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자는 주장과 국어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 쓰고 가르치자는 한자
파들의 주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간에 심심하면 나온 한자타령이다. 그래서
대단하게 생각지 않지만 나라와 국민생활에 끼치는 피해가 엄청나고 가만히 있으면 그들 주
장대로 될 수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상대하지 않을 수 없어 답답하다. 어쩌면 한글과 한
자 논쟁은 한글이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일이고 지난 550년 간 이어진, 끝나지 않은 말싸움
인지도 모른다. 우리겨레는 지난 수천 년간 우리말은 있으나 우리 글자가 없어 국어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고 나라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글자를 가지기 위해 삼국시
대부터 노력을 했다. 신라 때 '이두'란 글자를 만들고 쓴 것이 그 초기 흔적이다.
그러나 그 '이두'를 조선시대까지 한문과 함께 써봤지만 한자를 좀 바꾼 절름발이 글자여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 한
글을 만들었으나 한자에 눌려 당시엔 빛을 보지 못했고 500년이 지나서야 나라글자로서 인
정하고 백성들이 즐겨 쓰기 시작했다. 교과서도 한글로 쓰고 공문서도 한글로 쓰자는 법(법
률 제6호, 한글전용법)까지 만들어 한글을 살려 쓰려고 애쓴 것이다.
그렇게 해서 5000년 우리 역사에 우리말글이 독립할 기회가 오고 우리만의 참된 문화와 학
문이 싹트고 자랄 수 있게 되었다. 한자만 쓰던 조선시대는 한문도 철학도 모두 중국 것이
거나 중국 걸 본 딴 것이었다. 한문을 쓰던 때는 한문을 하는 백성이 10%도 안 되었으나
한글을 쓰는 지금은 99% 국민이 글자를 알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참으로
기쁜 일이고 다행스런 일고 자랑스런 일이다.
그래서 한글과 한글을 만들고 쓰게 한 분들께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깔보고 한글을
쓰기 싫어한다. 한마디로 복 떠는 짓이고 얼빠진 사람들이다. 한글이 너무 배우고 쓰기 쉬워
서인지 배우고 쓰기 힘든 남의 말글이나 옛 글자 한문만 좋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가 물과
공기 없이 살 수 없고 그보다 고마운 것이 없는 데 그 중요함을 모르고 사는 꼴일까? 세계
언어학자들도 한글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글자라고 인정하고 한국인을 부러워하고 있는데 그
주인들은 우습게 여기니 어찌된 일인가?
저들 주장 하나만 따져보자. 우리말에 한자말이 70%이니 한자를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고
쓰잔다. 우리말이 70%가 한자말이 아니다. 그 통계는 지금 쓰지도 않는 옛 한자말과 중국과
일본 한자말까지 다 끌어 모아 놓은, 한자파가 만든 엉터리 국어사전에 나온 것이다. '아버
지'란 뜻을 가진 한자말이 "부, 부친, 가친, 선친, 엄친, 친부" 등 말고도 수없이 쓰지도 않
는 말들을 일본 사전에서까지 끌어 모은 결과이다. 어떤 말은 수십 개라 하지만 쓰는 한자
말은 한 둘이라니 실제 한자말은 2-30%도 안될 것이고, 그들 주장은 거짓이다.
옛 글자 한문과 남의 말글을 하나도 배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 아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모든 글자를 다 아는 것이 쉽지도 않고 꼭 그래야 되는 것도 아니다. 또 우리
말글을 제대로 알고 바르게 쓰는 것이 먼저이고 우리 국민들 끼린 우리말글만으로 말글살이
를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는 것이다. 한자는 지는 해라면 한글은 뜨는 해다. 한글은 한자
와 섞어 써서는 제 빛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자는 것은 잘못임이 증
명되어 30년 전부터 중단한 일이다. 더 이상 한자타령을 해서 국어생활과 교육을 혼란시키
지 말라. [팍스 코리아나 15호 2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