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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의 뜰-행원소구 원문보기 글쓴이: bloomy
죄를 자백하는 것
Confessing Our Sin
by Robert Murray M'Cheyne
로버트 머리 맥체인
To maintain a conscience void of offence, I am persuaded that I ought to confess my sins more. I think I ought to confess sin the moment I see it to be sin; whether I am in company, or in study, or even preaching, the soul ought to cast a glance of abhorrence at the sin. If I go on with the duty, leaving the sin unconfessed, I go on with a burdened conscience, and add sin to sin. I think I ought at certain times of the day to confess solemnly my sins of the previous hours, and to seek their complete remission.
내가 확신하기로는, 양심이 공격받는 것으로부터 항상 자유롭기 원한다면 나는 내 안의 죄들을 더욱 자백해야 한다. 그것이 죄임을 알게되는 그 순간에 바로 고백해야 한다. 내가 사람들과 함께 있든지, 공부 중이든지, 심지어 설교 중에라도, 영혼은 죄를 혐오스럽게 보아야 한다. 만약 죄를 회개하지 않은 채로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면, 나의 양심을 계속 무거울 것이며, 죄에 죄를 더하게 될 것이다. 하루 중 어떤 시간들에는, 이전에 지은 죄들을 진지하게 고백하고 완전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I find that the devil often makes use of the confession of sin to stir up again the very sin confessed into new exercise, so that I am afraid to dwell upon the confession. I must ask experienced Christians about this. For the present, I think I should strive against the awful abuse of confession, whereby the devil seeks to frighten me away from confessing.
나는 마귀가 종종 하는 일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그것을 (오히려) 다시 같은 죄를 짓도록 허가해 주는 도구처럼 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죄의 고백을 강조하는 것이 사실 주저되기도 한다. 경험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을 물어봐야 한다. 일단은, 죄의 자백을 대단히 남용하는 것에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마귀는 이것을 이용해서 나로 죄의 자백 자체를 피하게 하려고도 한다.
I ought to take all methods for seeing the vileness of my sins. I ought to regard myself as a condemned branch of Adam -- as a partaker of a nature opposite to God from the womb -- as having a heart full of all wickedness, which pollutes every thought, word and action, during my whole life, from birth to death. I ought to confess often the sins of my youth, like David and Paul -- my sins before conversion -- my sins after conversion -- sins against light and knowledge, against love and grace, against each person of the Godhead.
내 죄악들의 추함을 알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나는 자신을 유죄판결을 받은 아담의 가지로 여겨야 한다.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함께 선 자이며, 마음 안에는 모든 사악함이 있고, 그 사악함이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오염시키는... 그런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바울과 다윗처럼, 내 젊은 날의 죄악들과... 회심 이전에 지은 죄들... 회심 이후의 죄들... 빛과 지식을 거스르는 죄들과 사랑과 은혜를 거스르는 죄들, 하나님의 각 위격을 거스르는 죄들을 고백해야 한다.
I ought to look at my sins in the light of the holy law, in the light of God's countenance, in the light of the cross, in the light of the judgment-seat, in the light of hell, in the light of eternity.
거룩한 법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면전에 비추어서, 십자가에 비추어서, 심판 날의 법정에 비추어서, 지옥과 영원에 비추어서 자신의 죄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I ought to examine my dreams, my fleeting thoughts, my predilections, my often recurring actions, my habits of thought, feeling, speech and action -- the slanders of my enemies, and the reproofs and even banterings of my friends -- to find out traces of my prevailing sin, matter for confession.
나의 꿈들과 스쳐가는 생각들, 내 취향들, 자주 반복되는 행동들,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습관들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적대자들이 하는 비방과 내 친구들이 하는 질책과 심지어 놀림들까지도 검토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내가 자백해야 할 주된 죄악의 흐름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I ought to have a stated day of confession with fasting, say, once a month. I ought to have a number of scriptures marked to bring sin to remembrance. I ought to make use of all bodily affliction, domestic trial, frowns of providence on myself, house, parish, church or country, as calls from God to confess sin. The sins and afflictions of other men should call me to the same.
하루를 정해서, 이를테면 한 달에 한번 정도 금식하면서 죄를 자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죄를 기억나게 하는 데에 두드러진 성경말씀들을 묵상해야 한다. 육체의 모든 고통과 가정의 시련, 나 자신과 집과 교구와 교회 혹은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죄를 고백하게 하시는 부르심으로 여기고 사용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죄와 고통도 역시 그렇게 사용해야 한다.
I ought on Sabbath evenings and on communion Sabbath evenings to be especially careful to confess the sins of holy things.
주일저녁과 성찬주일저녁에는 특별히 거룩한 것들에 관한 죄악들을 면밀히 고백해야 한다.
I ought to confess the sins of my confessions -- their imperfections, sinful aims, self-righteous tendency -- and to look to Christ as having confessed my sins perfectly over His own sacrifice.
나는 내가 죄를 자백하는 것조차도 흠이 있고, 죄악된 목적이 있고, 자기 의를 세우려는 경향을 갖고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 위에 나의 죄들을 충분히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I ought to go to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each sin. In washing my body, I go over every spot and wash it out. Should I be less careful in washing my soul? I ought to see the stripe that was made on the back of Jesus by each of my sins.
각각의 죄의 용서를 위해 그리스도께로 가야 한다. 내 몸을 씻으면서 나는 모든 흠들을 살피고 그것을 (몸과 함께) 씻어 낸다. 내 영혼을 씻는 데에 몸을 씻는 것보다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 각각의 죄 때문에 예수님의 등에 생긴 채찍 자국을 보아야 한다.
I ought to see the infinite pang through the soul of Jesus equal to an eternity of my hell for my sins and for all of them. I ought to see that in Christ's blood-shedding there is an infinite over-payment for all my sins. Although Christ did not suffer more than infinite justice demanded, yet he could not suffer at all without laying down an infinite ransom.
내 죄들과 다른 모든 이들의 죄악으로 인한 지옥의 영원한 고통 대신에 예수께서 당하신 무한한 영혼의 고통을 보아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의 모든 죄 값을 완전히 지불하고도 남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공의가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고통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분이 고난받으신 것은 완전한 속량을 위한 것이다.
I feel, when I have sinned, an immediate reluctance to go to Christ. I am ashamed to go. I feel as if it would do no good to go -- as if it were making Christ a minister of sin, to go straight from the swine-trough to the best robe -- and a thousand other excuses; but I am persuaded they are all lies, direct from hell. John argues the opposite way: 'If any man sin, we have an advocate with the Father.' Jeremiah 3.1 and a thousand other scriptures are against it. I am sure there is neither peace nor safety from deeper sin, but in going directly to the Lord Jesus Christ. This is God's way of peace and holiness. It is folly to the world and the beclouded heart, but it is the way.
내가 죄를 지으면 즉각 그리스도께 나아가기가 싫어진다. 나아가기 부끄러운 것이다. 나는 마치 예수께로 나아가는 것이 좋지 않은 것처럼 느낀다. 마치 내가 돼지 여물통에서 가장 좋은 예복으로 곧장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죄의 우두머리로 만드는 것인 양 느낀다. 그 외에도 나아가기 싫어하는 수많은 이유들을 대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모두 지옥에서 곧장 나온 거짓말들임을 확신한다. 요한도 그와 정반대로 주장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요일2:1)'. 예레미야 3장 1절과 그 외 많은 성경구절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곧장 나아가지 않고는, 평안도 더 깊은 죄에 빠지지 않게 하는 안전도 기대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평안과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는 세상과 어두워진 마음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이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I must never think a sin too small to need immediate application to the blood of Christ. If I put away a good conscience concerning faith, I make shipwreck.
나는 어떠한 죄도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필요로 하기에는 너무 작은 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믿음에 관한 떳떳한 마음을 저버리게 되면 나는 파멸하고 말 것이다.
I must never think my sins too great, too aggravated, too presumptuous as when done on my knees, or in preaching, or by a death-bed, or during dangerous illness -- to hinder me from fleeing to Christ. The weight of my sins should act like the weight of a clock: the heavier it is, it makes it go the faster.
내가 무릎을 꿇을 때나 설교 중에, 혹은 죽음의 침상에서나 심각한 질병 중에 있을 때에, 나의 죄가 너무 크고 심하고 너무 뻔뻔스럽다고 생각한 나머지 나를 그리스도께로 피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I must not only wash in Christ's blood, but clothe me in Christ's obedience. For every sin of omission in self, I may find a divinely perfect obedience ready for me in Christ. For every sin of commission in self, I may find not only a stripe or a wound in Christ, but also a perfect rendering of the opposite obedience in my place, so that the law is magnified, its curse more than carried, its demands more than answered.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을 뿐 아니라, 그 분의 순종으로 옷 입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태만의 모든 죄들을 대신해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위해 예비 된 신적인 완전한 순종을 발견할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범행들을 대신해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채찍 자국과 상처를 발견할 뿐 아니라, 나의 불순종을 완전히 갚아주심으로써, 율법은 높여지고 율법의 저주는 충분히 실행되었으며 율법의 요구는 응답되고도 남게되었다.
Often the doctrine of Christ for me appears common, well known, having nothing new in it; and I am tempted to pass it by and to go to some scripture more taking. This is the Devil again -- a red-hot lie. Christ for us is ever new, ever glorious. 'Unsearchable riches of Christ', an infinite object, and the only one for a guilty soul. I ought to have a number of scriptures ready which lead my blind soul directly to Christ, such as Isaiah 45 and Romans 3.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교리는 종종 흔하고 너무 잘 알려지고 그 안에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그것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는 다른 성경구절들을 더 찾아보려고 하기 쉽다. 이것 역시 마귀의 열렬한 거짓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는 항상 새롭고 항상 영광스러우며,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이며 무한하고 죄악된 영혼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다. 내 눈먼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이사야 45장과 로마서 3장 같은 성경말씀들을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