세워져있고 온통 파헤쳐 있다
동남쪽 아래를 내려다보니 먹방리 마을이 포장된 도로와 함께 내려다보인다
다리가 불편하니까 일행들과 같이 걷게되는데 팔쉐이 형 만 일찌감치 내달려가 기척도 보이지 않는다
팔쉐이~팔쉐이 우리들이 돌보지 않으면 누가 반겨줄 것인가?
절개지를 올라서 오름길이 이어진다
06시36분
706m봉이다
706m봉 부터는 죽죽 잘 자란 소나무들이 보기가 좋다
이런 소나무는 오늘구간 내내 이어진다
靑松이란 지명에 걸 맞는 것 같다
706m봉에서 서쪽아래의 통점리는 짇은 수림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능선의 방향은 다시 동쪽으로 바뀌면서 내려선다
06시53분
740m 로 추정된 봉우리를 지나는데 북서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은 681m봉을 거쳐서 구천저수지 윗쪽까지 뻗은 능선인 것 같다
07시12분
양쪽으로 골짜기 소로가 보이는 해발570m의 간장치를 지나간다
간장치를 지나면 사면으로 휘돌아가며 능선은 동쪽으로 휘어져간다
07시23분
무명 봉우리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며 33분 서서히 오름길이 이어진다
07시44분
785m봉 의 전위봉에서 아침식사를 시작한다
팔쉐이 형은 어디까지 달려갔는지 기척도 없다
하기야 항상 주워 온 자식처럼 혼자 쉬고, 혼자 욕심껏 먹고 그런 사람 아닌가?
소주 한잔 반주했으면 좋겠는데 맥주밖에 없으니...라는 왕초의 중얼거림에 고르비가 당귀주를 내어놓고...한잔씩 반주를 마신다
08시17분
식사를 끝내고 785m봉을 향해 오르는 능선상 에는 융단같은 푹신한 풀들이 누워 가고픈 충동을 느끼게 하고 한참을 이어진다
아직도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대 산행하기는 아주좋다
그러나 태양은 강렬하게 나무 가지 사이로 내려쬐는 것이 보인다
08시30분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785m봉을 오르고 다시 내려선다
08시40분 다시 헬기장을 지나가고 그리고 내려선다
08시48분 또 다시 헬기장을 지나 내려선후 평탄하게 달리던 능선은
09시06분 억새와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룬 큰나무가 없는곳을 지나간다
지도상 왼쪽 깊은 계곡아래 정유마을이 위치한 능선 위다
억새안부 이후 다시 오름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09시13분 665m봉 전위봉에 올라서 잠시 숨을 고른다
좌측 서쪽 전면에 높고 긴 능선이 보여서 그곳이 질고개쪽으로 이어진 능선인줄 알고 665m봉에 이르러 그쪽으로 방향을 잡으려니 족적이 거의없고 오히려 북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의 족적이 뚜렷하다
지도를 꺼내서보니 서남쪽 710m봉 을 거쳐서 갈미마을로 뻗어 내린 능선이다
북쪽으로 한참을 내려서던 능선은
09시30분
서쪽으로 방향을 틀며 계속 고도를 떨어트린다
남쪽(좌측)골짜기 건너에는 조금 전 가려고 했던 710m봉 능선의 북사면이 높은 벽처럼 바라보인다
09시50분
585m봉을 오르기 위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애당초 665m봉에서 서쪽으로 꺽어지는 질고개 까지의 구간이 편안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히려 초반구간보다 오르내림이 심하다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던 질고개는 나타나지 않고 지루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10시44분
산불 감시탑이 있는 580m봉에 올라서니 뙤약볃이 뜨겁다
그렇게 시원하게 불어대던 바람은 이미 자 버린지 오래다
땀을 닦던 스카프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 질고개까지 내려가는 능선일 것이다
배낭안에서 요란한 진동이 느껴진다
전화를 받으니 팔쉐이 형이 었는데 질고개에 도착했나보다
길을 건너서 올라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정말이지 같이 정맥을 산행한다는 것이, 우리 팀원 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지도를 나누어줘야 가져가길 하나,
하기야 지도를 줘봐야 지도를 볼줄도 모르고 오늘 우리가 산행이 끝나는 지점이 어딘지도 모르고 산행을 한다
단순히 산길을 많이 걷는데 의미를 두려면 무엇하러 밤새워 멀리까지 와서 산행을 하는가?
북한산을 대 여섯번 왕복하면 되지 않느냐고 핀잔을 줘보지만 소용없다
모든 사물이 부정적이고, 모든 상대를 일단 적대적으로 대하는 이 양반을 작년에 싫은 소리를 하고 몇 달간 산행에 참여하지 않은 적이 있다
몇 달 지나서 그동안 반성도 많이 했겠지 싶고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불러 들였더니 역시 제 버릇 개 못 주나보다
10시53분
좌측으로 배추밭이 보이고 곧 이어 포장된 도로인 질고개로 내려섰다
바람 한점 없는 뙤약볃에 도로는 이글거려서 조금 올라서서 휴식을 취하려고 건너편 절개지위로 올라서서 오름길을 시작하며 쉴곳을 찾으려니 잔 소나무와 잡목이 빽빽해서 쉴 곳이 마땅찮다
숨은 차고 다리는 뻐근하고 목도 마르고 빨리 쉴 곳을 찾으려해도 계속 그렇다
11시
결국은 아무곳에서나 쉬자며 퍼질러 않고 간식과 식수를 들이키며 한참을 쉬어간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몸에서 땀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산하면 빨리 계곡에서 목욕부터 해야지~~모두가 같은 생각이다
조금 있으니 늦도날 여사께서 합류했고 잠시 후 왕초와 나졎소 형은 지나쳐 더 윗 쪽에 자리를 펴려나보다
그렇게 30분을 소비하며 11시30분 휴식지를 출발한다
아이구~
한 5분만 더 올라갔더라면 덜 답답한 곳에서 휴식을 취했을텐데...
그곳에는 왕초와 나졎소 형님이 아주 두 다리를 뻗고 휴식을 취하고있다
다리의 통증은 점점 더해 오면서 왼쪽 다리를 움직일때는 거의 뻗뻗하게 움직인다
항상 앞서 나가다가 같이 걸으니 온갖 억지 이야기를 해대며 나를 놀려댄다
11시43분
549m봉 은 직접 오르지 않고 사면으로 돌아 나간다
산행 중반 이후가 되면 이렇게 사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몆번의 자그마한 오르내림이 있었다
12시00분
547m봉 인근에서 또 다시 10분간 휴식이다
더위에 숨이 막히고 허기가 졌기 때문이다
12시33분
헬기장을 지나간다
37분 깃대봉이 서있는 헬기장을 지나간다
12시49분 에서 53분 사이에 싸리나무와 억새가 무성한 분지 지형을 지나간다
동쪽아래는 임도가 보이고 민가가 내려다보이는데 좌지동 마을인 것 같다
이 즈음 부터는 동북쪽 멀리 주산재(우설령)이 바라보이고 그 왼쪽으로 주왕산의 일부가 바라보인다
바로 다음 지나갈 12구간의 일부 다
큰 나무가 없어 쨍쨍 내려쬐는 햇볕을 받으며 온 몸에 상처가 나는 억새 싸리지역을 지나가면 능선은 서서히 오름길이 이어진다
바로 무포산 직전의 600m봉 오름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3시30분
600m봉 에 이르러 북쪽 전면의 무포산을 버리고 동쪽으로 내려선다
이제 오늘 구간의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13시35분
571m봉을 쉽게 통과하고 산길은 내려선다
땀은 온몸을 적시고 거의 10시간여를 걸어온터라 피로에 지친 상태인데 또 배낭속이 부르르 떨리며 전화벨이 울린다
보나마나 팔쉐이 형인 것 같아 전화를 받지 않고 순지니 더러
"아마 너 한테 전화가 울릴걸" 하자말자 순지니의 전화벨 소리 다
순지니 역시 받지 않으니 또 나에게 울린다
그리고 또 순지니의 전화가...
젠장 왕초나 나졎소 형 한테는 전화 할줄도 모르나...
결국은 순지니가 받고 나서 뭐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곧 이어 내 전화벨이 또 울린다
순지니가 전화를 받았으니 다른 사람이거니 하며 전화를 받으니 또 팔쉐이 형이다
시멘트 도로가 나타났는데 여기가 끝나는 지점이냐고...
"아이구~ 미치겠네! 형님 지금 뭔 소리 한다요
형님이나 나나 초행길인데 내가 시멘트길인지 아스팔트 길인지 어찌 안다요"
환장할 노릇이다
12시40분
저 아래 정말로 일부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가 나타난다
어이구 정말 내가 미쳐
이런 임도를 보고 전화를 했단 말인가?
어쨋건 팔쉐이 형은 제대로 갔나보다
임도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올라붙으니 오름길이고
12시53분
549m추정 봉우리를 지나면서 방향은 북쪽으로 꺽어지며 내려간다
귓가에 차량의 소음이 들리는 것 이 피나무재가 가까워 졌다는 증거 다
그동안 늦도날 여사와 순지니 등 모두가 나를 앞질러 가고 말았다
정말이지 아픈 다리를 끌고 미친 짓거리를 한 오늘 하루다
14시10분
차량이 지나가는 피나무재 도착으로 오늘 산행이 끝났다
9시간 48분이 소요되었다
피나무재 에는 어렵쇼! 차가운 병 맥주와 만두가 쌓여있다
아이구~
팔쉐이 형이 산행하면서 또 죽장면의 그녀(?)에게 몇 번의 전화를 해 댔나보다
어! 그런데 팔쉐이 와 그녀는 어디에...?
늦도날 여사 왈 "돗자리 가지고 저 너머에 잠시 갔어"
우와~ 엄청나게 에로틱 한 야그를 늦도날 여사께서...
팔쉐이 형이 오자말자 차량을 이동한다
빨리 계곡을 찾아 땀 냄새를 없애야한다
피나무재를 내려서서 주왕산의 절골쪽으로 이동하다가 으슥한 계곡에서 발가벗고(?) 목간을 한다
물론 늦도날 여사께서는 상류의 독탕(?)에서 즐기고 말이다
첫댓글 오늘 밤에 길을 떠나면 갈 구간이라 산행기를 참고로 보려고 들어왔습니다.고이연숙씨를 저는 구름나그네가 쓴 산행기에서 보지도 못한 연인이라고 하도 울어대서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제주도 사람에 아리따운 여인이라고요~~광인님의 글을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