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바우 시장은 보통 사람들이 토해내는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 인근 시골 아낙들이 보통이째 이고온 채소나부랭이를 비롯, 5일장을 떠도는 장돌뱅이들이 펼쳐논 각종 생필품들로 빼곡하여 발딛을 틈이 없었다. 김한석 씨는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전래된 시골의 정취들을 만끽하며 넓은 시장 골목을 한바퀴 싸돌아 갯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생선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수(祭需)로 쓰일 도미 양태 숭어 낙지 상어.... 등 속의 생선을 고르고 있는 그에게,
“혹시 문산중학교에 다녔던 김한석 씨 아닙니까? ”
누군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타향 객지에서 자신의 소싯적 행적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한 사람을 만나자 김한석 씨는 적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생선가게 주인인 듯 싶은 오십 대 초반의 구레나룻 사내였다. 그는 덕지덕지 성애 낀 고기 상자를 가게 곁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냉동 창고에서 꺼내 퍽! 소리가 나게 좌판에 부리다 말고, 생선이 널린 좌판에 시선을 떨구고 있다가 구레나룻 사내의 거친 행동에 움찔 놀라 저만큼 물러나 있던 김한석 씨를 향해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구레나룻 사내는 끝이 날렵한 생선가게용 쇠갈고리를 움켜 쥔 자세로 김한석 씨의 얼굴에 이글거리는 시선을 못박은 채 그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는 듯싶었다.
세상은 좁다는 말도 있지 않더냐. 자신은 상대방을 못 알아보지만 인상이 특이한 자신을 기억하는 상대가 어디 한두 사람이더냐. 김한석 씨는 왼쪽 눈 밑에 커다란 검은 점이 하나 있었으므로 그를 한 번 본 사람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알아보던 거였다.
“그렇소만... 헌데, 댁은 뉘시오?”
김한석 씨는 구레나룻 사내의 몰골을 요모조모 각단지게 뜯어보다 말고 건성으로 응답하고 말았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 같기는 한데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오냐, 이놈 잘만났다. 중 삼 시절 일을 잊지 않았겠지? 네 놈 꾐에 넘어가 신세 조진 송광표가 바로 나다!”
그는 단번에 말을 놓아 큰소리치며 매서운 눈초리로 김한석 씨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것이었다. 원한이 사무쳐 칼바람 씽씽 이는 송광표의 외침은 김한석 씨에게는 장마철의 천둥소리로만 들렸다.
“그러니까 대액이 바로오 소옹과앙표오라 그말이이요?"
혼비백산 상태가 된 김한석 씨는 움찔 몸을 떨며 말까지 더듬었다.
김한석 씨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요 근래 들어 그의 주변에 재수 없는 일들이 연속되던 것은 오늘의 사태를 암시하는 전조 (前兆)였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심야에, 집 앞 도로 변에 세워 논 승용차의 반쪽을 작살내 기 백 만 원 정도의 손해를 야기한 뺑소니 사고가 있었는데 과중한 보험료 때문에 자기 차량 담보를 들지 않은 터라 수리비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멀쩡하던 고 3인 둘째가 갑자기 대상포진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십 여일 넘게 입원, 대입 준비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어 심사가 불편한 판국에, 애지중지하며 기르던 멍멍이 덕구 마저 죽고 말았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던 것이다. 날로 갖은 재롱을 피우며 예쁜 짓만 하던 덕구가 피를 토하며 죽은 것은 매서운 삼동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제 아침나절의 일이었다. 지난여름 고향 문산읍에 갔다가 그곳 5일장에서 예쁘장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와 이름을 덕구라고 지었었다. 반년을 넘게 자란 덕구는 제법 포동포동 살도 찌고 보름달을 보고 컹컹 짖는 폼도 어엿하여 이제는 빈집을 맡겨도 될만했다. 김한석 씨는 집에서 멀지 않은 시 외곽에 2천 여 평의 과수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포도. 사과. 배... 등 과일 나무로 무성한 농장은 직장에서 정년하면 소일할 요량으로 미리 사 둔 노후용 터전이었다. 날이 풀리면 그곳 농막(農幕)에 덕구를 데려다 놓을 심산으로 있던 김한석 씨는 크게 낭패하여 한숨을 거푸 내쉬었다. 사지를 쭉 뻗은 채 나자빠진 덕구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기왕지사 이리 된 일 마음 상해 말드라고..... 매장을 하겠다고? 두엄더미 속에 처넣으면 거름이 될 것을 매장은 무슨 얼어죽을 매장이람...”
중구난방의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그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인정이라고는 씨알머리도 없는 인사들 같으니라고...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지만 애지중지 기르던 정으로 봐서도 야박하게 그러는 거 아니여!”
인도주의자연 하며 대성일갈한 김한석 씨는 덕구의 시체를 들쳐 메고 뒷산에 올라 죽은 사람 장례 모시듯 남향 양지바른 곳을 골라 땅을 팠다. 엄동 추위에 땅 거죽이 얼어붙어 삽날이 잘 먹히지 않았으나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지극 정성으로 덕구의 무덤을 만들고 나자 해는 서산에 기울어 있었다. 요즘 날씨는 이상 기온의 연속이었다. 한번 영하로 떨어진 겨울 날씨는 아예 상승을 포기했는지 10여 일 이상을 영하의 늪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우리 나라 겨울 기후의 특성이라는 3한4온의 주기도 이제는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라고 혼잣소리로 구시렁거리며 김한석 씨는 하산을 서둘었다.
“자연의 법칙이 무시되는 이 모든 현상은 공해 탓인 게여!”
덕구를 묻은 삽을 지팡이 삼아 응달진 눈길을 내려오던 김한석 씨는 잠시 허리를 펴 마을 앞 도로변에 새로 들어선 스티로플 공장 굴뚝을 바라 보다 말고 한마디 내뱉었다. 공장 굴뚝에서는 새카만 연기가 소나기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낮에도 굴뚝 연기 때문에 맥을 추지 못하던 태양은 서산 마루에 쇠잔한 몸을 기댄 채 배턴을 이어 받아 어둠의 세상을 지배할 달님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양이 이내 모습을 감추고 기온이 급강하하며 세찬 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들자 김한석 씨는 한달음에 산을 내려와 마을 입구 허름한 구멍가게로 돌진, 동태 꼴이 된 몸뚱어리를 들이밀었다. 그는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없는 진열대에서 두 홉들이 소주 한 병을 꺼내 이빨로 병마개를 따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 꿀꺽! 목으로 술 넘어 가는 소리가 가게 밖까지 들렸는지,
“이 사람아 무슨 술을 그리 급히 마시는가?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는 말도 못 들었남?”
화장실에 다녀오던 가게 주인 영감이 피우다 만 담배꽁초를 가게 바닥에 짓이기면서 병나발을 불고 있는 김한석 씨에게 하는 말이었다.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들이키고 나자 뱃속이 화끈거리며 추위가 저만큼 물러간 성싶었다. 강추위에 혼미해 진 정신을 가까스로 수습한 김한석 씨는 슈퍼 안쪽 벽시계 아래 걸린 달력으로 눈을 주었다. 양력과 음력이 나란하게 장님도 볼 수 있게끔 큰 글씨체로 만들어진 농협에서 배포한 달력이었다. 오늘이 음력으로 섣달 초닷새라! 그가 달력을 눈 여겨 본 까닭이 있었다. 그는 사흘 후면 고향 나들이를 해야만 하였다. 섣달 초여드렛날이 시골 큰댁에서 모시는 증조할아버지의 제사 날인 때문이다. 증조할아버지의 기일 무렵이면 문산읍 장사치들은 톡톡히 재미를 본다고 하였다. 섣달 초여드렛날을 전후하여 문산 읍내에는 제사를 모시는 가정들이 수없이 많아 제수가 그만큼 달린다 하였다. 그러므로 모레가 장날인 전국 광역시 권(圈) 유일의 재래시장이라는 말바우 장을 보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말바위 시장은 5일장이 아닌 2.5.7.9로 장이 섰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훨씬 전, 동학농민혁명 당시 김한석 씨의 고향 고을 부사(府使) 영감은 도망칠 생각을 접고 성안에 거주하는 육방 관속과 양반이라 거드름 피우던 지방 토호 그리고 일부 양민들까지 동원하여 성을 사수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은 함락 당하고 진입한 동학농민군에게 모두 목숨을 잃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수성군측 사람들은 지금도 농민혁명으로 격상된 그날의 사건을, 그냥 ‘갑오년 난리’라고만 칭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당시 자신들의 선조가 당한 참화 때문에 감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는 때문이다. 역도의 후손으로 몰려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농민군 후손들 입장에서 보면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불구대천 원수의 처지로 동학농민군측을 보는 수성군 후손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나절의 일이었다.
“여보! 제사 반찬을 광주에서 마련해 간다고 큰댁에 전화하세요. 보나마나 올해도 문산 장날 제수 값이 천장부지일 테니요. “
연례 행사로 겪었던 바가지 경험이 되살아 난 김한석 씨의 아내는, 일요일 늦잠에서 깨어나 조반을 대강 마치고 조간 신문을 펼쳐 세상 돌아가는 정을 살피고 있는 남편에게 기특한 제안을 하였다.
“그렇게 합시다. 요즘 큰집 형편도 어렵다고 합디다. 모레 서는 말바우장에 들러 제수를 마련해 올테니 당신은 상에 올릴 제주와 식혜에 신경 쓰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때 왁자지껄 고샅이 소란스럽더니 곧이어 마을 애들이 축 늘어진 개 한 마리를 낑낑대며 떠메고 마당으로 들어오던 것이다.
“무슨 일로 이리 소란을 피우고 난리인겨?”
풀 안 먹인 모시 적삼처럼 온 몸이 축 늘어진 멍멍이는 덕구가 분명했다.
“아니, 이거 우리 덕구 아니여?! 요 일이 먼 일이다냐?”
놀란 토끼 눈이 된 김한석 씨는 애들로부터 덕구를 받아 안았다.
“요 앞 골목에 덕구가 쓰러져 있더란게라우. 약 먹은 쥐새끼를 먹었나 봐요.”
덕구를 떠메고 온 조무래기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시여? 쥐약을 묵었는갑다고!?”
김한석 씨는 품에 안긴 덕구의 모양새를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두 눈에 눈곱이 가득하고 피와 함께 먹은 걸 토하며 바동거리는 품이 임종이 임박한 암 환자 같게도 보였다. 그는 덕구를 개집에 눕힌 후 동치미국물을 먹여도 보고 아내가 급히 끓인 녹두즙을 먹이는 등 지극 정성을 쏟았으나 보람도 없이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덕구의 죽음은 조물주가 정해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한 인재로 비롯되었다. 만고불변의 진리인 중용의 이치를 인간들은 깨닫지 못한 듯싶었다. 코앞의 이해득실 때문에 먼 앞을 내다보지 못한 무지의 소치는 세상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곤 했다.
마을 안통은 온통 들고양이들로 득실거렸다. 번식력이 강한 녀석들인지라 종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있었다. 도둑고양이라고도 불리는 녀석들은 대낮에도 아파트 광장이나 주택가를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애써 쥐를 잡을 생각은 않고 편히 지내다가 밤이 되면 집집에서 내다 버린 맛있는 음식물쓰레기만 먹어 치웠다. 체중이 불자 야생 동물 특유의 날렵한 동작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녀석들로 인한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밤이면 음습한 지점에서 갑자기 나타나 어린애들과 아녀자들을 놀라 자빠지게 하는가 하면, 쓰레기 봉투를 찢어발겨 환경을 더럽히고 자동차 지붕에 곧잘 올라앉아 발톱으로 도색을 훼손시키는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골치를 앓던 주민들은 반상회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였다. 주민들의 민원 제기와 때맞춰 매스컴에서도 환경단체들의 주장을 곁들여 들고양이들로 인한 부작용과 생태계 파괴 실상을 집중 보도하고 있었다. 다람쥐, 청솔모 같은 희귀 동물을 마구 잡아먹어 멸종 단계에 와 있다는 내용이었다. 들끓는 민원과 환경 지킴이들의 여론 때문이었던지 당국에서는 들고양이 소탕 작전에 앞장섰다. 주택가 골목이나 마을 주변 야산 등 들고양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길목에 수많은 덫을 설치한 것이었다. 통발처럼 생긴 상자 안에 미끼를 끼워 놓고 유인하면 먹이를 탐하는 들고양이들이 덫 안으로 발을 딛기 마련이었다.
당국의 집요한 소탕 작전으로 마침내 들고양이들은 거의가 포획되었다. 들고양이 소탕 작전이 실효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당국의 독려나 환경단체 그리고 주민들의 협조도 있었지만, 갖가지 고(膏)를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건강원 업자들의 힘도 컸다. 고양이 고기가 관절 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은 예로부터 전해온 민간 요법이기도 했다. 고양이를 삶아 그 진액과 고기를 먹으면 관절의 통증이 씻은 듯이 낫는다는 것이었다. 고양이를 삶는다는 뜻의 증묘(蒸猫)는 소설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는데 문단의 어느 중진이 쓴 <증묘>라는 단편소설을 김한석 씨도 학창 시절에 읽은 적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양이만 퇴치되면 만사 오케일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천적관계의 균형이 무너져버리자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겨난 것이었다. 쥐새끼들의 발호가 그것이었다. 천적인 고양이가 없어지자 그 동안 숨죽여 지내던 쥐새끼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설치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무서워 기를 펴지 못하고 야밤에만 생쥐 눈을 번득이며 슬슬 기던 쥐새끼들은 이제는 대낮에도 버젓이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쥐새끼들로 인한 피해 역시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들고양이들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 하진 않았다. 집안 곳곳에 구멍을 뚫은 건 예사 일이고 부엌에 들어가 음식물을 먹어 치우는가 하면, 가구를 갉아 흠집내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전선줄까지도 잘라먹어 화재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견고한 시멘트 벽 틈을 어떻게 뚫었는지 천장에까지 잠입하여 새끼를 낳아 짹짹! 울음소리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 밤중에 그놈들이 마라톤 경기를 벌이기라도 하면 천장이 무너지는 소음 때문에 잠에서 놀라 깨어난 경우도 허다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놈들이 마구 갈겨대는 오줌으로 천장에는 온통 국적 불명의 지도가 그려져 있어 도배를 해봐야 말짱 헛일이었다. 별에 별 병도 많은 세상에 페스트 같은 끔찍스러운 병을 옮긴다는데.. 김한석 씨를 비롯한 많은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걱정거리로 골머리를 앓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차라리 들고양이들을 그대로 둘 걸.’ 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쥐새끼들 등쌀에 도저히 살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당국에 또 다시 민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거 원, 대관절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이오!’
당국에서는 집단 민원에 불평을 토로하면서도 구서(驅鼠)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국에서는 살포 작업이 용이하고 효능이 뛰어난 분말 쥐약을 미끼에 섞어 살포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집집마다 쥐약을 보급했다. D 데이 며칠 전부터 어린애와 가축을 단속하라는 사전 예고를 반상회 방송 각종 홍보물을 통하여 주지 시켰다. 그러나 김한석 씨는 진돗개 피가 섞였다는 덕구의 지혜를 과신한 나머지 목줄을 매는 등의 당연한 조치를 소홀히 하였는데 그게 결정적인 잘못이었던 것이다.
“영리한 개이니 별 일 없을 게요.”
설마가 사람 잡는다 했던가. 당분간 묶어 두는 게 좋을 것이라는 아내의 조언을 무시한 채 설마 어쩌랴, 안심하고 있었는데 멍청이 덕구가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고 쥐약 먹어 맥 못추는 새양쥐를 덜컥 집어삼키고 만 거였다.
“아부지! 지가 뭐랍디여. 똥개가 분명하다고 안 하든가요.”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 녀석이 거 보란 듯이 그러잖아도 속이 상해 있는 김한석씨의 속을 박박 긁고 있었다.
덕구를 사서 품에 안고 오던 날 김한석 씨는 막내 녀석과 한바탕 입씨름을 했었다.
“진돗개 혈통이니라. 앞으로 니가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 알았지야?”
아버지의 당부 말에 막내 녀석은 대답도 않고 엄마 품이 그리워 마냥 낑낑거리는 강아지를 안아주기는커녕 축구공 다루듯 발로 툭툭 건드리고만 있었다.
“진돗개는 족보가 있다는 디요? 아부지! 이 강아지 족보 있어요? ....족보가 없으면 똥개나 마찬가지여라.”
아들의 조리 정연한 질문에 김한석 씨는 잠시 기가 죽었지만 처음부터 녀석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목에 힘을 주며 큰소리로 말했다.
“족보는 없지만 족보 있는 진돗개나 다름없다고 하더라.”
“거짓말이어라. 강아지 팔아 묵을 라고 개장수가 뻥 친 소리어라.”
“에끼 놈! 잔말이 많다. 똥개고 나발이고 상관 말고 거두기나 잘해라. 제때 밥도 주고 훈련도 좀 시켜 보거라. 알겄쟈?”
일을 당하고 보니 김한석 씨는 막내 녀석의 말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녀석은 앞을 보는 안목이 투철하고 선견지명이 뛰어난 듯싶었다.
‘요즘 애들은 참으로 영악스럽다니까.’
김한석 씨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한 불만들은 종내는 울화통으로 진전하여 지병으로 자리 잡을 것만 같았다. 그로 말미암아 건강을 해치게 된다면 결국 손해 보는 쪽은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비약하자 김한석 씨는 적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런 찌꺼기같은 요소들은 요즘 말로 스트레스가 분명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것들을 생리 처리하듯 한꺼번에 쏟아버리고 싶었다. 묘방을 찾아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그의 뇌리에 어렴풋이 대나무 숲 속의 한 일화가 생각났다.
“지지리 못난 똥멍청이 같은 것들이 나라 일을 본답시고 높은 자리 앉았으니 이 모양 아닌가! 지난번에는 들고양이 잡는다고 난리를 쳐대고, 이참에는 쥐새끼 잡는다고 난리통이더니, 종내는 애먼 우리 덕구만 잡았네 그랴! 앞으로는 또 뭘 잡으라고 조져 댈 것인고? 안목도 모자라고 줏대도 없는 머저리 사촌 똥대가리들 같으니라고! ...”
육두문자를 내갈기며 정부를 일갈하고 나자 김한석 씨의 가슴속은 조금 후련해졌다.
김한석 씨는 아련한 추억의 뒤안길에 숨어 있던 소년기 문산중학교 시절을 더듬어 냈다.
맨먼저 클로즈 엎 된 영상은 덩치가 황소 만한 박한섭의 얼굴이었다. 그의 체격은 근육질로 똘똘 뭉쳐져 있었으며 키는 같은 또래라는 말이 전혀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급우들보다 머리통 하나 정도가 더 컸다. 몸무게 역시 10 킬로그램 정도 차이 났다. 녀석은 남해바다에 점점이 널린 낙도 출신 소년이었다. 바다를 무대로 고기도 잡고 바지락 고막 같은 어패류며 김 미역 파래 매생이 같은 해초를 채취해 연명하는 어부의 아들이었다. 그런 갯바닥 녀석이 외람스럽게도 뭍으로 기어 나와 군청 소재지에 위치한 문산중학교에 진학하게된 동기가 있다. 김한석이 다니는 문산중학교에는 축구부가 창설되어 있었다. 비록 군 단위 시골이지만 문산중학교 축구부는 서울 부산 등 대도시 학교들과 겨루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전통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각종 타이틀의 전국 선수권 대회며 전국체전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을 거머쥔 축구 명문 학교였다. 현역 시절 국가대표를 지낸 문산중학교 감독은 전국을 돌며 훌륭한 재목감을 잘도 뽑아왔다. 남도체전에서 초등학교 대표로 출전하여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 박한섭도 감독의 눈에 띠어 스카웃 된 것이었다. 녀석은 건장한 체격에 니그로처럼 거무튀튀한 피부를 갖고 있었다. 힘이 엄청 쌘 그는 400미터 트랙을 열 바퀴 돌고도 지칠 줄 몰랐다. 공 다루는 재간 역시 뛰어 났다. 질풍처럼 대시하여 수비수 두 서너 명을 거뜬히 제치고 문전에 도달 슈팅을 때리면 이름 난 골키퍼도 속수무책이었다. 중거리 슛도 일가견이 있어 하프라인에서 롱슛을 날려 골인 시킨 적도 있었다. 또한 큰 키를 이용한 헤딩력도 가공할만 했다.
헌데, 녀석은 심성이 착하지 못했다. 자기보다 힘이 약한 급우들을 못살게 구는 행위를 일종의 취미로 심는 듯싶었다. 그가 못되게 굴어도 그를 제재할 사람이 없었다. 교내 불량 서클로 악명을 떨치던 읍내 7거리 명칭을 딴 일곱 악동들의 모임인 '칠거리파'라는 조직도 녀석 앞에서는 전혀 기를 펴지 못했다. 박한섭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비겁한 행동만 일 삼았다. 김한석과 같이 체격이 왜소하고 마음이 여린 급우들만 골라 괴롭히는 것이었다. 의협심이라고는 눈 씻고 찾을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체육 시간 같은 실외 공부 시간이면 축구부 합숙소에서 텅 빈 교실로 들어와 급우들의 책가방을 손대고 도시락까지 까먹어 치웠다. 점심시간에, 녀석이 먹어 치운 빈 도시락을 꺼내 들고 낭패해 하는 급우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녀석의 도시락 먹어치우기 수법은 특이했다. 도시락을 뒤집어 뒷부분만 파먹고 원 위치해 놓으면 쉽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배가 출출한 새참 때가 되면 돈 푼이나 있게 보이는 만만한 급우들을 붙잡아 구내 매점으로 끌고 가서는 군것질을 실컷하고 값을 대신 계산하게 했다. 녀석에게 터지지 않으려면 군말 없이 녀석의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하였다. 교과 참고서 빌려가기 학용품 빼앗기 주머니 뒤져 용돈 뜯어 가기 담배 불로 교복에 구멍 내기 생 머리털 돌려 뽑기 ... 아무튼 녀석의 놀보 심술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김한석을 비롯한 만만한 급우들은 그런 박한섭 앞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그가 없는 곳에서 욕바가지를 퍼붓는 걸로 자신의 울화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심스런 처지를 자탄하는 의미에서 스스로 ‘만만그룹’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그들 만만그룹 급우들은 녀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 찾기에 골몰하였다. 모두들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옛말에 중과부적이라 하였으니 여럿이 힘을 합쳐 녀석과 한번 붙자는 급우들도 많았으나 말 뿐 선뜻 앞장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격이었다. 녀석을 내쫓을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학교 축구부를 없애버리면 될 일이었다. 녀석이 이 학교에 존재하는 이유가 축구부 때문이므로 축구부가 없어져 버리면 녀석은 분명 다른 학교로 옮겨갈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바람은 말 그대로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재경 향우 중에 돈 많은 학교 선배가 모교 축구부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 선배는 얼마 전에 선수수송용 미니버스까지 한 대 구입해 보냈던 것이다. 차선책으로, 녀석이 경기 중에 부상이라도 당해 병원 신세를 지거나 아예 불구자라도 되어 버렸으면... 모두들 두 손 모아 기원했지만 그런 저주가 도리어 약이 되었는지 녀석은 일취월장하여 각종 대회에서 득점상이며 최우수상을 타오는 회수가 점점 많아졌다.
박한섭의 행패가 극에 달할 즈음, 문산중학교로 전학 온 급우 한사람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광주의 변두리 어느 시장에서 생선 장수를 하는데 피치 못한 사연이 있어 이곳 시골로 전학을 왔다고 했다. 그는 인상이 험악하고 체격도 단단해 보였다. 눈망울이 살아 움직이듯 생기가 넘쳤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런 현상은 망나니들의 눈망울에나 볼 수 있는 살기(殺氣)가 분명하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삼촌의 연고를 찾아 이곳 문산중학교로 전학 온 거라 하였다. 녀석은 송광표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누군가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투창 선수 출신인 그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흉기를 휘둘러 급우들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으로 퇴교 조치되었다는 거였다.
송광표의 신상을 파악한 김한석을 비롯한 만만 그룹 급우들은 박한섭을 때려눕힐 사람은 오직 송광표 뿐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김한석은 녀석에게 슬슬 접근했다. 전학해 온 터라 가까운 친구도 없고 외톨이인 녀석에게 말벗이 되어주기로 한 것이다. 녀석은 집안 형편이 어려운 지 도시락도 싸오지 않았으므로 도시락을 여유 있게 싸와 점심도 함께 먹었다. 간간이 아이스케익이나 붕어빵 같은 군것질을 시켜주기도 하고 방과후나 휴일이면 집으로 데려와 함께 놀아주기도 하였다.
“고맙다.”
어느 날, 석고상처럼 항상 무표정하기만 하던 녀석이 김한석에게 내뱉은 첫마디였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객지에 와 고생하는 급우한테 당연한 일 아니냐.”
김한석은 어른스럽게 녀석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여유를 보였다.
어느 정도 허물없는 사이가 되자 김한석은 넌지시 송광표의 의중을 떠 보았다.
“광표야! 너한테 긴히 부탁할 말이 있는데 들어줄 용의가 있냐?”
“뭔데 그러냐? 어서 말해봐라. 한석이 네놈 부탁이라면 내 어찌 모른다 하겠냐.“
성미가 급한 송광표는 조급증 든 사람처럼 채근했다. 한동안 뜸을 들이며 송광표의 궁금증에 불을 지핀 김한석은 그 동안 박한섭에게 겪은 고초들을 낱낱이 고해 바쳤다.
“.....짜아식, 정말 나쁜 놈이로구나. 그냥 둬서는 안될 놈이다. 뜨건 맛을 보여줘야지. 헌데, 녀석은 장기가 뭐니?”
“장기고 뭐고 없다. 그저 황소처럼 힘이 셀 뿐이다.”
“황소 같이 힘이 장사라면 힘으로는 어렵겠다.”
“그럴 것 같다. 정상적인 대결로는 어려울 게다. 기습전을 펴면 몰라도...”
“뭐, 기습이라고 했니? 짜아식 별걸 다 아는구나. 그게 바로 내 장기가 아니니.”
송광표는 소매를 걷어올리며 큰 소리로 대구했다.
“내가 녀석을 때려눕히면 너희들은 나한테 뭐로 보답할 테냐?”
“?”
김한석은 송광표의 말뜻을 몰라 한동안 멀뚱해져 있었다.
“짜아식,정말 숙맥이로구나. 반대 급부가 있어야 할 게 아니냐? 반대 급부!”
“으응, 난 또 무슨 말이라고. 좋다. 네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다 들어줄 테다.”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사내가 한입으로 두 말 하겠니.“
김한석은 앞 뒤 살피지도 않고 큰소리로 장담해 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도장 찍자.”
“좋다.”
두 사람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 손도장까지 찍어 맹세의 증표로 삼았다.
어느 날, 송광표는 학기말시험을 치르러 교실에 나타난 박한섭의 발등을 일부러 밟아 싸움을 걸었다.
“이 새끼 보게! 어디서 굴러 먹다 온 놈이지? 눈깔을 엇다 뒀관디 뵈는 게 없냐 이말이야!”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박한섭은 송광표의 멱살을 움켜쥐며 눈알을 부라렸다. 이에 꿀릴 송광표가 아니었다.
“짜아식, 이거 너무 한 거 아냐? 급우간에 실수 좀 한 일을 가지고 속 좁게 놀고 그러냐?”
시비가 마침내 주먹다짐으로 비약되려는 순간, 출석부를 겨드랑이에 끼고 대나무 뿌리 매를 손에든 수학 선생이 교실로 들어오는 바람에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분이 오른 두 사람은 씩씩거리다가 말고 방과 후 학교 뒤 후미진 솔밭 밑에서 한 판 붙기로 약속하였다. 박한섭과 송광표의 맞대결은 교내의 화제 거리가 되었다. 학교가 끝나자 결투를 구경하려는 학생들로 솔밭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세기의 결전은 마침내 펼쳐졌다. 교복 차림의 두 사람은 원을 그리며 대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체구로나 힘으로 봐서 송광표는 박한섭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만만그룹 급우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나와 자신들의 운명이 걸린 건곤일척의 결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송광표를 응원하고 있었다. 한동안 탐색전을 전개하던 두 사람은 드디어 맞붙었다. 예상했던 대로 송광표는 박한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개전 초부터 수세에 몰리더니 종내는 박한섭의 육중한 몸뚱어리 아래로 깔리고 말았다. 주도권을 잡은 박한섭은 송광표의 배 위에 올라 타 징채 같은 주먹으로 송광표의 얼굴을 향해 강 펀치를 날리고 있었다. 난타 당한 송광표는 눈두덩이 부어 오르고 코에서 흘러내린 선지피로 온 얼굴이 묵사발 되어 갔다.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송광표가 아니었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황급하게 꺼내고 있었다. 번쩍, 섬광이 일었다. 흉기였다.
“아악!”
박한섭은 비명을 내지르며 땅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전황은 삽시간에 반전되었다. 잽싸게 박한섭을 올라 탄 송광표는 그의 얼굴이며 가슴패기를 사정 없이 주어 팼다. 피스톤처럼 재빠른 공격이었다. 얼굴에 선혈이 낭자한 박한섭은 끙!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송광표는 구경만하고 있던 만만그룹 급우들에게 손짓했다.
“야들아! 이 새끼한테 당한 분풀이를 하지 않을테냐!?”
만만그룹 급우들은 우르르 박한섭에게 달려들어 마구 발길 세례를 퍼부었다. 녀석에게 당했던 설움을 보기좋게 앙갚음한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다.
“야, 새꺄! 앞으로 명심 해! 힘없는 애들 그만 괴롭히란 말이다. 또 다시 그러 일 생기면 그땐 정말로 골로 갈 줄 알아라!”
송광표는 흙먼지가 뒤범벅된 교복을 툭툭 털며 의기 양양 자리를 떴다. 그의 뒤를 만만그룹 급우들이 졸개들처럼 뒤따랐다.
송광표와 만만그룹 급우들은 박한섭의 대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패자의 도를 아는 사내다운 개성 때문인지 아니면 굴러온 돌멩이에 채인 게 창피해서인지 녀석의 진의는 알 수 없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박한섭은 학교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반칙 패. 정정당당해야 할 결투에서 비정상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패했으므로 그 전말을 축구 감독이나 담임 선생님에게 일러바치거나, 더 나아가 경찰 당국에 상대의 흉기 사용 사실을 신고하여 사건화 할만도 한데 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었다.
장난으로 한 판 붙다가 박한섭 스스로 넘어져 돌멩이에 다친 거라고 입을 쫘 맞춰 놓은 송광표와 만만그룹 급우들은 박한섭의 이유 없는 증발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까닭이 있었다. 그 동안 문산중학교 축구부를 계속 지원해주던 선배의 사업이 부도가 나 파산하고 말자 갑자기 재정 상태가 열악해진 문산축구부는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된 것이었다. 축구부가 해체되자 선수 대부분은 축구부가 있는 다른 학교로 전학해 갔고, 아예 선수의 꿈을 접고 학업에 전념하려는 몇몇 선수만이 학교에 남게 되었다. 박한섭은 축구부가 있는 서울의 어느 명문교로 전학해 갔다는 소문이 교내에 떠돌 뿐이었다.
김한석을 비롯한 만만그룹 급우들은 제 세상을 만났다. 이제는 두 발 쭉 뻗고 지낼 수 있으려니 싶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만만그룹 급우들의 태평성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송광표가 김한석을 비롯한 만만그룹 급우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니들 그럴 수 있니!?”
송광표는 거두절미하고 꽥! 소리부터 내질렀다. 만만그룹 급우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든 채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두 다리 뻗고 편히 지내게 되었으면 약속을 지켜야 할 거 아니냐!?”
핏대가 오른 녀석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험악했다.
“....오늘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하지 않으면 모두들 죽을 줄 알아라! ”
녀석은 드디어 마각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요구는 엄청 났다.
하나: 매일 담배 한 갑씩 제공할 것.
둘: 매일 고기 반찬을 곁들인 도시락을 준비할 것.
셋: 숙제나 과제물을 대신해 올 것.
넷: 교과서. 참고서. 학용품 일체를 조달할 것.
다섯: 매일 군것질용 용돈을 바칠 것
송광표의 살의 번득이는 일갈에 넋이 빠져버린 만만그룹 급우들은 그의 엄청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분야 별로 책임을 분담하고 당번까지 정하여 그의 시중을 들었다.
‘박한섭 그놈이 더 나았던 것 같다.’
송광표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만 있던 만만그룹 급우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박한섭은 심술만 궂었지 녀석처럼 치사하게 굴거나 금전적인 요구는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주로 축구부 합숙소에서 생활하므로 그를 대하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훈련 중이거나 원정 경기라도 떠나고 없으면 몇 주만에 얼굴을 보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송광표 이 녀석은 날이면 날마다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고역은 보통이 아니었다.
이런 경우를 기리켜, ’호랑이의 힘을 빌어 이리를 몰아 낸 격이라‘ 하는가 보다!
김한석은 한숨을 포옥 내쉬면서 자조의 독백을 뇌까리곤 했다. 김한석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외세의 위협에 전전긍긍했던 이조 말엽의 나라꼴을, 민씨 성을 가진 여편내가 호랑이의 힘을 빌어 이리를 몰아내려다 자초한 자충수였다고 귀가 아프게 얘기해 주었었다. 국사를 공부한 김한석은 이제서야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김한석이 주동이 된 만만그룹 급우들은 송광표의 눈을 피해 잦은 모임을 가졌다. 녀석을 내칠 궁리가 주목적이었다.
“광표보다 더한 독종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부유한 정미소 집 아들로 송광표의 용돈을 도맡아 대는 김진구 녀석이 말했다.
“어려운 일일거다. 녀석보다 더한 독종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그저 어서 세월이 흘러가기만 기다릴 수밖에....”
송광표의 도시락 당번을 도맡아하는 신석철이가 맥빠진 소리로 말했다. 명년 봄 졸업을 하면 녀석을 보지 않을거라는 막연한 기대의 뜻이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김한석이 입을 열었다.
“하루하루가 지겨운 판국에 무슨 소리냐. 설사 상급학교에 진학하더라도 녀석과 같은 반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냐? 우리들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놈에게 걸리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이 차시에 아예 뿌리를 잘라내야 된다.”
“그러니까 녀석보다 더한 독종을 찾아보자는 거 아냐?”
처음 제안한 김진구가 계속 우겨댔다.
“그게 옳은 방법은 아니다. 우리 아버지가 내게 항상 하신 말씀이 있다. 이리를 몰아내려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면 절대 안 된다고 말이다. 지금 우리 꼴이 바로 그거지 뭐냐? 그러니 이번엔 남의 힘 빌 생각 말고 우리 스스로 이 난관을 돌파하도록 하자..... 법이라는 최후의 무기도 있다.”
“뭐? 법? 너 도사 다 됐구나. 그런 어려운 말도 할 줄 아는 걸 보면 말야.”
만만그룹 급우들은 옳거니, 하는 표정으로 김한석에게 시선을 모았다.
“날마다 조왕경 읽듯 하신 우리 아버지로부터 터득한 진리다.”
“조왕경이 뭐니?”
과묵하여 여태 한마디 말도 없던 구팔덕이가 불쑥 물었다.
“거, 니들 어머니께서 새벽이면 부뚜막이나 장독대 같은 데다 물 한 사발 떠놓고 구시렁구시렁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시지 않던? 그게 조왕경 읽는 소리인 거다.”
“넌 참 별 것을 다 아는구나. 그렇게 아는 게 많은 걸 보면 이 어려움을 헤쳐갈 뾰족한 수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까 법이라는 말도 했고 말이야...”
만만그룹 급우들은 기대 반 호기심 반의 눈초리로 김한석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딱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자면 용기와 배짱도 필요하고 비밀도 지켜져야 한다.”
“뭔데? 어서 말해 봐라.”
만만그룹 급우들은 이구동성으로 재촉했다.
“우선 맹세부터 하자.”
김한석이 손을 내밀자 모두들 ‘그게 좋겠다, 며 김한석의 손을 마주 잡았다.
“맹세! 하고 세 번 외치는 거다. 말하자면 맹세 삼창을 하는 거다.”
맹세! 맹세! 맹세!
맹세 삼창이 끝나자 김한석은 만만그룹 급우들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급우들은 고개를 끄떡거리며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날 오후 학교가 파하자 만만그룹 급우들은 김한석을 뒤따라 관할 경찰서로 향했다.
송광표는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경찰서로 붙잡혀 갔다. 흉기 사용, 공갈 갈취, 폭력 사용, 미성년자 흡연... 등이 주된 죄목이었다. 전과가 많은 그는 문산중학교에서 퇴학 처분이 되고 법원의 판결을 받아 광주에 있는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그런 녀석과 이렇게 마주치다니!...
김한석 씨는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난 꼴이나 진배없었다. 생선 비린내에 절은 앞치마를 걸친 송광표의 살기 번득이는 매서운 눈초리에서 언제 광기가 표출될 것인가? 꼬리 내린 짐승처럼 눈망울을 내리깐 채 숨도 크게 쉬지 못하던 김한석 씨는 용기를 내어 흘끔 송광표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예상과는 달리, 송광표는 독수리 눈을 하면서도 금방 행패를 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련한 소싯적 일로 앙심을 품어 자신의 가게 손님에게 행패를 부릴 송광표는 아닌 성싶었다. 그러나 김한석 씨는 불안한 느낌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송광표의 손에 들린 쇠갈고리와 그의 가게 도마 위에 시퍼런 날을 번득이며 누워 있는 생선 회칼은 은연중 김한석 씨를 오갈병 들게 한 것이었다.
그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한 시 바삐 호랑이 굴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과앙표오! 제에사 바안찬으로 한 십만 원 어어치 알아서 고올라 주우게. 오늘 저녁이 서언친 기이일이거어든 빠알리 가봐야겠어....”
송광표의 칼날 시선 속에 온 몸이 올가미 씌워진 김한석 씨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끝)
신 동 규
전남 장흥 출생
‘신동아’ 공모 1천만원고료 논픽션 당선
‘문예연구’ 신인상 중편소설 당선
‘여수해양문학상’ 수상
저서; 소설집 '운명에 관하여’ 장편다큐소설 ‘그리고 다시는 고향에 갈수 없으리'
최근 발표소설; 윤 사월. 실종의 미학. 첫사랑 순자. 나는 내일 낙도로 간다. 맬라뮤트, 설원으로 돌아가다. 등 다수
소속: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농민문학회. 한국문예연구문학회
첫댓글 아기자기한 소재의 나열과 구성이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마치 그때 그 길을 다녀온 감흥에 젖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제2의 송광표가 우리를 추적할지도 모를 일 입니다. 진즉 접하지 못해 죄송하고, 이제라도 웃음을 선물로 받았으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