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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러 맛집, 제대로다!>
- 출판사 제공 서평: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평점: 4.3
<성주단지> 4.5
<야자 중 XX금지> 3.5
<낭인전> 5.0
<풀각시> 4.0
<교우촌> 4.5
조예은 작가에 이어 썩 마음에 드는 작가를 만났습니다.
김·이·삭!!!
제목부터 빠져듭니다.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맞아. 나도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고!
‘작가의 말’을 통해 저도 괴력난신을 좋아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첨언하고 넘어가야 할 핵심 내용을 알려드립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이 괴이(怪異)와 용력(勇力)과 패란(悖亂)과 귀신에 관한 일이라는 뜻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을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나옵니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자세히 읽으면 작가가 지도 교수님과의 수다를 통해 ‘괴/력/난/신’이 명사 조합이 아닌 ‘괴력/난신’이라는 형용사와 명사 조합이란 말을 듣고 모호했던 공백이 메워지며 시원함을 느꼈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저희도 작가가 깨달은 바대로 괴력난신을 ‘괴이한 힘을 지닌 이들과 세상을 어지럽히는 신’으로 해석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굳이 호러 영화를 돈 내고 보러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무서워 죽겠는데, 돈까지 내면서 제 심장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고 죽 생각해왔으니까요. 철썩 같이 그렇게 믿고 살던 제가 작가의 말을 읽다가 한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나, 호러 좋아한 거였어?’
김이삭 작가는 작가의 말 서두에서 <M>과 <전설의 고향>, <이야기 속으로>, <토요 미스테리 극장>을 통해 괴력난신을 좋아했노라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어, 나돈데.’
아주 가끔 심장을 쪼는 무서운 장면에서는 양 손가락을 펼쳐 눈을 가리긴 했지만, 펼쳐진 손가락 사이 구멍으로 소심하게 다 지켜보던 드라마들이었죠.
어쩜 이리 선호조차 왜곡한 채 살았을까요.
기억의 오류는 너무나 자주 경험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선호 역시 왜곡 가능하다는 사실 앞에 충격을 먹었습니다. 김이삭 작가가 아니었다면 저는 내내 호러 물을 꺼려했던 사람으로 기억할 뻔 했습니다.
정보라 작가의 『호』 라는 소설집을 통해 호러 물에 깊이 빠져드는 저를 보았는데, 그 단초는 아주 먼 과거로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물을 즐겨 읽었다는 사실도 송시우 작가와 우연한 대화를 통해 깨우친 사실이 생각하네요. 그럼 두 번째 선호 오류를 경험한 겁니다.
어쨌든 출판사가 제공한 책 서평을 어떻게 써야지 막막하던 제게 ‘작가의 말’을 기억하며 서평의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듯합니다. 저처럼 김이삭 작가의 이름을 처음 접한 독자들을 위해 작가 소개와 출판사가 제공한 홍보 버전의 두 가지로 소개해 드릴게요.
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서사를 고민하며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다. 장편 『한성부, 달 밝은 밤에』와 『감찰무녀전』을 썼고, 여러 앤솔로지에 참여하였다. 자전적 에세이로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가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대만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 문화와 신문 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표지 안쪽의 작가 소개
첫 장편소설 『한성부, 달 밝은 밤에』의 드라마화를 확정 짓고, 장편소설과 에세이, 다양한 앤솔러지 소설집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소설가 김이삭이 첫 소설집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를 출간했다. 수록작에는 각각 귀신과 괴물, 논리적이지 않은 힘으로 대표되는 ‘괴력난신’이 등장하고, 작품 속 인물들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연대와 위로를 청한다. 비정상으로 낙인찍혀 주변으로 밀려난 인물들에게 괴력난신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여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이삭의 소설이 으스스한 호러적 재미와 함께 통쾌한 해방감을 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4년 여름, 서늘하고도 다정한 김이삭의 세계를 만나볼 시간이다. - 예스24: 래빗홀 출판사 제공
이제 김이삭 작가가 어떤 분인지 살짝 감이 오시죠?
그럼 김이삭 작가의 첫 소설집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에서 매력을 느꼈던 몇 가지 포인트들을 안내해드릴게요.
대략적인 내용 개관입니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피하여 고택에 머물던 여성의 기이한 체험담 〈성주단지〉, 학교의 금기를 어긴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학교 괴담 〈야자 중 ×× 금지〉, 옹녀의 시점에서 다시 쓴 ‘변강쇠전’ 〈낭인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혐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오컬트물 〈풀각시〉, 조선 후기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에서 벌이지는 괴이한 이야기 〈교우촌〉까지 호러 장르의 미학과 문학적 완결성을 모두 갖춘 단편소설 다섯 편이 묶였습니다.
-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왓차 피디아 제공
먼저, 첫 문장 및 첫 문단의 독보적 매력과 끝까지 매력을 발산하는 결말 한 번 보세요.
(1)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피하여 고택에 머물던 여성의 기이한 체험담 〈성주단지〉의 첫 문장 및 첫 문단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선생님, 선생님도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세요? 그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제게 미쳤냐고 물었어요. 정확히는 질문이 아니었죠. 어머니는 제가 미쳤다고 확신한 것 같았어요, 결혼 날짜까지 잡은 회계사 남자친구와 헤어진 게 그렇게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요? 네? 왜 그랬냐고요? 글쎄요. 저는 역으로 이렇게 묻고 싶네요. 선생님은 걔를 잘 아시나요? 제 전 남자친구 말이에요. 사실 잘 모르시죠? 그러니 묻지 마세요. 어차피 말해줘도 모를 거예요.
매력을 끌고 가는 결말, 좀 느껴보십시오.
그날 저는 귀도 보고 신도 보았던 거예요. 역시 안 믿으시네요.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하셔서 말해드린 건데. 저 안 미쳤다니까요?
(2) 학교의 금기를 어긴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학교 괴담 〈야자 중 ×× 금지〉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단 보실래요?
야자 끝났는데 왜 안 나와? 더 늦으면 마을버스 끊긴단 말이야.
“그래. 뭐…… 곧 졸업이니까.” 친구들과의 여행이라. 자신에게 주는 졸업 선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3) 옹녀의 시점에서 다시 쓴 ‘변강쇠전’ 〈낭인전〉은 또 어떤가요?
또 초상이 났다. 이번에 죽은 이는 마을 제일가는 난봉꾼이었다.
월나라 망한 후에 서시 소식 없고, 동탁이 죽은 후에 초선도 간데없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들에게 옹녀도 그러하였다. 훼가출송당해 낭인이 되어버린 옹녀의 뒷이야기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구걸하는 낭인들 사이에서는 다른 소문이 돌았다. 누구든 지리산으로 오면 사람들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지리산 영물인 검은 늑대와 흰 늑대가 낭인을 지켜준다는 소문이었다.
(4)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혐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오컬트물 〈풀각시〉 얘기 좀 들어보실래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참으로 요란했다. …… 할머니는 왜 이곳에 가야 한다고 했을까. 백주에도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흉한 곳에?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사람이 성큼성큼 어둠 안으로 들어 가는 게 보였다. 곱게 묶은 금박댕기가 어둠 속에서 펄럭였다.
할머니가 ‘언니’에게 느꼈던 그 감정은 그대로 대물림되어 나의 감정이 되었다. 아마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기억을 잃더라도 이것만큼은 절대 잊을 수 없겠지. 할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5) 조선 후기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에서 벌이지는 괴이한 이야기 〈교우촌〉은 더 괴기스럽습니다.
저는 성사가 처음입니다. 자기의 죄를 남김없이 고하는 것이 고해성사라지요. 그런데 제가 지은 죄를 말씀드리려면, 열 살 때 있었던 일부터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에서부터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요.
오늘은 탁덕마저 이곳을 찾아주셨잖아요? 천주께서 저희 마을을 정말 가련히 여기시나 봅니다. 특히 굶주리는 아버지를요. 탁덕, 괜찮으세요? 식은땀을 흘리시네요. 이런, 도망을 치시면 곤란하지요. 제 고해성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걸요.가장 큰 죄를 고하지 못했답니다. 이제 막 저지르려는 죄를요.
두 번째는 곳곳에 적절히 배치한 복선으로, 독자의 흥미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성주단지>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전 귀신과 마주쳤던 거예요.
·그런데 있잖아요……. 그 책 말이에요. 국역본이 아니었어요. 한문으로 적힌 책이었죠. 저는 한문을 전혀 몰라요. 저는 그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야자 중 XX 금지>
·소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빠져나왔는데. 분명히 빠져나왔는데. 문 너머에는 소녀가 서 있었다. 타탄체크 무늬 치마 아래로 녹색 체육복 바지를 입은, 오른발에만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는 소녀가. 곧이어 열려 있던 문이 쾅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본관은 야자 금지. 닫힌 문을 절대 함부로 열지 말 것. …… 그러나 가끔은 ……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지금 100년 전으로 와 있다는 거야? 타임 슬립이라도 했다고?
<낭인전>
·허나 천지신명은 옹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눈을 낮추고 낮춰 땅바닥에 붙다시피 하였건만, 백년해로할 수 있는 명줄 긴 놈 찾기가 이리도 어려워서야. 웅녀는 끙,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그런다고 포기할 옹녀가 아니었다.
·옹녀는 늑대로 변한 낭인을 직접 보고 나서야 어렸을 때 들었던 늑대인간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게 사실이었을 줄이야.
·그것이 늑대의 도리였다. 가족을 아끼는 것, 약한 구성원을 배려하는 것, 뒤처지거나 다친 이도 버리지 않는 것,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인간은 몰라도 금수인 늑대는 그 도리를 알았다.
<풀각시>
·할머니를 향해 분주히 놀리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땅에 박혔다. 꺾은 갈대를 한 아름 안고 있는 할머니 옆으로 핏물처럼 붉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다. 흙도 피로 적신 듯 붉었다. 흙살, 이건 분명 흙살이었다. 다섯 살이 모두 모인 곳이라니. 자고로 다섯 살이 모인 곳은 살이 오감을 파고들어 사람을 해한다고 하였다.
·할머니가 찾던 건 다섯 살이 모인 계곡이 아니라 계곡에 있는 재료로 엮어 만든 풀각시였던 걸까? 까닭 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풀각시는 여아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이니까.
·이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만들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그것을 왜 만들고 있는지를. 나를 위해 쓰겠다는 게 무슨 뜻이었는지를.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성급하게 서책을 태울 게 아니라 순간의 의문을 끝까지 파고들었어야 했다.
<교우촌>
·너, 저 산꼭대기에 사는 아이지? 거기 있으면 안 돼. 거기 동굴에 사는 괴물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
·당시의 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정말 큰일이 났다는 걸요. 어떨게든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기에 저는 꾀를 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보챘지요.
·생각해보면 그때 여인이 해줬던 말 중에 제가 진실로 두려워했어야 하는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거기 동굴에 사는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이 얼마나 섬뜩한 말입니까. 그때는 이 말의
무서움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예, 그랬지요.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 마을은 평화로워졌습니다. 8년 전 그날 밤까지는요.
이쯤 따라 읽은 독자라면, 이 책 뭐야?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사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분명 드실 것입니다. 여기서 멈출 제가 아니지요.
세 번째 매력은 지금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알짜 역사 정보를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상식이 풍부해지는 지점이죠.
<성주단지>에서는 ‘반빗간’이란 용어가 나옵니다. 궁궐로 따지면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과 같은 곳을 일컫는 말이라지요. ‘기문총화’라는 조선 후기에 편찬된 설화집 속의 원주에 사는 한 인삼 장수 어머니 이야기를 소개하지요.
<야자 중 XX 금지>에는 ‘몸빼’에 대한 기술이 인상적입니다. 몸빼는 원래 애도시대 때 일본 동북 농촌 지역에서 입었던 옷인데, 일제가 조선의 여학생들에게도 몸빼를 입으라고 강요했답니다. 처음에는 방공 훈련할 때만, 나중에는 아예 교복으로 입으라 했다 합니다.
<낭인전>을 보면 할머니가 태어난 해에 일어난 경신대기근을 언급합니다. 두 해 동안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 환란과 이후에 창궐한 전염병으로 팔도 민들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전합니다.
<풀각시>에는 ‘집주릅’이 나오는데, 상업에 종사한 사람으로 집주름이라고도 합니다. 집을 매매하거나 임차를 주선할 때 흥정을 붙이고 보수를 받는 조선 시대의 ‘공인중개사’라고 할 수 있답니다.
<교우촌>을 살펴보면 매괴신공과 탁덕이 등장합니다. 매괴신공은 천주교의 로사리오기도(묵주기도)이고, 탁덕은 천주교의 사제인 신부입니다. 삼절린이란 말도 나오는데, 조선 시대 때 일족과 함께, 도망친 노비나 양역(良役) 회피자, 범죄자 등에 대한 고발의 의무를 지녔던 세 이웃을 뜻합니다.
네 번째 매력까지 오면, 이 책 안 읽으면 손해겠구나 생각이 드실 겁니다. 다양한 소재를 끌어왔지만, 21세기 지금 한국의 첨예하거나 소외된 문제를 중심에 두고 스토리를 구성했습니다.
(1)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피하여 고택에 머물던 여성의 기이한 체험담 〈성주단지> 의 묘사가 생생합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냐고요? 저는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숨도 쉬지 못했어요. 걔가 또 찾아왔거든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신고도 못 하겠더라고요. 연애할 때 찍은 사진 몇 장만 보여줘도, 사랑싸움인 줄 알고 가버리거든요. 다들 걔 말만 믿었어요.
(2)학교의 금기를 어긴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학교 괴담 〈야자 중 ×× 금지〉에는 북한 이주민 2세대인 여성 청소년 아영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한국소설에서 북한 이주민 2세대 여성 청소년 주인공이 최초일 것 같습니다.
두만강을 건넜던 엄마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거쳐 한국으로 올 때까지, 그 지난한 시간 동안 이런 생각에 매달려 있었다면…… 한국에 입국하고 하나원에서 퇴소한 뒤에도 말만 통할 뿐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이주민이 되어 살아야 했던 지난날에 옛일을 후회하며 과거만 반추하였다면, 엄마는 끝내 중국에 있던 어린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오지 못했을 것이다.
(3) 옹녀의 시점에서 다시 쓴 ‘변강쇠전’ 〈낭인전〉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국가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나 현대여성의 지위 역시 옹녀와 다를 바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요.
출생률 하락을 여성의 잘못으로 호도하면서 돈으로 ‘출산율’을 높이려는 헛된 정책들에서부터 룸나무, 보슬아치,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 여성노인을 제외한 여성 청소년부터 여성 양육자에 이르기까지 여성혐오가 도를 넘은 사회적 분위기 말입니다. 게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디서나 돌봄 노동을 강요받는 것도 모자라 대다수 돌봄 전문가 여성의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은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젊은 여인이 홀로 살기에는 참으로 흉악한 세상이었다. 혼인하지 않으면 어찌 혼인하지 않냐며 들볶고, 과부가 되면 수절을 하라며 들볶았다. 지아비가 있는 여인은 더했다. 밭일과 길쌈, 빨래와 청소 그리고 끼니까지 도맡아야 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있으면 입 한번 맞추는 놈, 젖 한번 쥐는 놈, 홀레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놈, 손 만져보는 놈, 심지어 치맛귀에 씨물을 묻히는 놈을 만날 일도 없을 테니까.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다.
(4)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혐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오컬트물 〈풀각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실제적으로 다루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n차 가해를 하는 사회를 드러냅니다.
내 목숨이 끊어질 때에야 비로소 끝낼 수 있는 고민을 하고 또 했다. 그랬던 내가 죽음을 택하지 않았던 건 억울했기 때문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놈이 내게 어떤 짓을 했는데. 그 일이 생긴 뒤로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더는 나를 찾아오지도 그 일을 문제 삼지도 않았다. 그러려면 자기 죄도 함께 밝혀야 할 테니까. 그런데도 내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굳이 그가 나서지 않더라고 세상이 그를 위해 대신 나서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 건 소문이었다. 사람들의 눈초리는 바늘 끝처럼 따가웠고, 소리 없이 전해지는 이들의 수군거림은 화살처럼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할머니의 병세가 심해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어쩌면 나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한동안 자책했었다. 결국 나는 할머니와 함께 연산으로 떠났다.
(5) 조선 후기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에서 벌이지는 괴이한 이야기 〈교우촌〉을 현실에 대입하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한국사회를 빗대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은 외면하고 껍데기 진리만 붙드는 한국종교와 종교인의 모습을 고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진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괴이한 비명의 정체와 동굴에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었지요. 진리를 천주에게서 구한다면, 진실은 누구에게서 구해야 하는 걸까요?
마지막 매력이라면 단연코 작가의 인물 창조력에 높은 점수를 주겠습니다. 죽음의 상황에서도 주인공 여성을 살리고, 고난과 공포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강단 있는 여성상을 구현했습니다.
(1) <성주단지> 결론부에서 대학원생인 주인공의 독백입니다.
그날요. 제가 더는 두렵지 않았다고 했잖아요. 아뇨. 그날 말고요. 다른 그날 말이에요. 제가 한문책 읽은 날이요. 그날 4번 게이트를 열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걔랑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세상에서 뭐가 제일 무섭냐고 남귀에게 물어봤던 그 여자처럼 말이에요. 걔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면 저도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근데 걔는 죽었잖아요. 노란색이 무서워서 도망가버린 남귀처럼 말이에요. 사람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귀신은 사람을 죽일 수 없거든요. 전 귀신은 무섭지 않아요. 사람이 무섭죠.
(2) <야자 중 XX 금지>의 이 부분을 읽으면, 강인한 전사가 떠오릅니다.
“우리 엄마가 예전에 그랬거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야 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음으로 맞서야 할 때도 있다고.” 그러더니 묵직한 목검을 힘껏 내리치면서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퍽 하는 소리 한 번에 균열이 생기고, 퍽 하는 소리 두 번에 구멍이 났다.
(3) <낭인전>의 검은 늑대가 옹녀이지 않을까 짐작하며 묘사부분을 공유합니다.(작가와의 줌 북토크에서 맞다고 확인받았습니다^^)
장승이 강쇠의 목을 조준하며 비녀를 내리꽂으려는 순간,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늑대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본 장승이 마주한 것은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이는 검은 늑대였다. 늑대는 곧장 장승에게 달려들었고, 커다란 송곳니로 장승의 목을 꿰뚫었다. 장승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온 피가 대지를 붉게 적셨다.
(4) <풀각시>의 이 부분은 또 어떤가. 소름 돋도록 매력적입니다.
그를 겨누던 검 끝이 호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검을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검날이 그의 목에 닿는 순간. 쓰윽, 풀 베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더니 툭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머리와 쓰러진 몸. 그 모습을 본 나는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나는 그날 밤 그를 베었다. 그에게 살을 날렸다.
(5) 마지막 <교우촌>입니다.
저는 박해를 역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교우촌이라는 소문을 냈답니다. 그런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거든요. 구원의 피신처를 찾는 교우가 오기도 하고, 박해에 앞장서는 포졸과 외교인이 오기도 하지요. 보세요. 오늘은 탁덕마저 이곳을 찾아주셨잖아요? 천주께서 저희 마을을 정말 가련히 여기시나 봅니다. 특히 굶주리는 아버지를요. 탁덕, 괜찮으세요? 식은땀을 흘리시네요. 이런, 도망을 치시면 곤란하지요. 제 고해성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걸요. 가장 큰 죄를 고하지 못했답니다. 이제 막 저지르려는 죄를요.
제가 좋아하는 조예은 작가의 추천사 "우리가 괴력난신을 읽고 쓰는 이유는 해방감에 있다" 가 떡하니 띠지로 붙어있어 더 호감 갔던 김이삭 작가의 첫 소설집.
딱히 단점을 찾을래야 찾기 힘든 래빗홀 출판사의 『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를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