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산740m장자봉-18기팀-11회차
산경표 우리산줄기 대간탐사 신의터재-봉황산-비재
鳳凰山 민족기상이 살아 숨 쉬는 대동맥「白頭大幹」中化帶
*어진 자는 自然을 좋아하나니 우리는 仁者樂山의 自由人이로다*
♠일시: 2014년 2월 8/9일(무박) ※홈피: 자유인 백두대간 클릭해 보세요
♠가는산: 무지개산437m-윤지미산538m-봉황산740m(도상19.km, 10시간소요)
♠가는산길: 신의터재-장자봉-무지개산안부-판곡지안부-윤지미산-화령재-산불감시초소-봉황산-암봉-비재 (페이스조절 바람니다)
♠주의할 곳/ 무지개산안부 독도주의, 봉황산 오르내림 주의, 암릉주의. 비재 생태터널,
♠개요: 속리산 입문하는 구간으로 저지하는 암릉 구간이 쉽게 허락하질 않는다. 속세를 떠나기가 그리 쉽질 않음이던가? 봉황산 지나면서 기기묘묘한 천혜의 기암릉은 매우 힘든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지듯 다소 위로가 된다. 중화지구대를 끝으로 속리 구간 시작하는 화령재는 상주시 화서면의 옛 지명이 화령현으로 화령현을 넘나드는 고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다. 이곳 화령재에서 잡목우거진 작은 봉우리를 넘어 계속 오르막을 오르면 산불감시 초소가 있다. 시야가 트이면서 봉황산에 닿는다. 정상에는「白頭大幹 鳳凰山」표지석과 제단이 설치되어있고 전망이 매우 훌륭하다. 정북으로 백제의 견훤왕이 대궐터 산에 쌓았다는 견휜 산성, 그 옆으로 속세를 떠난 속리의 천황 산군이 웅장한 모습으로 손사래를 하여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남녘으로 바라보면 상주의 크고 작은 고을과 지나온 중화지구대의 그림 같은 백두대간 능선들이 시원스레 열려있다. 봉황산에서 급하게 떨어지는 암릉지역(우회가능)을 지나면 새가 나는 형국의 비재(飛嶺) (구지명: 비조령)에 닿는다.
☞신의터재: 임란때 의사 김준신(金俊臣)이 이곳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이 되어 상주진에서 많은 왜군을 도륙하고 임란 4월 25일 장렬하게 순절한 후부터 이곳을 신의터재라 불리었다.*일제때 민족정기를 말살한다고 “어산재”로 개명되었고 광복50주년을 맞아 옛이름을 되찾고 이곳에 표석과 의사비를 세워 역사를 장식한다.
☞화령(火嶺): 소백산맥의 줄기를 타고 북으로 조령, 남으로 추풍령과 연하여 화령으로 불리워 왔다(택리지기록) 신라때는 연비군(蓮匕郡), 경덕왕 때에는 화령군(化寧郡), 화령이란 지명은 고개 이름인 火嶺에서 연유된다. 고려때에는 화령현으로 지금은 화서면이다.
화령장지구전적비: 6.25동란때 북한군15사단 1.000명을 수도사단 김희준 17연대장이 궤멸시켜 낙동강교도부를 마련했다. 임짐왜란 때에는 정기룡(鄭起龍)장군이 북상하는 왜군을 이곳 지역 용화 전투에서 크게 물리쳤다. (한문희 총대장010-7679-7587)
☞비재(飛嶺): 고개의 생김새가 나는 새의 형국이어서 '비조령(飛鳥嶺)'이라고 불렸다 한다.
♠다음산행: 2014년 2월 22/23일 12회차 태백산 구간입니다.
白頭 자유인18기팀종주대 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