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소설책을 보았습니다. 10년간이라는 소설을 써서 저의 기억에 남아있던 방현석님의 당신의 왼편이란 책이었습니다. 386세대의 삶의 도전과 사랑, 좌절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그렸습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던 책이라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 일부를 전합니다.
내친김에 방현석님이 노동운동의 역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쓴 기행문(?)인 아름다운 저항도 읽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글이었습니다. 글 말미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인터뷰를 실어놓아 더욱 생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진폐증에 걸려 입원해 있는 노동자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퇴원은 언제 할 수 있는가? 죽으면 퇴원한다고 노동자는 답합니다. 80년대 선배들은 하고싶은 일보단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자기 희생을 했었습니다. 이제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떳떳하게 살아갈수 있다고들 합니다.저는 이 글들을 읽으면서 과연 그렇게 쉽게 세상이 달라졌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이 가벼운 세상에서,조금만 진지한 얘기를 꺼내도 \'지루하다\'고 말하며 말문을 닫게 하는 관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 나 역시 변하지 말아야 할것들까지 조금씩 변해가고있는건 아닌지 고민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세상의 불의에 대해 싸우고 있는 이들에 대한 존경과 애정만은 꼭 간직하고 살아가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저항 중에서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가?
누구에게나 빛나는 시간이 있다. 한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사람답게 살기 위해 눈물 흘리고 아파하며 싸운 흔적, 그 흔적 앞에서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시간과 인간의 풍경을 목격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청계천으로, 구로공단으로 ,인천과 울산으로 거제도로, 태백탄전으로 쏘다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때로는 기억의 파편을 더듬던 그들의 목젖이 메어서, 때
로는 듣고 있던 내 눈시울이 젖어서 인터뷰가 중단되곤 했다. 돌아오는 버스와 기차 안에서 늘 깊은 감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행간의 곳곳에 드러난 감상을 지우려고 애를 쓰기도 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둔 곳이 더 많다. 삶이라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 어디 반듯한 이론과 이성의 힘으로만 이루어졌겠는가 싶어서였다. 현대사의 저 캄캄한 터널속에서 \'인간의 이름\'을 아로새겨온 사람들, 똥물을 뒤집어쓰고통곡하면서도 물러서
지 않았던 동일방직이며 설날 새벽의 아스팔트 위를 질주 해야 했던 원풍모방의
노동자들.
역사는 외롭고도 무모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은 그런 지극히 \'비현실적\'인 사
람들에 의해서 씌어져 왔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시간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현실의 시간, 이것도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었다. 현실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 역사의 한 부분 속에 현실이 놓여져 있다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우리는 자주 망각한다.
역사가 한 발자국씩 진보를 이룰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누군가는 반드시
치루어 왔다.
이 책은 노동자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대가를 치루어 준 사람들과 그 현장의 기록이다. \'공돌이\'와 \'공순이\' , 그 모멸에 찬 이름을 \'노동자\'로 바꾸어역사 앞에 복원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지불되었던가.
지금, 노동자들은 곤경에 빠져 있다. 그러나 과거에도 지금보다 쉬웠던 적은 그
리 많지 않았다.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한번쯤 지나온 길을 곰곰이 되돌아 볼 필요도 있지 않
을까.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자만이 오늘의 행복앞에서 오만하지 않다.
자신의 자랑스러웠던 과거를 기억하는 자만이 오늘의 시련앞에서 의연할 수 있다
.
현실앞에서 결단이 필요할 때 지난날 겪은 시련은 용기가 되고,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때 지나온 길은 나침반이 된다. 자기가 지나온 길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과거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자는, 그것이 개인이든 조직이든 역사의 시간 위에서 실종되고야 만다.
당신의 왼편중에서
현욱: 심민영씨, 내가 그동안 하도 본때 없게 살아서 귀하한테 말못했는데,사실
아이엠에프 터지고 나서 솔직히 난 마음 한구석으로 잘코사니다. 싶은 생각도 들었어.건우 사업만 아니었으면 참깨맛이라고 박수를 쳤을지도 몰라. 당장 내가 어려우니까 아쉽게도 못 그랬지만 그동안모두 흥청망청했잖아. 자본가들만 그랬어? 정치인들만? 관료들만 ? ...노동자들은 예외였을까?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사고 방식, 자기의 이해관계만을 중심으로 하는 행동 방식, 노동자들이 자본가들과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았어.
민영: 끝까지 얘기해봐
현욱: 70년대 노동자들의 투쟁중에서,80년대의 수많은 피투성이 싸움중에서 현재의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싸웠던 적이 단 한 번 이라도 있었을까? 거의 모두 싸우면 자기한테 손해가 났고 당장은 자기에게 손해가 날 줄 뻔히 알면서도 싸웠지. 자기 존엄을 위해서 고작 이렇게 조롱받고 있지만, 그래도 어쨌든 미래를 위해서 하지만 90년대 노동자들의 투쟁속에서 난 그런 아름다운경우를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어. 승용차를 엑셀에서 소나타로 바꾸기 위한 임투와 단투, 정당할 수는 있겠지만 감동적이지는 않았어.
민영: 그러는 넌 그동안 어디에서 뭘 했는데? 1선도 아닌 2선으로 돌아와서 그런식으로 얘기하려면 차라리 살던대로 살아. 너의 왼편을 향해 미안한 표정이라도 지으면서 살던 대로사는 게 보아주기훨씬 나아.
현욱: 이건 좀 너무하는 거 아냐?
면영: 남아서 왼편의 자리를 지킨 우리가 다 옳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떠나간 자
들이 저지른 오류와 과오까지 다 뒤집어쓰고 90년대 내내 모멸과 수모를 견뎠어. 다른 다 참을 수 있었지만, 자신들이 운동에 끼친 해악, 그 채무는 한푼도 상환하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쌓아 올린 진보 진영의 채권을 횡령해서 얻은 알량한 이름으로 도리어 우리에게 설교를 하려드는 그뻔뻔스러움은 참아 줄 수가 없었어.
현욱: 내가 그랬어?
민영: 너지금 그러려고 하고 있어. 네가 두고 떠나온 그 자리 그렇게 대단한 거
아냐 보상받으려고 하지마. 발언권의 근거로 삼으려고 하지마 내가 건우와 너를 변함없는 친구로 여겨온 것은 너희들이 과거를 왼편의 기억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