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 조용 봄비가 내렸다.
무언지 모르지만 깊은말 하려 하는 비,
차 시동을 걸었다.
신학기를 맞아 귀가가 늦는 딸아이,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한 불면의 피로감을 안고 고속로를 달린다. 두통이 인다. 비가 그치고 있었다.
함안 IC를 나와 법수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니 하우스 단지의 향연이 이어진다. 예사롭게 넘기지 못하는건 그들의 땀내를 퍼뜩 느끼기 때문일게다. 얼마전 학회에서 참외가 임산부와 태아 건강에 매우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함안 겨울참외가 불티나게 팔렸다더니
수확하고난 참외 줄기가 다 걷어져 뽑혀 있었다.
지금은 수박이 한창 크고 있겠지... 이정표에 악양루 가는길로 우회전을 향하니 보리밭이 쭉 보인다. 매서운 서릿발 아랑곳 않고 시퍼렇게 일어서는 보리밭, 고등학교 음악시간이 불쑥 그립다.
함안천을 지나 오른편에 “처녀뱃사공 노래비” 가 서 있다.
내 아버지가 즐겨 부르셨던,
팔형제의 맏이였던 아버지는 해방후 돈벌러 일본으로 가신 소식없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애절한 몸짓이었을까.. 술은 못하셨지만, 사이다 한잔 따라 놓고 젓가락 두드리며 판에다 심정을 퍼부어 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앞가슴을 헤치면
고요한 처녀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보내마
어머님 그 말씀에 수줍어질때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처녀뱃사공>
노래기념비 뒷면에는 유래가 적혀 있었다.
6.25전쟁이 막 끝난 1953년 유랑극단 단장인 윤부길(윤항기의 부친)이 당시 23세였던 박말순과 18세의 박정숙이란 두 아가씨가 교대로 군에 갔다 소식이 끊긴 오빠 대신에 노를 젖게 되었는데
그 애절한 사연을 가사로 쓰고 한복남이 작곡해 민요가수 황정자의 입을 통해 1975년에 전국적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기념비를 나오자 마자 왼편에 악양루가 보인다. 정확하게 말하면 악양루 가든이란 팻말이 있는곳으로 들어가서 주차를 했다. 산책로를 따라 110m 정도를 올라가다보면 악양루(도 문화재 190호 지정)를 만난다.
악양루에 선 나,
인간은 흐르기를 그치지 않는 하나의 강이라 했던가.
소용돌이치던 물밑의 찌꺼기가 마치 구토를 하듯 다 토해내는 이 벅참,
조금씩 욕심이 쌓여 딱딱하고 삐딱해진 내 마음을 보드랍게 적셔 주는 바람이 되어
살짝 간질어 주는 듯한 웃음이 일었다.
누군가를 대신해 울어주는 강,
막 찬물에 세수한 아이같다.
내 마음의 빈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남강 건너편인 법수면의 제방과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악양루 가든으로 들어서니 남자들의 담소소리가 요란해서 혼자 들어가기 뭐하다. 잠시 머뭇거리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손짓을 해왔다. 용감하게 들어서자 벽에 걸린 액자가 눈길을 끈다.
"이 집 주인의 누님과 고인이 된 고모는 처녀뱃사공으로 선친은 학사뱃사공으로 각 언론에 소개되었고 이 집은 나루터에서 3대 걸쳐 뱃사공을 하며 어죽, 어탕 등 우리 고유의 전통 민물고기를 맛있게 하여 그 맛이 전국에 알려져 <마산mbc 매거진 '이야기가 있는 별미 산책'><백파 홍성유의 '한국 맛있는 집' 1234점><신경남일보 '김영복과 떠나는 향토음식순례'> 등에 소개된 맛집입니다.“ -전통향토음식문화연구소 -
중국의 악양이 이곳의 풍광과 같다해서 악양루라 칭해진 이 곳, 어탕국수(오천원)를 시켰다.
민물 고기를 끓여 만든 어탕에 국수를 말아낸 어탕국수, 적당한 양과 맛에 속이 다 든든하다.
돌아 오는길, 언제 다시 찾게 되는날 있게 되면 일몰의 시간에 맞춰,
발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남강 물줄기 위로 노을이 물드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하나의 상념을 건져 가리라.
첫댓글 좋은 글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