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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군대
<약사>
중국군은 ‘중국인민해방군(PLA)'이라 부른다.
중국군의 군기(軍旗), 군모(軍帽), 항공기에 붙는 마크에는 팔일(八一)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8월 1일을 뜻한다. 8월 1일은 창군절, 즉 중국의 ‘국군의 날’이다.
청조를 타도한 신해혁명으로 1912년 중화민국이 세워졌는데, 원세개가 정권을 찬탈하더니만, 원세개가 1916년 6월 죽은 후에도, 그 잔당들인 군벌이 외세와 타협하고 독재와 부패를 저지르면서, 북경을 중심으로 정권을 이어가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은 1921년 7월에 창립되어 1924년 부터 손문의 주선으로 국민당과 협력하였다. 이를 ‘제1차 국공합작이라 한다. 이 때 양당은 같이 손을 잡고 군벌을 타파하고자 했다.
1925년 3월 손문이 죽고 나서 장개석이 북벌(군벌타도)을 완성하고, 국민당의 실권자가 되었는데, 점차 중공을 협력대상에서 배제시키고, 그 당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처럼, 정권을 획득하려고 하는 중공으로서는 국민당의 소탕에 대항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선 자신들의 무장력이 필요한 것이었고, 정권은 무력으로 쟁취할 수 밖에 없다는 자각이 있었기에
즉, 이 날 봉기로써 자신들의 무장력을 공식화한 것이므로 중국군의 창설일로 삼은 것이다. 중공은, 이 ‘무장투쟁’ 원칙에 ‘당의 영도’ 원칙, ‘통일 전선’ 원칙을 합하여, 사회주의혁명(신민주주의혁명)을 성공시킨 세 가지 보배라고 말한다.
남창봉기 이래 홍군은 국민당군의 소탕에 맞서 기나긴 투쟁을 전개한다. 처음에 강서성의
장정은 1934년 10월에 시작하여 1936년 10월까지 중국 중서부의 2만5천 리를 우회하여, 섬서성 연안(延安)에 다다른 행로였다. 출발 당시 9만여명에 가까웠던 병력이 도착 당시 8천여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장개석은 “외세를 몰아내기 전에 먼저 내부를 다스려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여, 홍군 토벌을 멈추지 않았는데, 장학량과
그리고, 중국군은 홍수, 지진 등 천재지변에는 꼭 투입되어 인민들을 구조한다. 그래서 ‘인민의 자제병(子弟兵)’, 즉 ‘아들같고 동생 같은 병사’란 말을 들으면서, 평시에도 인민들과 밀접하게 결합하고 있으며 각종 경제 건설 활동에 동원되고 있다. 또, 각국 군대와의 군사 교류를 넓히고 있고, 해외에 평화유지군도 파견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정규군 병력 숫자는 세계1위 수준으로서 2백 30만명을 상회한다. 그리고 군사비 지출은 미국 다음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우주항공기술축적 등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항공모함 건조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군의 전략을 대략 살펴보면, 1927년 창군부터 1977년, 즉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인민전쟁' 개념을 적용하였으며, 1978년 개혁개방이후 '현대화 조건 하의 인민전쟁 수행', '국부전쟁에 대응하고 경제건설을 뒷받침', '고도 과학기술 조건하의 국부전쟁에 대응' 등 조금씩 그 전략 단계를 바뀌어 왔으며, 지금은 '정보화 작전'을 중시하고 있다.
중국 정치에서 군대는 아주 중요하다. 정권을 뒷받침하는 물리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중국 정치지도자들이 군대를 소홀히 대접한 적이 없다. 그리고 중국 국력의 팽창에 따른, 강국으로의 부상 열망, 아편전쟁이래의 치욕에 대한 상기 때문에 군은 더욱 중요시될 것이며, 계속 중국의 발전을 보장하는 방패로서, 성장할 것이다. 이는 물론 주변국에 대해선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물리력이 커지는 그 자체가 주변국에게는 위협이 되는 것이다.
<통수권>
중국군의 최고 통수권자는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다.
일당국가인 중국에서 최고권력을 갖는 중공.
이 중공을 이끄는 중공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뽑히면서,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국가 주석’도 겸하는 게 관례인데, 군대를 통수할 권한은 이 정도 직책에서 곧바로 생기는 게 아니다.
즉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되어야 통수권을 갖는 것이다. 모택동 사후의 등소평은 중공 총서기나 국가주석이 아니었지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내놓지 않았다. 물리력은 정권 장악의 마지막 보루이다. 그래서 군대통수권을 쉽게 건네주지 않았을 것이다.
강택민이 중공총서기와 국가주석, 그리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한 뒤로 현재의 호금도도 이 셋을 겸하고 있다. 강택민도 한 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갖고 있다가 나중에 넘겨주었다.
중앙군사위원회라 함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를 말한다. 국가 공식 기구에도 중앙군사위원회가 있으나, 이 국가 기구는 형식적으로 걸어놓은 간판일 뿐이며, 중공 중앙군사위원회로 대체된다. 즉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구성원은 그대로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구성원이다.
중앙군사위원회는 주석 외에, 부주석 둘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현역 상장(대장)이며, 중공 중앙정치국 위원이다. 그 밖에 8명의 위원이 있다. 즉 전체 구성원은 11명이다. 중공 중앙상무위(9명)처럼 역시 홀수로 구성하였다.
8명의 위원은, 국방부장(국방장관: 현역 상장), 총참모장, 총정치부 주임, 총후근부장, 총장비부장, 제2포병 사령원, 해군 사령원, 공군 사령원으로 구성한다. 모두 상장 계급이다.
<편제와 계급>
중국군 중앙 부서들 가운데 총참모부와 총정치부가 가장 중요하다. 부장과 주임 외에 각각 그 부참모장, 부주임이 네 명(상장 셋, 중장 하나)이나 된다.
총참모부는 작전을, 총정치부는 각급부대 정치위원을 통솔하여 정치교육을 담당한다. 보급을 담당하는 총후근부, 무기를 담당하는 총장비부와 포병을 총괄하는 제2포병사령부, 그리고 해군사령부, 공군 사령부, 군사과학원, 국방대학 등이 있다.
육군을 비롯한 각 군의 기본 편제는 반(班 : 분대), 배(排 :소대), 련(連:중대), 영(營 : 대대), 단(團: 연대), 려(旅: 여단), 사(師: 사단), 군(軍: 군단), 집단군, 대군구로 구별된다. 그 지휘관을 반장, 배장, 련장, 영장, 단장, 려장, 사장, 군장, 사령원(사령관)으로 부른다.
‘33제’라 하여, 기본적으로 하급 단위 셋을 묶어 상급 부대를 만드는데, 일정하지는 않고, 각 부대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편제된다.
반은 9명이나 10명으로 구성하며, 배는 3개의 반으로, 련은 3개의 배로 구성된다. 련은 련장, 부련장, 정치지도원,부지도원, 취사반을 포함하기도 해서 그 숫자는 80명에서 120명 사이다.
영은 셋 또는 네 개의 련으로 구성하며, 단은 3개의 영으로 구성하며 많은 경우1천여명 이상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사는 다섯 개 정도의 단으로 구성하며, 많은 경우 1만명에 이른다. 려는 사에 비해 1개나 2개의 단이 적다. 군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예를 들어 세 개의 사와 한 개의 려로 이뤄지기도 한다.
해군은 기지부대, 해상 함정부대, 잠수함부대, 항공병 부대, 해안방위 부대, 해병대 등의 병과별 부대가 있고, 함대는 북해함대, 동해함대, 남해함대로 크게 구별된다. 공군은 기지부대, 항공병사령부,방공사령부,미사일부대, 레이더부대, 고사포부대 등이 있다.
군구(軍區)는 중국군이 중국 영토를 방위하기 위한 지역별 분담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곱 곳의 군구가 있는데, 심양 군구, 북경 군구, 제남 군구, 남경 군구, 광주 군구, 성도 군구, 란주 군구가 그것이다. 각 사령원(사령관)은 중장 또는 상장이 맡으며, 그 정치위원 역시 중장이나 상장이 맡는다.
중국군은 1965년에 계급을 없앴으나, 1988년에 계급제를 회복하였다.
현재 장교 계급은 아래로부터 소위, 중위, 상위, 소교, 중교, 상교, 대교, 소장, 중장, 상장이다. 대교가 한국의 준장급이 되며, 상장은 별 셋이지만, 곧 한국의 대장 계급이다.
사병의 경우, 지원병은 1급 사관, 2급 사관, 3급 사관, 4급 사관, 5급 사관, 6급 사관으로 그 계급이 올라간다. 의무병 계급은 열병, 상등병으로 나뉜다. 정규군의 대부분은 지원병으로 충당하며, 정규군 외의 예비병력인 ‘민병’은 의무병으로 충당한다.
1955년에 모택동은 열 사람의 장성에게 원수 계급을 부여하였다. 이를 ‘10대 원수’ 라 한다. 즉 항일전쟁과 내전(국민당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주덕, 팽덕회, 림표, 유백승, 하룡, 진의, 라영환, 서향전, 섭영진, 섭검영이다. 지금은 원수 계급이 없다.
그 밖에, 전국적인 부대로서, 인민무장경찰부대가 있는데, 한국의 전투경찰 형태와 가깝지만, 그 소속이나 편제는 군대와 다름없다. 즉 이들은 경찰이 아니라 군인이다. 약칭으로 무경(武警)이라 한다.(일반 경찰은 공안(公安), 민경(民警), 경찰(警察)이라 한다. )
무경의 사령원과 정치위원은 현역 상장이 맡는다. 주요 관공서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거나, 소요지역에 파견되는 군인들이 이 부대원들이다.
<정치위원 제도>
중국 군대에는 ‘정치위원’ 제도가 있다. 이는 1927년 중국 홍군이 창설될 때에, 당시 소련군의 전통을 채택한 데서 유래한다. 북한 군대도 이른바 인민군 창설시기에 이 제도를 받아들였다.
정치위원은 ‘당지휘창’(黨指揮槍: 당이 군대를 통솔한다)는 원칙에서 나오는 것으로, 당에서 각급 부대에 파견한 정치 요원이라 보면 된다. 군대는 거대한 폭력집단이니, 정치(당)가 군대를 통제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지휘관은 작전과 훈련을 책임지고, 정치위원은 소속 부대원들에게 사상교육을 시키고 정치교육, 즉 당의 입장을 부대원들에게 각인시키는 임무를 갖는다. 그리고 장병의 일상사를 관리한다. 한국 군대의 정훈장교 비슷한 역할이지만, 그 권한은 훨씬 크고 임무도 많다.
다시 말해서, 지휘관과 정치위원은 역할 분담이 이뤄지는데, 항일전쟁 시기에 사령원과 정치위원이 충돌한 적이 있었다. 사령원은 포위를 뚫고 부대를 이동시키자는 의견이었고, 정치위원은 그 자리에서 먼저 방어하자는 의견이었다. 결국 이 충돌 때문에 작전이 제대로 전개되지 못하여 큰 희생을 치렀는데, 이 일로 인해서 중공 중앙이 이 때부터 작전에 관한한 정치위원의 간섭을 금지시켰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만약 지휘관과 정치위원이 서로 화합하지 못할 경우, 대개 지휘관이 아니라 정치위원을 교체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관계는 다른 경우에도 볼 수 있다. 즉, 중앙군사위 주석은 정치위원인 셈이고, 총사령은 지휘관인 셈이다(물론, 지금은 총사령이란 게 없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각 기관의 부서장이 지휘관이고, 그 부서의 당위원회 서기가 정치위원인 셈이다. 성장이 지휘관, 성위원회 서기는 정치위원, 대학 총장은 지휘관, 대학 당위원회 서기는 정치위원인 셈이다.
각급 부대에 정치위원을 배치하는데, 연대급 이상은 ‘정치위원’ (약칭 ‘정위)’이라 부르고, 대대엔 정치교도원, 중대에 정치지도원이 있다.
지휘관과 정치위원의 관계는 동급이다. 즉 사장(사단장)과 사단 정치위원이 동급이고, 단장(연대장)과 연대정치위원이 동급이다. 한 부대에 두 명의 최고 상급자가 있는 셈이다. 위에서 말한 바처럼 역할 분담이 이뤄지기에 서로 간섭하는 것은 아니고 서로 지원하고 서로 감독하는 사이지만, 중요 사안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누가 갖느냐는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지휘관은 전시에는 전투를 지휘하여 승리할 책임이 있다. 이렇게 보면 평시보다 전시에 지휘관의 힘이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위원은 특히 전시에, 지휘관이 확정한 작전계획을 최종 거부할 권한이 있다고 봐야 한다. 즉, 당이 군대를 통솔한다는 원칙에 따라, 당의 전략과 입장에 어긋나는 작전은 정치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만약 지휘관의 지휘능력이나 정치적 입장에 문제가 있을 경우, 그 지휘관에 대한 처분을 상급 단위에 건의할 수 있다. 물론, 하급부대의 정치위원인 정치교도원이나 정치지도원의 권력은, 비록 정치위원이지만 동급의 지휘관 즉 대대장이나 중대장에 비해 약하다.
소련군의 경우, 정치위원은 그 동급 사단장이나 연대장이 상급의 작전명령을 거부할 경우, 즉석에서 총살하기도 했다고 한다.
요컨대, 중국군의 경우, 지휘관의 권한은 아주 크긴 하지만, 정치위원에 의해 제한된다고 봐야겠다. 중국군은 당의 군대로서, ‘당지휘창’의 원칙은 관철되어야 하기에 당이 파견한 정치위원의 힘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 중국군 각 군구를 보면 대개 사령원 보다 정치위원이 더 고참이거나 계급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