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꽃은 철 따라 온갖 색깔로 아름답게 피어 인간들로 하여금 즐기게 하고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킨다. 꽃은 향기로운 내음으로 벌과 나비를 춤추게 하고 인간의 후각을 유혹한다. 그래서 꽃은 여인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꽃은 피었다가 지기 때문에 서글프다. 이 세상에 피었다가 지지않는 꽃은 하나도 없다. 일년생 화초도, 여러해살이 꽃도, 나무에서 피는 꽃들도 피었다가는 진다. 이듬해 다시 꽃피울 지언 정 꽃의 수명은 고작 몇 날로 제한되어 있다.
오래전 어디선가 꽃에 관한 낙서를 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꽃은 꺾지를 말고, 꺾은 꽃은 버리질 말고, 버려진 꽃은 밟지를 말지어다.’ 한낱 낙서에 불과하지만 꽃의 운명을 너무나 잘 묘사한 명언이라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화병에 절화를 꽂는 꽃꽂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대신 나는 꽃 가꾸기를 좋아한다. 스스로 꽃을 가꾼 첫경험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시골도 아닌 서울 한복판에 있는, 농업계도 아닌 인문계 학교였지만 교과목 중에 ‘화훼원예’가 있어서 이론도 배우고 실습으로 한 학생당 국화를 한 화분씩 가꿨다. 가을에 국화꽃이 많이 핀 화분의 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주었던 것 같다.
결혼 후에는 아파트 베란다에 바이올렛, 제라늄, 베고니아 같은 실내화초를 가꾸기도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꽃 농장이 있어서 심심하면 들렸다. 어쩌다가 값비싼 난화분이 생겨서 애지중지 기르기도 했다. 그러나 겨울이면 아파트 베란다는 내다보지도 않게 되고 기르기가 까다로운 난은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한 촉도 끝까지 살려낸 적이 없다.
피었다가 시드는 꽃의 서운함 때문에 어느새 나는 꽃이 피는 화초보다 잎을 관상하는 관엽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디펜바키아, 휘토니아, 페페로미아, 신답서스, 드라세나, 소철, 벤자민 같은 관엽식물들이 차츰차츰 실내를 채우게 되었다.
어느해 봄날 퇴근길에 미도파 앞에 쪼그리고 앉아 꽃을 파는 할머니에게서 조그만 관음죽 두 뿌리를 사다가 화분에 심었다. 관음죽은 관음이라는 불교적인 느낌과 대나무의 고고함이 함께하는 관엽식물이다. 관음죽은 서서히 자라는 식물이지만 물주기나 채광에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잘 자라서 기르기도 쉽다. 화분 위로 드러난 두 줄기는 쑥쑥 키를 키웠고 화분 밑 흙 속에서는 뿌리가 새끼를 쳐서 세줄기, 네줄기로 늘어나는 것이 기특하다. 10년 가까이 기르는 동안 8인치 플라스틱 화분에서 24인치 대형 도기화분으로 옮겨 심을 만큼 자랐다.
10년전 카나다로 이민을 올 때 세간이랑 읽던 책까지 거의 대부분을 콘테이너에 실었다. 그런데 기르던 화분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정성들여 길렀던 화분들이지만 마지막에는 쓰레기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소품에 해당하는 화분들은 그냥 버리고, 벤자민이랑 관음죽 같은 모양있는 화분 몇 개만 이웃에 사시던 누님댁에 옮겨놓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때 관음죽을 두고 올 때의 심정은 헤어지기 싫다고 앙앙 울면서 매달리는 어린 자식을 떼어놓고 떠나는 부모마음 같았다.
5년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애초에 두 뿌리였던 관음죽은 더욱 무성하게, 더욱 푸르게, 더욱 의젓하게 누님댁 거실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 여간 반갑고 대견했던 것이 아니다. 마치 시집간 딸이 아들 딸 잘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지금쯤 스무살이 되었을 것이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김해 본가에는 희귀한 새인 금계가 날아들었고 서울 명륜동 자택에서는 20년을 기른 관음죽이 꽃을 피우는 상서로운 현상이 일어났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관음죽이 꽃을 피우다니! 영웅은 만들어지고 신화는 창조된다고 하던데…
사실여부를 떠나서 노무현 대통령 사저에 피었다는 관음죽의 꽃은 나로 하여금 한동안 잊었던 관음죽을 상기시켰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관음죽, 자식처럼 길렀던 관음죽이 아니었던가.
올봄 나는 ‘홈디포’며, ‘레비’며, ‘캐나디언 타이어’며 가든 센터를 뒤지고 다녔다. 관음죽은 중국남부가 원산인 아열대성 식물이라서 위도가 높은 밴쿠버에는 없는 모양인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가든 센터를 여러 곳 탐방한 끝에 한 군데서 겨우 찾아냈다.
요즈음 모처럼 줄기 세 개가 모양 좋게 심어진 관음죽 화분에 새삼스럽게 정성을 쏟는다. 관음죽의 서양이름은 ‘레이디 팜’이다. 한국에서는 이름 그대로 품의있고 고고하게 키웠으니 카나다에서는 바뀐 이름처럼 숙녀랑 연애하듯이 키울 작정이다. 새삼스럼게 연애를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아는가? 레이디 팜과의 연애로 젊음을 붙들어 맬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