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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향초
김 덕 호
“고생했어. 우리 엄마 좀 별났지? 억센 양반이라 힘들었을 거야.
욕쟁이만 아니었어도 대접 받았을 텐데.”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빈소 가까이서 지키고 있던
친구 누나가 쫓아 나오며 두 손을 꼭 잡고 나지막이 말을 꺼쨈�.
“어머니에겐 그게 자존심이였잖아요,
그러니까 구순이 넘도록 장수하셨지요.”
십여 년간 친구 어머니를 치료하면서 지켜봐왔던 배태기 원장이 대답했다.
“동생이 배 원장에게 늘 신세만 진다고 했어..”
멀리 출가한 후로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누나와 그날따라 따뜻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누나는 조문객을 바쁘게 맞고 있는 동생들과 배식원들을 다독이며
맏딸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빈소를 안내받아 고인의 영정을 보는 순간,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혼자 몸으로 어린 자식들을 키우며 기죽지 않고 살았어.”
영정 속 얼굴은 뚝심과 강인함으로 꽉 차있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한 치의 행보도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병상생활에서 욕을 잘하고 고집을 부려 담당 직원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고 했지만,
이것까지도 받아줄 수가 있어야 참 의료인의 자세라고 배태기 원장은 직원들을 다독거렸었다.
임종 며칠 전, 병상에서 죽음을 준비한 듯 주치의인 배 원장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난, 혼자서 자식 여섯을 키우다 보니 악만 남았어.
핏덩이인 쌍둥이를 안고 전쟁터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죽기로 각오 했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들을 먹여 살려야 된다는 집념에 눈에 뵈는 게 없었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 품도 팔고 보따리 장사도 하고.
안 해본 게 없었지. 그렇게 자식들을 키웠어.”
친구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강인한 모성애를 보여주려고 했다.
일인실로 가서 조용히 혼자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도 했고
억지로 이것저것 꽂아서 목숨을 연명하지 않겠다고 흐느끼듯 말했다.
“죽어야 사는 법이지.”
숨을 모으면서 짧게 던진 이 한마디의 말이
죽음후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것을 배 원장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식장 밖에서 사망진단서와 장례절차에 대한 얘기를 상주와 나누는 도중에
아들 문수가 장례식장을 찾아 왔다.
“아버지, 저 왔어요.”
문수는 할머니 기일을 앞두고 미리 짬을 내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제 스케줄을 접고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기로 했어요.”
“잘했다, 참, 인사드려라. 아빠 친구고 상주시다.”
“ 삼가 애도의 마음을 드립니다. 복장을 미처 준비 못했어요.”
녀석은 아주 의젓한 태도로 상주에게 인사를 드렸다.
“자네 아들 든든하게 생겼구먼. 예의범절도 바르고.”
친구는 문수를 대견스레 보는 것 같았다.
“문수야, 빈소에 다녀오너라.”
배 원장은 들어와서 아들에게 문상절차를 알려주고는
다른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문상을 마친 문수가 옆자리에 앉았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감사하네요. 내 삶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의 삶도 소중하다는 걸 느껴요.
잘 죽는 법이 잘 사는 법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도요.”
빈소를 다녀온 문수가 의젓하게 말했다.
“조문객으로 가는 것이 결혼식 하객으로 가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지.”
배 원장은 문상을 마치고 온 아들의 태도에 성경말씀 한구절로 응대했다.
“아버지, 저는 고모네 집에 가서 사촌들과 놀다가 내일 일찍 갈게요.”
배 원장은 사라져가는 아들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인줄 알았더니 어느새 사회인으로 성장을 했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같이 지낸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아빠 마음을 이해하고 할머니 기일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친구 어머니를 문상한 배 원장은 칠순도 못 돼 훌쩍 떠나버린 어머니가 무척이나 그립고 보고 싶었다.
팔순을 넘기는 노인들이 많은 시절을 살면서도 그렇지 못한 게 불효가 된 듯 마음이 몹시 편치 않았다.
청소년기에는 속만 썩였고 출향살이 30여 년 동안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아들이
귀향을 준비하는 도중에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배 원장은 자기 손으로 어머니를 염습(殮襲)했던 기억이 떠올라
목이 메고 눈물이 핑 돌았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제법 굵게 내리다가 이슬비로 바뀌고 있었다.
그는 겨울 가뭄 끝에 내리는 귀한 비라 우산도 쓰지 않고 혼자서 밤거리를 걸었다.
자정이 지나 인적이 드문 텅 빈 거리에는
이따금 택시들만 고인 물을 튕기면서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양지바른 길옆 화단에는 때 이른 할미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꽃잎 끝에 빗물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모습이 자식을 그리는 노모의 눈물방울 같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듯이 옷속으로 빗물이 스며들었다.
머리에서 턱으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어머니만 생각하면 울컥하는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오늘따라 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이 빗물과 함께 뒤범벅이 되어있었다.
한편 봄비가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처럼 느껴져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 같았다.
가슴 속까지 눈물로 흠뻑 젖어드는 듯 했다.
원당로 정자 난간에 잠시 앉아있는데 비가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땅에 떨어졌다 튕겨 오르는 빗방울 소리가 마치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와 같았다.
어머니와의 추억을 되씹으며 추녀 낙수를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비오는 날 말없이 흐르는 강가에 홀로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스산한 바람과 음울한 날씨에 봄비를 맞으면서 거리를 배회하다
갑자기 낙향을 결심한 선비의 글이 생각났다.
세상살이가 싫어 어머니가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세상은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한밤중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등불을 끄지 못하고 어머니를 생각한다.’
삶과 죽음사이의 거리는 어머니만이 잴 수 있으리라.
그래서 죽음을 앞두거나 극도로 어려울 때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르며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를 찾는다.
어미는 자식이라는 새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하지만 위기 시에는 귀중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놓는다.
배 원장은 어머니의 힘만이 생과 사의 경계 벽을 허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물 꽃다운 나이에 할 일 많은 가문에 출가해와
수많은 가시에 찔리고 밟히면서도 변변한 자식을 남기기 위해
그 험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던 어머니를 생각하다가 깜빡 졸았다.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와 여자가 니죽고 나죽자, 하면서 욕설과 독기서린 말을 마구 내뱉고 있었다.
여자가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남자도 고함을 지르며 맞받아쳤다.
부부가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배 원장은 이웃집 부부싸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어릴 적 가정불화 속에서 어머니의 상처 받은 모습이 아련히 떠올라 마음이 몹시 아팠다.
배 원장은 봄비에 흠뻑 젖은 상태로 아파트 현관에서 초인종을 눌렀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아내가 피곤해서 잠에 깊이 골아 떨어졌나보다, 생각하고 여러 번 눌러댔으나 마찬가지였다.
집전화를 받지 않아 아내의 휴대폰번호를 눌렀다.
출입문 열쇠도 없었고 비밀번호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으로 두 번 시도 끝에 연결이 됐다.
“여보 난데, 빨리 문 열어, 나 열쇠 없어.”
늦게 들어가는 게 잘못이긴 하지만 몸에 한기가 들고 피곤해서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당신이에요? 저, 서울에 왔어요. 문수가 먹을 반찬 준비 해놓고 인천 가야해요.
내일 친정엄마 기일이잖요, 아, 잠깐만, 출입문 비밀번호는 공칠 삼오에 우물 정이예요.
문수는 오후에 영주 간다고 하던데 만났어요?”
아내는 잠결에 전화를 받은 티가 역력한데도
남편보다는 아들 걱정을 더 하는걸 보면 모정이 앞서나 보다.
하기야 자정이 지나 새벽으로 가는 시간에 잠을 깨워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배 원장은 대충 씻고 나서 눈을 좀 붙이려 했으나 영 잠이 오질 않았다.
평소에는 머리가 닿기만 하면 잠에 골아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얼마를 지났을까? 쓰레기 수거차 소리에 비가 그친 걸 알았다.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주차장 바닥은 습기가 없이 말라 있었다.
해가 길어지면서 일찍 날이 밝았다.
배 원장은 밤새 어머니 생각에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한숨도 못자고 일어났다.
그런데도 그다지 피곤한 줄을 몰랐다.
갑자기 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었다.
산소가 있는 성곡으로 차를 몰았다.
날씨가 쌀쌀한지 승용차 앞뒤 유리창에 김이 서렸다.
계곡을 따라 피어오르는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키가 낮은 나무가
마치 어머니의 모습처럼 보였다.
멀리 빠끔히 나있는 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약초농장 입구에 자리 잡은 어머니 산소는
주마산 둥주리봉과 고택 그리고 교회와 철탄산을 잇는 일직선상에 있다.
어머니묘는 평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묏자리 안에 있다.
“어무이, 아들이 왔네. 지난밤 보고 싶어 한숨도 못 잤소.
어무이, 이젠 무거웠던 짐 다 내려놓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있제?”
배 원장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을 생각하면서
묘를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지난 밤 비에 흙물이 튀어
얼룩이 진 비석을 말끔히 닦아내고 봉분 위에 건초를 깨끗이 정리했다.
군데군데 파란 잔디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산소 위 양지바른 곳에 제비꽃이 간간이 보라색 입술을 뾰족이 내밀고 있었다.
꽃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은 아침노을 빛에 반사되어
주황색 구슬을 얹어놓은 것 같았다.
냉이와 쑥이 널려있는 가운데 엉겅퀴라고도 불리우는
계향초 싹이 무리를 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계향초를 뽑으려다 그만두었다.
계향초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도
뿌리를 든든하게 내리는 어머니의 삶과 너무 닮았서였다.
배 원장은 산소 앞에 서서 묵례를 한 다음, 앉아서 기도를 올렸다.
산소 앞에서 어머니를 추모하다가 갑자기 등 뒤에서 “땡강, 땡강” 하는
교회 종소리가 예순 일곱 번 치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당시에는 마을에 누가 죽으면 교회가 나이 숫자대로 종을 쳐주었다.
상두꾼들의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갑자기 마당 저편에서 새 생명을 품고 싶어하는 암탉이 골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암탉이 알을 낳으려 하거나 부화한 새끼 병아리에게 먹을 것을 찾아줄 때 내는 소리였다.
성곡집 마당 대문을 들어서면서 “어무이!” 하고 크게 불러보았다.
“태기야! 인제 오나, 배고프제?” 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한차례 불어대는 봄바람에 삐거덕 하는 소리와 겹쳐져 들려왔다.
어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아들을 반가이 맞이하려 나오는 듯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자신은 쉰 음식도 아까워 식구들 모르게 먹으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보리밥이라도 새로 지은 걸 먹이고 싶어 했던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 모습을 찾아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 다녔다.
그러나 집안 어느 곳에도 어머니는 없었다.
닭장 옆에 송판으로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개집에는
다섯 마리의 갓 태어난 강아지에게 젖을 빨리는 어미개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으르렁거리며 배 원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새끼 보호를 위해 으르렁대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개집 앞에 서서 한참동안 어미개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보호본능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쌓아놓은 나뭇단에서 쭉 뻗은 가지 하나를 빼들었다.
마치 어릴 때 닭서리 하다가 야단맞은 어머니의 회초리 같았다.
그 회초리 속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이 저미어왔다.
오랜만에 집 주위를 둘러보면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집 앞 농로길 옆으로 경사진 둑 밑에 작은 도랑이 있었다.
우물이 메워지기 전까지 길과 도랑의 중간 지점에 우물이 위치했다.
우물은 어머니 삶의 공간이었다. 동시에 자식들의 삶을 이어주는 생명의 근원이었다.
어머니는 물 나르기가 힘겨웠어도 이 우물가를
자식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면서 참고 견뎠다.
앉아서 바가지로 퍼내 쓸 수 있는 샘물이라
키가 작은 아이들도 얼마든지 물을 풀 수가 있었다.
우물 위 둑 가장자리에는 산수유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물은 한 면이 성인 한 발 길이로 정사각형의 모양이었다.
깊이는 성인 두 길 정도이고 바닥에서부터 돌을 촘촘히 쌓아올려
지상은 어린이 키 높이만큼 경계 벽이 세워져 있었다.
우물가 바닥은 납작하고 작은 돌로 채워 져 있었다.
물을 퍼내는 입구는 한 뼘 정도의 넓이와 높이가 되게
가로로 길게 돌 턱을 붙여 물동이를 올려놓기 편리하게 해놓았다.
혹시라도 실수로 미끄러져 우물 속에 빠질까봐
뒤쪽 둑에 박혀있는 돌부리에 연결된 끈을 입구 턱으로 늘어뜨려 놓았다.
바닥은 흘린 물이 우물 속으로 역류가 안 되도록 도랑 쪽으로 꾀 경사져 있었다.
몸을 구부려 등목하기에 편리했다.
우물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도랑 한가운데 물웅덩이가 생겨있었다.
고인 물에 작은 돌 하나를 던져보았다.
둥글둥글한 어머니 얼굴이 물결에 따라 얄랑거리는 것 같았다.
물속에 손을 집어넣어 어머니 얼굴을 만져보려 했지만 손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큰 돌을 던졌더니 움직이는 물결에 따라 어머니의 얼굴이 크게 다가오는 듯 했다.
문득 우물가에서 등목을 해주던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생각났다.
폭염 끝에 태풍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새벽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태풍피해 소식은 다급했고 정부에서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밤새 긴장한 탓에 늦은 잠에 취해있던 태기는 어머니가 깨우는 바람에 눈을 비비면서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작업 준비에 분주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주목과 새끼 끈을 리어카에 가득 실어놓고 있었다.
“태기야. 인삼포에 할 일이 많데이.
온 식구가 다 대들어야 한다. 단디 준비하거라.”
평소 여유가 있고 부드럽던 아버지의 표정은 일그러져있었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걷히고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태기는 다른 아이들보다 땀띠가 잘 돋아 여름철이 싫었다.
하지만 일손이 부족해 어쩔 수가 없었다.
대문 입구에 서서 멀리 밭을 쳐다보니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지난밤 태풍에 지주목과 짚으로 엮어 만든 해가림시설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태풍에 지붕은 날아가고 지주목까지 뽑혀 나뒹굴었다.
그리고 어떤 곳은 해가림시설이 폭삭 내려앉았다.
태기네 밭은 산 밑에 있어 인삼 경작에 적지였다.
인삼밭은 관리가 매우 까다로운데 그 중에 해가림시설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바로 다시 만들어 주어야 했다.
아버지는 부리나케 리어카를 끌고 인삼밭으로 출발했다.
태기는 맏이로서 앞장을 서야 했다.
태기는 아직도 잠이 덜 깬 상태로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태기야, 좀 밀어라.”
아버지는 오르막이라 힘이 든다고 말하자 태기가 뒤에서 밀었다.
잠깐 밀었는데도 이마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주 무더운 날씨였다.
리어카 짐을 거의 부려놓았는데 어머니가 아랫동네에서 일꾼 두 명을 구해서 왔다.
“인삼은 말이야, 인내가 필요하데이.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하능기라. 태풍이나 폭설은 더 그렇고.”
아버지가 일꾼들의 역할을 배정하는 사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인삼의 생태에 대해 말했다.
인삼은 파종해서 발아하기까지 이년, 그리고 일년간 키워서 모삼으로 이식하고
육년을 기다려야 사람모습을 닮은 인삼을 손에 쥘 수가 있다.
발아율과 양분, 굼벵이 등 장애물과 환경문제도 어머니가 태기에게 가르쳐주었다.
태기는 어머니가 인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
어쩌면 어머니의 삶 속에 근간이 된 인내심과 뚝심이 인삼을 잘 키우는 것 같았다.
태기는 지주목에 못질을 하고 새끼로 묶는 일을 했는데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일하는 사람들은 푹푹 찌는 뙤약볕에서 하는 작업에 땀을 많이 흘려 탈진이 될까봐
주전자에 물을 많이 준비해야 했다.
물을 마시려면 지표수 보다는 지하수나 우물에서 막 길어낸 물이어야 시원했다.
사카린은 당도가 높아 비싼 설탕 대신에 물에 타서 마시면 아주 달고 좋았다.
큰 주전자에다 시원한 우물물을 길러 사카린과 오이채 썬 것을 넣고
박하유 몇 방울을 떨어뜨린 물을 수시로 마시는 일이 일꾼들에겐 필수적이었다.
해가 중천까지 오자 젖은 옷을 금방 말려버릴 듯한 뜨거운 햇살이지만 이내 땀범벅이 되고 말았다.
땅에서 솟아올라오는 열기로 숨이 탁 막힐 지경이었다.
날씨가 더워 노인들이 일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동네마다 심심찮게 들려오곤 했다.
인삼 잎이 강한 햇볕을 직접 받으면 타버리고
다섯 장의 잎을 통해 뿌리를 성장시키던 과정을 중지하고 만다.
끝내는 인삼뿌리가 썩어버리기 쉽다. 따라서 급히 해가림 시설을 만들어야 했다.
이처럼 인삼포 작업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여유시간이 없었다.
해가 긴 여름은 일사병 방지를 위해 여유있는 점심시간 외에도 두 개의 참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최소한의 휴식 시간만 갖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던 것이다.
모두들 대충 씻고 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어머니는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부엌일을 맡겼다.
그리고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이 몸에 착 달라붙은 채 씻지도 않고
앉으려는 태기는 결국 어머니에게 이끌려 우물가로 갔다.
마치 지난 봄 펜팔 편지가 발각되어 어머니에게 끌려간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봄 하굣길에 참꽃을 꺾어들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어머니가 우물가로 불러 끌어당겼다.
어머니는 꼬깃꼬깃 접힌 편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태기는 “아차.”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지세탁을 맡길 때 주머니를 샅샅이 살피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태기야! 엄만 니만 바라보고 고생스럽게 살아왔는데 이게 뭐로?
이거 연애편지 아이라? 가시나 이름 맞제?”
어머니가 화를 내며 다그쳤다.
태기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야 누구로? 공부는 안하고 가시나하고 놀러나 댕기면 엄만 죽어뿐데이.”
어머니의 니죽고 나죽자는 화난 얼굴에 태기는 어쩔 줄을 몰랐다.
어머니의 마음고생과 신체적 과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태기는 반항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마음의 응어리로 가끔씩 실신을 하기 때문이었다.
“어무이. 잘못했어. 집안 분위기도 그렇고, 마음 붙일 데도 없어 그랬어.
이젠 마음 붙들어 매고 공부 열심히 할게. 성공해서 꼭 어무이 호강시켜 줄께.”
태기는 울먹거리면서 꿇어앉아서 용서를 빌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태기를 일으켜 세우더니 와락 껴안았다.
둘이서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그때 흘린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은
태기 앞길에 억만금보다 귀하고 가치가 있었다.
어머니의 눈물이 뜨거운 건 여자의 눈물샘에서 나오는 분비물이여서가 아니고
어머니 가슴에서 솟아나는 모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매를 맞은 어린 태기는 혼자 남아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우물이 바람에 찰랑거리고 있었다. 이처럼 자식을 위해
수많은 눈물을 쏟았기에 이 우물이 마르질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쏟게 할 정도로 야단맞은 일을 떠올리고 있는데 어머니가 다그쳤다.
“태기야, 웃통 벗고 돌 위에 손 짚고 엎드리거라.”
어머니는 바가지로 물을 떴으나 바로 붓지 않고 몇 번이고 물에 적신
자신의 손으로 태기의 등에서 목까지 골고루 문질렀다.
갑자기 찬물을 등에 부어 태기가 냉기에 흐느끼지 않도록 먼저 준비를 시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허리춤에서 빼낸 수건에 물을 묻혀 몇 번이고 등을 문지른 다음,
물을 바가지로 떠서 천천히 붓기 시작했다
바가지에 물을 부을 때도 등에 직접 붓질 않고
자신의 왼손을 펴서 아들 등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다 조금씩 부었다.
그리고는 그 주위를 몇 번 문지르고는 위치를 옮겨가며 등목을 시켰다.
마지막에는 낮에 미리 대야에 담아 둔 미지근한 물로 마무리를 해주었다.
“어무이가 해주는 등목은 할매나 아저씨들이 해주는 거와 달라.
흐느끼지도 않고 닭살도 안 돋고 좋아.”
“ 할매는 어째 하디?”
“갑자기 찬물을 콱 부어 깜짝 놀래,”
“그래?”
“물이 차가워 등이 화끈거려. 어무이가 해주는 건 그런 게 없어. 왜 그래?”
“음 그건, 니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농사일이 거칠어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고 거칠고 억센 손바닥으로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밀어주는 어머니의 손이 좀 매웠지만 몹시 시원했다.
어머니가 등을 미는 소리는 눈 위를 걸을 때와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훨씬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세숫비누가 귀해 양잿물이 들어간 빨래비누로 때를 빼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손은 약손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태기는 이렇게 등목을 통해 모자간의 정을 쌓았다.
어머니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수건에다
우물가의 사랑을 듬뿍 담아 태기에게 내주고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돌아섰다.
손으로 잡지 않고 종종걸음을 내딛는 모습이 달인이 따로 없었다.
태기는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몸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등목에 주의해야 할 사항을 스스로 터득한 것 같았다.
태기는 어린 시절 장이 약한데다 몸이 차고 저항력이 떨어져 있어 가족에겐 늘 걱정거리였다.
코흘리개였던 저학년 때는 왼쪽가슴에 달고 다니는 코 손수건을 매일 몇개씩 갈아줘야 했고
비염과 감기는 늘 달고 지냈다.
감기 끝에 잇몸병과 귓병 같은 합병증도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밀가루나 잡곡 음식은 소화를 못시키고 늘 설사로 고생했었다.
배 원장은 둑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물을 가두어둔 보 가까이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도랑가에는 산수유나무와 감나무가 가까이 있어 뻗어 나온 가지들이
보를 가려줘 여름철이면 아이들이 옷을 홀라당 벗고 멱을 감더라도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둑 위로는 큰 거름더미가 있었다.
둑을 따라 그 부근은 습지가 형성되어 모기들이 서식하기 좋은 잡초들이 무성했다.
도랑가로 내려오면 미나리, 창포, 갈대, 물봉숭아 등 습지식물이 우거져 있었다.
맥문동 같은 키가 낮은 약초도 둑 중간 지점에 군락을 이루었다.
모기외에도 각종 습지동물 천국이었다.
습지는 알, 유충, 번데기를 거쳐 성충인 모기가 번식하기에 좋은 적지다.
태기가 어린 시절, 여름철에 ‘하루거리’ 라고 불리는 말라리아 열병이 만연했다.
하루거리는 고열과 오한이 주기적으로 하루건너 번갈아 계속되므로 그렇게 불렀다.
하루거리에 걸리면 병원충의 적혈구 침입으로 콩팥,간,비장이 나빠져
배뇨,황달,빈혈이 심해지고 체력이 극도로 약해진다.
고열로 뇌나 여타 장기들도 기능이 바닥까지 떨어진다.
당시에는 치료약도 영양상태도 변변찮았기 때문에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말라리아를 옛날 한의학에서는 ‘학질’이라 불렀다.
날개에 흑백 얼룩무늬가 있고 앉을 때 꼬리를 쳐드는 습성이 있는
아노펠레속 모기가 옮기는 급성 또는 만성 재발성 감염질환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후 늦게까지 밭에서 일 하다보면 여러 종류의 모기가 수시로 와서 물었다.
모기들은 땀 냄새를 귀신같이 알고 몰려왔다.
흔히 산 모기란 놈은 팔이 긴 옷을 입었는데도 그 위에서도 찔러댔다.
모기에게 물려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말라리아모기에 물리면 학질에 걸려 고생을 하곤 한다.
이 병은 속담 중에 ‘학을 떼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회자되었다.
이 말은 살기 어려운 시절 그만큼 괴롭거나 어려운 처지를 이겨냈거나
간신히 모면했다는 의미로 학질에 비유한 속담이었다.
배 원장은 학질에 걸려 고생한 뼈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어무이! 와 이래 아프노, 아파 죽을 것 같데이.”
새카맣게 탄 입술을 달막거리며 어머니에게 통증을 호소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가슴과 머리를 번갈아 움켜쥐며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태기는 학질에 걸려 40° 이상의 고열과 오한으로 몸을 움츠려 떨고 있었다.
고열은 이미 일주일째였다. 하루 종일 고열과 오한이 반복되며
두통과 어지럼증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태기는 점점 더 야위어 갔다. 그리고 기운이 없어 축 늘어져 버렸다.
입속도 고열에 타서 보기 흉할 정도로 상처가 나 있었다.
잇몸은 부어있었고 혀에는 암자색 지도가 생겼다.
밥은 아예 먹질 못하고 좁쌀로 만든 미음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 금방 토해버렸다.
“아이고 이를 우째노? 죽을 먹어야 살제.
태기야, 쪼매라도 묵어 보래이. 그래야 약 묵제.”
어머니는 막 길러온 찬물에 적신 수건을 번갈아가며
고열로 정신이 없는 태기의 이마를 식히고 있었다.
틈틈이 화롯불로 가서 한약이 잘 달여지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빨리 달이기 위해 급기야 동생을 불러 앉혀놓고 화로를 부채질하게 했다.
태기는 ‘금계랍’이라고도 하고 ‘키니네’ 라고 부르는 가루약을 먹였는데도 병은 더 심해져만 갔다.
“야들아, 이리 온나 보자. 자가 병이 악화되는 걸 보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 같데이. 무슨 일이 있었노? 얘기 좀 해 봐라.”
할아버지가 다급하게 소집한 이유를 듣고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실은 자가 지난주에 지 외갓집에 간 것이 아이라 강릉 고모네 집에 갔다 왔니더.
거기서 매일 바닷가에 나가 사촌들끼리 이것저것 먹은 게 탈이 난 모양이시더.”
“그라면 거기서 자가 마이 아팠다고 하더냐?”
할아버지는 수사관이 취조하듯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응급실로 갔는데 식중독이라꼬 캐서 약을 먹였다 카디더.” 아버지는 조용히 대답을 했다.
“야들아. 왜 진작 사실대로 말 안했노? 이게 숨긴다고 될 일이라?”
할아버지는 화가 섞인 목소리로 따졌다.
“집에 와서는 밥도 잘 안 묵고 물을 자꾸 찾디이 설사를 계속 했니더.”
옆에 있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거들었다.
“아 잡겠다. 집에 약으로 잘 안 낫는 걸 보이 학질 말고도 다른 합병증이 있는 게 틀림없다,
빨리 시내 병원에 가서 입원시켜라.” 할아버지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워낙 급한 상황이라 택시를 대절했다. 여름철인데도 태기는 추워서 몸이 달달 떨렸다.
부축을 받아 겨우 차에 올랐다. 차 안에서도 계속 토했다.
먹은 게 별로 없어 처음에는 푸르스름한 물을 올리다가 나중에는 토악질 소리만 요란하게 했다.
앉아있을 힘이 없어 비스듬히 어머니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기댔다.
태기는 어미니 품속에서 몸이 괴로워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콩닥 콩닥하는 어머니의 심장소리가 유난히 크고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태기는 배가 뒤틀리고 아팠다.
영주 시내에 도착 할 때 다시 열이 올라 몸 전체가 경련이 시작되더니 기절해버렸다.
병원 원장이 퇴근도 못하고 검사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아버지를 찾아와서 설명했다.
학질과 폐렴 그리고 식중독과 장염이 겹친 복합질환에 걸렸다고 했다.
원래 장염이 있었는데 식중독을 앓고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학질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어지럽고 황달기가 있어 좀 더 시간을 끌었더라면
빈혈이 심해지고 비장파열이 일어날 뻔 했다고 했다.
“어린것이 울매나 고생했겠노?”
평소 엄하기만 했던 할아버지가 사경을 헤매는 손자에게 건넨 단 한마디의 따뜻한 말이었다.
태기는 수심에 가득차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태기는 팔에는 링거액이 두 개나 꽂혀있고
손목과 다리에는 경련을 할까봐 침대에 묶여져 있었다.
“어무이, 물 좀 줘! 목이 말라.”
태기는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목이 타들어가 입속이 말랐다.
아무리 입을 다셔도 감각이 없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구석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벽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머리 쪽 침대 모서리에서 태기 가슴과 머리에 알코올 수건을 교대로 갈
아주고 있었다.
“태기야, 정신이 좀 드나?”
어머니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내며
침대에 손을 묶어 놓았던 끈을 풀어 주었다.
“응, 엄마.”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태기가 정신이 들었다는 말에
침상 가까이 다가와서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다소 안도감이 서린 표정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태기를 지켜보다가 저녁 식사 때를 놓친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먼저 집으로 가고 어머니만 혼자 남았다.
“어무이도 저녁 먹고 와. 내 이런 모습 싫제?”
알코올 수건을 바꾸더니 어머니는 창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는 침상으로 다시 와서 아들의 손을 꼭 잡았으며.
“내 걱정일랑 말거라. 니가 뭐라도 먹으면 나도 밥 먹고 오마.”
태기는 억지로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
“어무이도 아픈데 이참에 검사 좀 해봐라.”
태기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머니에게 검진을 권유했다.
태기는 지난 봄에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당뇨합병증이라고 의사가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주치의는 외가에 특별한 가족병력이 없는데도 젊은 어머니가 다산한 후부터
당뇨병과 합병증을 앓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주위에 알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들이 그 사실을 알까봐 의도적으로 숨기며 태연하게 어머니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었다.
몸이 붓고 통증이 있으면 가족에게 알려서 자신을 보호하고 꾀를 부릴만한데도 말이다.
어머니는 태기가 자기의 병을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태기도 어머니가 눈치 채지 않도록 조심했다.
오랜만에 모자간 정감 있는 얘기를 나누었다.
힘겨운 어린시절 자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태기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긍정적인 격려를 하던 어머니는 그날도 그 말을 빼놓지 않았다.
태기는 이야기를 하다가 냉찜질 수건을
바꾸러 나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무이는 바보야! 중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왜 숨기고 그래?
병은 알리라고 했잖아? 할매 봐. 털끝만치라도 몸이 불편해도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 선전하고 다니잖아.
그래서 공감과 관심을 끌어내잖아. 어무이도 그래봐.”
태기는 애가 타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리고 졸린 듯 하품을 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 엄만 바본가 보다. 엄만, 니만 건강하게 커주면 돼.
니만 믿고 지금까지 고생을 참고 견뎌왔으니까.
니가 빨리 건강을 찾을 수 있다면 내가 뭘 못하겠노?”
어머니는 잠이 든 태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니를 위해 내가 입 다물고 죽어지내는 기라.
그게 약이 될 때가 있거든. 엄마 맴이 바로 그기야.”
동글산을 둘러 내려오면서 보릿고개시절 먹을 것이 부족해
어머니와 같이 땔감과 산나물을 구하러 다녔던 일이 생각났다.
쥐불놀이 하다 집을 태울 뻔한 걸 용서받은 일,
서리한 닭을 친구들과 산 밑에서 조리하다 들켜
어머니가 대신 갚아주던 추억들이 주마등 같이 스쳤다.
마당으로 다시 와서 어머니에 대한 내력을 기억하고 있을 아흔 살 산수유나무 앞에 섰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지 삼년째 되는 어느 날,
화초 기르기를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산수유 꽃꽂이를 원했다.
화병대신 옛날 약탕기에 꽃망울이 잔뜩 달린 가지를
가지런히 꽂아 넣으면서 정을 나누었다.
그때 어머니의 말이 유언이 되어 버렸다.
앞서 간 선친들의 유지를 받들어 못 다한 의료와 복지사업을 통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것,
유명한 의사보다는 꼭 필요한 의사가 되라는 것이였다.
화려하고 예쁜 꽃무늬의 도배지로 꾸민 방에서 잠시라도 여자로 살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렇게 기르고 싶어 했던 사슴을 사달라고도 했다.
태기는 어머니를 껴안으며 눈물 섞인 말로 약속했다.
며칠 후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직전 갑자기 배 원장을 성곡집으로 불렀다.
아버지를 보낸 후 멍하게 지내던 어머니가 불편한 몸을 끌고 그날 저녁 질벅한 보리밥과 된장찌개,
무생채와 열무 싹 그리고 고추장에 발라 구워낸 노가리로 저녁상을 차렸다.
평소 태기가 좋아하던 반찬이었다.
어머니와 마주앉은 이날 저녁 밥상이 한 생을
어머니와 아들로 같이 살아 온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이었다.
그날 저녁 밥상 앞에서 아들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중에야 알았다.
육남매를 위해 억척같이 살다가 산수유 꽃이 필 때 떠난 것도, 복합질환을 갖고 있었던 것도,
남편의 애틋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도 어머니와 친구 어머니가 많이 닮았다.
단지 고된 시집살이에도 입 다물고 산 것과 가족 관계 갈등으로 인한
울화병이 명을 재촉했던 게 달랐다.
“바람 잘날 없었던 자네 가문에 엄마가 입 다물고 꾹 참으면서
억척같이 살림을 일궈왔기에 집이 그나마 유지된거야.
대신 자신은 가시 없는 계향초 같았지.” 어머니 장례식에 온
친구 어머니가 툭 던진 눈물 섞인 말이 아직도 배 원장의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계향초는 잎에 온통 억센 가시가 돋아있다. 달리 가시나물이라고도 불리지만
풀 전체가 대계(大薊)라는 약제와 나물로 활용되는 유익한 식물이다.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구황식물로 귀여움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척박한 땅에도 잘 사는 풀이다.
여느 질긴 잡초마냥 사람과 동물에게 밟히고 찔려도 죽지 않고
오히려 강해지기에 어머니를 닮
았다. 모진 시집살이의 가시에 찔려 자신은 붉은 피를 흘리면서도
오직 자식만을 생각하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온 것이다.
자식을 많이 둔 것 또한 가시 같은 시련을 참고 견디는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혹독한 긴 겨울철이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철이 오면
해마다 수줍고 다소곳한 자줏빛 꽃을 피워 못다 말한
자신의 속내를 아름다운 꽃으로 세상에 말하는 것 같았다.
산소 앞에서 배 원장은 지갑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들고 한참 들여다 보았다.
바보스럽고 순해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배 원장은 사진을 두 손에 들고 냅다 고함을 질렀다.
“어무이 바보야!” 배 원장의 울부짖음은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어무이도 가시로 찌르지 그랬어? 어무이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찔렀어야지, 그랬으면 일찍 죽지 않았지.
참지만 말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았으면 아들과 같이 좋은 세상 만나 잘 살 텐데, 어무이는 바보야!”
계향초로 살면서도 단 한번도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던 어머니는
울화병으로 명을 재촉 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어서 배 원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사진 속 어머니는, ‘그건 내 맴이야’ 하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주마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그건 내 맴이야' 하는 메아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진동으로 해 둔 핸드폰이 윙하고 울렸다.
“원장님, 어디 계세요? 진료 예약 손님들이 기다리세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차! 어머니 생각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생각한 배원장은 서둘렀다.
시계바늘이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도 가시에 찔린 이들이 또 얼마일까.
그들이 가시에 찔린 내 어머니들이 아닌가?”
어머니를 모시듯 그들을 섬기는 것이
어머니의 유언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고,
산소앞에서 다시금 굳게 다짐했다.
급히 승용차를 몰고 인애가병원 정원을 막 들어서려는데 길섶 한편에 어린 계향초가 눈에 들어왔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몸짓으로 어른스러운 교훈을 주고있는 것 같았다.
“가시에 상처가 나지만 때론 약이 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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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자꾸 부르다보면 엉겅퀴보다는 정감이 갈거라고 해서 정했어요~ 요즘 젊은 엄마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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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중년기 이상이라면 누구 할것없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이 용어들로 구성될거에요 ~~
이조시대의 마지막 여인님의 어머니도 그러하셨겠지요? 같이 그리워해봅니다~ 그리고 한국의 어머니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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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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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요서상원님
의료의 현장에서의 문학을 통한 치료! 음악치료,미술치료,상담치료 등등 ,다양한 보조 치료 중에서 ,문학을 통한 치료를 의학과 접목 시키는 통찰력이 매우 뛰어나며,사람과사람사의의 따듯힌 정감이 넘쳐게 하여,좋은 에너지를 충전하게 하여,주는 아름다운 서정적 글이라고 느꼈읍니다.인간의 마음을 순수문학 글쓰기를 통해 힐링하시는 모습이 참 훌륭합니다.화이팅!늘 하시는 모든 일에 축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직은 의학과 문학의 접목이 초기단계로 많은 조언이 필요합니다. 나무님 ~ 감사합니다.~~~
글을 대하며 너무도 많은 생각에 가슴이 저밉니다.
욕쟁이 할매도 그리워지고,모든이들의 어머니들을, 그어머니들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하는 그런 글이지않나...싶습니다. 박사님의 어머니를 통하여 곁에 계시지만 항상 멀리 모셨던 나의 어머니를 눈물로 대하기 전에 안아보려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언제 들어도 정감이 가지요~ 허니님의 뜻처럼 달콤한 어머니를 다시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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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거기까지 생각하셨네요~ 감사합니다. ~ 제 글이 점점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도 마가렛님을 통해서 느낍니다. ~
예로부터 물은 정화와 거듭남의 역할을 했었지요~
어머니의 가슴앓이가 말로 쏟아졌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고 주윗분들이 분란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겠지만 어머니는 우물가를 자식들과의 소통의 장소로 활용하셨다는데 어머니의 지혜로움과 작가님의 심리적 성찰과 삶의 철학을 접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자존심, 모성애등 ... 인간의 심리상태를 적절한 자연의소리나 자연환경 속에서 순간순간의 재치를 발휘하여 사실적, 감각적, 심리적으로 묘사하시는 부분이 무척 고무적이십니다(감히...느낀대로 말씀드린다면요)
"계향초"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의 섬세한 마음씀과 애틋한 감성이 물씬 풍겨나는 글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우물가는 옛날 아낙네들의 만남의 장소였지요 ~ 그 중에서 어머니도 끼여있었겠죠~ 남들이 보지 않을때 자식들을 불러 등목도 해주고 옛날얘기도 들려주는 곳이었지요~ 지금은 우물가도 사라지고 옛날의 순수함도 없어지고 있지요~ 대신 글샘을 만들어 쉬게 해야겠지요~ 좀더 물처럼 살수 없을까요? 감사합니다. ~~~
어 머 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이름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어머니를 둔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새삼스럽게 먼저 가신 엄마를 떠올리는 가슴 뭉클한 글을 읽었습니다
내 아이들에게도 가슴이 따뜻한 엄마로 기억되도록 순간순간에 충실해야겠구나 다짐을 해봅니다
박사님의 글은 언제나 감동입니다 아름다운 봄처럼 말입니다
그렇구 말구요 ~ 옹달샘님은 좋은 엄마가 되고도 남을 거라 믿네요~ 벅찬 가슴으로 대하니까요~ 우리네 어머니는 무조건 희생만했지만 우리 아래세대는 자신들의 관리도 소홀해서는 안될거에요~ 왜냐하면 엄마가 튼튼해야 되니까요~ 저도 남자라서 엄마의 여성성을 잘은 모르지만 엄마의 가슴 넓이와 높이 그리고 그 깊이를 측량할수 없음을 느낀답니다.~ 조언 자주 주세요~~~
엉겅퀴의 투박함과는 다르게 약재로 쓰인다니 신기합니다 예쁜 이름도 같이 말입니다
어머니의 투박한 손이 자녀들에게는 사랑입니다 아름다운 시골풍경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오늘 저녁은 된장찌게라도 끓여서 어머니 생각하면서 먹어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네~~ 어머니에 대한 표현이 오히려 깊네요 봄바람님~ 다시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이번 봄은 어머니를 더 깊이 생각하면서 봄을 즐기고 싶습니다. ~ 봄바람에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
매번 박사님의 글을 대하는데 가슴으로 읽습니다.....
건강 잘 유지하셔서 건~강한 글!, 감동스런 글! 앞으로도 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힘주셔서~ 열심히 할게요~~ 숫골님~ 숫골님도 변덕스러운 봄날씨에 건강하시구요~~~
얼었던 물도 녹고 개구리도 깨어 나는 따듯한 봄날에 멋진 글을 읽습니다
옛날의 기억들을 재미있는 글로 표현하시는 지혜에 감탄을 보냅니다
박사님의 글에서 나타난 인자한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우리의 어른들께도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할 듯 싶습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글 기대합니다 !!
아직은 부족하답니다.~ 격려의 힘을 받아서 표현해 볼께요~~ 하얀천사님 ~ 님의 닉네임이 어머니를 더욱 회상시키는군요~ 감사합니다.~~~
꽁꽁 언땅 언제나 봄이 오려나 했는데 이미 우리 곁에 머물면서 가슴을 활짝 펴게 만듭니다
김작가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서정적이고 시골의 풍경이 담겨 있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군요
봄처럼 아름다운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스윙님~ 봄을 느끼게해주셔서요~
모든 어머니의 위대함을 글로 표현하기는 참 어렵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집니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오늘은 맛있는 어머니표 된장찌게라도 해서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려 주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오늘도 가까이 있는 어르신들에게 돌려드립니다
우리병원에 어르신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죠~ 어머니는 언제 어디서나 그립지요~ 은빛여우님은 좋은 어머니시지요~ 어머니표 된장찌개 좋지요~ 먹고싶네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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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참참 그렇게 되길 빕니다. ~ 감사합니다. ~~~ 이조시대의 마지막 여인님~~~
글을 읽으면서 우리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어른들에게 좀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에 듭니다
박사님 존경스럽습니다 진료에 ,글에 또 다음엔 어떤 일에 도전하실지 기대가 됩니다
아름다운 글 계속 부탁 드립니다
감사해요~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응원해주셔서 힘낼께요~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어 새벽에 일어났다. 그 많던 잠이 나이가 들고 보니 도망을 갔다
"계향초"를 읽고 느낀점은
1. 우리 어머니들의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천국에 있을 엄마가 더욱 그립고 보고싶어 우울
2.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나의 생활에 도전장을 ,
사랑, 화평, 위로, 감사, 격려, 행복바이러스 전도자가 되고자 많은 생각과 깨달음과 반성으로
힐링할 수 있어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정신적 질환자가 많아질 세상에서 환자들에게 힐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감사합니다
행복하소서
아이구~ 평을 자세히 해주셔서 고마워유~ 서도연님~~~ 부족한 글인데도 행복바이러스가 생기니까 기분좋네요~ 하늘에계신 어머니를 꿈꾸어 봐요~
오랫동안 가물었는데 단비가 촉촉히 내립니다. 비가 내리면 어머니가 더 보고파집니다. 하여 곁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잘 보살펴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사님의 서정적인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어쩌면 그리 섬세한 표현을 쓰시는지 자연에서 자라 자연을 닮으신 것 같습니다 . 자연은 우리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 멋진 글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자연은 수시로 변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짠하게 해주지요~ 어머니 모시듯 어르신을 모시고자하는 천혜향의 따뜻한 마음에 단비가 되기를 ...~
봄에는 잠이 많이 온다는데 봄밤을 지새우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을 통해 검색된 김은숙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이 까페로 들어왔네요.
김은숙작가님의 사진에 나온 순수한 얼굴 모습이 좋아 검색,또 검색 끝에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인터넷 매체가 대단함을 느낍니다.글을 쓰시는 분들은 절대로 경솔하지 않으며 생각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그래야 글을 쓸수 있겠지요?
김덕호 작가님의 해맑은 웃음이 부럽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더 부럽습니다
건강한 작가님이 되십시오~
환영합니다~ 오래 참기님 ~ 밤을 지새우시기까지 하면서 찾아주신 따뜻한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 같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지길 기대하면서~~~
엉겅퀴와 계향초가 같은 뜻이었군요..^^ 왠지 박사님 자전적인 글 같은데.. 맞나요? 아무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과 픽션과 낭만과 변화를 함께 추구하는 사고의 틀이라고나 할까요? 느낌을 남겨주시는데 대해 깊이 감사~~~
우물가에서 엄마랑 이야기 하며 등목하는 부분이 마음에 남습니다
다른사람이 물을 부을때는 흐느끼도록 차갑게 느껴졌는데 엄마의 세심한 손길은 사랑이 있어서인지 그리 차갑지만은 않았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지금 어른이 된 지금에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 부분까지 아주 예쁘게 묘사하셔서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박사님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엄마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오지요~ 엄마의 흔적이 어디에 있든지 간 엄마라고하는 이름때문에 ...
장광자님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씀을 보아 장광자님이 엄마로서의 따뜻한 마음을 자녀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시고 계시겠죠?
이글을읽고 조금전엄마와통화를했습니나...
늘 참는것만이 옳은거라믿으시는양반...아파도제대로신음소리도안내시는양반...
엄마생각에 마음이 짠하네요....
그렇지요 엄마의 마음이란 끝이 없답니다. 권미혜님의 어머니 건강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