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일 하시느라 얼마나 바쁘고 힘드십니까? 오늘 미국과 치르는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
라가 이기길 온 국민이 바라는 희망찬 아침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좋은 일만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교육 정책에 관한 궁금한
것이 있어 편지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 4월 교육부 장관을 지낸 분들이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시켜야 한
다고 건의를 했다고 했는데 그 건의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는 6월 12일 오전 7시 국가경영전략연구소가 주관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초
등학교 한자 교육 실시하라!"는 토론회에 교육부 교육정책국장이 참석하기로 했다는 소문
이 있는데 사실인지요?
만약 한자파들의 토론회 참석이 사실이라면 교육부가 그들 편을 드는 것으로 국민들 눈에
비췰 것으로 보이니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압니다. 조선일보가 자신들에 유리하
게 확대 선전해 여론을 조작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빨리 전자편지나 문서로 답변해주시길 바라며 우리 모임의 뜻을 적은 글을 함께 보냅니
다. 지난 달 청와대 신문고를 통해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교육부에 이첩했다고 했습니다.
그 답변은 없고 한자파 토론회에 정책국장이 참석한다고 해 급히 편지 올립니다.
2002년 6월 10일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공동대표 이 대로 드림
전화 02-6412-9441 전자 우편 idaer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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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글]
초등학생에게 한문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길인가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 공동 대표 김 정 섭
이번에 '전국 한자 교육 추진 총 연합회'에서 역대 교육부 장관 몇몇의 서명을 빌려 대통
령께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하라고 건의했다 한다. 초등학생에게 한문 글자를 가르
치자는 말은 해를 걸러 도지는 병과 같아서 아무 대꾸할 값어치도 없는 일이지만, 이 터무
니없는 일에 역대 교육부 장관들이 이름을 올렸다면 그 분들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
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막다른 고비에 몰려 있다. 학교가 뿌리째 흔들리고 교실이 쑥대밭이
되었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든 국민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몇몇 사람의 책임은 아니겠
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역대 교육부 장관이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교육을 이 꼴로 만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묻고 따지기에 앞서 스스로 몸을 낮추고 엎드려 있든지, 아니면 지
난날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이제라도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에 남은 목숨을 바쳐 죄를 빌
어도 모자라는 판에 또 다시 나라 망칠 짓을 하는 꼴을 보니 이런 교육부 장관이 있었기에
우리 교육이 이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요즘, 우리 모둠살이에서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는 말이 입
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른바, 나라를 다스리고 이끈다는 무리들이 스스로 한 거짓말을 얼버
무리는 말이다. 좀 배웠다는 패거리들이 하는 꼬락서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초
등학생에게 한문 글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떠드는 치들이 하는 말도 하나같이 거짓말이다.
거짓말, 하나 ; 한문 글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전통 문화가 단절되고 파멸한다.
우리 전통 문화 가운데 한 가닥인 한문 고전을 읽으려면 마땅히 한문을 알아야 한다. 하지
만, 모든 겨레가 한문 글자를 배워서 한문 고전을 읽어야 전통 문화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
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전통 문화와 고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깊이 공부하여 우리말로
제대로 풀이해서 널리 알리는 것이 전통 문화를 잇는 바른 길이다.
거짓말, 둘 ; 기본 한자 1500 자만 알면 주요 고전의 97.72 %를 이해할 수 있
다.
도올 김용옥은 '논어 이야기'에서 중국과 우리 나라의 옛 학자들이 잘못 풀이한 것을 하나
하나 가려내어 새롭게 풀이하였고, 이경숙은 '노자를 웃긴 남자'에서 도올 또한 잘못 풀이하
고 있다고 하여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 다 한문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분이다. 그
런데도 논어의 뜻풀이가 제가끔 다르다. 이렇게 한문은 본디 어렵고 힘들게 되어 있는 학문
이다. '동양 고전'이나 '우리 고전'은 한문 글자를 안다고 쉽게 읽고 풀이할 수 있는 호락호
락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중국의 지식인들조차 '논어' 풀이는 땅띔도 못한다는데 하물며 우
리가 한문 글자 1500 자를 배워서 '한문 고전을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대꾸할 값어치도 없
다.
거짓말, 셋 ; 21 세기는 동북아 시대이며 한자 문화권 시대다.
21 세기는 동북아 시대가 될지 모르지만, 한자 문화권 시대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말 문화권'은 있으되 '글자 문화권'은 없기 때문이다. 영어를 쓰는 여러 나라를 묶어서 '영
어 문화권'이라 하고, 유럽에 있는 잉글랜드, 도이칠란트 따위 여러 나라를 묶어서 '유럽 문
화권'이라 하지만, 로마 글자를 쓰는 나라를 몰밀어 '로마 글자 문화권'이라 하지 않는다.
한국, 중국, 일본은 자리잡은 곳으로 보아 '동북아 문화권'이라 할 수 있지만, 한문 글자를
쓴다고 해서 '한자 문화권'이라 할 수 없다.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일
본 사이에 있는 한국이 한글 전용을 고집하는 것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할 뿐'이라 하지만,
그 말이 참말이고 정말 그 일이 걱정이라면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말과 일본말을 나라말로
써야 할 것이다. 한문 글자를 쓴다 해도 두 나라 말글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월
요일을 '성기 일(星期 一)', 버스를 '공공기차(公共汽車)', 사장(社長)을 '경리(經理)'라 하고,
일본에선 어린이를 '자공(子供)', 농삿꾼을 '백성'이라 한다. 읽는 소리 또한 다 다르다.
한문 글자를 모른다고 우리나라가 따돌리는 일이 생길 까닭이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정작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외톨이가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얼빠진 겨
레로 남의 문화 종살이를 하느냐, 아니면 떳떳하게 나라 주인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거짓말, 넷 ; 우리말은 구조 자체가 70 % 이상의 한자어로 구성돼 있다.
'일본어 사전'을 그대로 베낀 어느 국어 사전에 올림말로 실린 낱말 수에 바탕을 두고 하
는 말인데 그 사전에 있는 한자말을 보면 일본에서만 쓰는 일본 한자말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이름, 땅이름, 한자말로 옮긴 서양 나라 이름과 우리 말글살이에서 평생에 한 번 쓰기
는커녕 구경도 못할 옛 중국과 우리 한문책에 실린 한자말이 수두룩하다. 또, 뜻이 같은 한
자말이 대여섯 가지에서 많게는 이백 가지씩 실린 것도 있다. 민들레의 한자말 이름은 포공
영 따위 여섯 낱말이 실려 있고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은 부친 따위 63 가지, 편지를 나타내
는 서간, 서찰 따위 198 낱말이 실려 있다. 그러니 한자말이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날살이(일상생활)에서 쓰는 한자말은 거의 다 겨레말로 갈음할 수 있고, 겨레말
이 없는 한자말은 1 % 남직하다. 이런 한자말은 들온말(외래어)로 받아들여 우리말로 삼고
한글로 쓰면 그만이다. 모든 나라가 다 그렇게 한다.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70 %가 한자말
이라는 사람이나 신문과 잡지에 실린, 한글로 쓴 우리 글을 읽고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
학 교수는 이제라도 다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우리말 공부를 처음부터 시작할 일이다.
거짓말, 다섯 : '구제역, 환란, 오니처리장'은 한문글자로 써야 뜻을 알 수 있다.
구제역(口蹄疫)은 '입 구, 굽 제, 돌림병 역', 환란(換亂)은 '바꿀 환, 어지러울 란' 오니처
리장(汚泥處理場)은 '더러울 오, 진흙 니, 곳 처, 다스릴 리, 마당 장' 이다. 한문글자를 안다
고 이 낱말 뜻을 알기는 쉽지 않다. 우리말 '해감'을 모르니 한자말 '오니'를 쓰고 '오니'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니까 한문 글자로 써서 글자 풀이하여 뜻을 대충 짐작하겠다는 말이
겠지만 글자 풀이로 뜻을 알 수 있는 한자말은 그리 많지 않다. '사회(社會)와 회사(會社)'
를 보기로 들면, '사(社)'는 '땅귀신 사, 제사지낼 사, 단체 사, 사일 사'이고 '회(會)'는 '모
일 회, 모을 회, 모임 회, 반드시 회, 마침 회, 기회 회, 셈 회, 깨달을 회, 그림 회'다. 낱말
뜻을 익히지 않고 한문글자의 뜻으로 '사회'와 '회사'의 뜻을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말이란 본디 귀로 소리를 듣고 뜻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말소리를 듣고 뜻을 알 수 없는
말은 우리말이 아니거나 소리일 뿐이다. 한문 글자를 보고 뜻을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말할
때마다 글지를 써 보일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글자를 보아야 뜻을
알 수 있는 한자말은 마땅히 말소리를 듣고 뜻을 알 수 있는 우리말로 바꾸어야 한다.
사람의 생각과 느낌과 어떤 뜻을 담은 사람의 목소리를 '말(청각언어 = 음성언어)'이라 하
고 이 말소리를 한글이나 로마 글자나 한문 글자 따위 글자로 적은 글월을 '글(시각언어 =
문자언어)'이라 한다. 따라서, 말이 없는 글은 없다. 한자말도 입으로 소리를 내면 '청각 언
어'고 겨레말도 한글로 쓰면 '시각 언어'다. 글자를 보아야 뜻을 아는 한자말을 '시각 언어'
라 하는 것은 말과 글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거나 사람들을 속이려는 잔꾀다. 중국이
나 일본에는 글자를 보아야만 뜻을 알 수 있는 한자말은 쓰지도 않고 있지도 않다.
거짓말, 여섯 : 한문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일본 학술용어를 직수입해서 쓴다.
학술용어를 일본에서 직수입해서 쓴 사람은 한문 글자에 얼이 빠진 얼치기 학자들이고 일
본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조선왜놈들이다. '나라말, 말본, 이름씨, 물음표'를 일본 학술용어인
'국어, 문법, 명사, 의문 부호'로 바꾼 사람도 그들이고 '세모꼴, 덧셈 뺄셈'을 '삼각형, 가감
산'으로, '뼈마디, 살갗, 피'를 '관절, 피부, 혈액'으로, '꽃, 꽃가루'를 ' 화훼, 화분'으로 쓰는
치도 한문 글자를 쓰자고 떠벌리는 인간들이지 한문 글자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아니다.
한문 글자를 몰라서 일본 학술용어를 직수입해서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한문 글자를 가르쳐서 '학술용어나 신조어'에 대처하자'고 하는데, 우스갯소리지만 저네들
은 무얼하고 초등학생에게 한문 글자를 가르쳐 학술용어와 신조어를 한자말로 만들게 하자
는 말인가? 학술용어나 신조어는 꼭 한자말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바탕이 잘못되었다. 우
리말로 학술용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지 알고 싶다.
요즘은 학술용어도 한자말에서 서양말로 바뀌고 있는데, 학술용어가 한자말이나 서양말에
얽매어 있고서는 우리 학문은 앞날이 없다. 일본에서 직수입해 쓰는 학술용어를 모조리 우
리말 학술용어로 바꿀 때 비로소 참다운 우리 학문이 꽃필 것이다. 모든 학자가 맡은 학문
에서 일본 학술용어를 우리말 학술용어로 고치는 데 온갖 힘을 기울여야 할 오늘인데 오히
려 한문 글자를 가르쳐서 한자말 '학술용어'를 만들자는 게 될 법이나 한 소리인가?
거짓말, 일곱 : 초등학교에서 한문 글자를 가르치면 우리말의 기초 실력을 기를
수 있다.
한문 글자란 덮어놓고 외어야 하는 '모자란 글자'다. 쓰는 것도 외어야 하고, 읽는 소리도
외어야 하고, 뜻도 외어야 한다. 그렇다고, 배우기 어려우니 가르치지 말고 쓰지도 말자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아무리 어려워도 쓸모가 있다면 가르쳐야 하고 쓸데가 있다면 배워야
한다. 하지만, 한문 글자는 우리 말글살이에 아무 쓸모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걸림돌이 된
다. 우리말을 담을 수 없는 글자이고 우리말을 병들게 하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또,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배우는 데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와 중국과 일본에서
쓰는 한문 글자가 서로 다르고, 읽는 소리도 다르고, 낱말이 다르고 말소리가 다르고 말본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쓰면서 이웃 나라와 사이 좋게 어울려 지내자는 뜻이라면 차라
리 한문 글자가 아니라 중국말과 일본말을 가르치고 쓰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동양 고전이나 우리 고전을 연구할 사람은 한문 글자가 아니라 한문을 배워야 하고, 한문
은 중학교에서 가르쳐도 늦지 않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한문 글자를 가르치자는 뜻은 전
통 문화나 고전을 이어받자는 것도 아니고, 중국말이나 일본말을 배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을 핑계삼아 우리 말글살이를 한자말, 한문 글자로 하자
는 데 있다. 한문 글자가 우리말의 기초라는 말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자말에 밀려
난 겨레말도 많지만 이제는 들어 내놓고 우리말을 죽여 없애자는 속셈이다. 우리말이 죽으
면 우리 겨레도 죽고, 겨레가 죽으면 저네들도 함께 죽는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짓일까?
마무리. 이제는 우리말과 우리 글을 바로 알고 바로 쓰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나라를 되찾은 지 예순 해가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 한문 글자를 섞어 쓰자는 사람들은 끈
질기게 억지를 부려 왔고 그러는 동안에 우리 말글은 병들고 죽어 간다. 한문 글자를 쓰느
냐, 한글만 쓰느냐 하는 것은 생각이 같고 다른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인데
어느 쪽이 옳은 지는 이미 판가름난 지 오래다. 아무리 무엇에 씌었다고 해도 이제는 제 정
신을 차려야 할 터인데 아직도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려 하니 안쓰럽고 답답하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말과 우리 글자로 살아가야 한다. 중국 바람이 불면 중국을 따르고, 일
본 바람이 불면 일본을 따르고, 서양 바람이 불면 다시 서양을 붙좇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배달겨레, 한국 사람으로서 줏대를 세우고 우리말과 우리 글자로 우리 문화를 일구어
나가야 한다. 우리말 우리 글을 바로 알고 바로 써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참되고 우리답
게 사는 바른 길이다. 한문 글자를 가르치자는 분들은 이제까지 해 온 일이 얼마나 큰 잘못
인지 깊이 깨닫고 다시는 나라 망칠 짓거리를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