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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도했다면 ‘베드로처럼’ 평안하게 꿀잠듭시다!
본문 : 사도행전 12장 5~6절
이렇게 되어서,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헤롯이 베드로를 백성들 앞에 끌어내기로 한 그 전날 밤이었다. 베드로는 두 쇠사슬에 묶여, 군인 두 사람 틈에서 잠들어 있었고, 문 앞에는 파수꾼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사도행전 12장 5~6절, 새번역>
혹시 불면증에 시달려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 어젯밤에도 이 불면증 때문에 힘들었던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대한수면연구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5%가 만성불면증을 가지고 있고, 약 20%이상이 불면증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불면증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매년 약 5~60만 명 이상으로 나타났으며, 5년간 무려 4590억원이 불면증 치료비로 사용되어졌다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알려진 불면증은 어느새 우리 삶에 침투해서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셨나 봅니다. 원하건대 오늘부터는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여기 사도행전 12장에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대적 상황이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을 잠 못 들게 했습니다. 바로 헤롯 아그립바 왕 때문이었습니다.
이 무렵에 헤롯 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하였다. 그는 먼저 요한과 형제간인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 <사도행전 12장 1~2절, 새번역>
야고보 사도가 12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섬기던 지도자를 한 순간에 잃었습니다. 하지만 슬퍼할 새도 없이 교회에 속한 동역자 몇몇도 동일한 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욱 움츠러들었고, 두려워하며, 슬퍼하고, 큰 근심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헤롯왕은 유대 사람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유월절이 지나면 유대 백성들 앞에 끌어낼 속셈으로 바로 베드로까지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지난번처럼 베드로가 도망치거나 베드로를 도와주는 사람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 네 명으로 짠 경비병을 네 패나 세워 지키게 하였습니다. 정말 절망의 밤이 깊어갑니다. 아마 베드로도, 교회도 모두 오늘밤은 ‘불면증’에 더욱 시달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사도행전 12장 5절, 새번역>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자 교회는 한 곳에 모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마음을 다해 전심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헤롯이 베드로를 백성들 앞에 끌어내기로 한 전날 밤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성경은 아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백성들 앞에 끌어내기로 한 그 전날 밤이었다. 베드로는 두 쇠사슬에 묶여, 군인 두 사람 틈에서 잠들어 있었고, 문 앞에는 파수꾼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사도행전 12장 6절, 새번역>
첫 번째로 흥미로운 점은 바로 베드로가 두 쇠사슬에 묶여 군인 두 사람 틈에서 잠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밖에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처럼 베드로 자신도 전심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훗날 바울과 실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찬양이라도 목소리 높여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자고 있습니다. 그 불편한 모습으로 그것도 자신을 지키는 군인들 틈에서 깊게 잠든, 소위 ‘꿀잠’을 자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꿀잠’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사도행전 5장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났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도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베드로와 사도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밤에 주님의 천사가 감옥 문을 열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서 말하기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남김없이 백성에게 전하여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있었다. <사도행전 5장 18~21절A, 새번역>
그러니 이번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베드로였다면 꿀잠에 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꿀잠을 자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동안 못잔 잠을 다 자려는지 너무 깊은 잠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그런 믿음 덕분인지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찾아 왔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했다면 주님의 천사가 온 것을 단 번에 눈치 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영적 감각마저 모두 깊게 잠들어버린 베드로를 보면서 주님의 천사는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고, 감방에 빛이 환히 비치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고 말하기를 "빨리 일어서라" 하였다. 그러자 쇠사슬이 그의 두 손목에서 풀렸다. 천사가 베드로에게 "띠를 띠고, 신을 신어라" 하고 말하니, 베드로가 그대로 하였다. 또 천사가 그에게 "겉옷을 두르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니, 베드로가 감방에서 나와서, 천사를 따라갔다. 베드로는 천사가 하는 일이 참인 줄 모르고, 자기가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도행전 12장 7~9절, 새번역>
생각해보니 베드로의 기대라기보다는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간절히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던 교회에게 응답이라도 하듯이 감방에 환한 빛이 비추었고 주님의 천사가 나타난 것이 더 맞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두 손목에서 쇠사슬이 스르륵 저절로 풀립니다. 천사의 음성에 따라 띠를 띠고, 신을 신고, 감방에서 나와, 천사를 따라가기 시작하는 베드로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실 겁니다. 비몽사몽간에 행동하는 엉거주춤한 태도 말입니다. 설상가상 베드로는 이런 놀라운 순간에 비몽사몽으로 천사가 하는 일이 진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넬료를 만날 때처럼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한 편으로는 베드로가 현재 ‘자포자기’ 상태였기에 이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도 곧 야고보처럼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면서, 예수님이 자신에게 해주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때가 지금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그냥 복잡한 마음을 믿음으로 정리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았기에 에라 모르겠다 잠이 든 것이었고, 그래서 주님의 천사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환상’으로 생각했다고 말입니다. 정확히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꼭 나중에 베드로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이든 간에 베드로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해 보이기도, 포기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간에 참 대단한 베드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깊게 잠들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더욱 대단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어떻게 저런 베드로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지 말입니다. 천사를 따라간 베드로는 첫째, 둘째 초소를 지나서 시내를 통하는 철문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와 한 거리를 지나자마자 천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방금 전까지 감옥에 있었는데 지금은 자유의 몸이 된 베드로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위한 교회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찾아봐도 베드로가 기도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한 교회의 모습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교회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베드로를 지금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너무도 중요한 지점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베드로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평안해 보이는 꿀잠의 결론을 여기에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교회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베드로에게 평안을 주셨고, 깊은 잠을 자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한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눈치 채지 못하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누군가로 인하여, 오늘도 우리가 스스로 기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한 누군가의 중보를 통하여 적재적소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가사처럼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보기도의 중심에는 우리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장 26절, 개역개정>
또한 예수님도 우리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중보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브리서 7장 25절, 개역개정>
마지막으로 ‘누군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들이, 교회가, 동역자들이, 친구들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기억하며 지금도 중보하고 있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혼자가 아닌 것입니다. 혼자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외로이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이 모든 중보를 통하여 지금 당신이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있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도조차 못하고 있든지, ‘기도’의 ‘기’자도 떠올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이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동안 쌓아놓은 덕 때문이 아닙니다. 결코 우연도 아니고, 행운도 아닙니다. 원하기는 여러분들은 베드로처럼 환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참으로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중보를 통하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간증하는 삶이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한 중보자가 되어주시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자유의 몸이 된 베드로는 천사가 자신을 떠나가자 그 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습니다. 감방이 아니라 시내 한복판에 서 있는 자신을 보면서 사도행전 5장에 이어 다시금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주신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그 때에야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겠다. 주님께서 주님의 천사를 보내셔서, 헤롯의 손에서, 그리고 유대 백성이 꾸민 모든 음모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 <사도행전 12장 11절, 새번역>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서, 베드로는,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12장 12절, 새번역>
역시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마리아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가까이 다가설수록 들려오는 교회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이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또한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에 눈물이 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풀려났으니 고마움을 전하고 안심시킨 후 모두가 평안히 쉴 수 있도록 베드로는 더욱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윽고 마리아의 집 앞에 도착했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마치 하나님께 기도한 후 응답을 기다렸다는 듯 바로 문 앞에 맞으러 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어린 여종, 어린 여자 아이였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리니, 로데라는 어린 여종이 맞으러 나왔다. 그 여종은 베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너무 기뻐서, 문을 열지도 않고 도로 달려 들어가서, 대문 앞에 베드로가 서 있다고 알렸다. <사도행전 12장 13~14절, 새번역>
성경은 놀랍게도 이 어린 여자 아이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로데’는 초대교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자라났음을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어른 남자의 목소리가 두려움일 수도 있었지만 이 어린 여자 아이는 베드로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듣고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너무 기쁜 나머지 문을 열어주는 것을 깜빡하고 도로 기도하는 장소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너무 깊게 잠드니 주님의 천사인지 깨닫지 못했던 베드로처럼, 너무 기쁜 나머지 문을 열어주는 것을 잊어버린 로데였습니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왔어요! 지금 문 앞에 있어요’
바로 이 부분에서 오늘 사도행전 12장에서 세 번째이자 가장 깊게 묵상해야 할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 어린 아이 ‘로데’의 말을 기도하던 누구도 믿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일보다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교회가 간절히 기도했다고 기록한 성경이 무색해 질만큼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교회의 반응은 베드로의 이해할 수 없었던 꿀잠보다도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여종에게 "네가 미쳤구나" 하고 말하자, 여종은 참말이라고 우겼다. 그러자 그들은 "베드로의 천사일거야" 하고 말하였다. <사도행전 12장 15절, 새번역>
자신들이 기도해놓고, 하나님이 응답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문 앞에서 그 베드로가 풀려나 문을 두드리고 있고, 로데가 이 기쁜 사실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무지 믿지를 못합니다. 도대체 이런 모습을 보일 거면 왜 기도를 한 것일까요? 심지어는 로데에게 ‘미쳤다’고 말한 이들도 있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로데는 침착하게 다시 참 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베드로의 천사’일거라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정말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밤새 기도했던 그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기도했던 것일까요? 하나님은 정말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던 교회의 기도에 응답하셨을까요? 이런 저의 답답한 마음과 같았던 베드로도 연신 문을 두드려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에 베드로가 줄곧 문을 두드리니, 사람들이 문을 열어서 베드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도행전 12장 16절, 새번역>
베드로였습니다. 자신들이 기도한 대로, 로데가 미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미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천사’가 아니라 ‘베드로’ 였습니다. 그러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깜짝 놀랄 일은 지금 등장하는 이 장면을 제 삶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삶을 보여주고 있는 듯 마음이 뜨끔 했습니다. 저 역시 기도했지만 믿지 못하고 걱정과 근심으로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솔직히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기도했지만 야고보 사도가 죽었고, 다른 이들도 죽었습니다. 기도했지만 핍박은 날로 심해졌습니다. 기도했지만 설상가상 베드로마저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기도는 하고 있지만 동시에 걱정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기도는 했지만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상황 때문에 기도할 때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배웠던 예수님의 말씀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22절, 새번역>
충분히 믿음이 흔들릴 수 있는 시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흔들리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다시 굳게 붙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다시금 굳게 붙들고,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가르쳐 주십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1장 6절, 새번역>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베드로와 교회는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로데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기쁨의 포옹을 했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한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교회 안에 돌기 시작합니다. 죽어 있었던 분위기가 순간 축제가 된 듯 변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행동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베드로는 손을 흔들어서 그들을 조용하게 하고, 주님께서 자기를 감옥에서 인도하여 내신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을 야고보와 다른 신도들에게 알리시오" 하고 말하고는, 거기에서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사도행전 12장 17절, 새번역>
베드로는 모인 이들에게 평안을 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다른 신도들에게 알려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아마 그들도 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평안함을 되찾고, 다시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실로 불면증이 더욱 깊어가는 밤의 적막을 깨뜨리고, 빛으로, 감옥에 있던 베드로를 찾아오셨던 주님께서, 교회에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는 예배자 여러분! 기도했다면 믿어야 합니다. 상황에서 오는 불가능을 바라보는 것은 좁은 나의 시선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문제를 문제 삼을 때 하나님은 그 문제를 풀어 가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걱정과 근심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기도와 걱정과 근심이라는 단어가 믿음 안에서 동시에 쓰이지 않도록 기도와 믿음에 대해서 다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는 우리들을 향해 관심을 두시고, 마음을 두시고 집중하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이 찬양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베드로가, 교회가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었듯이, 우리 역시 이제 사도행전 12장을 통과하면서 다시 주님만 바라보아야 할 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눈을 감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향하고 주님만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베드로가 사라진 감옥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네 명씩 네 패나 되는 경비병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도무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베드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새니, 군인들 사이에서는 베드로가 없어진 일로 작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 헤롯은 샅샅이 찾아보았으나, 베드로를 찾지 못하고, 경비병들을 문초한 뒤에, 명령을 내려서 그들을 사형에 처하였다. 그런 다음에, 헤롯은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한동안 지냈다. <사도행전 12장 19절, 새번역>
참 나쁜 헤롯왕입니다. 경비병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경비병들을 문초하고 사형에 처한 나쁜 왕입니다. 하지만 이런 헤롯왕의 악행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헤롯이 자꾸만 교만해지고 높아지려고 하면서,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신의 소리’라는 칭호를 즐겨 듣기 시작하자 주님의 천사가 헤롯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즉시로 주님의 천사가 헤롯을 내리쳤다.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벌레에게 먹혀서 죽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널리 퍼지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도행전 12장 23~24절, 새번역>
이 부분이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마지막, 네 번째로 흥미로운 점입니다.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십니다. 사람이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장 19절, 개역개정>
이 말씀에 ‘아멘’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싸움이 아닙니다. 전쟁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드린 후 믿음으로 잠잠히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헤롯왕에 대한 분노와 저주의 마음을 담아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한 후에 그 다음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차례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2장 강해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12장을 통하여 우리는 4가지의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감옥에 있었지만 꿀잠을 자는 베드로의 모습,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기도하고 있지만 믿지 못하는 교회, 결과를 책임지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씩 열거하고 나니 비단 초대교회 모습만이 아님을 발견합니다. 오늘도, 우리 삶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결과를 책임지시며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부족함으로 기도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걱정합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믿음으로 베드로처럼 기도했다면 평안하게 잠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누가복음 12장 25절, 개역개정>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7절, 개역개정>
그렇습니다. 이제 정말 기도했다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기대하셔야 합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결과를 책임지시는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평안히 쉬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베드로처럼 꿀잠을 자야 하는 것입니다. 진짜 평안입니다. 평안한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장 27절, 개역개정>
다시 새로운 한 주가 펼쳐집니다. 기도했다면 믿음으로,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평안’을 잃지 않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귀한 한 주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거친 파도가 날 향해 와도 우린 모두 주와 함께 날아오를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이제 우리 기도했다면 ‘베드로처럼’ 평안하게 꿀잠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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