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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3장 연구 上
김 유 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나온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하고 육지에서 나온 짐승이다. 너무 길어서 두 번에 걸쳐 쓰겠다. 1-10절에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인데 이건 적그리스도다. 11-18절은 육지에서 나온 짐승에 관해 쓰여져 있는데 이건 거짓 선지자다. 적그리스도는 세계 정치의 수장(首長)이다. 거짓 선지자는 세계 종교의 우두머리다. 성경에서 13이란 수는 반역의 수다(창 13:13). 서양에서는 13수를 기피한다. 계시록 13장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이 전세계를 제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대목이다. 하필이면 13장에 실려 있다. 우연일까? 오늘 아침 나는 아내하고 가정 예배시 열왕기 상 10장을 읽었다. 14절을 보니 “솔로몬 왕에게 해마다 들어오는 금은 666달란트 였다.” 계13:16에는 짐승의 표 666이 나온다. 이 모두가 우연일까? 솔로몬은 전반생은 영민(英敏)한 왕이었다. 후반생은 음란과 우상 숭배에 탐닉했던 멍청한 왕이 되고 말았다. 솔로몬이 죽기 전에 통한(痛恨)해 하며 회개했다는 말이 성경엔 없다. 신약의 성도는 솔로몬을 전감(前鑑)삼아, 하나님께 반역과 배교를 저지를까 지극히 두려워하면서 인내로써 끝까지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 나도 이를 위해 매일 간구하고 있다.
짐승의 숫자인 666은 용(옛 뱀). 짐승(적그리스도), 새끼양(거짓 선지자)의 3자(三者)를 뜻하는 암호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즉 3위1체 하나님과 대치(對峙)되는 숫자다. 하나님은 777이다.
사탄은 3자1체가 되어 인류 역사 종말의 7년 대환난 후반기인 42개월 동안 전세계를 지배한다. 짐승(θηρίον. 데리온)이란 단어는 그리스 원어로 신약에 13장에만 16번 등장한다. 반역의 수괴인 용(6)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인 적그리스도(6)와, 땅에서 나온 짐승인 거짓 선지자(6)의 약호(略號)인 666을 기어코 전인류의 이마와 오른손목에 찍게 만듦으로써 인류전체를 자기 밑으로 끌어들이려는 음계(陰計)를 꾸민다. 계시록은 이것을 미리 예고하여, 영적으로 깨어있게 만든다. 사람들은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동물이다. 유명한 아무개 목사, 아무개 신학박사가 그 표를 받아도 좋다고 하니까 우리도 받자고 하면서 짐승의 표를 받아버리면 영원한 형벌에 들어간다. 계시록 자체를 미리 면밀히 연구할 필요가 그래서 있다. 남들을 따라가질 말고, 성경을 따라 가야 산다.
다니엘서 2장 및 7장, 요한계시록 13장 및 17장 등을 탐구하면 유럽연합 즉 EU의 대통령이 적그리스도로 변신할 것임을 예시하고 있다. (세밀하게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지므로 요점만 쓴다). 역사 속에서 지배 국이였던 열강국가들은 이집트, 앗시리아, 바빌론, 메대-페르샤, 그리스, 로마국이었다. 이 국가들은 한결 같이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거나 식민지로 삼으려 했다. 그 성전을 허물고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참 신이라고 했다. 종말에 출현하는 재생(再生)로마 판도에 세워질 EU의 수장(首長)인 짐승 곧 적그리스도 역시 큰 소리 땅땅치면서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갖고 신성모독의 언사를 서슴없이 토해 낼 것이다.
내가 바닷가 모래 위에 서서 보았다. 한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데 7개의 머리와 10개의 뿔을 갖고 있다. 그 뿔들에는 10개의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다(1절).
이 나라를 계 18:2에서는 바빌론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마귀의 권세를 힘입고 나오는, 인본주의 사상으로 구성된 정권이다.
짐승의 모양은 표범과 같다고 했다(2절). 여기 나오는 3짐승은 그 배경이 단 7:3-6이다. 그 순서는 반대로 되어있다. 다니엘 예언에서는 이 표범이 세 번째로 나온다. 그리스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은 표범처럼 날쌔다. 급속도로 전 세계를 정복했다. 종말의 적그리스도도 신속하게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 그 발은 곰의 발 같다고 했다. 무자비하다는 뜻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무자비한 통치를 연상케 한다. 그 입은 사자의 입 같다고 했다. 잔인성과 포학성을 가리킨다.
용은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적그리스도에게 주었다. 이 마귀의 조종으로 세계의 인본주의 정권들은 권력을 잡았었다. 장차 나올 일곱째 머리도 마귀의 조종을 받아 정권을 잡을 것이다. 이집트부터 EU까지 7나라들(7머리)도 그 몸통은 하나다. 즉 사탄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다.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으나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았다. 그러자 온 세계가 기이히 여겨, 그 짐승을 따랐다(3절).
이것은 짐승이 예수님의 부활을 모방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네로 황제의 재생”(Nero Redivivus)으로 보기도 한다. 네로 황제는 주후 68년 원로원에서 쫓겨나 자살했다. 그러나 그가 죽지 않고 동방에 피신해 있다가 파르티아 군대를 인솔하고 다시 온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장차 올 적그리스도는 옛 로마의 재생으로 본다. 칼에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짐승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상처가 회복된 것이 오히려 짐승을 <신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를 진짜 메시야인양 착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 짐승에게 권세를 준 용에게 사람들은 경배한다. 또 그 짐승한테도 경배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감히 그와 겨루어 싸울 수 있으랴?” (4절).
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야훼여, 신들 중에 주님과 같은 자가 누구입니까”(출 15:11)라는 구약의 말을 본 딴 소리다. 여기엔 하나의 큰 진리가 있다. 사탄은 항상 이 세상에서 자기가 부려먹을 앞잡이를 찾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개인이든 민족이든 간에, 사탄의 주구(走狗)가 되든가, 아니면 하님의 충직한 종이 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바클레이, 계시록 下, p.179). “누가 감히 그와 겨루어 싸울 수 있으랴?”란 말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지껄이는 소리다. 사탄은 아득한 옛날 전쟁에서 이미 패배했었다. 그래서 하늘에서 쫒겨 지상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그 짐승은 큰 일들을 말하고 또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을 받았다. 또 42달 동안 활동할 권세도 받았다(5절).
두 증인은 하나님께로부터 권능을 받아 전3년반(1260)동안 예언을 했다. 그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후3년반(42달) 동안 전세계를 통치한다. 큰 소리 탕탕치면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함부로 지껄여 댈 것이다. 그는 사탄에게서 받은 권세로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 지상의 모든 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경배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대적하는 자다.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를 받는 대상 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이다”(살후 2:4). 단 7장 25절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법을 변개(變改)하려 할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모형인 안티오쿠스 에피화네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인이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폐지시킬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전이 지금은 예루살렘에 없다. 이스라엘의 성전 터에는 현재 통곡의 벽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이슬람 모스크가 세워져 있다. 주후 70년에 로마군대가 성전을 파괴했다. 유대인들은 오매불망 성전 건축을 기원하며 오늘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2005년 정초에, 이스라엘의 공회(산헤드린)가 예루살렘에 다시 설립되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추진중에 있다. 모세법의 희생제사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무슬림들의 반대로 그 꿈이 펼쳐지지 못하고 있었는데, 2009년 8월 이슬람교의 지도자들도 예루살렘 성전 건축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성전 건축이 시작만 되면, 건축술의 발달로 1년 여란 단시일내에 완공도 가능하다고 한다.[이 대목, 류재남 저, 계시의 눈, pp.176-177을 참고했다]. 종말의 Time Table은 요원한 미래가 아니라고 나는 본다.
짐승 정권이 세계를 통치하는 기간은 겨우 42개월이다. 최악의 세월은 짧다, 42달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짐승에게 경배하며 짐승의 표를 받아버리는 자들에겐 영원한 형벌이 따른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이를 이겨내는 성도에게는 영원 무궁한 영예와 최고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 순교자의 영광을 능가하는 영광은 없다.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모든 자는 그에게 경배할 것이다(8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창세 이전부터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그들을 천부님의 보호의 손길에서 빼앗아낼 수가 없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자기 자녀를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어떤 위험도 그의 손 안에 있는 하늘의 백성들을 해치지 못한다. 계시록 17장 8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쓰여져 있다.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포로로 삼는 자는 그자신도 포로가 될 것이다. 칼로 죽이는 자는 그자신도 칼에 맞아 죽을 것이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에 있다 (9,10절).
짐승은 무력으로 성도들을 잡아와서 권력의 포로나 노예로 만들거나 칼로 죽일 것이다. 하지만 짐승인 적그리스도 자신도 나중엔 하나님께 산 채로 잡혀 심판을 받게돼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력을 무력(폭력)으로 대항하지 말고, 비폭력으로 맞서야 한다. 잔인한 권력에 무저항으로 버티어내야 한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게 돼 있다(마 26:52).
기독교는 결코 물리적 힘으로 대항하는 종교가 아니다. 사랑의 복음은 폭력의 수단으로 보호받는게 아니다. 옛날 로마 정부가 기독교를 박해했던 때에도 기독교인의 수는 수10만에 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도는 힘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나는 “맛사다” 유적지를 성지 순례시 가 보았다. 그들은 맨주먹으로 버티다가 찬송가를 부른 후 자결 했다. 기독교가 무력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하면 그건 본질에서 벗어난 거다. 하나님의 아가페의 복음을 인간의 폭력으로 보호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무기는 인내 그리고 믿음이다. 인내의 그리스 원어는 hupomone(휘포모네)다. 어쩔수 없이 수동적으로 견디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게 닥치는 최악의 상황을 용기있게 고스란히 받아들여 영광스런 경지로 이를 전환하는 일이다. 믿음에 해당하는 원어는 pistis(피스터스)다. 자기 주인에 대한 최고․ 최상의 충성심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신위(信義)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을 믿고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순교하면 부활의 영광체를 입혀주실 것이다. 그래서 이 후3년반 때에는 순교자가 다른 어떤 시대보다 더 많이 나올 것이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마 24:13). 온 세상의 분위기가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는 대세로 기울 때 주님께 향한 믿음을 꿋꿋하게 지켜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의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그 시대를 거친 사람이다. 내가 초등학교 학생이던 때 멋도 모르고 선생님의 인솔하에 신사에 함께 가서 절을 하고 손바닥을 쳤던 기억이 난다. 난 그 후 신사 참배죄를 (철모르고 했지만) 회개 했다. 장차 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또 짐승표를 끝끝내 받지 않고 버티어내기는 진짜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기어코 이겨내야 한다. 일제 신사 참배죄는 해방 후에 회개할 기회라도 있었다. 하지만 666표를 한번 몸에 받아버리면 회개할 기회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다. 일단 받은 표를 몸에서 뽑아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까지 인내로써 신앙을 지켜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리 기도를 쌓아야 한다. 주님, 나와 우리 자녀손들이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요한계시록 13장 연구 下
[짐승의 표를 받지 마라]
김 유 곤
내가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면서 느낀 것은, 어떻게 사람마다 해석이 이렇게도 다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똑같은 성경 텍스트를 가지고, 똑같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비록 똑같은 해석은 안 나오더라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해야 될텐데, 그렇질 않았다. 이게 나로선 의문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한 쪽은 계시록을 잘못 풀고 있는 거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서 푸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두뇌로 풀고 있는 거다. 가령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만을 놓고 보더라도 별의별 해석이 다 있다. 안식일재림교회에서는 첫째 짐승을 로마 교황이라고 하고, 둘째 짐승을 미국이라고 풀이한다. 잘못된 해석이다. 또 어떤 학자는 계시록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건과 사물들을 상징으로 풀어버린다. 그 사건과 사물에 담겨진 영적 의미를 끄집어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유익을 가져오면 된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속히 일어날 일들” 이라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1:1).
원불교에서는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세상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유시유종(有始有終)을 말하고 있다. 동그라미가 아니라 막대기다. 창세기는 천지 만물과 인간의 시작을 기록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요한계시록은 천지 만물과 인간세계의 마지막을 예언한, 미래에 실제로 발생할 일들의 예언서다. 어떤 학자는 계시록에서 재앙과 심판의 도구로 쓰인 <불>을 실제의 불로 보질 않고 상징으로 취급한다. 틀렸다. 그런 논법이라면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물>심판도 상징으로 봐버려야 한다. 실제로 물이다. 방주가 둥둥 뜨는 물이다. 종말에 있을 7인 · 7나팔 · 7대접의 심판도 불이 그 도구라고 쓰여져 있으면 문자대로 <불>이라고 봐야 한다.
13장 1절에 나오는 첫 짐승은 적그리스도다. 두 번째로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거짓선지자다.
또 내가 보니,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고 있다. 새끼양처럼 두 뿔이 나 있다. 용처럼 말을 한다 (13:11).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거짓선지자다, 라고 계시록 자체에서 확인해 주고 있다. 19:20 참조. 거짓선지자는 땅에서 나서 땅에 소망을 둔 종교 지도자다. 뿔은 권세를 의미한다. 두 뿔이 있다고 했는데, 세상 권세와 교회권세를 함께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 짐승은 마귀에게서 부여받은 권세로 이적을 행하며, 적그리스도의 세계 통치를 돕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게 하며 짐승의 표를 강제로 받게 만드는 자다.
이 둘째 짐승은 자신을 마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인양 위장하기 위해 <새끼양>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 악마의 3자1체 (Satanic Trinity)다. 즉 용은 성부 하나님을 대척하고, 적그리스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척하고, 거짓선지자는 성령을 대척하는 자다. 그리하여 용(사탄)의 대변자 노릇을 한다. 마지막 때 성령을 대척하는 거짓선지자는 본질적으로, 바다에서 올라온 적그리스도와 똑같으면서 그 모양만 달리하여 땅에서 올라온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다른(ἄλλον)보혜사(성령)를 보내주심을 교묘히 모방한 수법이다. 사탄은 위장의 명수(名手)다.
그가 자기 앞에 있던 첫째 짐승(적그리스도)의 모든 권세를 행사한다. 또 땅과 지구상에사는 자들로 하여금,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 받은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했다(12:12).
용은 첫째 짐승한테 권세를 위임했다. 첫째 짐승은 둘째 짐승 즉 새끼양에게 권세를 위임한다. 마치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을 성자 예수님에게 위임 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성령님께 위임하시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의 주요 임무가 사람들에게 적그리스도를 경배케 하는 것이다. 죽게 된 상처가 나은 것은 장차 출현할 재생 로마제국의 왕 적그리스도가 빈사의 지경에 이르렀다가 되살아날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점점 더 적그리스도의 존재를 두려워할 것이다.
그가 짐승(첫째 짐승) 앞에서 행할 권세를 받아 그 같은 표적(재생)을 통해 땅에 거주하는 자들을 미혹한다. 또 땅에 거주하는 자들한테 말하기를, “칼에 상처를 입었다가 되살아난 그 짐승(적그리스도)을 위해 형상(우상)을 만들어라”고 한다(13:14).
이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으려 해선 안 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병고치는 이적을 행한다고 해서 그런 사람을 신격화(神格化)해선 안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서 가는 인간의 속성상, 거짓선지자와 그 졸개들이 행사하는 기적은 많은 사람들을 미혹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종말엔 마귀가 행사하는 이적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 성도들 중에도 이런 불건전한 기적을 행하는 자들에게 미혹 당하는 수가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도 한다. 이런 능력을 행사하는 걸 보고 사람들은 더더욱 거짓 선지자를 믿고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다 결국 그 수중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만다. 그의 노림수는 오직 첫 짐승 곧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기를 주는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형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도 하고, 그 짐승의 형상한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를 모조리 죽이도록 만든다(13:15).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권세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만 있다. 그런데도 용한테서 권세를 받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말일에 하나님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저희들이 쥐고 흔들려 한다. 무엄하기 짝이 없다.
거짓 선지자가 주로 노리는 타겟(target)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리스도신도에게는 우상숭배가 결코 허용되지 않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성도들의 신앙과 주님께 향한 정절(挺節)을 무너뜨리려고 가혹하게 성도들을 잡아다 죽일 것이다.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시대다.
카톨릭의 십계명에는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제 2계명이 쏙 빠지고 없다. 카톨릭은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숭배하고 있다. 베드로나 바울의 동상 앞에서 기도하는 등 우상숭배를 자행하고 있다. 그것들은 우상이 아니라고 카톨릭은 항변한다. 종말 시대에 땅에서 올라온 짐승(거짓 선지자)에게도 카톨릭은 빌붙어서 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경배 해도 좋다고 신도들을 오도할 것이다.
그가 모든 자, 즉 작은 자나 큰 자, 부자나 가난한 자, 자유자나 종이나 모두,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13:16).
여기의 “모든 자”속에는 6계층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던 때, 여섯 째 날에 짐승과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루를 천년으로 계산하면 6일은 6천년에 해당한다. 인류 연사 6천년 말에 짐승의 표와 한나님의 인 (표)으로써, 선택받지 못한 자와 선택받은 성도를 각각 판별하신다. 어떤 표를 받느냐에 영원한 운명이 갈라진다.
①작은 자 = 하류 계층 ②큰 자 = 상류층
③부 자 = 부유층 ④가난한 자 = 극빈층
⑤자유인 = 자유층 ⑥종들 = 노예층
이상 6부류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선악과를 따먹은 땅의 족속이다.
거짓 영, 가짜 메시야, 다른 복음을 쫓는 무리다. 한편, 짐승의 표를 거부하는 성도는 생명의 위협을 각오해야 한다. 성도는 미리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도가 누구냐? 택하신 족속이요, 왕 급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주님께 소속된 백성 곧 천국민이다(벧전 2:9). 이것이 성도의 정체(正体)다.
이 짐승표는 7년 대환난의 중간 쯤부터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받게 할 것 같다. 모든 매매의 수단으로 이 표를 받게 만든다. 이 표가 없으면 공민권을 일체 행사할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두 증인이 양육하고 보호해 주는 전3년반 동안엔 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두 증인이 순교하였다가 부활 · 승천하고 난 후다. 남겨진 성도들을 보살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때 예비처(보호처)로 인도해 줄 지도자가 나올 듯하다. 그를 따라 광야(보호처)로 가서 한 때 · 두 때 · 반 때 즉 3년남짓을 지내면서 신앙의 정절을 지켜내면 된다. 이런 일들이 모두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 미리 계시록을 면밀히 연구해둘 필요가 있다.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물건을 사거나 팔거나 할 수 없게 만든다. 지혜가 여기 있다.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숫자들을 헤아려 보아라. 그것은 한 사람의 숫자인데 곧 666이다(13:17-18).
이 글의 첫 머리에서 말했듯이, 666을 하나의 상징으로 봐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상징의 숫자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로 이마나 오른손에 이런 표를 받으라고 강요하면서, 만약에 받지 않으면 경제 활동을 일체 못한다고 윽박지르는 때가 온다면 이것은 절대로 <상징>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인정하고, 그 표를 결코 받지 말아야 한다. 한번 받아버리면 취소가 되지 않으며, 회개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받고나면 마귀의 3자1체의 졸개가 되어 영원한 불못 속에 갇히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계 21:8).
상거래의 차단을 전제로 짐승의 표 666을 받으라고 강요한다. 인간의 가장 직접적인 욕구가 경제 문제다. 먹어야 산다. 그러니 며칠 동안만 굶으면,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이 표를 받고보자”하며 맥없이 무너질 신도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종말엔 <인내의 신앙>으로라야 구원을 받는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모든 분야에서 크게 발전하고 있다. 생명 공학분야의 복제기술은 인간 복제를 가능케 할 정도다. 지구상 800Km의 상공에서 찍은 인공위성의 사진은 작은 골목의 소형 자동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얼굴까지 식별해내는 고화상도(高畵像度)의 기술력을 갖춘지 이미 오래다.
인체 속에 표를 찍어 넣는 것이 666표의 본질이다. 현재 2011년는 베리칩단계까지 와 있다. 앞으로 나노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언제 어디까지 진전되어 나갈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상품을 매매하는 수단이 인체 속에 심겨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이를 이용하여 적그리스도 정권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숭배하게끔 만들 것이다.
현재 베리칩의 크기는 12mm, 세로 2mm로서, 주사기로 인체에 주입하는 단계다. 16단위의 고유번호로 전세계 70억명의 인구를 식별 · 감식할 수 있다. 그 속에 GPS 기능이 내장되어 있어서, 지구상 어느 곳에 있든지 인공위성을 통해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그 속엔 128개의 유전자 정보가 들어있으며 인간의 DNA유전자를 조작(操作)할 수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 밧데리도 리튬전지로 전원이 공급된다. 인체의 체온인 36도C만 있으면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결국 전세계 70억 인류를 개인적으로 위치추적해서 적그리스도 자신의 멋대로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Verichip(베리칩)은 Verification(확인 · 증명) 과 chip(칩)과의 합성어다. 현재(2011년)로는 베리칩이 물품의 매매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매매의 수단, 즉 경제 활동으로 발전될 가능성은 크다. 아이러닉하게도 이 베리칩을 주입(注入)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체 부위가 이마와 손이라 한다. 그것도 왼손보다는 오른손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아무튼 매매의 수단으로서의 표를 몸에 찍히거나 새겨넣거나 해선 안 된다.
물론 베리칩이 곧 666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의 전조(前兆), 다시 말하면 그 전단계인 것만은 사실일 것 같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매매하는 수단으로서의 표를 인체 속에 받아선 결코 안 된다. 표면적으로는 일상 필수품의 매매수단이지만, 내면적 · 영적으로는 짐승을 경배하게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민들은 하나님의 인(印 · 인)을 이마에 받았다(계14:1). 악마의 자식들은 짐승의 표를 이마나 오른 손목에 받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이냐, 짐승[사탄 · 경제 · 마몬 · 우상]이냐, 이 둘 중 택일(擇一)의 싸움이다.
영적 지혜가 여기 있다. 지혜가 있는 자라야 666의 영적인 본질을 꿰뚫어 볼 수가 있다. 총명 있는 자라면 그 수를 세어볼 수 있다. 솔로몬은 지혜자였다. 하지만 그의 말년에 이방 여자들과 음행했고, 그 여자들이 가지고 온 이방 잡신의 우상에게 꾸벅꾸벅 절을 해댔다. 소위 지혜의 왕이였던 솔로몬조차 이랬다. 종말시대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짐승>의 수라고 했다. 사람의 수이면서 동시에 짐승 · 악마의 수다. 다윈은 진화론을 주창하여 하나님의 창조론에 맞섰었다. “다윈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 사회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 먼저 짐승을 실제보다 더 끔찍한 존재, 짐승이라기보다는 탐욕에 물든 인간의 이미지에 근접한 존재로 가정했다. 그런 다음, 슬그머니 인간을 짐승과 동렬(同列)에 갖다 앉힌다. 이렇게 되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 ‘짐승과 같은 놈’, 그리고 한발짝 더 나아가 ‘짐승으로서의 삶’으로 한 단계 승격이 된다. 다시 말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찜찜했던 생활 패턴이, 자연의 섭리를 충실히 따르는 칭송 받아 마땅한 생활 패턴으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받는다.” [김성진 저, 머니 매트릭스, 2009. 이른아침사. p.259에서 인용]. 그렇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인간을 짐승의 반렬에 주저 앉도록 만드는 것이 진화론이요 짐승 정권이요 666이다.
노평구 선생은 주해했다. “하나님과 마몬(mammon:마몬)은 대립적인 존재다. 재물 즉 돈의 지배력이 사람에게 있어 절대적이다. 재물은 우상성(偶像性)을 띤다. 하나님과 마몬은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2자택1(二者擇一)을 명하신 것이다.” (노평구 저, 마태복음 강연. 1981. 일심사. p.308).
육신적인 경제 교역(交易)과 매매의 수단이, 영혼을 사탄에게 팔아먹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마는 것, 이것이 짐승의 표 666속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이다. 지혜가 여기에 있다. <말씀 · 인내 · 지혜>이 셋이 요한계시록의 3大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