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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22-24자 삼각등산동우회 지리산
산행기
07.10.22일 아침 용산역 대합실에는 이희섭씨 고중경씨 k씨 윤순섭씨가 이미 도착해 있었고 마지막으로 송기오씨가 도착해서 용산역 탑승자는 모두 5명이 되었다.수원역에서 신창호씨 정형기씨가 탑승할 예정이니 금번 지라산 산행자는 모두 7명 뿐이었다.우리 일행이 탄 무궁화호 열차는 06시 50분에 용산역 구내를 빠져 나갔다.
자욱하게 낀 아침 안개속을 질주하는 열차 차창밖으로 황금빛 논과 가을걷이가 끝난 논들이 번갈아 전개되는 가을 풍경 모습도 장관이었다.
논산-강경-함열-익산-전주간을 달리는 철도변의 끝없는 들녘에는 가을걷이가 거의 끝난 펀펀한 대평원의 지평선 뿐이었다.이렇게 기름진 들녘을 가진 백제가 신라에게 삼국통일의 주도권을 넘겨줘야 했던 이유가 뭘가 하고 송기오씨는 깊은 상념에 잠기면서 풍요로움은 자칫 사치와 낭비로 흐르는 우을 범하는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보기도 했다.
전라선 남원역에 오전 11시경에 도착해서 시내버스 편으로 남원시내로 들어가 광한루에 들렸다가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월매네 추어탕집에서 일행은 추어탕으로 점심을 맛있게 잘 먹었다.점심후에는 남원에서 13시30분발 남원시 인월면행 시외버스를 탔는데 버스는 남원에서 장수로 이어지는 19번 국도를 타고 10분쯤 달리다가 좌회전해서 경남 함양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를 타고 달려서 인월면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14시경이었다.
남원시 인월면에서 14시20분에 출발하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행 버스를 타고 백무동에 도착하니 14시50분경이 되었다.백무동에 도착해 보니 백무동과 동서울간 직통버스도 많이 있었다.
백무동 “지리산 펜션”에 여장을 푼 일행은 삶은 낙지와 홍어회를 꺼내 놓고 더덕주와 복분자 술로 1차 술파티를 즐긴 뒤 백무동 골짜기의 맑은 공기속에서 산책을 즐겼는데 금년들어 백무동 골짜기에는 감나무마다 감들이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렸다.주황색 빛깔을 띤 감이 얼마나 많이 매달려있는지 무척 풍성한 느낌을 주었다.
백무동 골짜기에서 산책까지 마친 일행은 투숙한 “지리산 펜션”베란다로 나와 버너에 불을 지피고 삼겹살을 구워서 2차 소주 파티를 가진 뒤 북어국을 끓여서 서울에서 사온 김밥과 라면 및 밥을 지어 저녁식사까지 마쳤다.커피를 끓여 한 잔씩 마시고 커다란 배를 깎아서 디저트까지 먹고나니 시간은 겨우 저녁 19시30분이었다.
시간이 너무 일러 일행들 사이에서 셧다판을 한판 벌리자는 여론이 압도적이라 셧다판도 벌렸다.100원 200원 300원까지 섯다가 끝발을 공개해서 끝발이 제일 센 사람이 판돈을 싹쓰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이희섭씨가 3.8광땅을 두 번이나 잡는 행운을 누렸지만 송기오씨는 2000원을 잃었다.이렇게 셧다놀이로 밤 22시까지 시간을 보낸뒤 일행은 취침에 들어갔다.
10.23일 새벽 03시부터 잠에서 깬 일행들은 세면도 하고 밥도 짓느라고 도란도란했다.펜션내 화장실에 설치된 샤워시설은 그 기능이 아주 훌륭했다.수압이 굉장히 세고 뜨거운 물이 콸콸 흘러나와 찝찝한 몸과 머리까지 시원스럽게 씻어내면서 아침 샤워를 마쳤다.북어국으로 아침 식사를 끝낸 뒤 커피까지 끓여서 한 잔씩 마시고 나니 시간은 새벽 04시30분이었다.
등산 장비와 배낭을 매고“지리산 펜션”밖으로 나오니 하늘에는 별이 촘촘히 빛나고 주변은 적막속에 잠든 고요한 새벽이었다.일행이 후래시를 켠 채 백무동 숙소를 출발한 시간은 04시41분이었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유난히 밝아 보이는 그런 새벽이었다.일행들은 가파른 등산로를 약 10분쯤 걷다가 덮다고 자켓을 벗기도 했고 일행중 모씨가 길바닥에다 소변을 좀 보겠다고 후래시 불을 꺼달라고 요청하자 일행들은 불을 끄고 소변을 보게한 뒤 다시 출발하기도 했다.
우리 일행이 백무동 출발시 서울에서 온 어떤 등산객을 만났는데 그분은 동서울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심야버스로 백무동에 도착하니 새벽 03시였는데 매표소 근방에서 산행꾼들을 기다렸다가 05시경에 통과하는 우리 일행과 합류해서 산행을 같이 했다. 이 분은 천왕봉을 정복한 뒤 중산리로 하산해서 다시 동서울행 버스로 상경하는 당일치기 산행을 시도하는 그런 등산객이었다.(서울시 동작구 대방동 508번지 대방1차 e편한 세상 아파트 101동 1404호 최방호씨/019-223-0022)
일행은 06시경에 등산로상 첫 번째 거점인 해발 900미터의 “하동바위”를 통과했다.06시15분 경부터는 등산로상의 돌길이 육안으로 식별돼 플래시 불을 끄고 산행을 계속했다.06시40분에는 해발 1125미터의 두 번째 거점인“참샘”을 통과했으며 07시15분에 일행은 해발 1312미터의 세 번째 거점인 “소지봉”을 통과했다.소지봉부터는 1미터 크기의 산죽 나무 숲 사이로 편편하게 뚫린 흙 길이어는데 이 길을 걸으니 마치 동네 산책로를 걷는 것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그런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산행중 신창호 선배님이 너무 힘들어 하자 신창호 선배님 배낭을 윤순섭 선배 배낭과 한데로 합쳐서 그 합쳐진 배낭을 윤순섭 선배와 고중경씨가 교대로 매고 산행을 계속했다.산행중 신창호 선배님은 “언제 또 내가 지리산을 오겠어? ”라고 말함으로써 등산의 귀재인 신창호 선배님도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일행은 08시05분에 해발 1460미터의 네 번째 거점인“망바위”을 통과했고 09시13분에 다섯 번째 거점인 함양군과 산청군 경계선인 해발 1653미터의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했다.“장터목”은 지리산 능선상에 있는 약100평정도 크기의 마당인데 북쪽에는 대피소 건물이 서 있고 이 대피소 건물 남쪽으로는 약20평 정도의 널다란 목재 탁자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어 피곤해 지친 등산객들은 이 탁자위에 앉아 쉬기도 하고 눕기도 했다.그 나머지 공간은 헬기 등이 이륙할 수 있는 커다란 마당이었다.이렇게 커다란 마당에서 옛날 산청군 시천면 사람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은 서로 만나 물물교환을 했던 장터였다는 기록을 이곳 안내판에서 볼 수가 있었다.
일행은 09시50분에 해발 1808미터의 다섯 번째 거점인 제석봉에 도착했는데 지리산 천왕봉이 바로 건너편에 서 있어서 금방 천왕봉에 도착할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했다.10시20분경에는 해발 1814미터의 일곱 번째 거점인 천왕봉 통천문을 통과했다.통천문은 암벽 통로를 철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는 그런 곳이었다.
10시43분에 일행은 드디어 여덟 번째 거점인 해발 1915미터의 지리산 천왕봉에 도착했는데 서남쪽의 지리산 주능선과 산청군 시천면쪽 및 함양군 마천면쪽 모두가 짙은 농무속에 덮여 있어 시야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없는 아쉬운 정상 정복이 되고 말았다.백무동에서 04시41분에 출발해서 천왕봉에는 10시 43분에 안착했으니 약 6시간 정도 걸린 산행이었다.
일행은 지리산 천왕봉이라는 표지석과 함께 단체 및 개인별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천왕봉 정상 남쪽 양지바른 곳에서 마른 멜치를 안주삼아 정상주 한 잔씩을 마시고 오이도 한 개씩 나눠 먹었는데 그 분위기가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이렇게 정상주 파티를 마친 일행은 중산리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는데 천왕봉 약 8부 능선상에 있는 “천왕샘”이라는 아홉 번째 거점을 11시24분 경에 통과했다.천왕샘 샘물은 그야말로 병아리 눈물만큼씩 솟아났는데 그래도 이 샘물이 진주 남강의 발원지라는 안내문이 있으니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일행이 중산리쪽으로 열 번째 거점인 해발 1700미터의 “개선문”을 통과한 시간은 11시42분이었고 중산리쪽 열 한 번째 거점인 해발 1450미터의“범계사”와 해발 1335미터의 “로타리 대피소”는 같은 경내에 위치해 있는데 일행이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12시30분이었다.이곳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범계사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빨치산 부대의 지휘본부가 있었던 곳이며 1951년8월에는 이현상 부대인 남부군과 인민군 경남도당 불꽃사단이 합심해 빨치산 부대활동이 가장 왕성했으나 아군 수도사단의 역유격전으로 당시 공비들이 궤멸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로타리 대피소 야외탁자에서 일행은 백무동을 출발하면서 싸온 아침밥을 라면과 섞어 끓여 복숭아술과 소주를 반주로 해서 점심을 먹으니 그 맛이 또한 일품이었다.점심을 마치고 다시 하산을 시작한 시간은 13시30분 경이었고 중산리쪽 열 두 번째 거점인 해발 1068미터의 “망바위”를 통과한 시간은 13시55분이었다.이 “망바위”라는 거점은 백무동에서 천왕봉으로 올라오는 함양군 쪽에도 있는 거점이지만 반대로 천왕봉에서 중산리쪽으로 내려가는 산청군 쪽의 등산로 상에도 있는 거점이니 지리산 등산로 상에는 “망바위”라는 거점이 두 개가 있는 셈이었다.
일행이 중산리쪽 열 세 번째 거점인 해발 800미터의“칼바위”를 통과한 시간은 14시46분이었다.안내표지판이나 안내책자에는 “칼바위”라는 거점이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 “칼바위”라는 바위에는 이것이 “칼바위”라는 표지판이 없어서 하산후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서 그 사유를 물었더니 “칼바위”라는 표지판을 붙여 놓으니 등산객들이 그 “칼바위”를 오르다가 낙반사고를 내기 때문에 “칼바위”표지판을 치웠다고 해서 일행은 다시 부착해 놓을 것을 건의했다.
중산리쪽 열 네 번째의 마지막 거점인 해발 620미터의 중산리에 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15시22분이었으니 04시41분에 백무동을 출발해서 중산리까지 걸린 시간은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모두 10시간41분이 소요됐으니 약 11시간 정도를 산행한 셈이었다.
백무동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이어지는 주요 등산로상의 거점으로는 백무동(04시41분출발)-하동바위(06시통과)-참샘(06시40분통과)-소지봉(07시15분통과)-망바위(08시05분통과)-장터목(09시13분통과)-제석봉(0950분통과)-통천문(10시20분통과)-천왕봉(10시43분)-천왕샘(11시24분통과)-개선문(11시42분통과)-범계사와 로타리 대피소(12시30분통과)-망바위(13시55분통과)-칼바위(14시46분통과)-중산리(15시22분통과)순인데 가장 힘든 구간은 제석봉에서 천왕봉까지의 구간이 아닌가 싶었다.힘도 빠진 상태에서 기온도 낮고 위험 구간도 많은 곳이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백무동에서 장터목 대피소 간에 있는 함양군 관내의 소지봉에서 망바위까지의 편편한 산죽나무 숲길은 정말 인상적이고 포근한 동네 산책길 같은 곳이었다.
지리산 단풍은 북쪽인 함양군 마천면 관내 능선은 이제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지만 남쪽인 산청군 시천면 관내 능선은 아직도 푸른 빛이 싱싱했다.지리산은 거의 모든 영역이 산죽나무 군락지였다.그러나 환경조건이 잘 맞는 곳은 1미터 이상 크기의 산죽숲이 온 산정을 뒤덮고 있고 그 위로 온갖 잡목들이 우거져 있지만 환경조건이 잘 맞지 않는 곳은 10센티미터 미만의 산죽숲이 깔리고 그 위로 온갖 잡목들이 우거진 곳이 바로 지리산인 것 같았다.
일행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 16시05분에 출발하는 진주행 버스를 타고 진주시내에 도착해 여관에 여장을 풀고 작년처럼 남강변에 있는 장어구이집에 들어가 장어구이를 먹었다. 양념으로 처리한 장어구이 토막과 생강 썰은 것 및 마늘을 상치와 들깨잎으로 감싸서 입안에 넣고 씹으니 그 맛이 또한 일품이었다.식당 창밖으로는 야간 조명빛을 받은 남강교 불빛이 남강물에 반사되어 분위기가 한층더 생동감 있어 보였고 장어구이 맛도 더 배가되는 것 같았다.이 식당에서 제공한 시레기국 맛도 별미였다.
장어구이로 저녁식사을 마친 일행은 여관으로 돌아와 윤순섭씨가 사온 맥주을 마시면서 셧다판을 벌였는데 송기오씨는 백무동 셧다판에서처럼 여기서도 첫 번째 설 때 100원,두 번째 설 때는 200원 세 번째 설 때는 300원씩해서 모두 600원을 베팅치는 줄 알고 100원 200원 300원을 내 놓으니 이상하게 생각한 이희섭씨가 매 번 설 때마다 100원씩만 베팅해서 모두 300원만 베팅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그것을 잘 못 알았던 송기오씨는 백무동 셧다판에서부터 지금까지 세 번 서는데 100원 100원 100원씩 베팅해서 300원을 베팅한 것이 아니고 100원 200원 300원씩 베팅해서 모두 600원을 베팅했으니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을 했는가 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진주 시내 여관에서 하룻밤을 샌 일행은 이튿날 아침 남강변 식당에서 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그 맛도 괜찮았다.식사를 마친 일행은 여관으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진주역으로 나가 09시18분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상경길에 올랐다.서울에 도착한 시간이 16시25분이니 모두 7시간 7분이 걸린 장시간 여행이 짜증스런면도 있었지만 열차속에서 정형기씨 이희섭씨 신창호씨 순으로 계속해서 맥주와 양주를 사서 일행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니 배가 불러 죽을 지경이된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그리고 진주에서 진영을 지나 삼랑진 밀양 청도까지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주황빛을 띤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숲들은 여행객들의 마음을 한없이 풍성하게 해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