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위로 못 가니까 아래로 간다. 자연의 성질은 단순하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의욕은 넘치는데 좋은 일을 못하니까 나쁜 일을 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이미 발동이 걸린 상태다. 뭘 하든 하게 되고 결과는 좋지 않으면 나쁘다. 상호작용의 선택지는 둘이다. YES 아니면 NO다. O 아니면 X다. 세상은 복잡한데 이것만으로 감당이 되겠느냐고? 이렇게 단순한 내용으로 어떻게 자연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담보하겠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할만하다.
신문지 백번 접기를 떠올리자. 신문지를 열 번 접으면 천 배 커진다. 40번 접으면 달까지 가고, 50번 접으면 태양까지 가고. 백 번을 채우면 134억 광년까지 간다. 자연은 대칭이고 대칭은 2진법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의 선택이다. 선택을 열 번 할때 마다 거리가 1천 배 멀어진다. 가위바위보를 10번 이기면 1천 명을 이기고, 33번 이기면 70억 인류 중에 챔피언이다. 가위바위보로 로또 1등 당첨자를 정한다면 연속해서 23번 이겨야 당첨이다. 겨우 스물세번이라고? 쉬워 보이지? 그 숫자 장난에 속는 사람이 카지노에 돈을 바치는 것이다.
대칭의 힘은 막강하다. 의사결정의 대원칙은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것이다. 의도나 목적 따위의 심리적 원인은 가짜고 언제나 물리적 원인이 있다. 그것이 자연이다. 상호작용의 게임이 벌어지면 이기거나 아니면 지거나다. 이기면 하고 지면 못한다. 자연은 변하고, 변화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충돌하고, 충돌하면 이기거나 지거나 확률은 반반인데 103번 이기면 우주를 가로지른다. 신문지 두께 0.1밀리로 시작해도 그 정도 위력이다.
자연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합치지 못하면 흩어진다. 움직이지 못하면 갇힌다. 이기지 못하면 진다. 2진법 규칙으로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결정된다. 이 정도 간단한 규칙으로 거대한 우주를 감당한다. 기본규칙은 간단해야 한다. 규칙이 너무 복잡하면 모순과 자충수로 꼬여서 자멸한다.
세상은 에너지의 확산과 수렴 중에서 2진법적 대칭을 만들며 밸런스와 언밸런스를 오간다. 문제는 사건을 보는 눈이다. 주체와 객체를 별도로 보는 사물의 관점을 버리고 둘을 합쳐 하나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사건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막연히 사물이 성질을 가진다고 믿는다. 요리의 맛은 양념맛의 총합이다. 양념은 원래 맛이 있다. 달고, 짜고, 맵고, 쓰고, 시고, 떫다. 미식가는 절대미각으로 그것을 낱낱이 구분할 수 있다. 세상은 요리가 아니고 신은 요리사 아니다. 자연은 그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중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기를 반복한다. 닫힌계 안에서 의사결정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마이너스 방향으로 기동한다. 플러스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밸런스를 만들고 축을 이동시켜 또다른 밸런스로 갈아타기를 반복한다.
불교의 제법무아와 같다. 사물의 고유한 성질은 없고 짝짓는 방식의 차이가 성질로 행세한다.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조건이 맞아서 짝짓기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일어나면 거대한 힘이 만들어진다. 운동장에 햇볕이 내리쬐면 공기가 뜨거워진다.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아래에 진공이 만들어진다. 주변 나무 밑의 찬공기들이 진공으로 몰려든다. 가운데서 충돌하여 회오리가 생긴다. 갑자기 맹렬해진다. 그것이 기세다. 기세는 A의 변화가 B의 변화를 끌어낼 때 양자를 통일하는 C의 변화다. 기세는 하나의 밸런스에서 또다른 밸런스로 옮겨타는 힘이다. 그 힘이 막강하다. 신문지를 몇 번만 접어도 달까지 가고 해까지 간다.
기세야말로 세상을 이끌고 가는 근원의 힘이다. 우리는 자연계의 사대힘을 알고 있다.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이 그것이다. 자원들이 가진 각운동량을 한 지점에 수렴하는 기세의 힘이 진짜다. 사대힘은 기세가 물질에 반영된 것이다. 지구의 중력이든 대나무를 쪼개는 파죽지세든 원리는 같다. 이진법의 힘이다. 양의 되먹임이 가지는 힘이다. 시장에는 이윤이고 사회에는 권력이고 사람들 사이에는 의리다. 기세는 하나의 사건을 또다른 사건으로 연결시키는 힘이다. 기세를 조절하느 스위치는 시스템, 메커니즘, 스트럭쳐, 액션, 코드다. 우주는 다섯 가지 조절장치에 의해 기세가 조절되어 비로소 성질을 획득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무릇 안다는 것은 기세를 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