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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오전 업무를 마친 사람들이 서둘러 속속 한예종 앞 리무진 버스 앞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일찍 출발하는 것도 좋겠으나 다들 바쁘신 관계로 출발은 여유있게 오후 3시. 저마다 작은 캐리어를 끌고 어슬렁거리며 모여든다. B님은 생일 축하케익도 준비해오시고 다들 여행 떠난다는 설레임에 기분이 들썩이는 것같다. 차는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게 출발을 하고, 출발 인원을 체크해보니 15명, 구례에서 합류할 분이 4분. 총 19명의 여행이다. 다들 헐레벌떡 오느라 지친것같다. 휴게소에 들르기까지는 잠깐 휴식.
휴게소에 들러 커피와 호두과자로 잠을 깨고, 출발하니 섬진강을 끼고 유유히 내려가는 길이 운치있게 펼쳐진다. 저녁 식사겸 랑데부장소는 곡성의 한 음식점. 은어회와 튀김, 매운탕을 잘하는 집이다. 민물고기인 은어를 처음 먹어보았는데, 뼈째 먹는 작은 생선이라 약간 깔깔했지만 맛은 깔끔했다. 음식들이 정갈하고 매운탕도 민물게며, 잡어들로 국물이 좋다.
버스 안에서 C님과 같이 앉았는데, 가는 내내 즐거운 이야기와 그녀의 엉뚱한 행동이 즐거우면서,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쩌면 난 우주에서 온 외계인과 함께 있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샘은 이제 자유롭게 담배를 피운다. 몇 명 흡연자와 아주 자연스럽게 식후 연초와 시시로 생기는 타이밍을 즐기고 계신다.
식사 후에는 섬진강을 따라 바로 천은사에 도착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발소리를 죽여가며 살금살금 조용히 들어가야 했다. 개울을 건너 완만하게 언덕을 돌아올라가니 달큰한 치자꽃 향기가 확 풍긴다. 달빛 아래 치자가 이런 느낌이구나. 치자향 마중을 받으며 담밑을 지나자 집채만한 개가 담 너머에서 컹컹 짖어댄다. 아이쿠 깜짝이야.
우리가 머물 곳은 옛날 천은사에 스님들이 선방으로 사용하던 도량인데, 화엄사로 선방을 옮기고 나서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고 있는 ‘방장선원’이다. 기존의 건물 뒤로 새로이 한옥과 화장실, 세면실이 더 들어서 있다. 여자 숙소와 남자 숙소가 분리되었고, 일단은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늦기 전에 생일 축하를 한다고 모여서는 준비된 차와 함께 떡케익을 잘랐다. 이영완, 이근수, 한태영님이 생일이었는데, 생일 축하 노래만 부르고 땡. 뭐 축하답가도 없고, 진행이 없으니 썰렁썰렁 생일 파티 괜히 해줬다.
하나둘씩 마당으로 나와서는 댓돌에 앉아 마루에 걸터앉아 자기 편한데로 한다. 마당 안에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런날 일찍 잠든다는 것 너무 아쉽지 않나? 샤워실에서 간단히 씻고 나서는 술자리가 벌어진 남자 원우들 마루로 갔다. C, J, H, L님이 모여있다. J님이 오늘 마약 관련 범죄를 변호하다 오는 길이라며 그에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화제가 별과 예술과 인연 등으로 옮겨갔다.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마당에 간간히 뿌리는 빗소리와 나뭇잎 일렁이는 소리, 시냇물 소리만이 가득하다. 내가 이곳 천은사 도량에 앉아 어울려 이야기하고 있다는 현재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누군가의 목소리, 실루엣, 호응... 어느날 갑자기 여기 모인 사람들과의 인연이 기이하고, 소중하고, 존재 자체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느낌이다. 그때 J님이 그런다. ‘난 이게 바람소린지 물소리인지 구분을 못하겠어’ 크.... 어쩌면 좋은가 자연 속에 있는데도 그것을 느낄 오감이 상실되어 버렸다니!
마당에 빗소리가 굵어지자 모든 주변의 소리들이 그 안에 묻혀버리고, 일시에 피곤이 몰려온다.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며 C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설핏 잠이 들었는가...우주선에서~ 외계인이 내려와~ 하.는. 말. “꽃순아~”
나는 오줌이 마려워 중간에 한번 깨었다. 화장실까지는 마당을 질러가야하고 너무 멀다. 나는 집옆을 돌아 개울가 담장 옆에서 쉬를 했다. 낯선 곳이라 왠지 불안불안. 오줌 소리가 빗소리와 섞여 땅 속으로 잦아든다.
몇시인지 눈이 떠졌고, 일부는 종고스님을 뵈러 나가고, 나는 옆방으로 건너갔다. B님이 온몸이 뻐근해하며 누워계신다. 엎드려보세요하며 마사지를 해드렸다. 항상 작업하느라 오른쪽 어깨가 결리신단다. 전에 J님께 주사 몇 번 맞고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아프시단다. 내가 잘하는 ‘힘안들이고 기 나누기’를 하며, 몸을 살살 풀어주고 있는데, C님이 들어왔다. 종고스님께 차마시러 갔던 사람들이 그 앞 개울가에서 목욕도 하고 했다며 젖은 그대로 들어왔다. 춥지는 않았겠으나.....과감하기도 하여라.
7시경되어 사람들은 목욕하러 일부 떠나고 나는 천은사 경내를 어슬렁거렸다. 비 온 뒤 아침 산사의 느낌.. 고즈넉한 것이 참 좋다. 가다가 사진도 몇장 찍고, 치자꽃 앞에서 잠시 머물고 있는데 L님이 합류하신다. 이미 한바퀴 산책을 하셨는데, 내 길에 함께 하시겠단다. 종고 스님네 차밭을 지나 개울을 지나 낮은 뒷산으로 길이 이어져있다. 아침의 부드러운 빛이며 나무들이 참 좋다.
아침식사는 ‘화엄다원’이라는 부근의 식당이다. 예전에도 한번 가본적 있는 정갈한 밥집이다. 다양한 나물들로 이루어진 맛난 식사를 하고, 옆방에 가서 차를 마셨다. 발효차라는 약간 텁텁한 느낌의 차를 마시며 여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가 오늘 오전에 들를 곳은 사성암이라는 암자. 원효,의상,진각,도선국사가 수도한 도량으로 섬진강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기암절벽 위에 작은 암자이다. 버스에서 내려 오산입구 어귀에서 작은 버스로 갈아타고 한참을 비탈길을 올랐다. 정말 놀이기구가 따로 없다. 차의 상태나 운전 상태나 정말 아찔아찔하다.
기암절벽 위에는 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고 그 위에 암자를 지어 놓았는데, 절벽 한쪽에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렸다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고 그 바위 앞으로 불단이 놓여있다. 오래전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그들은 이 높은 준령에 앉아 무엇을 보았을까? 자신의 앞일? 나라의 안위? 세상의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다. 그런 사명감으로 인해 쉽지않은 인생을 살았으리란걸 어렴풋 느끼면서 섬진강 일대를 내려다본다.
C님의 말대로 그런 유전인자를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한평생 왔다가 사라지지만 그 살아가는 모습은 천양지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우지 않아도 뼛속부터 무언가를 알고 있다. 정말 등 떠밀고 좋은거 준다고, 면벽수도를 한들 깨달음이 올까? 삶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먼지들로 우린 이미 과거의 많은 일들을 축적해온듯 싶다. 그래서 때가 되어 어느땐 발현되기도 하며, 그냥 먼지 쌓인체 묻혀있기도 한다. 전혀 셈이 안될것 같은 C님이 수학은 항상 100점을 받았다는 사실은 정말 의외다. 그 나이에 그 작업에 이렇게 당당하고 자유로움이 깃들 수 있는 것도... 그녀가 여지껏 살아온 인생에서 배운 먼지가 쌓여 이루어진 것들이다. 넘치는 열정과 기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 그러나 예술을 위해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한다....
사성암에서 내려와 간 곳은 구례 농진청에서 운영하는 야생화 자연생태학습장이었다. 구례구는 나름대로 식물자원에 대한 연구와 진행이 이루어지는듯 싶고, 여름이라 볼거리가 많진 않았지만 이런 기관을 통해 산하의 식물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는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 중 한 건물에서는 ‘압화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기존에 보아왔던 압화 작품과는 규모나 수준에 있어서 매우 뛰어났다. 그렇게 다양한 소재가 작품에 활용될 수 있는지 처음 보게 되었다. 아직 대부분은 정물화 스타일의 공예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이쪽 분야의 개발도 꽤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사계절 나는 꽃과 잎들을 압화로 만들어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그걸로 다양한 작품을 만든다... 지금은 지역적으로 몇몇 선생님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겠고,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 변색되는지라 지속적인 재료의 보급 없이는 작품의 수준과 품질이 유지되기 어려운 단점이 있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외국작가들이 만든 드라이플라워 작품들과 비교하면 그 둘 사이에 어떤 절충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압화 자체로는 너무 공예적이고 꽃이라는 소재에 집중되어 있지만, 나뭇가지나 열매 등 다양한 드라이소재를 하나의 물감처럼 질료로 쓰면 좀더 폭넓게 응용할 수 있어서 작품에 힘과 조형성이 생기지 않을까... 내 작품에도 꼭 실험해볼 부분이다.
압화 전시관을 나와 정원을 한바퀴 둘러보는데 연꽃이 가득한 연못가를 가니 둥근 무지개가 떴다고 웅성웅성이다. 둥근 무지개?? 무지개는 보통 하늘에 반만 걸쳐 뜨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태양 주변으로 둥글게 환이 둘러져 있고, 그 환이 일곱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야~ 이런 현상도 있구나... 참으로 상서로운 징조로고!
점심식사는 ‘쌍산재’라는 전통 한옥마을이 있는 사도리(沙圖里) 임계두 원장님댁 ‘명다원(茗茶園)이다. 전에도 한번 와본지라 아는 사람 집에 마실가듯 동네 어귀를 지나 마을 분들게 인사하며 집을 찾아간다. 방에는 벌써 점심식사가 한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보리밥에 쌈채소, 수육, 죽순 등이다. 맛이 깔끔하다. 쌈으로 나온 씀바귀와 민들레 잎은 쌉쌀하면서 입맛을 돋우고, 수육도 부드러운 것이 맛이 달다. 맛있게 한그릇씩 비우고 옆방에 가서 차도 마시고 음악도 들으며 휴식을 취한다. 익숙하다는건 참으로 편안한 감정이다. 이 공간과 물건들과 사람들, 그 목소리...
다음으로 향한 곳은 구례의 화개장터. 옛날 오일장이었던 장날을 상설장터로 만들면서 이런저런 먹거리와 약재 등을 팔고 있었다. 한가로운 변두리 시장 느낌..
다음 행선지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 종가와 세트장이 남아있는 곳이다. 너른 평야가 바라다 보이는 봉긋한 언덕을 한참 오르니 최참판댁 집 대문에 다다랐다. 대문 앞에 펼쳐진 모습이 장관이다. 저 아래쪽으로 사람들은 농사일을 나갔을 것이고, 한 마을이 운영될 터였다. 이 일대가 한 가문의 땅이라... 엄청난 힘을 행사했을거라 짐작이 간다.
가옥의 구조를 살펴보니 대문을 들어서자 작은 마당이 나오고 대청마루에서 누가 장구를 두드리며 소리를 한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걸터앉아 구경을 하고 그 소리가 크진 않지만 단정한 매무새에 이곳 아담한 한옥과는 참 잘어울린다. 그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뚫려있는데, 왼쪽으로 가니 작은 연못이 딸린 별채와 정자가 나타나고, 오른쪽으로는 3칸 정도의 방이 딸린 건물이 검은 나무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운치있게 앉아있다.
서울의 궁에서도 느끼는 바였지만, 우리나라의 건물은 마당의 약간 뒤쪽에 자리를 잡으면서 항상 뒤쪽 공간을 남겨두었다. 뒤로 내려앉거나 창문을 열고 후원을 볼 수 있도록 하였고, 뒤쪽의 마당은 너른 공간보다 오히려 아늑하고 정겨운 느낌을 준다. 이곳의 뒤뜰도 그런 느낌이고, 뒷담장이나 툇마루가 아주 운치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건 사당의 존재였는데, 산자의 공간 한켠에 죽은이를 위해 기리는 장소를 둔다는 것... 그것은.. 삶과 죽음을 다르지 않다고 보아왔던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죽는걸 돌아간다고 말하지. 태어났던 어딘가로 돌아간다는 것... 집이라는 공간 안에 그런 곳을 따로 만들어 두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사당에서 그 뒤편으로 계단이 나 있고, 대숲가득 휘어진 길이 하나 나타난다. 완만하게 곡선 길을 따라 오르니 야트막한 언덕에 작은 집이 한칸 있다. 2평정도의 마루가 딸린 작은집 “초당”. 손님들을 맞이하던 곳이란다. 시인 묵객들이 삼삼오오 놀러와서 이곳에서 지내며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고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다시 굽어진 대숲을 따라가니 박경리 문학관이 나온다. 워낙 ‘토지’를 읽지 않은데다 TV도 잘 보지 않아서 그 감동은 덜하겠지만은 그 시대의 생활상과 의식이 그대로 보여지는 섬세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같다.
드라마 세트장은 정말 초가삼간 단출한 살림살이가 생겨진 계곡 그대로 앞 뒤로 자리를 틀고 앉아 나무 울타리나 대나무 발 등으로 대문을 해단 것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 가족의 살림이나 마찬가지다. 울과 담이 모두 허술하고 니것 내것이 분명치가 않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남해대교 밑의 횟집으로 식사를 하러 가는거였다. 오른쪽으로 구불구불 섬진강을 끼고 가는 길은 넓은 강줄기와 완만한 흐름 덕에 멋진 풍경이 되어 펼쳐졌다. 가는 중간에 어는 하구엔가 잠깐 섰는데, 우리를 모랫가에 내려준다. 사람들이 얕은 강물에서 재첩을 잡고 있었다. 한뼘 정도 되는 프라스틱 상자로 모래까지 듬뿍떠서 한참을 흔드니 작은 조개 재첩이 그대로 남는다. 물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조개들이 보였다. 한시간여 잡았다는데 꽤 많이 잡으셨다. 이정도면 저녁 국거리로는 충분하겠다. 바다냄새가 나는 강하구에서 잡아올리는 조개. 그들은 이 재첩에 대해 남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해대교는 경남 하동과 남해도를 잇는 다리로 이 충무공의 노량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붉은 철제 프레임이 우아한 현수교로 임계두원장님의 아버지가 현장소장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역시 공학에 소질이 있는 집안이시다. 그곳에는 이충무공의 거북선이 실물 사이즈로 설치되어 있어서 들어가 보았는데, 3개의 층으로 구성된 철갑판선으로 크지 않은 선채에 아래에선 노를 젓고, 포를 쏘고, 1층에서 상황을 지휘하고, 2층에서 동태를 점검하고, 이 작은 선채로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통해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이 배는 조선뿐만아니라 무기, 화학, 과학 기술의 정수가 집결된 거였다. 그리고 그런 기술이 원천이 되어 현대의 조선산업을 일구어낼 수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과연 시대의 정수를 살아간다는 것... 부단한 자기 개발과 연구가 따라주어야 하는 일이다. 정말 제대로 사는 일이다.
깔끔한 횟집에서 몇가지 회와 무슨 생선구이를 먹었는데 맛이 참 좋다. 술도 한잔씩 들어갔겠다 여기저기서 이번 여행의 즐거움과 감사 멘트가 쏫아졌고 주거니 받거니 술이 한참 돌아간다. 난 마침 H님 옆에 앉았는데 음식을 굉장히 가릴줄 알았더니 식사를 꽤 잘 한다. 모든 음식이 강하지 않고 정갈한 맛이어서 그랬겠지만, 회도 잘 드시고, 술도 한잔 한다. 이번 여행이 편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누군가의 말 뒤에 ‘난 저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데?’하면서 ‘이럴땐 여럿이서 같이 있지만 완전히 나혼자 따로 있는거 같애’하신다.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 같이 동화될 수는 없지만, 동화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낯설게 느끼고 있다니... 그런적이야 수없이 많이 있어와서 한편으로는 그 부분에 대해 접어놓고 생각하곤 햇는데, 이분은 이런 상황이 아직 낯설구나. 우리는 보통 분위기에 묻어간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는 얘기같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동감은 하면서도 무어라 대답하기가 쉽지않다. 암튼 그녀는 조금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빗속을 거닐다 들어왔다. 누구나 자기만큼의 삶의 무게가 있다.
나는 이번 여행이 참으로 편안한 여행이어서 무척 감사하면서 또 이상하다고 이렇게 좋아도 되는거냐며 감상을 얘기했는데, B님이 '그게 이렇게 좋을 수만은 없다‘며 귀여운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흥에 겨워도 넘치지 아니한다. 출렁이기만 한다. 모두가 웃고, 이해하고, 다정하다.
광주에 계신지라 좀처럼 얼굴 뵙기 힘들었던 김영주님이 판소리 춘향가 중에 한 대목인 ‘사랑가’를 뽑아주신다. 그 긴 사설... 어찌 그리 기억력이 좋으신지 춘향과 몽룡이 사랑하는 장면을 걸죽한 소리로 풀어내는데 정말 그 맛이 일품이다. 그 어느 명창에도 견줄 수 없을만큼 훌륭한 자질을 갖고 계신다. 정말 캡이다.
L님이 여행 오기전 몇가지 힘든 일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으로 엄청 기받아 간다고 씩씩하게 일어나서 얘기하니, 김영주님이 ‘아 그러지 말고, 구체적으로 얘기하시라. 그래야 팔이 아프면 주물러 줄 것이요, 다리가 아프면 업어드릴 것 아닙니까’ 하신다. 그의 소박한 멘트 또한 참 좋다.
배가 든든해지자 노래를 한곡 하자며 노래방으로 몰려갔다. 노래를 한다는건 몸으로 하는 또 다른 이야기다. 노래의 가사, 음정, 멜로디, 호흡, 그리고 춤까지... 작은 공간이었지만 좁게 앉아 그리고 신나게 일어나서 시간을 보낸다. 노는 모습이 다 똑같을까? 그렇진 않은것같다. 노래를 잘하면 하는 대로, 춤추고 싶으면 추는 대로 아무도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고 시간을 즐긴다. 편안하게 무르익는다.
천은사로 돌아오니 마당에 한가득 비가 내린다. 아아 밤새 내릴 듯싶다. 샤워를 마치구 어제의 툇마루로 가보니, H, J, L, H, K, B님이 앉아있다. 대화는 B님이 K옹에게 아까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는 내용이었으나 K옹은 하루종일 미안하다며 다신 안그런다며 애교와 회유와 유머를 다 동원하신다. 정말 부드러운 남자의 힘. 이 남자의 내공 대단하다. K옹은 유동탁의 ‘낙화’를 읊으시면서 이제 그만 풀어하신다.
우리 7명은 툇마루에 비스듬히 서로의 몸을 베고 누웠다. 밤하늘에 별이 보여도 좋았을 것이라며 누가 얘기한다. 그래, 그때 아오니 온천에 쏫아지던 별처럼. H님은 칠레에 살 때 야트막한 언덕 능선 뒤로 동화에서나 보이는 장면에서처럼 북두칠성을 보고 자랐다는 얘기를 한다. 초저녁 선명한 7개의 별... 그곳 칠레에도 떠 있었구나. H님이 나지막하게 비틀즈의 'yesterday'를 흥얼거린다. 계속해서, ‘hey jude', 'across the uinverse' ,... 이렇게 밤이 깊어간다.
새벽에 비는 좀 그쳤지만 노고단까지의 등산은 쉽지 않은 듯싶다. 임원장님과 통화하니 아침을 천천히 먹고 사우나를 가자는 얘길 하신다. 몇분 일찍 잠이 깬 분들은 종고스님께 차마시러 가고 나는 툇마루에 나와 앉아 방장선원 처마로 떨어지는 낙수소리를 듣는다. 마당 한가운데는 섬처럼 나무와 화단이 만들어져있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녹음에는 빗줄기가 가늘었다 굵어진다.
마루에는 J님과 L님이 나오셨다. 함께 빗소리 들으며 앉아 두런두런 얘길한다. 임원장님도 우산을 접으며 함께 앉으시고, 나는 아침 풍경을 사진으로 몇장 담았다. 서툴지만 차도 대접해보고, J님이 ‘얘, 왜이렇게 엽렵하니?’하신다. 춥다고 몸에 걸친 내 흰 스카프가 멋지다.
이 도량으로 들어오려면 계곡을 건너 낮은 담이 있는 문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그 문에 연결된 담의 양쪽 끝은 터져있다. 한쪽은 계곡과 닿아있고, 한쪽은 산밑에서 끊겨 있다. 담의 개념이 참으로 허허롭고, 무량하다. 들어오는 문이라고 표시는 되어 있는데 문은 그저 통과의례일뿐 천지사방과 연결되어 있다. 담의 모습 또한 무언가의 경계가 아니라 낮은 문턱에 불과하다. 모양새는 담인데, 의미는 문턱이라...
아침 차비를 해서 식사하러 간 곳은 어제의 화엄다원. 음식 하나하나가 다 맛있다. 여러 나물 반찬과 된장국을 맛있게 먹고 나서 차도 한잔 마시고, 오늘 일정은 비 덕분에 지리산 온천에서 목욕이다. 귀가 솔깃한 것이 노천탕이 있다는 거였다. 일본 여행이후 노천탕의 매력을 알아버렸는데, 좀처럼 기회가 없더니 이렇게 비오는 날. 너무 환상이다.
노천탕은 크지 않고 높은 인공 담에 싸여 답답한 느낌도 있지만, 하늘이 열려있고, 그대로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뜨겁지 않은 물에 몸을 담그니 온 몸이 이완되며 나른하게 좋다. 수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모습이 가는 선으로 퐁 떨어지더니 작은 물방울 하나를 만들어 올린다. 수면 가득 떨어지는 빗방울. 몸이 더워지자 가장자리로 걸터나와 돌 위에 누웠다. 차가운 비가 그대로 몸에 떨어진다. 시원하다. 잔잔한 음악이다. 바람도 음악이고, 내 몸에 부딪는 이 소리도 음악이다. 늘 꿈꾸던 계곡에서의 목욕을 이렇게 하는구나. 어제의 둥근 무지개도 그렇고, 오늘의 빗방울 맛사지도 그렇고... 이번 여행은 내게 커다란 충만감을 준다. 자연과 함께 함으로서 느껴지는 황홀함과 편안함. 어째 이제야 느낄 수 있게 된 것일까?
지리산 물 속 여행
빗방울 맛사지
출렁이는 젓가슴
진정 살아있는게 신비같아.
첫댓글 은수님 수고하셨네. 아침출근하여 카페 문열었는지 보는데 며칠 조용한 끝에 명문이 올라왔네.여행 다시하듯 자세한 묘사. 놀라운 기억력.
오늘은 그뒷풀이 날이네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느끼는 여유와 단상들... 그냥 묻어놓기엔 아쉬웠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잔잔히 수채화같네. 새삼 기분 좋은 여행의 기억들이 아름답게 다시 마음속에 다가 오네요. 되돌아 볼수록 모두가 멋진 사람들...은수c,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