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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나카의 계단식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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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은 아라비아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나라로, 아프리카 대륙과 홍해를 맞대고 있다. 예멘은 역사적으로 인류가 이 세상에 나타난 시기부터 거주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역이며 우리가 잘 아는 ‘천일야화’의 실제 무대로 알려져 오는 곳이다. 또한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드라마틱한 산세가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산악마을에는 전통문화의 향기가 솔솔 피어난다.
중동의 작은 나라 예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을 방문한 시바 여왕이 이 지역을 다스렸던 여왕이라는 학설도 있으며, 고대에는 노아의 아들 셈이 이 나라의 수도인 사나(Sanaa)를 세웠다는 전설도 있다. 이러한 수많은 역사적 신비를 지닌 예멘을 여행하는 것은 모험과 도전이자 또 하나의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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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나의 구시가와 신시가 경계선. |
예멘의 영토에 비행기가 들어서는 순간 창문 아래로 펼쳐지는 광경은 티 하나 없이 보이는 끝없는 사막 그대로였다. 비행기는 오만을 지나 예멘의 남동부 사막지역을 날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험준한 산세가 그대로 드러났다. 비행기는 산악지형을 불과 100m의 짧은 간격을 두고 그 위를 곡예비행 하듯이 날아갔다. 말 그대로 울긋불긋한 산자락이 춤추는 듯한 장관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베일에 가려진 이 나라의 신비가 조금씩 벗겨지는 듯했다. 하늘 가까이서 본 사나의 모습은 한 나라의 수도로 보기엔 너무나 초라할 정도로 갈색더미의 성냥갑들만 질서정연하게 나열되어 있는 작은 도시였다. 높은 빌딩도, 가지런한 도로 위 자동차 행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흙으로 만든 가옥들과 포장되지 않은 도로, 모든 것이 하늘 위에서는 갈색 바탕의 점들과 선으로만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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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나 구시가의 재래시장에서 일하는 소년. | 예멘은 서부 산악지대와 동부 사막지대로 나뉜다. 동부의 룹알할리 사막은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일부 영토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다. 북서부 고원지대는 해발 1,300~4,000m의 산들이 길게 뻗어 있다. 예멘에서 가장 높은 산은 높이 3,760m의 나비수아입 산(Jabal an-Nabi Shuayb)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산지와 사막으로만 형성된 국토
서부 산악지대는 계단식 밭이 발달하여 비교적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토양이 비옥하고 규칙적인 강우를 동반하는 인도양 몬순의 영향으로 기후가 서늘하고 비가 많이 내려 농업에 알맞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산악지형을 이루는 북서부 지역과는 달리 동부 지역은 예멘의 또 다른 지형적 특징을 이룬다. 이 지역에는 건기가 되면 물이 마르는 와디(Wadi) 지형이 대규모로 발달하였다. 특히 와디 하드라마트 주변지대는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특이한 유형의 석회암 언덕을 이루어 몇몇 모험가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비록 서부와 북부 지역에 몰려 있지만 예멘은 많은 산들이 밀집되어 있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예멘의 산들은 무성한 산림을 이루고 있는 한국의 산들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대부분 바위산으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것들도 있다. 바위산을 군데군데 키가 작은 초목이 덥고 있다.
예멘에서 즐기는 산행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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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장하게 하늘로 솟은 예맨의 전통건물. |
이 나라에서 맛보는 산행은 색다른 묘미를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서북부 지방의 험준한 산들을 면밀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예멘의 산악지대는 스위스의 알프스 산자락을 오르내리거나 미국의 옐로 스톤의 잘 닦인 산길을 거니는 것과는 다르다. 아쉽게도 이 나라에는 산행에 대한 인프라가 아직 구축되어 있지 않다. 단지 몇몇 여행사나 개인가이드를 통해 산을 오르내릴 수 있다. 심지어 산길을 제대로 표시한 지도조차 구하기 힘들다. 그러한 이유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없는 산들도 태반이다. 또 하나의 키포인트는 얼마나 훌륭한 전문 산악안내인을 구하느냐에 따라 트레킹의 재미가 좌우된다.
인적이 드물고 관광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예멘의 고봉들을 오르내리려면 나침반, 물통, 텐트 등은 필수다. 여분의 식량과 정화제도 가져가는 게 좋다. 남부 지방은 연중 무덥고 습하나 한여름에도 이곳 산악지대는 추위가 급습하기 때문에 옷차림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산행에 필요한 장비나 준비물은 현지에서 구하기 힘들므로 예멘에 도착 전에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예멘에서 즐기는 산행의 매력은 산길을 따라 걸을 때마다 접하는 산악마을의 전통 문화다. 마나카 등지의 산자락에는 특이하게도 7~8층 높이의 빌딩이 세워져 있다. 현대식 건물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지은 벽돌식 빌딩들이다. 현대문명의 이기로부터 벗어나 있는 산마을 주민들이 전통방식으로 산세 속에 그들만의 맨하탄을 건설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독특한 이슬람 건축미가 돋보이는 사나 구시가
천년의 고도 사나는 예멘의 수도로 천일야화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사나만큼 아라비아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오랫동안 고이 간직해 오고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사나는 믿기 어려울 만큼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듯이 옛스런 문화들로만 가득 채워진 도시다. 구시가에는 중세 아라비아 상인들이 노새와 낙타를 몰고 들락날락 했을 법한 풍경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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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자락에 위치한 마나카. 마을이 구름에 덮여있다. |
구시가 안으로 들어가면 한 마리의 작은 노새가 이끄는 달구지의 모습이 보인다. 두 사람이 지나다니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좁은 골목길엔 오밀조밀한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다. 각종 건과류를 파는 상인들부터, 잠비야(성인 남자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는 단칼의 일종)를 파는 가게, 어린 염소를 몰고 가는 소년, 필요한 옷가지들을 고르는 아낙네의 모습까지 실로 다양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첨단을 달리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거의 볼 수 없는 모습들뿐이다. 오히려 그러한 낡고 오래된 삶의 모습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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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허리에 찬 단도는 잠비야라고 불리는데, 예멘 남성들의 기백을 상징한다. (우)시장에서 산 어린 양과 염소를 들고 가는 남성의 모습(바잇 알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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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에는 진흙으로 만든 오래된 건물들이 많은데, 대부분 높이가 20m에 이르는 것들이다. 이러한 고층 건물들도 보통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건물들의 특징은 건물 외벽에 바른 독특한 문양이다. 이 문양은 주로 하얀 석고 반죽과 같은 것으로 그리는데, 다른 아랍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한 건물들로 촘촘히 장식되어 있는 사나의 구시가는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보존된 건물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박물관과 같다. 조금 높은 건물 옥상 위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의 전망은 매우 아름답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스크의 첨탑들은 이곳 파란 하늘을 더욱 눈부시게 장식한다.
산행시 주의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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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시장에서 산 물건을 수레에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하)나귀 탄 아이들. |
산행지를 선택할 때에는 인구밀도가 높은 곳을 택하는 게 좋다. 예멘의 수도 사나 근교에 있는 하라즈(Mt. Haraz) 산은 비교적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산행을 즐기러 찾아온 산악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산을 오르려면 베이스가 되는 마나카(Manaka)에 여장을 풀고 산행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마나카는 사나에서 서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진 험준한 산악지대 속에 자리해 있다. 해발 2,200m에 자리한 이 마을은 예전에 오스만 제국이 예멘을 지배했을 때 끝까지 침략 당하지 않고 저항했던 요새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외국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도 잘 갖추어 놓은 곳이라 인기 있는 산행 베이스캠프다.
이곳에 오면 구름이 걸쳐있는 아름다운 산의 경사진 언덕 위에서 세상 근심 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의 천진스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험준한 산세 속에 높은 벽돌 건물을 짓고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삶이 매우 신기롭게 보인다. 사나에서 서쪽으로 1시간 거리의 카우카반은 아라비아 반도 최고봉인 해발 3,660m의 나비수아입 산을 오르는 베이스가 된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알마우잇이란 마을이 나오는데, 이 주변의 산들은 비교적 쉬운 산세를 지니고 있어 나 홀로 산길을 걷는 산악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사나 북쪽의 시하라(Shihara)는 험준한 산세를 배경으로 초현실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산악마을로, 허공 위에 걸려있는 스톤브리지가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예멘에서 산행에 나서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다. 이슬람교의 금식기간인 라마단 시기 또는 종교적 축제 기간에는 산을 등반하지 않도록 한다. 이 기간에는 위급한 상황이 오더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지인과의 접촉이 어렵다. 또한 산악안내인을 구하기 힘들며 심지어 마을에서 음식을 구하기도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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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둥근지붕과 뾰족 첨탑이 인상적인 모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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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맨의 수도 사나의 구시가 전경. |
장거리 산행을 할 경우 야영할 경우가 생기기 마련인데, 안전 상 텐트는 마을 가까이에 치는 게 좋다. 단, 텐트를 보고 호기심 가득한 마을 아이들이 몰려올 것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어느 곳에 텐트를 세우든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 나이든 노인이나 부족장에게 야영 승낙을 받는 것이 정중하고 예의바른 태도가 될 수 있다.
어떠한 문제가 생기든지 현지인들과 논쟁을 벌이지 않는 게 좋다. 산악지역의 주민들은 상당수가 자위적 수단으로 총기를 가지고 있다(외국 여행자에게 총으로 위협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그러한 면에서는 안심해도 좋다). 이 점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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