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대학교수 그것도 국문과나 문예창작과에 재직하는 현대문학 전공 교수들은 주변에서(주로 제자들이 되겠지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또는 시인이나 작가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됩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정석대로 문장수련법의 하나인 구양수의 삼다(三多), 곧 남의 글을 많이 읽어보고, 실제로 많이 지어보며, 많이 생각하라는 비법 아닌 비법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너무도 막연하고 포괄적인 내용이어서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듯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필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을 처음 시작하려는 초심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문학을 전공하겠다고 국문과에 들어온 학생조차도 책읽기를 꺼리는 현상이 짙습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감상문을 작성해 오라거나 최근 작품을 읽고 이를 분석하여 발표해 보라고 하면 얼굴을 붉히는 게 일쑤지요. 이렇게 하면 글쓰기는 물론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불가능합니다. 문학작품을 접하기 위해서는 대상과 방법이 필요할 터인데, 먼저 무엇을 읽을 가를 고민하는 젊은이를 위해서는 필자의 {문학을 찾아서}에 수록된 [젊은 문학독자가 읽어야 할 책]을 권합니다. 문학활동을 위하여 젊은 문학독자들이 읽어야 할 책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텐데 단계별로 제시된 독서를 통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 몇 가지를 더 권한다면, {누가 눈물 없이 울고 있는가}(김재홍, 시와시학사),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김상욱, 도서출판 친구),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김남주, 민음사), {문학과 철학의 심포지엄}(정종, 고려원), {문학 목매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김성동외, 열사람), {문학을 시작하려면}(임헌영, 생활지혜사), {문학에세이}(우리문학연구회, 도서출판 아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어떻게 읽을 가를 걱정하는 독자를 위해서는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진지하게 묵상해 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고 우리의 삶과 이 시대를 뒤집어 보기 위해,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내 삶을 보다 진지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현실 상황과 미래상을 알기 위해, 오랜 기간 인류가 이루어 온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등등, 그 어떤 대답도 그 이유가 될 것이며 문학작품을 지속적으로 읽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한가로운 시간을 재미있게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깨우치는 것이고 삶을 느끼게 하는 것이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스스로 터득해 가는 산 교육장이 됨을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작가는 왜 작품을 쓰고 독자는 왜 문학작품을 읽는가를 자주 반문해 보았으면 합니다. 문학은 빵을 만드는 학문은 아니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인격과 양심을 충족시켜주며 때로는 정신적 구원을 주기도 하고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의식주라고 하는 동물적 차원의 삶이 아니라 인간적 차원의 삶을 의미합니다. 작가가 작품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단지 돈벌이를 위해서 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사회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상상의 세계에서 완성시켜 정신적 보상을 받기 위한 경우도 있습니다. '세레자드'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예에서와 같이 쓰지 않고는 또는 말하지 않고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서 작품은 쓰여지기도 합니다. 문학의 동기와 목적을 묻는 한 조사에 의하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중심적 과제로 삼는 경우가 28%, '사랑과 아름다움의 추구'가 16%, '고통 및 슬픔의 승화' 14%이며 그밖에 '자연을 숭상하는 정신' 12%, '인간 재평가' 10%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자가 작품을 읽는 경우도 각양각색인데, 단순히 재미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기도 하는 반면 자신의 교양을 높이고 정신영역을 확대시키기 위해 또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작가와 독자들의 문학활동에 대한 심리적 동기를 알게되면 작품을 읽고 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셋째로, 문학 장르의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시 소설을 비롯하여 문학사에 수용되어 있는 모든 장르는 나름대로의 구조와 원리, 미학 등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문학작품을 열심히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취향에 맞는 장르를 알게되고, 이를 바탕으로 그 장르가 지닌 구조적 특성과 미학적 원리를 터득하게 됩니다. 이때 장르별 해설서나 이론서를 같이 읽게되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그 동안 어렵게만 보이던 시, 소설 작품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작품의 해석은 물론, 그 작품이 지닌 장·단점을 알게되어 보다 여유 있게 작품이 지닌 멋과 재미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창작에 관한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대개 습작품 몇 편 정도 썼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요. 그러나 생각같이 글은 쉽게 쓰여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고통과 번민이 따르고 심리적 갈등이 일어납니다. 이때 들려줄 말은 "습작 기간은 길수록 좋고 습작품은 많을수록 좋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흘린 땀과 눈물만큼씩 작품은 진전·성취된다는 말을 푯대삼아 간단없는 자기 수련을 쌓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넷째로, 내게 주어진 한번뿐인 삶,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중요하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 하루하루가 단 '한번뿐'일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엄숙성과 진지함을 갖게 합니다. 윤동주의 <서시>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에서 '한 점'이 주는 의미의 심화와 확산에 있을 것입니다. 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길기만 한 습작기간, 그리고 조금은 더 힘들 것 같은 문단 데뷔, 이어서 '홀로 서기'의 피 말리는 순간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있겠어요. 그러나 그런 과정들은 실상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준비, 곧 삶에 대한 치열한 대결의지의 탐색의 하나로 작용해야 합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여러분은 사마천을 생각하고, 베토벤과 밀턴을 떠올리며, 프란츠 파농을 얘기해 보셨으면 합니다. 아니 우리 나라 문인들 박지원·신채호·한용운·윤동주·이육사·김현·송명희·박정만·김남주 등의 삶을 통해 새 힘과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오늘 진실된 작품 한 편을 쓰겠다'는 각오로 임하게 될 때, 문학의 길은 여러분 앞에 '시온의 대로'같이 열릴 줄 믿습니다.
끝으로, 문학의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 들려줄 말은 많지만 문학은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독서와 부단한 자기 연찬을 통하여 쟁취해 내는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덧붙여 젊어지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다면 모두 문학에 흠뻑 빠져보기를 강력하게 권합니다. 실제 나이에 관계없이 순수와 열정, 그리고 삶에 대한 진정성(眞正性)이 담보되어 있는 곳, 그곳이 영혼의 세계요, 천국의 세계이자 영원한 십대의 젊음을 유지하는 신성소라면 우리 모두 망설이지 말고 그곳에 발을 디뎌놓기를 갈망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문학을 좋아하는 젊은이에게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새 힘과 용기을 주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 3-10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