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애굽기 20장 25절, 신명기 27장 5절, 여호수아 8장 31절
너희가 나에게 제물 바칠 제단을 돌로 쌓고자 할 때에는 다듬은 돌을 써서는 안 된다. 너희가 돌에 정을 대면, 그 돌이 부정을 타게 된다. <출애굽기 20장 25절, 새번역>
또 거기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을 만들되,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제단을 만드십시오. <신명기 27장 5절, 새번역>
그것은 주님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대로, 또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자연석으로 쌓은 제단이다. 그들은 그 위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주님께 드렸다. <여호수아 8장 31절, 새번역>
이 시대는 청년들이 살아가기에 정말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시대는 교묘하게 '어른스러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늙은이'이 되지 말라 하면서, '성숙한 어른'으로서 살아가라고 강요하는듯 보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면 될 터인데, 자꾸만 연기를 하라고 말하고, 척을 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참 도전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해 보아야 할 시기에 벌써 안정을 추구하라고 하니 쫓기는 일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직 가슴은 뛰고 있는데, 다리가 그 가슴을 받쳐 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좌충우돌의 아이콘인 청년들은 이해받지 못한 채 어느새 옥죄여 오는 답답한 시스템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청년들의 의기소침과 우울함은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게 만듭니다.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귀찮음'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교회가 우리 새벽 이슬같은 청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순수한 그대로 두지 못하고, 자꾸만 깎아내고, 다듬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고, 드디어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예배에 말씀 중 너무도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이 구절이 오늘 청년들에게 성경 안에서 찾은 강력멘탈을 위한 말씀입니다. 바로 이 구절입니다.
너희가 나에게 제물 바칠 제단을 돌로 쌓고자 할 때에는 다듬은 돌을 써서는 안 된다. 너희가 돌에 정을 대면, 그 돌이 부정을 타게 된다. <출애굽기 20장 25절, 새번역>
누가 보아도, 어떻게 해석해 보아도, 이 구절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그 어느 것도 꾸며진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제물을 드릴 제단조차도 정을 댈 필요가 없습니다. 소위 '자연석'으로 있는 그대로의 돌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이들은 최대한 평평하고 예쁜 자연석을 찾는 노력을 통해 이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광야에는 이런 돌이 잘 없습니다. 마땅히 제물을 올려놓고 제단처럼 사용할 예쁜 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손을 대서, 자신들의 손으로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을 치는 노력보다 말씀에 순종하여 그런 돌을 찾는 것에 더 열심을 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착한 후에도, 약속의 땅을 차지한 후에도 이 명령은 그대로 유지 되었습니다.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한 대로,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르십시오. 또 거기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을 만들되,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제단을 만드십시오. <신명기 27장 4~5절, 새번역>
저는 주변 청년들에게 최대한 멀리 있는 교회에 출석해 보라고 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가까운 곳에 이렇게 교회가 많은대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라고 하는지 의아해 합니다. 그런데 1달 정도만 다녀보면 압니다. 예를 들어 1시간 정도 떨어진 교회에 출석해서 11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집에서 9시 30분에는 나서야 합니다. 그만큼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만큼 예배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 있어야 이렇게 부지런해 질 수 있습니다.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는 1분 거리에 교회가 있어도 지각을 합니다. 하지만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멀어도 결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먼 길을 더 큰 은혜를 사모하며 올 수 있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에 대한 순수함을 회복하고 나면 더 이상 예배를 드림에 있어 환경이 우선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중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석'에 대한 의미입니다. 예배에 대한 순수함입니다. 그리고 성전인 각 사람의 순수함을 위한 놀라운 말씀입니다. 특별히 우리 청년들이라는 성전의 순수함을 위한 말씀입니다. 누구도 그 성전에 정을 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순수함을 통하여,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오히려 '자연석' 그대로를 존중해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청년 여러분, 부디 여러분의 성전을 정으로 치지 마십시오. 연기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엇보다 '척'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 가십시오. 하나님은 청년 여러분의 어떤 모습이라도 다 이해해 주실 것입니다. 받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연석을 요구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도 이 말씀에 순종했음을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여호수아는 에발 산 위에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려고 제단을 쌓았다. 그것은 주님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대로, 또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자연석으로 쌓은 제단이다. 그들은 그 위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주님께 드렸다. <여호수아 8장 30~31절, 새번역>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를 마치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왜 더 예쁘고, 멋지게 짓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이방신을 섬기는 신당이나 제사당처럼 멋드러지게 짓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진짜 멋진 것이 무엇인지 여호수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FLEX'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자연석으로 쌓아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어른스러워지지 않아도 됩니다. 애늙은이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성숙한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것은 그저 어른들의 시선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바로 '자연석'과 같은 여러분 청년들과 같은 성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나아오십시오. 비단 청년들 뿐이겠습니까? 모든 예배자 여러분, 자연석이 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우리 믿음에 연기와 척이 사라진다면, 이제 진짜 순종이 시작되어 하나님이 원하는 믿음의 여정이 시작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HbxwmQYs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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