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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비키 스크랩 청교도 신학과 설교 / 조엘 비키 박사
한아름 추천 0 조회 59 12.08.28 17: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청교도 신학과 설교

(합신 목회대학원 특별강좌)

 

 

 

 

 

 

강 의 : 조엘 비키 박사

통 역 : 조 진 모 교 수

편 집 : 유 병 도 목 사

 

 

청교도 신학과 설교

 

-강사 소개시간

조엘비 키는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 총장이며, 15살 때부터 청교도 서적 읽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읽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교도 서적을 읽을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서적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인도된다는 점이다. 반면 고통스러운 점은 청교도의 책은 죄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큰 위로도 있는 것은 왜냐하면 예수께로 인도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다 주님께 향한 청교도의 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이유만이라도 권장 할 수 있다. 그들의 책은 하나님과 교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높일 수 있는 기회 많이 주신다.

 

다 같이 시편 78:1-8절까지 읽겠습니다.

 

1: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 지어다

2: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6: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1. 청교도주의 정의

 

[1] 청교도주의 정의

 

보통 많은 사람들이 청교도들은 격리되고 슬픈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으로 즐겁게 살았다.

청교도의 이름은 1560년도부터 시작되었다. 11세기 후반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시작 시; 그녀가 생각할 때 당시 교회 상황은 그녀의 생각보다 못한 상황이었다. 청교도의 이름이 이때부터 생겨났는데, 왜냐하면 아직도 교회가 덜 순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제일 처음에 이 명칭이 쓰여 졌을 때는 다소 비난의 의미가 있었다. 청교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월리엄 퍼킨스는 이것을 악한 글이라고 정의했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은 청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 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나중에야 널리 사용되었다.

 

청교도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많은 학자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언약사상과 회심, 예정하시는 하나님을 중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신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성경신학자라고 하는 것은 모든 신학적인 생각을 하나로 함축해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학자들이 효과가 얻기 위해 요한 칼빈의 중심사상이 한 가지로 무엇이냐 하는 것처럼 정의하려고 하는 것처럼, 청교도 사상을 하나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교도들을 생각 할 때 이것이 중요하다

 

 

[2] 청교도 사상에 5가지 영역으로 주의해 귀울였다.

1.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들이었다.

말씀을 사랑하고 노래하고 설교하고 읽었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 속에 살았습니다 , 성경에서 한 가지 주제를 찾아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역사상 이렇게 청교도들처럼 하나님의 가르침에 지대한 관심과 말씀을 삶에 적용할려고 했던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2. 청교도들은 열정을 가지고 삼위일체의 신학에 몸을 담았다.

그들은 우리를 선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속죄, 이 사랑을 전하는 성령님에 대해 선전하기를 쉬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성도들의 삶의 경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면적인 것을 중시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개인의 경험이 많다고 하는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J.I Paker가 말하기를 그들이 개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은 하지만 경험으로 모든 것을 종결지으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는 삼위 일체 하나님을 마음속에 발견하려는 노력이고 , 모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목적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3. 청교도들은 종교개혁가들과 유사하게 교회의 유용성, 중요성에 깊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예배가 상당한 중요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성경에 제시하고 있는 교리에 상충한다고 부합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청교도 운동은 설교에 중심을 둔 하나의 운동이었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마음을 담고 있는 설교였다. 그러므로 모든 예배에 담겨있는 모든 설교들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에 중점을 두었다.

예배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예배의 형태로 돌아가라

그들은 제정된 예배 의식을 주장하였으며, 그러므로 신약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요소 외에 그 어느 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동시에 교회의 제도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교회의 덕을 위해서 그러므로 교회는 신약교회의 한 선상에서 연관지어 생각했다.

 

4.청교도들은 ‘어떻게 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

그 당시에 살았던 시대의 정황 가운데, 그 위기감이 이런 생각을 들게 하였다.

예를 들어 왕이 어떤 권한이 있는가?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의회는 어떤 권한이 있는가? 시민들은 어떤 권한이 있는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기를 원했다.

 

5. 청교도들은 개인의 신앙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생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설교자가 설교 할 때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사람에게 부딪치도록 설교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들의 의식을 자극하라! 죄인의 경각심을 주어라! 모든 사람들을 믿음으로 회심시켜라! 개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고, 성도들을 믿음 안에서 성숙하도록 인도해라!

그래서 그들의 설교 안에는 신자로서의 삶은 무엇인가?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어떠한 성도가 되어야 하는가? 남편으로서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하는가?, 신자로서의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은 무엇인가?, 자녀의 모습은 무엇인가?

『가정내에서의 의무』라는 책에서는 800p에 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들은 어떻게 설교를 잘 경청할 것인가? 진짜 성도로서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 직장에서는 성도로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사회 안에서는 한 일원으로서, 그러므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성도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들은 특별히 삶과 사고까지라도 예수그리스도께 잡혀진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위에 5가지 항목은 3가지의 필요에 의해서 생성된 것입니다.

 

[1]16세기 영국의 정황에서의 이 필요가 나타났습니다.

 

[2] 성경을 중심한 성경적 설교: 아주 제대로 된 개혁주의 신학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 국교에서 설교에 말만 무성하고 잘못된 설교에서 식상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교리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교리는 강하고 능력 있어 백성들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성도의 삶에서 개인의 경건의 필요성에 의해 이 5가지가 생겨났다. 성령의 역사에 의한 영혼에 성경적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을 필요하였다.

[3]성경적인 단순성을 재확인 받기 원했다. 특별히 모든 교회 삶과 연관되었다. 만일 청교도들이 지금 시대에 살고 있다면 인간적인 요소를 반대하였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첫째는 교리적인 면에서는 청교도주의는 강력한 칼빈주의이다.

둘째는 경험적인 면에서는 영혼의 경험에 의해서 따뜻하며, 전염된다.

셋째는 복음적인 면에서는 부드러운 면과 aggresive한 면이 있다.

넷째는 교회적인 면에서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강조한다.

다섯째는 정치적인 면에서는 성경적인 것과 잘 조화가 된다.

하지만 모든 청교도들이 이 모든 것은 똑같이 공유한 것은 아니다.

단일한 성격의 그룹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만큼 진실 된 것이다. 그들은 아주 눈에 띄도록 하나이면서도 그 가운데서도 다른 점이 있었다. 리차드 백스터가 말하기를 매일의 삶 가운데서 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부분은 같은 입장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는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에 관한 면은 잘못된 점이 있다고 하였다. )

 

[3]청교도의 관심

청교도의 10가지 특성으로 살펴보면, 실제적으로 그들이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알 수 있다.

10가지를 잘 이해하면 청교도에 대한 서론을 끝낸 것으로 볼 수 있다.

12가지의 중요한 신학의 주제를 나누도록 하겠다.

 

 

1--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살아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성경의 66권의 책들은 성령님의 서재이다.”라고 누가 말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성경,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깨닫게 해준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신분으로 우리에게 쓴 편지이다. 자식을 잘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며.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성경을 매일 묵상해야 한다. 숨겨져 있는 보화를 찾는 심정으로 찾아야 한다.

읽기 전에 우리 영혼을 잘 준비해야 한다, 잘 묵상해야 한다.

묵상 뿐만 아니라 내용이 무엇인가 대화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적용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가는 교회에 적용되는 원리와 같다.

 

토마스 왓슨은 우리가 하나님을 말씀을 대하기 전에는 영적인 배고픔을 가지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지, 들을 때 잘 집중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집에 돌아가서 듣는 모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청교도의 설교는 적용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예화로 어떤 청교도가 설교를 듣고 집에 오는 데 아내가 “설교가 끝났어?”라고 물어보았다.

남편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들려졌지만, 아직 나에게 적용되지는 않았어.” 라고 말하였다.

많은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록하였다. 특히 아버지들이 기록, 주일날 들은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그들은 주일을 ‘우리 영혼의 시장’이라고 말한다. 당시 청교도는 일주일에 한번 시장에서 음식사와 남은 한 주일동안 그 음식을 먹었는데, 마찬가지로 주일날도 영적인 음식 사다가 한 주일간 잘 먹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전형을 이뤄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의 믿음과 행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되어야 한다.

 

리차드 백스터의 성도들의 『삶의 규례』라는 1600p 달하는 책은 ‘어떻게 성도로 살아갈 것인가?’ 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모든 지시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는데, 양심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나와있다.

헨리 스미스가 말하기를 “우리는 말씀을 우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오로지 말씀이 가르치는 것만 믿고, 이 하나님의 말씀이 설명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말씀이 금지하는 모든 것은 미워하고, 계명 외에 나머지는 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말씀의 사람들이었다. 청교도의 책의 어느 page를 읽어도 말씀이 어디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하박국이나 레위기서를 복음서를 읽는 것처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다. 가정에서도 항상, 온전한 신앙이 되기 위해서도 말씀을 온전히 읽어야한다는 주의였다.

존 페버가 말하길,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살 수 있는 최고의 방도이다. 고통을 받을 때 가장 유연하게 받을 수 있고, 죽을 때도 가장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였다.

청교도들은 어떠한 것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근거로 살려는 자세를 취했다.

 

 

 

2--청교도는 교리와 실제적인 것들을 잘 연결시키는데 전문가들이었다.

교리와 실제적인 것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그들은 세 가지 일을 했다.

2-1 그들은 제일 처음에 마음을 향해 이야기 했다. 그러므로 모든 설교가 이어졌을 때 마음이 이어졌다.

그들이 생각할 때 마음은 믿음의 왕국이다. 정신이 없는 사람들, 즉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척추가 없는 사람들과 같다.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개인의 경험을 강조하는 만큼, 반 지성적인 복음은 결국은 공허한 복음이 될 것이다.

그들이 모든 개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채워주지 못하며 결국은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청교도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성도들의 신앙은 불신자들의 믿는 것과 거의 유사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은혜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에 은혜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성도와 비성도간의 삶의 차이점은 없을 것이다. 마음과 정신이 잘 전달 되야 하는 것이다.

2-2 모든 감각에 대해 잘 연결하는 특질이 있다. : 양심의 정면대결

계속적으로 죄의식을 갖도록 몰아가는 힘이 있었다. 설교자가 강단에 서서 선포할 때 마치 무화과 뒤에 숨었던 아담과 하와처럼 죄짓는 성도를 잘 드러내야 한다. 죄를 끄집어내어서 하나님 앞에 벌거벗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청교도가 실행하였다. 그들은 설교와 글을 통해서 이렇게 양심을 정면대결 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잘 이야기 했다. 따듯한 사랑을 가지고 접근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말씀과 그의 아들, 하나님의 영광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요소들과 장엄함에 대해 항상 열려져 있다.

성도, 죄인들에게 예수님께 와서 몸을 담궈라! 예수를 더 알고, 예수 위해 더 충실한 삶을 살고, 그의 사랑을 전하기 실천한 청교도이었다. 지금까지는 교리와 삶을 잘 연결한 것이다.

 

3--예수 그리스도를 잘 설명한 청교도이었다.

조엘 비키 본인은 네덜란드에서 활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그리스도를 설교한 사람이냐? 청교도는 예수님을 설교한 사람들이었다.

토마스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을 설명한 사람, 창조, 요약, 모형이며 성경 어디에서나 예수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에머스는 ‘예수는 성경의 영혼이자 범위이다.’라며 예수를 깊이 사랑했다.

새뮤얼 워더포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통합하고 몰아넣는 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과 비교할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는(듣지 못했음) 만일에 천국에 갔는데, 예수가 없다면 그것은 지옥과 같을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고 하였다.

청교도들의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4-어떻게 역경을 성경적으로 잘 이겨나갔는가?

4-1 한국에는 어떤 풍습이 있는지 모르지만 미국에는 새해 풍습은 Happy New year! 라고 말을 할 때 이런 의미가 들어있다. 올해에 역경이 생기질 않길 원한다. 하지만 청교도는 1월1일에 이런 인사를 했다. 올해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원합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삶 속에서 역경을 주실 때 당신이 더 성화되길 원합니다. 그들은 고통과 역경 속에서 도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더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고,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더 필요로 하게 만든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것이다. 고난 통해서 예수의 모형을 보여준다. 그들은 많은 역경을 당했다. 교회로부터 거역당하고, 자녀들이 많이 죽고, 하지만 이 고통을 통해 성화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섰다.

그들은 어떻게 고난을 이겨냈을 까?

:월리엄 브릿지가 쓴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어떻게 잘 세우는가?』

토마스 브룩스의 『발에 깔려있는 사람이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조에라는 사람은 『성도들의 만족; 희귀한 보석』이라는 책을 썼다.

청교도는 기도로 그 문제를 주님께 맡겼다.

그러므로 기도 통해서 마음을 더 성화되게 하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하다. 아주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서라. 모든 환경을 예수님께 다 맡겨버리라!

 

5-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떻게 두 세계를 잘 살아갈 수 있느냐?

그 하나로는 영원한 세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이며, 다른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성도로 살 것인가이다. 미래 세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것에 의해 제제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성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글 중에는 “이 영원성을 나의 눈에 눈도장을 찍어주십시오.”라고 어린 시절 기도한 내용이 있다.

메리 머쉰리아: 모 교회에 찾아간 적이 있다. 바로 옆에는 무덤이 있습니다. 이제 제가 무덤가를 가 무덤문을 열어보니 8피트 되는 정사각형 비석이 있었다. 그래서 가운데 중앙에 기록된 글을 보니,‘ ETERNITY 영원성‘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맥체인이 기록한 것이다. “나는 영원으로 귀화한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어떻게 세상에서 충만한 삶을 삵 것인가?

영원성에 대한 생각을 한 그들이었다.

존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성도가 어디를 향해 여행합니까? 도피성, 영원으로 가고 있는 그 길의 모든 경험은 최종의 목적으로 가는데에 있어서 방해가 반드시 있습니다. 영원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준비이다.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부정의 삶을 강조하며, 특별히 모든 죄에 대해 부정적인 것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주신 하늘나라에 대핸 기쁨도 갖고 있는 것이다.

 

묵상에 대한 것 -그들은 묵상 시 천국을 진정한 자기 집으로 삼았다. 리차드 백스터의 『영원한 안식』이라는 책에서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이다. 800p에 달하는 책이다.

 

6--어떻게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성도로서 행동을 해야 하는가?

청교도들은 행동을 중시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일 중요시하고, 종교개혁의 모토였던 “기도하고 일하라”로서, 우선 기도를 강조하며, 제일 첫 번째로 중요시했던 일이었다.

기도라는 것은 활동적인 삶을 공유한 것이다. 친구에게 말하길, 내가 내일 할 일 많기 때문에 오늘 더 기도해야겠다. 그러나 우리는 상당히 많은 일로 기도의 시간을 줄어든다. 왜냐하면 기도를 신앙의 한 끝에 담겨있는 걸로 기도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도를 핵심이고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존 번연은 “기도한 후에 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기도하기 전까지는 그 이상의 것은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기도한 후에는 행동하기를 찾는 자, 그들은 수동적인 경건이 아니라, 활동적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운동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 영광을 위해 살았다.

 

7--청교도는 성경적인 가정생활을 강조했다.

가족이 잘 요동치 아니하고 평안하고, 성경에서 결혼 지침서 찾았다. 가정 지침서도 성경에서 찾았다.

청교도가 어떻게 가정과 결혼을 생각했는지 신학을 가정에 적용했는가 -마지막 강의 시간에 살펴본다.

 

 

8--영적인 형제애를 강조했다.

그것은 성도들 간의 공유된 친교를 말한다. 그들이 만일에 현실에 살고 있다면, 청교도 목사들의 회집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강조하는 것은 연합된, 조회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지: 예언이라는 기록에서는 목사 4-5명이 연합해서 같은 본문을 가지고 설교, 즉 주일날 오후에 5명이 똑같은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였다. 다른 모든 분들이 설교에 대해 토의한다. 이제 목사들이 돌아가면서 설교, 건설적인 비평을 하였다, 철이 더 철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사랑을 근거로 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목회에 대해 나?다.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나눴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서 서로 연합된 것은 서로가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서로 영적인 형제를 도모한 것이다.

 

 

9--하나님의 말씀, 강단을 회복하는 것을 말씀했다.

그들은 아주 위대한 설교자였다., 말씀의 유용성을 믿었다. 설교가 필요로 하는 것이 아주 좋은 설교라는 것을 확신했다. 위대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설교자 자신이 주님과 자신이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좋은 백성을 세우기 위해, 어떻게 성도, 목사로 살 것인가?

리차드 백스터의 『개혁적 목사』라는 책에서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드는 사람으로 어떻게 나를 변혁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10-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

그들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들이 믿었던 모든 것들은 언약의 관계아래 놓여져 있는 것을 믿었다.

행위 신학과 은혜신학을 믿었고, 교회 언약이라는 것은 성도들이 가졌다. 결혼은 신부와 신랑의 언약의 관계이다. 언약과 모든 관계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중요한 삶의 목적에 대해 조나단 에드워드가 제일 잘 설명한다.

“내 생애의 잊지 못할 순간은 구원에 대한 것을 확신하는 그 순간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나의 모든 것, 나에 대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삼위일체가 나를 붙잡는 영광스런운 그 순간이다.”

삼위일체에서 한분, 한분 강조하며, 내가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떠한가?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는가? 나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는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적용할 수 있고, 우리의 영성에 적용할 수 있다. 개인의 성장위해, 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동기 부여되면 좋겠다.

 

2. 청교도 역사

.

1650년대에 기록된 자료에서

John jeree : 『옛 청교도들의 특성들 아주 짧은 글』이라는 책에서 청교도가 이러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오래된 청교도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이었다. 말씀에 근거해서 사람들을 사겼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냐, 말씀에 근거해서 이웃을 섬기는 것이었다.

이제 말하길, 이상적인 청교도는 하나님의 집에서 질서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무질서한 것을 거부했다. 예를 들어서 성공회의 기도서의 내용을 부정했고,

진정한 개혁주의 신학보다 로마 카톨릭의 유형을 따라가는 것을 끊으려고 했고, 예를 들어 성찬을 받을 때 강단에서 드리는 것을 금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성찬 참여자가 마치 떡을 숭상하는 듯한 것을 예방한 것이다.

 

또, 성직자가 찬란한 가운을 입는 것을 부정했다. 이런 것을 입으므로 스스로 성직자가 된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들고, 평신도 보다 성직자가 더 높은 것으로 착각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거룩한 것은 다른 평신도가 거룩한 것과 같다.

이제 세례를 받을 때, 성직자가 이마에 십자가에 그리는 의식도 역시 거부했다.

왜냐하면, 역시 로마 카톨릭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한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이 주장하는 그 어떤 것도 주장해서는 안된다.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마쳤다. 옷장 안에서, 가정에서, 같이 공중으로 모여서, 기도했다. 옷장 안에서라는 것은 단순히 의미만이 아니라 정말 옷장 안에서 들어가서 기도한 것이 흥미롭다. 기도를 위한 독립적인 방이나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다.

 

쉐퍼드의 『놀라운 청교도 이야기』를 보면, 어떤 교회 한 구성원이 와서 이런 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세퍼드가 기도실이 어디니? 라고 묻자, 우리 집은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독립적인 기도실이 없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downfall되는 것을 의미한다.

왜 각 가정이 독립적인 기도실을 갖길 원했느냐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크게 내어서 기도하기를 권장했기 때문이다. 침묵기도를 하면, 방황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마틴 루터를 모방했다. “나는 내 원수 마귀가 듣도록 하기 까지 기도할 것이다.”

기도소리를 들리는 것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좋은 유익이 된다. 그 자녀들은 자신들의 이름들을 열거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들은 것이 회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기도를 이루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다.

각 가정들은 교회의 모형이어야 한다. 가정에서 마치 교회에서 목사님이 교회를 섬기는 것처럼 아버지가 섬겨야 한다고 한다. 가정에서 기도할 때 아빠가 기도를 시작하고, 다른 가족도 기도하였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소리내서 기도하는 것으로 어린아이들이 익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기도할 수 있을 까?

공중에서 기도하는 것은 목사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같이 기도했다. 그래서 어떤 청교도가 말하길, 사람들의 마음은 기도하는 목사의 마음과 같이 해야 한다, 목사님이 자신의 기도에 몰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리가 계속 이야기하길, 가장 좋은 설교자의 특별한 것은 명확성이다.

설교자가 설교 시 상대가 잘 알아듣도록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글을 이야기 한다. 열정과 잘 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설교를 염두에 두고 항상 노력을 했다. 제일 처음에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정신을 두고 이야기 한 것이다. 동시에 그것을 잘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집에 갈 때 잘 기억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애정으로 감동을 받아야 한다.

이 주제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다. 종교적 애정, 우리 마음속에 있는 감정이다. 기쁨 , 사랑, 희망, 두려움 등

이렇게 동기와 자세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과 마음이 하나님으로 애정을 찰 때 가능한 것이다.

 

주일날에 그들은 신적인 규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휴식, 안식 취하는 것은 거룩을 더 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생각할 때 안식일은 전적으로 주님께 돌려드리기 위한 것이다. 성도다운 예배, 교제와 헌신,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위해 안식일을 잘 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너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다. 바로 그날에 하나님, 여호와을 경외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진정 하나님과 가깝다면, 안식일은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청교도의 생각 속에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였다, 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안식일에 할 수 없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이런 것으로 성공회와 많은 마찰이 있었다.

 

한 예로, 1618년에 오락법이 제정되었다. 국가는 주일날에 오락을 해도 가능하다고 천명하였다. 모든 목사들이 동의하게끔 만들었다. 이 부분을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읽히게 하였다. 이것을 청교도의 양심에 걸렸다. 절대로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주일날에 운동, 오락할 수 있는 여가가 없다. 청교도들은 그 때 어려움을 당하였다. 어떤 이들은 압박당해 읽어야 했다.

한 예로 어떤 청교도들은 중간 길을 걸었다. 여러분! 왕이 저에게 이런 글을 읽히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왕이 하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여기 참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그 때 읽겠습니다. 15분 후에 돌아오십시오.

그날은 바로 거룩한 날, 섬김, 일을 위한 날이었다.

 

이제 유아 세례를 받을 때, 뱁티스트 침례교의 사람들은 작은 부분이다. 존 번연도 침례교이다. 이제 존 번연은 세례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믿음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너희가 원하면 유아들에게 그들의 가정에서 침례 하겠다. 그러나 교회에서 교인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어린 아이가 어릴 적에 유아 세례 받고 성장한 후에 어릴 적을 돌아보면서 그들의 특권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서 세례 줄 때 약속하길, 언약의 자손의 하나님인 것을 이야기 한다. 자라나서 이 아이는 회심을 경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적 의미의 중생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회심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하나님을 향한 세례를 가르쳐준다. 바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이야기 한다. “하나님 내가 여기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나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언약의 하나님, 믿는 자의 자손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임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달려갑니다.” 이것이 유아 세례자의 특권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성찬식은 가장 영적인 양식이다. 항상 먹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식탁에 임해야 한다.,

 

청교도들은 성찬식을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교도 교회들은 한달에 한 번, 석 달에 한 번 거행했다. 성찬을 받기 전에 준비하는 설교, 한두개 먼저했고, 성찬에 참여자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은혜 징표가 무엇인지 받았다. 성경의 마5장의 산상 수훈,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도 그렇다. 성찬을 받은 후 설교한 것은 새로운 것을 반영하는 설교였다. 결국 성찬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내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제 우리가 결혼식을 위한 옷 준비,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리킨다. 예수님과 만났을 때 입을 예복이 잘 준비됐는가?

 

그들은 성찬식 전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 당신을 위해 어떤 고난을 하셨는가. 어떤 충고를 하고 계신가. 나를 위해 기념하라는 명령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성찬식을 준비할 때 좋은 글들을 읽어 다시 한 번 하나님께 재 헌신하는 길을 가졌다. 성찬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언약하는 잔치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이다. 성찬식을 사랑의 잔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므로 우리가 그에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 까지 성찬 속에 증거 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청교도는 성도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에 대해 심각성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

가장 위대한 성도는 위대한 남편이어야 한다. 최선의 아이들이 아이들이다.

은혜의 교리가 잘 보존되는 것이다. 모독을 갖지 않는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을 살게 했다.

이제 그들이 살아갈 때에 상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모든 삶의 방도에 영향을 줘야한다. 옷, 말, 생각, 흐트러진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거룩한 삶은 영적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장되신 성전과 깃발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다. 예수님께서 이기시고, 승리하시고, 고난 받으신 영적 전쟁의 모형이다.

 

많이 정복한 사람이 많은 것을 취한다. 하지만 청교도는 정복하는 자는 정복한 만큼 고난을 당한다. 왜냐하면 영적 전쟁에 임하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의 삶이 성도의 삶이다.

여기까지가 이상적인 청교도에 관한 것이다.

 

 

[4]간략한 청교도의 역사

 

우리가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시대 시작,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좌에 올랐을 때, 이제 망명을 갔던 개신교자들이 돌아왔다. 이제 그들은 여왕이 보수적인 방향으로 교회을 이끌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개혁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개신교였나? 맞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것은 .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였습니다 그때 당시 개신교의 정황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고, 왕좌에 올랐을 때 그래서 엘리자베스적인 정착이라는 생각하고 그섯은 중도의 길을 걸었다.

1599년에 기도문, 1563년에 39개 신앙 조항을 완수하였다.

그래서 청교도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이렇게 미지근한 개혁을 가졌던 것에 불만하였고 그들은 박해받기 시작하였다.

토마스 쿼터랄이저는 여왕으로부터 체크을 받았다. 그는 장로교적인 교회 제도를 수용하기를 주장하다가 성공회적인 것을 물리쳤으므로 면책을 받았다.

1603년에 영국 제임스1세가 왕좌에 올랐습니다. (스코틀랜드 6세) 그래서 청교도들은 제임스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국에 확실한 개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문제가 있었는데 제임스가 여와보다 더 신학적으로 자유로운 경향이었다.

제임스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청교도들을 분리주의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하였다.

이제 1604년도에 청교도들은 새롭게 성경을 번역하자고 제안하였다. 제임스의 조건은 온전히 번역만 하는 것이지 주해가 들어있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네바 성경의 내용으로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군주제도 때문이었다. 나쁜 군주는 갈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제임스가 통치하는 동안 청교도들은 더 어려움 느겼다.

 

그 다음으로1625년에 찰스가 왕좌 물려받아 그는 나라를 더 망쳤다. 왕과 결혼한 여자는 로마 카톨릭에 관심이 많았다. 개신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1636에 스코틀랜드에 성공회 기도문을 사용을 압력 넣었다. 그래서 나빠지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게 되니 찰스가 의회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상황속에서 의회가 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의회를 중심으로 한 군대와 왕을 옹호하는 군대와 싸움이 일어났다. 청교도 전쟁이자, 영국 내란이었다. 전쟁 중 의회는 청교도 운동에 마음이 열려져 있는 알벨컴에 의해서 의회의 지배를 받았다.

 

1640년에 유명한 신앙고백서 기록되었다. 청교도뿐 만 아니라, 웨스트민스터에 모였던 신학자들이 5가지 중요한 것: 신앙고백서,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예배 모범, 장로교 정치 모범이었다.

 

결국 의회파가 왕정파를 이겼다. 왕정파에 위협에서 그들을 구출하고 끝냈다 이제 역시 마찬가지로 찰스가 잘못한 것에 대해 찰스가 결국 참수형 당했다. 그렇게 때문에 크롬웰이 종신호국형으로 3년 선출되었다. 하지만 그는 1658년에 죽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이었던 리차드가 뒤를 이었으나 아버지와 같은 은사가 없었다. 그래서 찰스 2세가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찰스 2세는 어머니의 신앙을 따르게 되었다. 좀더 카톨릭 신앙에 관용을 베풀었다. 이 많은 일들 중에 1662년에 제정된 성 바돌로매 날에 찰스가 하나의 모든 설교자들이 기도문의 내용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법에도 불구하고 2000명의 바른 양심은 거기 동의할 수 없다. 2000명의 양심을 갖고 있는 분들은 교회를 떠났다.

어떤 이들은 국교도가 되었다. 하지만 2000이상의 성직자가 교회 떠난 것을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제 이것이야말로 청교도 운동에 있어서 아주 참혹스러운 결과였다. 계속 많은 청교도들은 강의 책을 썼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서 핍박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 약해져 갔습니다

메리가 결국 왕좌에 올랐을 때 이 1664년에 을 수장령을 결국 번복하였다 통일령,:원래 →관용령:나중

그래서 결국 영국에서 청교도들은 원하는 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 1685년에는 청교도 운동이 지쳐있었습니다. 많은 좋은 지도자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새로운 지도자들이 전의 위대한 청교도들의 자리를 맺굴수 없었다. 왜냐하면 박해가 심했습니다. 이렇게 교회 부흥을 일으켰던, 테마가 지속되었습니다. 없어졌다. 실제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1700년대 청교도 운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청교도로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볼 수 있다. 1703-`1758

요즘에 다시 청교도 운동이 재 부흥을 맞고 있다. 적어도 그들을 통해 지난 50년간에 700종류의 책 발간되었다.

150여명의 청교도들에 의해 발간된 책들이다. 작년에 공동 저작한 [청교도를 만나십시오] 이책에서 -150명의 삶을 다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700권의 모든 책의 간단한 요약을 수록하고 있다. 요즘에도 20-30권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역사적인 운동으로서의 청교도는 사라졌지고 말았지만 요즘에도 아직도 그들에게 큰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각기 교리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어떤 성경관? 어떤 방법이 좋은 글인가?

 

-질문-90퍼센트의 글을 보면, 원해 설교인데, 책으로 발간되면서, 설교 전에 개요, 거기에서 요약된 줄거리를 가지고서 설교준비, 개요를 가지고 설교 하지만, 설교 후 전문을 기록, 모아진 것을 가지고, 책을 낸다. 하지만 이런 것 때문에 혼동 한다 설교가 길어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를 그들이 두 세 시간 길게 설교한 것 아니냐?

평균적으로 45-1시간 내지의 길이의 설교를 하였다 나중에서 원문을 만들 때 길게 쓴 것이다. 기록된 형식은 말보다 길다

물론 소수는 출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글쓴 것도 있다. 굉장히 잘 훈련된 사람들이었다. 글의 혼신을 다했던 사람들이었다.

jipaker? -청교도에 관한 유장한 학자중의 한분이었다. 이제 청교도 P는 -운동 이야기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하지만 청교도적이다. 그래서 퓨리탄을 쓸 때는 소문자 p를 씁니다 정확히 말하면 청교도적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페커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청교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거룩한 삶- -웨스트민스터 컨퍼런스의 글 모은 것이다. 청교도의 주제에 관해서 권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생생한 것을 증거

질문-청교도 시대는 지났지만, 다시 청교도 글이 나온 요소나 원동력은?

제가 보기에는 거룩한 자는 더 거룩해지고, 그 반대는 더 반대이다.

이 세상이 포스트모던으로 치달을 때 절대적 진리가 없는 시대에 하나님은 다른 그룹을 세워서 전통적인 개혁신학을 다시 일으키려는 목적이 있다.

기억하여야 할것은 700권이 책이 다시 재발견 됐을 때, 하지만 세상의 모든 책에 비교시 전체 1퍼센트라 미약한 운동이다

이제 1590년대 비겨해 볼 때, 당시 퓨리탄의 책들은 30퍼센트를 차지했다. 당시 청교도운동 활발하였다.

 

 

[5]청교도의 성경관

 

존 커트닝 회중에게 말하길,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라

윈스롭-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배고픔을 가져라

이제 하루가 지날 깔 때 읽고 묵상할 때 말씀에 붙잡혀서 근거한 기도를 하지 않고는 하루를 보낼 수 없다.

청교도들은 말씀의 권위를 있는 그대로 믿었다. 물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모든 교회의 전통에서 인정하지만,

이것은 우리 이성보다 더 앞서는 것, 모든 것은 말씀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제 카톨릭이(교황) 가지고 있는 잘못된 오류와 말씀을 귀하게 여긴 것이 청교도의 전통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거짓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속일 수 없고

그것은 오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오하다.

거기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상충되는 내용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류가 발견된다면, 하지만 이것은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것이 아니고, 하지만 제일 처음에 오리지날로 쓴 것은 아니고, 하지만 점점 번역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성경의 권위는 삶의 모든 면에 적용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종교적 진리는 증거 하는 근거가 된다.

우리가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도덕적인 것도 믿어야 한다

새뮤얼 워더포드-이제 구약과 신약에는 어떤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의 교과서이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면, 여러 문제를 피하여 갈 수 있다. 말씀의 울타리 안에 서서 있다면,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서 결정하는 결정도 이럴 수 있다. 모든 상황에 지시하지는 않지만, 원리를 제공할 수 있다.

리차드 십스-성도가 죄에 넘어질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리더 할 수 있는 규범이 있다.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다. 이제 어떤 사람이 성경의 내용을 잘 안다면, 이제 매일의 삶 가운데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날 인도해 달라는 자세로 인도,

이러한 것들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 성경 해석학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여러 가지 원리를 수용했다. 제일 처음에 중요한 것은

본문을 잡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문을 읽고, 모든 단어, 단어 하나를 중요시 여겼고,

본문의 정황을 잘 이해하였다.

문맥을 잘 선정해서 풀어헤쳐 나갈 때 잘 못 해석하면 안 된다.

이제 그들은 이야기하기에 본문과 상황과 다른 것 이야기 한다

믿음의 유추다.

존 오웬 -성경의 내용들이 잘 융합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믿음의 구조가 담겨 있는데, 어떤 한 부분이 전체 구조와 상합할 수 없다.

이제 각각 한 본문을 상충될 수 없다.

하나님말씀 자체는 진리를 상충하지 않는다.

이제 다른 청교도들이 가졌던 특징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었다.

이제 은유적인 해석은 가급적 거부해야 한다

해석하기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은 이해하기 쉬운 부분을 통해 해석하였다.

어떤 하나의 부분은 예화의 말씀은 본문이 정하고 있는 부분적인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청교도가 난해한 부분이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조명을 이야기 한다

본문과 문맥을 잘 공부하면,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 처음에 성령의 조명하심의 필요를 갖는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교황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수문장이시다, 말하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을 도움을 얻었다.

초대 교부들의 글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성령임께서 말씀에 순복하는 도덕적인 요소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설명들의 성경해석학의 원리는 생각의 표준을 갖고 있다.

나는 설명한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냐면, 청교도들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해석학의 방법을 사용하게 해준 장본인이다.

4세기가 사용한 성경해석학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길잡이 가치가 높은 것이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였다. 이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순수한 신학적 개념 안에서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설교를 느끼도록 하는 설교가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죽은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채워져 있는 그들이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생각이 성경적 말하는 것이 성경적, 행동이, 성경적, 말씀으로 삶의 행동반경을 정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권위를 정한 것이다. 말씀의 무오성, 실수가 없는,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중요한 개념은

성경의 근거한 좋은 교리를 갖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설교자가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는 것을 그들은 말한다..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위험성 -우리는 말씀을 인정치 않는 자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권위인정하고 하지만 청교도들은 영감 통해 그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켜준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더 지식으로 모든 것을 채울 수 없다.

그분이 우리에게 같이 계셔야 한다. 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자라나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에게 조명하시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은, 말씀전하는 스파이더와 같다 정탐꾼과 같다.

주일날 교인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발견한 것이 이것이다.

여러분 삶 가운데 의미가 이것이다 말하는 것이다.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예수 그리스도에 더 닮아 가는가?

나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권위와 말씀에 인정이 중요한다. 강단에 올라갈 때, 선언할 때 놀라우실 일을 할 것을 확신해야 한다.

 

 

 

 

 

 

 

 

 

 

 

3 청교도의 묵상 연습 .

요한 일서3장 1-3절

1: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서론

어제 우리는 서론적인 자료를 근거해 공부했다. 그들의 성경관에 대해 배웠다. 전통적인 개혁주의적 성경관을 갖고 있는 것을 알았다. 구체적인 교리를 같이 알아보겠다.

세부분: 근원적인 것들로 명상 방법에 대해: 묵상의 기술이다,

하나님의 가족의 영적인 자녀됨을 말하는 것, 마지막에 구원의 확신, 믿음의 확신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이것은 칼빈에 기초한다

 

 

1. 묵상에 대한 정의 속성, 그리고 종류

미국에서는 보통 명상이라하면 불교, 힌두교를 나타낸다. 하지만 청교도는 묵상이라는 것은 말씀에 뿌리박은 것이라 생각했다.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다. 마치 성도가 되었다면,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를 잊지 않는 것과 같다. 성도라는 것은 매일 묵상하는 일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1.묵상에 대한 정의,속성,종류-묵상이라는 것은 특정한 대상을 생각하던지, 숙고하고 반성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 성경에 여러 번 언급된다. 창세기24장이 이삭이 들판에서 묵상을 한다. 여호수아1장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묵상한다. 시편은 특별히 묵상하는 것이 많이 나온다. 1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묵상하는 자이다. 63편에 보면 그의 인생이 어려울 때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나온다. 19편에 보게 되면 시편기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보니 잠자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 나온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는 일이었다.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묵상하느냐? 더 나은 성도가 되기 위한 목적과 마땅한 행위를 위해 묵상한다. 그래서 신비주의적인 요소로서의 묵상을 한 것이 아니다. 특별히 청교도들은 머리, 가슴과 손의 운동으로 생각했다. 지적인 사고와 마음의 애정, 삶에서 행동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왓슨-참된 묵상은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로 불타는 마음이 되게 하고 죄를 증오하게까지 한다. 칼럼이라는 청교도가 묵상을 통해 세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해의 문-마음과 감정의 문-실제적인 삶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모든 것은 예수와 같아지기 위한 목적이다. 그의 형상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분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청교도는 모든 성도들은 매일 반드시 묵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치 우리가 가스가 있어야 차가 가는 것처럼 묵상은 성도에게 필요한 것이다. 엔진오일이 차가 부드럽게 도움을 주는 것처럼 묵상은 그러한 유익을 유리에게 준다. 반드시 말씀과 함께 해야 한다.그리고 기도를 겸비해야 한다.

회개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

두 가지 종류의 묵상을 가르쳤다.

 

1-1 때때로 하는 묵상: 불규칙한 묵상으로, 즉각적인 묵상이다. 어떤 때는 1분정도에 마칠 수 있고, 30분정도 지속될 수 있다.불규칙한 묵상이라는 것은 영적인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특별히 주위에 있는 가시적인 일들, 눈에 띄는 일들이 영적인 성경의 진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이다. 이 묵상은 세상에 있는 것에서 천상에 있는 것으로 높이 올려지는 것이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사용하여 천국을 사닥다리로 올라가는 위험성이 있다. 시편 8편에 기록한 것처럼 달과 별을 보면서 다윗이 이러한 연습을 했다. 마찬가지로 잠언 6장에 솔로몬은 개미를 통해 이러한 묵상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요한복음 4장에 우물물 통해 예수가 묵상하셨다. 여러분도 불규칙한 묵상을 실천할 수 있다. 앞에 문을 보면서 예수가 말씀하시길, 나는 문이다. 라는 것을 영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 제가 예수가 문인 것에 대해 깊이 생각, 나에게 구속을 주시는 문, 나의 성화를 위한 문인 것을 , 나의 지혜의 문인 것을 안다. 성경이 문에 대해 어떤 일을 하는가 생각하게 된다. 잠언8장에 예수가 지혜가 되는 것 생각할 수 있다. 여러분이 눈에 보이는 것을 시작하면, 영적인 세계로 연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할 의무이다. 목사나 학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도 해야 한다.

 

두 가지 비교 시 좀더 쉬운 묵상이다. 왜냐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좀 더 심각한 청교도들은 더 많은 시간을 묵상에 보낸다. 많은 청교도들이 많은 책들을 썼다.

보통 365일 매일 묵상에 고나한 책을 가끔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규칙한 묵상과 연결된 것이다. 이제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일들을 영적인 일들로 연결시키는가에 대해서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을 잘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씀의 반경 안에 있어야 한다.

그들의 걱정은 카톨릭의 신비중의에 빠질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예수의 고난에 대해 묵상 시, 성경 이상의 것으로 해석하려는 것을 걱정,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묵상을 해야 하는 가는 사람마다 달랐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에서 상상력을 많이 사용: 한 책 전부가 불규칙한 묵상으로 가드 채워져 있다. 번연이 이 책을 기록할 때 상상력을 이렇게 많이 사용해야 하는 가 고민했다. 어떤 친구는 태워버려~만일에 너무나 많은 상상력을 사용한다면, 나는 너무나 많은 상상력을 사용했어. 말씀을 어떻게 여기서 전가할 까 생각했는지 너는 알 수 없어!

 

1-2 일상의 신중한 묵상-의도적 묵상:

하루에 정한 시간을 놓치지 않고 묵상하는 것이다. 매일 경건의 시간과 유사하다. 예배가 포함된다. 그들이 의도적이 묵상을 할 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묵상을 했다는 것이다. 마치 꽃에 있는 벌꿀이 달콤한 것을 다 빨아들이는 것과 유사하다. 한 가지 진리에 꽃의 벌과 같이 많은 유익을 얻는 것이다.

많은 자료를 통해 가능했다. 말씀이 가장 중요한 자료였다.

어떠한 실제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기독교의 진리를 사용가능했다. 설교를 가지고 묵상을 했다. 하나님의 섭리와 관계된 일을 묵상했다. 어떠한 자료사용하든지 간에 머리, 가슴, 손을 사용했다.

 

2. 묵상의 의무의 필요성

6가지 이유로 묵상이 필요하다.

2-1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의 말씀을 묵상하도록 명령하셨다. 충분조건이다. 증거자료서 신명기 6:7, 시편 19:14,119에 많이, 요한 4:24,엡1:18등 이외에도 많이 있다. 여호수아와 모세와 다윗에 대해 예를 미리 말씀드렸다. 신약에 마리아가, 바울과 디모데가 그러하다.

2-2 말씀을 읽을 때 직접 쓰신 편지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시119:48에 근거한다. 어떤 친구로부터 편지 받게되면, 다른 것 다 옆에 두고 그것을 읽는다. 친구로부터 편지 받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다. 거듭해 읽기도 한다. 말씀이라는 것은 편지이기 때문에 흥미 있게 읽어야 한다. 말씀하시는 그것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다.

2-3 묵상하는 성도는 견고한 성도이기 때문이다. 묵상하지 않으면 말씀에 고갈 되 약한 성도가 된다. 119;1에 다윗이 자기가 묵상하지 않으면 고통에 의해 죽어버릴 것이다. 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고통 속에 집어넣을 때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다면, 왜 , 주권적인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고 만다. 묵상한다면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얻는다. 그래서 이사야가 하나님께 마음을 고정한 자는 견고하게 설 수 있다. 사26:3

 

토마스 왓슨-묵상하지 않은 성도는 무기가 없는 성도와 같다. 대장장이가 도구가 없는 것과 같다. 묵상 없이는 어느 것도 성취할 수 없다.

2-4 설교된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도록 묵상해야 한다.

만일에 설교를 들었지만 묵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음식을 먹을 때 씹지 않고 삼키는 것과 같다

제대로 소화시키려면 잘 씹어야 한다. 설교를 잘 섭취해야 한다

와이처-묵상 없는 천편의 설교보다 묵상 있는 한편의 설교보다 낫다.

2-5 묵상은 우리의 기도생활을 묻는다.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의 반 정도가 끝난 것이다. 기도의 효과는 말씀을 읽는 다음에 효과적인 기도가 나타난다. 읽다보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주신다. 청교도들은 묵상의 바른 방법이다. 성경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라

2-6 진리를 변호하기 위해 묵상해야 한다. 우리의 중추 등뼈와 같다. 하지 않은 성도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배우는 모든 것에서 발견되는 진리이다. 이 수업도 마찬가지이다. 28시간 동안 경청하면, 잘 필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의가 끝난 다음에 묵상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유익을 줄 수 없다. 한주만 지나면 대부분 잊을 수 있다.

한국 땅에도 이것이 부족한 것이다. 진리를 깊이 묵상하는 사람들 발견되기 어렵다.

자기학교 학생들이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모든 교만을 내려놓고 겸손하기 원한다면 장로님들과 집사님들과 화요일의 제직회 때, 설교가 무엇이었냐 물어라

 

3. 묵상의 방법

대부분의 청교도는 하루 두 번 정도 해야 한다. 적어도 한 번은 해야 한다.

두 번째 묵상 전까지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라

3-1 자주하고 시간을 정하라

새가 둥지를 떠나면 알이 차가워져 새 생명을 태어날 수 없다. 우리가 매일 묵상하지 않으면 영적 애정이 식어진다. 갑작스럽게 교회 주일에 가면, 세속적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묵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정해서 지켜야 한다. 정신이 가장 깨어있는 시간을 정하라 어떤 분은 아침에 강하고, 저는 조엘비키는 저녁을 선호한다. 누군가의 질문에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야? 7시30분이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은 실망했다고 말했다. 언제 묵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정신으로 묵상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더 많은 묵상은 주일에 적용된다. 하나님은 그 날 영적인 훈련을 하도록 부르셨다. 교회 갔다 온 후 집에 와서 설교 노트를 계속 숙고하며 묵상하라, 특별히 가족과 함께 하라,

전의 비서가 이 방법으로 묵상했다. 85세에 돌아가셨다. 빡빡하게 설교를 기록했다. 계속해서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좋은 습관을 해 나갔다. 이렇게 하는 행위가 주일의 가장 유익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가까이 계실 때 가장 묵상하기 좋은 시간, 고난에 처했을 때도 묵상하기 좋은 시간이다.

성찬식을 준비하기 전에도, 영혼이 지각할 만한 유익을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묵상하라

 

문제는 묵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중단하는 것이다.

묵상이라는 것은 촉촉이 젖은 나무를 사용해서 불을 지피는 것과 같다. 인내를 필요하다. 불 피울시 연기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좀 더 인내하면서 우리 마음속에서 거룩한 불이 타오를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

마음속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내일 다시 시도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청교도도 있다.

아주 조용한 곳을 찾아라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곳, 세상의 바쁜 것들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것, 방해하는 죄로부터 날 깨끗해 하옵소서, 묵상 시 거룩하신 하나님과 성자, 성령의 임재아래 놓여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는 어떠한 자세로 묵상해야 하는가도 심각하게 생각하라

효과 있는 묵상을 위해 -깜깜한 방, 자연 속을 걸어가면서 묵상,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것 통해 묵상하라

 

구체적 지침--성령님께서 잘 인도해 달라는 기도해라

마음이 정직하고, 깨끗한, 생각이 도와달라고 기도하라

말씀을 읽습니다. 한 구절을 정하는 데, 표면에 떠오르는 신학적 주제 생각해 묵상한다, 어려운 교리가지고 시작하지 않는다. 삼위일체를 묵상하거나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전능하심과 말씀과 상황과 연관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

예를 들어서 영적 고갈상태라면, 하나님께서 마11장을 읽게 하셨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의 의지에 대해 묵상할 수 있다.

3-3선정한 것이 한 구절이라면 암기해서 자극 받아라

3-4 성경 전체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봐라

말씀뿐만 아니라 전에 들었던 설교를 잘 읽어봐라 마음속에 상상하라

예화를 들었던 것을, 진리와 상반되는 것을, 동의어들을 상상하라

예화-엘레멘 캘러드-오늘 죄에 대해서 묵상한다. 죄란 무엇인가? 요4:19 이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다. 아담의 죄와 자범죄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죄라는 것을 얼마나 증오할 수 있는가 생각하라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예수가 어떠한 고난을 당하셨는가? 지옥에 대해 생각, 이 죄를 어떻게 이기셨는가? 특별히 나의 구체적인 자범죄가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를 못 박았는가 생각하라 -나를 용서 해달라, 건져 달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 수 있도록 , 나의 죄를 두려워하도록, 영광이 나의 삶에 잘 반영되게 도와달라고 할 수 있다.

3-5 우리마음속의 애정을 일어나게 하라, 사랑, 욕망, 죄에 대한 증오, 소망, 용기, 기쁨, 열심, 모든 이러한 종류의 애정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내가 내 자신의 영혼과 대화하는 목적에 있다. 시편 오 내영혼아 너는 왜 낙망하는 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3-6 애정이 일으키게 되면 묵상한 내용을 우리 삶에 적용하게 된다. 우리 영혼이 하나의 의무와 위로로 적용할 수 있다. 적용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의 결단이다.

죄에 대해 묵상을 할 때, 매일 매일 정말 실행하고 있는 잘못된 죄가 있다. 결국 죄를 싫어하게 된다면 우리 나름의 결단이 있다. 그것은 오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범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묵상이라는 것은 그냥 무인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3-7기도와 시편을 노래하는 것이다. 청교도는 매번 묵상을 끝낼 때 시편을 노래한다.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 중심되고 하나님이 높여지는 방법으로 묵상을 끝내길 원했다.

노래라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쉽게 떠나지 않기 때문에, 시편을 노래한 것이다.

 

4. 묵상의 주제들

묵상을 공부하는 데 3권으로 시작 41권에 달하게 되었다.

41권의 책들은 묵상의 주제가 무엇인가?

요셉 홀-87가지의 주제 중 반 정도 소개하겠다.

하나님의 속성, 본질에 대해서이다

나 개인이 범하고 있는 죄의 종류에 대해서, 하나님의 고난과 죽음, 약속 , 성찬에 대해서 등등

더 중요한 것은 장래 일에 대해서 주제로 묵상하기를 권고한다.

마지막의 4가지의 일들에 주제를 살펴보겠다.

종말론: 천국, 지옥, 죽음, 심판

한 눈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고, 한 눈은 이 땅에서 성도로서 살펴보게 된다.

묵상이 주는 유익-영적으로 유익이 많다.

4-1 하나님께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그를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조성한다. 그것은 지혜의 근본이다. 우리의 믿음을 더 크게 해주고, 우리의 고통을 더 잘 이기게, 회개,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든다. 우리가 영적인 일을 잘 기억할 수 있게, 예배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게, 말씀과 영혼이 잘 엮어질 수 있도록 , 기도의 삶을 도와준다. 말씀을 들으면 더 유익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잘못된 죄성이 반영된 생각을 도와주게 된다. 내적인 것을 더 좋아준다.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유혹을 물리치게 한다. 감사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5. 묵상의 장애물

5-1 무지함: 어떤 방법으로든 시작해야 한다. 항상 준비되지 않은 것처럼 생각시마다 하나님 나를 도와 달라 지금 도와 달라 해라

5-2 분주함: 나는 너무 바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라 묵상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5-3 영적인 무기력함: 영적인 게으름인 것은 누더기를 입은 사람과 같다. 잠언 23장의 말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잠재우기 위해 다른 것은 경시할 수 있다.

5-4 세속적 쾌락과 우정: 만일에 어떤 것이든지 영적인 일에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다 버려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게 되는 것을 끊어버려라

5-5 마음의 완악함: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보시도록 하라, 하나님의 손에 놓일 수 있도록 부드러운 마음을 달라고 말하십시오, 묵상해야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결론 -묵상의 기술은 삶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말씀, 자연에 대한 것, 내 양심도 거기에 있다. 이 시간 우리가 질문 할 것인데 내 자신에 대해 질문하라 여러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 묵상해야 한다고 생각 않하십니까? 설교준비자들에게 좀 더 옳은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묵상은 좀 더 가까이 가게 할 것 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밤낮 묵상해라 어려울 때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라

성령을 통해 묵상에 도움을 주시길 원합니다.

 

<질의문답시간>

위대한 죄가 있지만 위대한 그리스도가 있다는 복음을 사용했다. 월리엄 브릿지가 상처받은 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책을 썼는데, 죄인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돌릴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가고, 죄를 고백하고, 어떤 죄인도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떤 죄인도 나이가 많거나 죄가 너무 낳거나 한 것이 아니다.

설교 묵상 시 특정한 규율에 묶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묵상, 주일에 가족과 함께 묵상하였다. 하지만, 주일날이 끝나지 아니하고, 하지만 거기에는 고착된 규칙은 없었다.

 

시119편을 통해 묵상의 유익을 나눌 때, 하루에 2-3분만 보내라 성도들에게 권고했다. 한 시간 하겠다고 못해버리는 것보다, 천천히 시작하는 것이 좋다. 반드시 하루에 1분이라도 해야 하는 것을 중요하다 주일에 올 때 영적인 의무를 다하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고 목회자의 책임이다. 묵상 시작하는 것에 자극을 줘야 한다.

일상적인 묵상을 통해 일할 수 있도록 가르쳐라. 성도님들이 어떻게 매일의 묵상을 합니까? 물은 다면,

5분만 성경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라 그렇게 되면 영적인 성장이 있게 된다.

 

우리나라 새벽기도에 묵상을 적용한다면- 공중기도보다 개인 기도는 너무나 많은 말을 쏟아낸다. 기도할 때에 두 세절 말한 다음에 기도한 것에 대한 묵상을 하는 것이 좋다. 말을 아끼라는 것이다. 잠언 서를 읽게 된다면 15절 정도를 개인 묵상에 할애하지 않는다. 한절 한절이 묵상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절에 대해서 읽은 다음 묵상하고, 그 다음 묵상하고 한다.

 

한국의 문제는 너무 많은 것을 듣기 때문에 묵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 조엘 비키는 주일날 세 종류의 예배가 있다. 어떤 분은 다 참여, 대부분은 두 예배에 참여하자. 설교에 대해 묵상할 시간을 버리기 때문이다.

두 설교보다 한 설교로 줄이는 것이 낫지 않느냐? 현재 교회의 문제는 두 편의 설교를 듣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정말 문제는 설교의 횟수가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세상 적이고 중요치 않는 일에 보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것은 중요한 것은 좀 더 묵상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설교홍수 속에 어떤 조화를 가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조엘비키는 미국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가졌음 좋겠다. 미국인들은 듣지 않고 있다고 말하였다. 반면 자기가 보기에 한국 사람들은 설교하시는 분이나 강의하는 분이 문자적 수용하는 것으로 본다.

좋은 학생으로서 수용하지만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들은 설교를 더 묵상할 수 있는가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나누었으면 좋겠다. 저희 교회에서는 6주마다 한 번씩 아이들에게 묵상을 훈련하는 모임을 갖는다.-설교 후에 묵상에 대해 토의 시간을 갖는다. 어떻게 설교 들은 후에 이 주제를 가지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준비시켜 모임을 가져 묵상하는 연습을 한다. 문화 속에서 이러한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라. 하나님의 말씀을 반사, 반영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일날 들은 설교에 대해, 가끔 차를 타시면서 듣다가도 듣는 것을 중단하고, 묵상하라, 묵상은 그만큼 큰 유익이 있다.

 

 

 

 

 

 

 

4 청교도의 영적 양자교리.

 

로마서8장14-17 조엘비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오후시간은 흥미로운 이야기 할 것이다. 그들이 영적 양자됨을 어떻게 추리 했는 가이다.

제일 처음 발견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에 제이아이 패커는 청교도들은 눈에 띌 정도로 양자교리에 대해 불충분하게 다뤘다. 현대 글을 쓰는 분들도 패커의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저자는 청교도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간헐적인 것들만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몇 가지 의문나는 점은 제일 처음에 신앙고백서의 독립적인 것으로 양자교리 언급, 신아고백서 12장에 나와 있다.

 

서론

모든 청교도들이 이것을 어떻게 다뤘나 사람들을 통해 살펴보자.

양자교리에 관한 설교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완전한 모습의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많은 분량의 글을 남긴 것을 알 수 있다. 계속적인 연구해본 결과 7개의 논문을 발견했다. 그 가운데서 재판이 되지 않았다.

이 주제에 대해서 그 누구도 전에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작은 소논문도 발표된 적이 없었다. 제가 찾은 7권의 책을 읽고 모든 소논문도, 설교도 읽었다. 모든 아티클이 8000장에 달하는 것이고, 하지만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을 포기하고 다뤄야할 것만 다뤘다. 최선 다해 줄였지만, 5500자의 논문을 만들었다. 이제 제가 예전에 출판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고, 두 주전에 노력해서 책으로 출판되었다. 오후에 나누고 싶은 것은 저술의 내용이다. 제 강의가 끝날 때 제가 느낀 것을 여러분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양자됨은 가족계획과 같다. 한국의 가족의 수를 줄이는 것과는 같지 않다. 하나님의 가족의 계획으로 수를 늘려가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가족에서는 많은 수를 양자 삼으신 것이다. 귀중한 교리를 같이 살펴보면서 공부해봅시다.

 

1. 양자 교리의 탁월함과 포괄성, 그리고 구원론과의 관계

월리엄 퍼킨스-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양자된 것은 세상의 공주, 왕자보다 더 귀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는 나의 큰 형님이자 후사가 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날 위로하시는 분이다. 모든 이가 나의 형제 자매이다. 천국은 나에게 상속하시는 영원한 장소이다. 왕 중의 왕 되신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이다. 말씀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보라 이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무엇때문에..

아보라하-귀한 것을 잘 생각해봐라, 악마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다.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가 되었다. 악마의 가족에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이해를 초월하는 일이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포괄성-청교도는 이 교리가 포괄적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어떤 청교도는 구원에서 칭의와 성화교리 가운데 양자교리를 집어넣었다. 이런 것이 이해 될 만하다. 내가 심판자로부터 의를 얻었다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영입-그를 통해 자녀가 된 자가 성화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청교도는 이렇게 말했다. 구원의 서정 가운데의 양자교리가 아닌 포괄적인 것으로의 양자교리이다. 구원과 관계된 모든 교리의 양자교리이다.

어떤 청교도는 성경에 나타나있는 구원의 사역 가운데 모든 것을 요약하는 것이 양자 교리라고 말한다.

언약적 의미 -하나님을; 나는 너의 아버지, 엡1:5에 너는 나의 아들이 된다. 바울이 구원에 관한 것을 이야기, 예정된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된 것을 이야기 한다.

양자 됨이라는 것은 모든 구원에 관한 것이다,

 

2. 두 언약 안에서 비교되는 양자교리

구약과 신약 양자교리의 차이점

헤르만-어느 시대나 막론하고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구약에서도 발견 된다. 욥의 엘리후가 그가 말하길,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다. 그가 이야기하길, 구약의 그 하나님과 신약의 그 하나님을 비교할 때, 구약은 밤의 별빛과 같다면, 신약의 아버지는 햇빛을 받는 확실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 은혜로 양자됨 받는 것의 영광을 받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귀중한 것을 받게 된 것이다. 신약 성도들에게는 왕의 후사로서 초정된다. 여기에서 강조점을 두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요한 일서 3장 2절)

이사야의 예언한 것으로 이제 성령께서는 우리 영혼에게 직접 증거 한다. 롬8장에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계속적인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 언약적 아버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후사된 우리들은 아바 아버지라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3. 양자됨이 아닌 것은..

3-1 중생교리가 아니다.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나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께서 양자되심 되었다면, 중생안에서 양자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중생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본성을 보게 된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의 선지자가 됐다. 하지만 양자 교리는 법적인 행위이다. 내가 아들 됨을 통하여서 아들의 특권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얻는 다면, 양자됨의 교리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 청교도-양자됨의 교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후사로 상속받을 자녀가 되는 것을 가르킨다. 중생은 나의 본성을 바꿔지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수용 받았다.

영적인 양자됨과 자연의 양자됨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가정에서 아이를 양자로 삼아, 그 가족 구성원으로 양자가 된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같이 공유할 수 있지만, 그 양자 아이에게 유전적인 것만은 심어 줄 수 없다. 그러나 영적으로 우리를 자녀 삼으시면 중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주십니다. 단순하게 하나의 가족의 일원이자 하나님과 같이 되는 일원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4-1. 양자교리는 칭의교리가 아니다.

칭의는 법적인 선언으로 하나님 앞에 자유롭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칭의 통해서 나의 죄가 사함을 얻은 사람으로 우리를 지시하신다. 그는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십니다. 모든 것들은 예수의 의에 근거한 것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수용한다. 우리는 나쁜 죄인에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더 이상 유효한 것이 되지 않는다. 용서 받은 죄인으로서 무엇을 합니까?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감옥의 죄인들의 문제이다.

예화; 어떤 사람이 마약으로 감옥에 갔다. 재판장이 용서하는 일, 법정에서 형벌을 줄여주는 일, 그리고 가봐라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이 자유인이 된 사람은 어딜가는가 . 마약친구들에게로 다시 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자유롭게 가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십니다. 미국에서는 귀중한 줄거리가 있다. 실화이다. 한 죄인이 재판장에게 용서 받았지만, 어디로 갈지 몰라, 재판장은 어디로 갈지 몰라 하는 그 죄인에게 오늘 나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내 자녀가 되자고 말하였다.

우리는 지옥을 가야 한다. 그러나 예수를 통해 자유함을 얻고, 주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금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칭의 라는 것은 법적인 관계를 지시한다.

그것에 반해, 양자교리는 인간 대 인간을 이야기 한다.

4-2. 양자교리는 성화교리와 다르다.

토마스 부룩스-성화라는 것은 양자된 사람으로서의 특권으로서의 행위이다. 성화라는 것은 우리 가족의 특징을 더 증진 시키는 것이다. 이제 성화의 길을 걷는 다는 것은 양자로서 앞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화를 통하여서 내가 양자된 사람이라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해 놀라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기쁨에 근거해 내가 더 하나님 닮고, 거룩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다윗처럼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5.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가 규정한 양자교리: 양자교리가 무엇인가?

소요리 문답에 짧지만 핵심을 담고 있다.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인데, 이 일을 통해 다른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갖게 된다. 대요리 문답에는 74번째의 주제에 같은 주제를 다룬다. 더 설명을 하고 있다. 신앙고백서 12장에 더 확대해서 설명하게 된다.

신앙고백서에 정의 되 있는 것을 다뤄보자면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을 분리한다., 칼빈은 아니고, 칼빈주의자들은 스콜라적인 학문을 했다고 말하는데 나는 반대한다.

스콜라적인 것은 그들이 사용한 하나의 방법인 것뿐이다. 신학을 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한 것이다. 로마와 카톨릭을 대항하기 위한 변증적인 도구이다. 그러나 청교도 자체는 건조한 신학을 한 자들이 아니고, 그 반대이다.

 

5-1 양자교리는 굉장히 따뜻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청교도 양자교리에 대해 매우 냉정하다는 이야기로 발견된 것을 알 수 있다. 세 절 밖에 안 되는 내용을 봐라 작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반응한다. 이 양자교리에 대한 첫 번째로 다루는 주제에 대해 가급적이면 짧게 하려고 이렇게 했다. 수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서 자체를 자세히 공부하다 보면, 믿음의 확신에 대해서 선언하고 있는 신앙고백 안에도 양자교리가 담겨 있고, 성도의 견인의 문서에도 양자교리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분할해서 양자교리를 기록했기 때문에, 양자교리를 짧게 언급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5-2 웨스트민스터 문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 첫 번 아들이다. 그 분은 유일하고 자연스런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낳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양자 될 때 연합을 통해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자 된 우리들은 형제요, 자매가 된다.

 

5-3 가족으로서의 양자됨

법적으로만 아니라, 가족으로서도의 양자됨을 이야기 한다. 가족으로서 자유와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양자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없다. 후사가 된 자녀는 하나님 앞에 울부짖을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증진시킬 수 있는 교훈들을 주었다. 회중 가운데 현재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청교도 설교에 중요한 부분이다. 양심(의식)에 깊이 관여했다.

의식의 문제에 대해: 양자됨의 표증

5--1 어떤 사람들은 가시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정확하지만, 살아가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신앙고백을 인정합니다. 신앙고백서에 근거해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중생한 자가 아닙니다. 어떤 청교도는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천막 주위의 맛나가 놓인 것과 같이 먹을 수가 있지만, 나가서 줍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굶어 죽습니다. 성령은 무엇을 채워 주려하지만 게을러 먹으려 하지 않는다. 경고를 줘야 한다

 

내적은 사탄은 겉으로는 하나님에 속한 것과 같은 것이다, 죄인들을 향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선포하라 양자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줘야 한다.

5--2 중생한 사람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은혜의 방편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믿음의 확신에서 약간 모자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치 못한다. 세상의 짐을 다 지고 간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짐을 지울까?

 

[세가지 경고-위험성의 경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달려가라 구속의 영의 자유를 얻지 못한 자는 잘 모르지만,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에 이 위치는 매우 위험한다.

목회자들은 그들을 긍휼로 봐야 한다.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알려주고 예수는 죄인을 기뻐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들에게 용기를 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녀들에게 구속의 울타리 가운데서 오래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구속은 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진정한 자유로 초정한다. 하나니은 그 자녀들이 가족에 속한 것을 잘 아신다.

5--3 양자됨을 인정하지만, 약한 면을 보이는 사람들- 구속의 굴레에 있지 않지만, 예배하긴 하지만, 확신에 근거한 진정한 기쁨이 없다. 그래서 아들 됨의 연약한 의식을 갖게 된다.

토마스 맨튼-만일에 하나님께서 너의 진정한 아버지로서 인정하는 면에 기뻐하지 못한다면, 호세아 14장 3절에 보면 “나에게 은혜를 달라”고 요구해라,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처럼 돌아가면 됩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어떻게 수용했는가를 알아라 은혜의 입술로 뽀뽀하는 것을 기억하라 은혜의 팔로 안는다. 은혜의 눈으로 먼 곳으로부터 돌아온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원합니다. 또한 이러한 위치의 사람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해 인도해야한다. 만일에 하나님께 가서 아버지라는 사실을 증거 하지 못한다면, 예수를 끌고 가서 이야기 하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자유롭게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의 맏형 되고 그분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

5--4 의식 속에 양자됨을 믿었던 사람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강한 결속한다, 그들은 아들 됨을 굉장히 기뻐한다. 어디에 가더니 아버지 됨을 증거 하라, 어디에 가든지 아버지 위해 잘 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그와 함께 살라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을 흔들리지 말고 계속 지켜라 하지만 이러한 확실함을 잃어버려 미지근한 신앙으로 살지 말라 특혜로만 생각지 말라

조엘 비키 說- 며칠 전 미국에서 지난주가 아버지의 날이 있다. 아들로부터 축하하는 카드를 받았다. 아들이 적길, 내 아버지가 된 것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잘 알지 못하겠지만, 큰 감사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갖기 원하는 자세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만일에 우리 아들이 다른 것을 적었다면, ? 아빠 정말로 생부인지에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충격적일 것이다. 네가 내가 너의 아버지라는 것을 몰라?

이런 것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세가 겸손한 자세로 착각하는 분이 있다.

우리에게 놀라운 것을 주신 분이다.

 

질문-로마서 8장23절에 관련하여, 몸의 구속인 영화와 관련된 청교도 글도 있는가?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7.양자됨을 통하여 변화된 관계들

7-1 양자교리는 내가 양자 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관계하는 것을 모두 변화시킨다. 내가 하나님의 양자됨이라는 것을 알 때, 내가 관계하는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와 같아지는 것을 가르친다. 예수의 33년 인생의 여행을 가질 때 그를 붙잡은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12살 때 어머니에게 하나님의 일을 몰두해야 되는 것을 몰라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이야기 한다. 마치 내 아버지가 나를 이 땅에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

관계성의 변형이 양자됨의 교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악한 것을 주지 않을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서 내가 오늘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십니까? 이 상황도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실화로, 우리 교회 여성도이다. 암에 걸린 그에게 조엘 비키가 찾아갔다. 그 때 열 두 명의 교인들이 이미 암에 걸린 것을 알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암환자를 방문했을 때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 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잠시 멈춰 방문 전에 기도했다. 위로해야 되는데, 에너지를 달라고 기도했다.

비키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면서요?” 하고 말했다.

성도 “아니 성도가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 수가 있나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오겠어요? 믿지 않는 내 자녀들과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7-2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라는 확신에 있을 때, 요한 일서 3장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7-3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았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증오한다. 예수가 받은 고난을 우리도 고난 받아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이 모르는 은혜를 받았다. 세상이 주는 고난도 받아야 한다. 모두가 정직하게 신앙 생활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관계변화에서 하나님과 세상과 장래에 대해 변화

장래에 대해서-2절에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을 생각해보라. 만약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 하면 우리는 영광스러운 상속을 받을 것이다, 너무나 놀라워 가장 귀중한 상속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모습으로 그를 대할 것입니다. 내 영혼이 완전하고, 내 몸도 완전하고 그가 우리를 친구로 볼 것이다. 흠도 없고 점도 없다. 내가 중생된 때부터 연구한 그 완전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 앞으로가 더 중요한다. 죄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7-4 3절에 예수가 나의 맏형 되시면, 내가 영광 가운데 그와 같이 된다면 나는 그 가족의 모습을 그대로 증거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내가 예수와 함께 영원히 할 것이라는 소망이 있다면 이 땅에서도 거룩해지길 원하며 예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가족의 사람으로서 더 만들어갈 것이다. 악마의 모습을 없애주십시오

7-5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나의 관계가 바뀌어 진다. 3장 14-18의 모습이다. 성도는 고독한 군사가 아니다. 커다란 가족의 일원이다. 패밀리 네트웍에 의해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까지 바치고자 해야 한다. 내가 양자가 되었으므로 교회 안의 다른 형제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할 수 없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내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의식이 삶에서의 관계변화를 줍니다.

양자됨의 교리는 삶의 중심적인 원리가 된다.

8.양자됨의 특권과 유익들

다른 부분보다 이 주제에 대해서 많은 분량을 할당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2장을 ,대요리문답 74번 문제를 보면, 50퍼센트 이상이 양자됨의 유익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청교도가 이야기 할 때 다른 경험하는 유익들은 전반적인 유익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후사가 되는 것이다. 히12:23, 롬 8장에 우리가 다 그리스도가 다 함께 후사가 되었다. 그와 함께 그의 왕권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유산으로 같이 나눕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소유물이 됩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3장에 유한다. 고전 3장22-23절 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속한다. 누구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모든 것의 주권자가 됩니다. 온유한 자가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얻는다.

 

조엘비키의 예 -미국 군대 복무 시,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어 그 때 훈련장교가 와서 이 세상에 크고 좋지 않은 세상에서 잘 살길 원한다.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은 참으로 어려워진 세상이다. 그가 말할 때는 미국 군대 안에 있을 때는 미국 정부가 보호해 주지 않았니? 저는 미국 군대보다 더 큰 분이 저를 보호해 줄 분임을 믿습니다. 그 분께서 저를 보호하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이야기 할 때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어떤 악한 것도 없습니다. 숨겨진 것도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상속받는 것으로 영원히 살 것이다. 받을 상속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사장직이 변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열이 거기에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십니다. 유언을 하십니다. 만일에 그 어머니가 세 명의 자녀가 있으면 분할해 주실 것이다. 하지만 영광 가운데 받을 그 상속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개개인이 받는 축복과 관련 되있습니다. 수용하기에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축복입니다.

설명드릴 축복에 대해서, 제일 처음에 우리가 받는 축복은 아담의 가족으로부터 우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진노의 자녀이고, 악마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언약의 가족의 일원으로 만드십니다.

8-1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부여하고, 성경에 있는 것을 부여하십니다. 하나님의 딸과 아들로서의 자격과 확신을 주십니다. 성도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8-2 양자의 영을 하나님이 부여하십니다. 누구나 성도라면 성령께서는 커다란 보화가 되십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맏형이 된다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내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뜻을 알게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결코 떠나는 분이 아니십니다.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분입니다. 온전한 구속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구속을 받는 그 날 까지 인치십니다.

8-3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과 예수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아지도록 만드십니다.

저는 네 자녀가 있습니다. 첫째 딸을 보면서 당신 아내를 닮았군요, 막내딸을 보면서 당신을 닮았군요, 가운데 아들은 보면서 양쪽을 다 닮았군요, 하지만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 자녀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향이 그리스도와 유사해지도록 닮아가는 것이다. 우리 친구가 우리에게 와서 너를 통해서 예수를 발견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제가 스코틀랜드에 간 적이 있는데, 머물렀던 목사님 주위에 양떼가 있었다. 다른 색깔의 페인트로 무언가 써 있는 것을 보았다. 7개의 종류의 양떼 무리가 있다. 각각 분류된 대로 독특한 색깔로 분류가 되있다.

 

7 목동이 있는데, 밤색으로 페인트칠한 양들이 따라갑니다. 모든 양들이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느냐 알려준다. 남의 색깔은 볼 수 있지만, 자기 색깔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양들은 목자를 따라가고 목자와 점점 친해진다. 이것이 영적인 삶에서 적용된다. 더 많은 시간을 주님과 함께 동행 하게 되면, 더 하나님의 형태가 우리 가운데 형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이다. 때로는 잘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안타깝다. 다른 사람은 이것을 보고 우리가 예수께 속한 것을 안다. 양자됨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 온전해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불완전하지만 언젠가는 완전해질 수 있다. 겸손하게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다.

 

8-4 하나님께서는 약속과 기도로 강한 성도로 만들어 간다. 양자됨은 그에 속한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된다.

토마스 왓슨-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살아간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확신의 근거가 된다. 어떤 청교도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꽃들이 정원에 가득 차 있는데, 거기에는 모든 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금 동전이 들어가 있는 커다란 보자기와 같다. 금동전을 쏟아 부으신다. 여기 있는 약속 가운데 어느 것이든지 취해가라 나는 너의 아버지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 24시간 하나님 앞에 기도로 갈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분은 바쁘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너는 내 왕국에 속할 때 작은 자이므로 나는 너의 기도를 들을 수 없다고 하지 않으신다.

찰스 핫지-구 프린스톤 신학자에 대한 사실적인 이야기=그가 교수하기 위해서 프린스톤에 올 때 그가 살려고 하는 집을 보여줬다. 물었다. 이집 좋습니까? 보셨는데, 변형할 부분이 있는지 말해보세요, 하나 있습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아이가 있는데 18개월 밖에 안 된 어린 아이가 있어 문의 높이가 너무 높다. 그래서 혹시 그것을 제 가장 어린 아이가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낮춰주십시오, 그 아이가 언제든지 원할 때, 저에게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대한 것과 같은 것이다.

조엘 비키가 9살 때,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했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그런 말을 하고 있다. 확신 있는 성도와 믿지 않는 성도와의 차이가 뭔지 아니? 성도들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장소가 있다. 하늘에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불완전한 아빠인 것 알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있다. 하늘의 아버지께는 언제든지 유용하다.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다.

 

워싱턴 D.C에 가면 백악관이 있다. 가난한 아이가 있다. 부모가 병을 앓고 있다. 아이를 보조할 방법이 없었다. 이 어린 아이는 수호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때 당연히 안 된다고 하였다. 옆에 있던 아이가 내가 보여줄게 했을 때 병사가 문을 열어줬다. 그는 아브라함 링컨이었다. “네 가족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약속하마, ”

자기를 데려간 조그만 다른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넌 나를 대통령을 볼 수 있게 했니?” 그의 대답은 “대통령이 내 아버지야 나는 언제든지 백악관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볼 수 있어”

 

8-6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고쳐주시고 징계를 하신다. 이제 히브리서 12장 6절을 보시면, 그가 수용한 모든 자녀를 징계하신다고 하였다. 만일에 징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생아이다.

성령이 이야기 할 때 하나님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라면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존오웬-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고난은 우리의 영적인 고난을 위함이다.

그 하나님의 가족에서 교육하시는 학습현장이다.

새뮤얼-모든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고난이라는 것은 하늘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전혀 고난이 없다면,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

저는 많은 고통을 경험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과거 돌아보면 저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징계하실 때는 아버지가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급하신다. 만일에 이것이 없었다면 오래전에 저는 망했을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영적 성숙의 계기를 삼는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종과 같다. 이제 그 종을 더 세게 칠 때 더 좋은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리석게 생각하길, 날 멸망시킨다고 생각, 고전 11장 우리가 징계 받을 때는 이 세상과 함께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명찰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사랑의 표시이다.

존오웬-천국과 지옥에서는 결코 징계라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은 죄가 없어 필요치 않는다. 지옥에서는 다시 마음을 회심할 수 없는 기회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옥은 벌만 있는 곳이다. 징계라는 것은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고난주고 징계 주시는 게 목적이라면 우리가 손을 높이 들고 그것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냥 그길로 가야할 것이다. 그의 의와 또한 거룩의 동참하는 자로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양자교리의 관점으로 보는 청교도의 말은 감사합니다. 고난 주신 것

8-7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신다. 그 분은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교제를 가진다. 하나님은 어느 정도 고난에 처하는가도 아시고, 동시에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시는 것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아신다. 더 많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다.

고난을 받는 환경 속에서 시편이 굉장히 중요한 영적 자료가 된다. 시편 기자 그들이 어려움 속에 처해 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시편을 통해 우리는 시편의 위로를 받는다. 고난도 주시고, 약속도 주신다. 우리를 기쁘게 하신다. 그리스도를 통한 것이다. 그의 영을 통한 것이다. 그 어떤 분량의 고난일지라도 교제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교제라는 것은 넓은 방대한 바다와 같다. 영원토록 넓은 바다에서 수영해 간다. 세상에 발견할 수 있는 깊이가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진다.

8-8 자녀로서 기독교적 자유를 허락하신다. 우리를 잡고 있는 굴레에서 자유를 주신다. 율법이 우리에게 저주하는 것에서 우리를 구출할 수 있다. 기계적인 모습을 가지고서 율법의 종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지켜 간다. 성도의 자유는 죄의 권세로부터 구출하는 것이다. 그 많은 평화가 우리에게 채워진다. 세속의 삶으로부터 구출해준다. 유혹으로부터도 구출해준다. 언제 우리가 유혹에 빠집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을 때이다. 마귀의 종에서 구출해준다. 율법적인 신앙생활에서 , 인간이 만들어낸 , 위선적이고 걱정으로부터 구출해준다. 투명한 것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나를 살펴보시고, 시험하시고, 내 가는 길을 아시옵소서,

제가 만일에 범죄 하면, 온전히 건져내 온전한 길로 걸어가게 하소서

 

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내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해서 자유를 얻는다. 하나님의 멍에를 내 어깨에 메는 것이다. 매일 자녀로서 순종해가면 실천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성도의 자유는 감사하다. 세상을 바라볼 때 불쌍하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몇 주전에 비행기 탔을 때, 복음을 전했다. 그 사람은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일 악한 죄인을 대해서도 이야기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악한 사람이다. 당신이 필요한 분이 주님인데, 다른 사람이 할 수 는 없다. 고통의 파도가 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나이다

8-9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인도하신다. 영적 침체로부터 건져주시고, 겸손하게 하시고, 위선을 막아주신다. 교만을 꺽어 주신다. 여러분 우리를 다시 세우시고, 다시 세우시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자녀는 어린아이의 삶과 같다. 그 어린 아이가 항상 걸어가다가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도 있다. 영원하신 아버지의 손이 그를 찾아가 다시 일으켜 주신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포함한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신다.

 

여름에 여행을 갔는데 7살된 큰 얘가 말했다. 우리를 내버려 두세요 엄마 아빠가 모든 계획을 하고 다 하시는 데 우리는 그냥 차를 타고 간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평안함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행의 인도자가 된 것을 타고 가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길에 방법으로 가면 된다. 원수로부터 방어, 원수와 세상과 자신의 육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고통을 받을 때 도우심의 손에 기댈 수 있다. 그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함께 하신다. 그 마음을 바라봐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이 귀한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참으시며 내주하시는 성령님이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9.양자됨의 책임과 의무들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한 가족의 일원이 됐다면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말라기에서 만일에 내가 너의 아버지라면 어떻게 나를 경외하니? 어떻게 두려워하니? 어떤 것이든지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 의식적인 책임이 아니라, 그것은 사랑의 근거한 책임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녀가 된 것의 성향에 맞는 책임이다. 우리의 성향이 그 명령이 슬프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

9-1

전에 속해 있던 가족 관계에서 모든 것을 끊어놓는다. 요한은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게으름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엡5, 갈4장, 죄를 멀리하라고 하라, 그 사단의 가족에 속해있던 커넥션을 잘라버리라

이러한 파워가 우리에게 올까 두려워하며 경계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죄의 법을 쫓지 아니하고 영의 법을 쫓으라는 명령을 ?으라 우리의 죄에 대해서 잘라내라. 만일에 하나님과의 친교를 방해한다면 목을 꺾어라

베드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의 일들에 욕망을 갖지 말라고 하라 너희도 거룩하라고 한다

9-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든지 신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 마음을 다 해서 신뢰하는 것이 내 개인의 이해를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아이가 얼마나 즐거워합니까?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왜 하나님을 좀 더 신뢰하지 못하니까? 얼마나 신실 하시는가 증명하셨는데,

9-3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마태21 포도원 두 아이에게 이야기 한다. 아버지의 명령에 거부하다가, 나중에 갔다. 둘째 아이는 순종하겠다고 하고 가지 않았다. 정말로 참된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말한 것을 순종한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이 뭔가 알려고 하고 그것을 행하려고 한다. 부모를 도우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제 아이들이 아빠 도와드릴까요? 라고 말한다. 현명한 아버지는 와서 도우라고 말한다. 죄성이 가득한 목회자를 사용할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천사들을 사용하면 더 편안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를 같이 사역자로 부르셨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다.

나는 우리아버지의 사역에 임하고 있는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밤이 찾아오면 그 누구도 일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에너지를 다해 주님을 섬깁시다. 그를 두려워하고 섬깁시다. 섬기는 것을 즐깁시다.

어떤 청교도는 앉아서 글을 읽고 있을 때 마음의 큰 감동을 받아 모든 은사를 가지고 섬겼다. 박수를 치며 내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예수와 함께 동역자로 부르셨다니요! 라고 감탄했다.

 

3-4년 전에 조엘 비키에게 있었던 일이다. 일 월즘에 두 명이 방문을 침입했다. 한 사람은 칼을 들고, 다른 사람은 뺨을 주먹으로 쳤다. 저를 묶었다. 계속해서 마피아 마피아 라고 하였다. 나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 생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다. 사실 그 때 다시 살 것이라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 아이, 교회, 서적을 하나님께 맡겼다.

45분정도 누워있을 때,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원받은 것이 생각나고, 피로 구속받은 것이 감사 평안이 찾아 왔다. 무상의 은혜로 인해 “잘했다. 충성 됐구나 이제는 나의 기쁨의 잔치에 참석했구나.”

저는 저를 묶었던 붕대를 풀었다. 이제 여기에서 사역이 끝나지 않았구나 알았다. 확실한 충격 속에 있었다. 그 때는 삶이라는 것이 불확실하다. 삶이라는 것은 길지 않다고 느꼈다.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살고 있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제 언제가는 그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일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일이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존경심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성에 대해 긍정의 의미로 돌려드려야 한다. 경외함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

3-5 하나님의 가족에게 좀 더 관대해야 한다. 근본적인 것이 아닌, 차이점들을 이야기 한다,

각기 다른 교회에서 어떠한 사역을 하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교회서 하는 것이 최상의 것이 아닐 수 있지만, 너무 빨리 비평하면 안 되지만, 우리는 다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면, 포괄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3-6 그 섭리하심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할 것이다. 막대기로 저를 치려고 오실 때 그것을 주저하거나 변명하거나 하지 말고, 순종하기 위한 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요소이다

3-7 사랑하고 순종하고 아버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라, 최선을 다하라,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라 모자란 부분도 많지만, 모두들 대하기가 힘든 성격도 있어 힘들 때도 있다. 특정한 사람을 하나님이 여러분을 심어줬다고 생각한 적 없냐?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해서 여러분의 관점을 성숙하게 높이라

3-8 하나님의 임재를 관계를 기뻐하라 중단이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교제할 것이다. 그의 웃음을 즐길것이다. 그분의 영광을 즐길 것이다.

 

*적용을 위한 결론

정리-양자됨은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의 기초이다, 기쁨에 잘 박혀져 있길 원한다. 이 호수가 커다란 바다로 변할 것이다. 방벽도 없고, 한계도 없다. 그 바다에서 영원토록 수영 하십시오 변한 바다는 영원한 영광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에게 양자 교리를 주신 것에 기쁨 마음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질문

1.영적 양자교리라고 했다. 영적이라는 의미?

인간사회의 양자와의 구분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영적 양자됨은 수직적, 일반사회에서는 수평적이다.

한 가지 감사한 것은 보수적인 신앙의 가정에서 양자를 많이 데려온다. 수평적인 양자의 행동 통해 영적인 양자 교리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5. 청교도의 구원과 성화론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많은 청교도들이 믿음의 확신에 관해 쓴 것 많다. 믿음의 확신에 대한 주제 가지고 가장 좋은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다. 18장이다

엔소니버져스와 신앙고백서 혼합해서 강의할 생각이다. 가장 기록을 잘한 신학자와 가장 좋은 신앙고백서를 소개하는 것이다.

서론

1.구원에 확신에 대한 당대의 필요성

1-1 요사이 믿음의 확신에 대한 교리가 가장 필요하다 이유는 현대 교회에서는 믿음의 확신에 관해 많은 것이 부족함을 볼 수 있다. 1989년에 제가 쓴 것을 논문 가지고 보내려 할 때 발행인과 함께 이야기 할 때, 청교도들은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극대화된 가장 극소화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확신에 대한 것은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확신이 있다면 하나님을 찾는 갈망과 잘 교제하는 것이 삶에 형성된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항상 유지해 나간다. 하나님의 중심된 교리 인 것이다. 열정이 마음에 불붙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있는 성도들은 천국을 향해 나의 영혼한 집을 바라봅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을 바라볼 때 요새 성도들은 부족하다. 하나님과 교제, 그의 영광을 기뻐하는 것, 아주 연약하다.

세상의 복과 이기적인 즐거움을 교회가 찾는다. 저조한 현상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것이다.

 

 

1-2 구원의 확신은 신앙부흥 및 죄의 자각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진정한 마음의 부흥과 죄의 자각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부흥과 양심이 있을 때 온전하고, 커다란 확신을 주신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틴 루터에 의해 일어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양심의 부드러움이 현대 시대에 더 필요하다. 진정한 부흥을 위해 진정한 기도가 현대교회에 더 필요하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1-3 세속화된 사회이다. 요즘은 배교의 시대이다. 복음을 삶 속에 드러내는 일이 너무 어렵다. 지금 혼잡한 시대이다. 우리는 언덕위의 빛으로 부르심바 된다. 감각중심의 세대로 나아간다. 새로운 예배의 개념과 싸워야 하는 세대이다. 진정히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온전한 확신 위의 교역자가 확신과 능력으로 설교할 수 고, 다른 무엇의 요소가 필요치 않다. 하나님과 성령과 말씀으로 충분하다.

1-4 건전한 교리를 사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는 한국의 교회 상황을 모르지만, 미국의 교인들은 왜 교리를 배워야 하느냐 묻는다. 이런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틴 루터는 교리는 바로 천국이다. 바른 교리에 입각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른 교리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우리 생각과 마음에 정리가 된다. 믿음의 확신이라는 것은 구원에 관계된 많은 것들과 연결, 죄, 예수 그리스도의 연합교리와 연관, 하나님의 은혜의 표준과 열매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연관되었다. 예정과 연관,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은혜 언약으로 잘 나타내, 설교와 연관, 기도와 성례전과 연관된다.

확신이라는 것은 넓은 범위의 것이다.

믿음의 확신이라는 구조 안에서 조직 신학의 모든 것을 기록할 만큼 중요한 것이다.

능력있고, 우리의 삶 속에 살아있는 교리가 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교리들을 삼차원의 세계에서 색채를 한 것이다.

1-5 느낌을 중심으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는 무엇을 느끼는가가 무엇을 믿는냐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시대적 정신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 오순절이나 은사주의 운동에게 이러한 현상을 바라본다. 느낌이라는 것을 건조한 신학을 대신해서 취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가 무조건 신학에 대해 반작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은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제일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가 우리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성경의 지식과 마음의 지식을 잘 연결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와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는 것과 연결,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인지 체크 받아야 한다. 믿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인지 일치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믿음의 확신 교리에서 잘 발견된다.

확신이라는 것은 확신있는 믿음과 느낌을 둘 다 포함한다. 제가 확신하건대 많은 이들이 개혁주의에서 오순절로 많은 이들이 떠난 것은 머리의 지식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서론적 근거 제시

 

2. 신앙고백서18장

18-1 가능성 -2 기초 -3 배양 -4 어떻게 잃어버리고 회복하느냐

동시에 엔서니 버제스는 캠브리지 세인 존스 칼리지에서 교육 받음, 1635부터 교회 섬김

1640년대에는 웨스트민스터 회의에 총대로 살고 있다. 마지막에 타계 전에 50권의 책을 쓰셨다.

그분의 서적들은 탁월한 신학자의 입장과 경험을 중시하는 목회자를 볼 수 있다. 도덕법과 칭의론에 대한 두꺼운 두권의 책, 560p의 원죄에 대한 글, 성경의 각 장에 대한 수 많은 글을 남겼다. 요한복음 17장에 관한 많은 설교도 하셨다. 고린도전서 1장에 대해 700p의 주해하셨다.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것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든디 다가갈 수 있게 글을 쓴다. 가장 청교도의 생각을 잘 나타낸 글을 썼다. 대작은 [영적인 정죄], 1100p로 두 권으로 나뉘어 있다. 경험적인 종교라고 해서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해박한 책이다.

 

 

1200개의 설교:확신의 가능성, 42개의 설교: 죄,

2--1 반율법자들의 오류는 내적인 증거가 우리가 확신을 갖는 데 도움을 갖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계속가서는 어떻게 우리가 은혜를 얻게 되는지, 제대로의 확신과 모방적인 확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신앙고백서 18장 1조- 세 가지 가능성

잘못된 거짓 확신, 참된 확신, 구원의 믿음의 진정한 확신이 약한 것이 있다.

2-2-1 거짓된 확신-거짓된 소망과 육적인 억측에 기인한다. 성경의 열 처녀의 비유를 이야기 한다. 반석과 모래위의 세우는 건축자의 비유를 이야기 한다. 위험하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속이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거짓 확신이 만연된 현상이다.

참된 것과 거짓된 확신의 차이점

1-거짓된 확신은 자기 사랑을 근거로 한다. 복음에 대해 외적인 믿음만 갖게 된다. 죄의 위험성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근거는 일반은총에 근거한다.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외적인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 온전한 죄책감이 아니다. 진정한 자기 낮춤이 없다. 옛 사람과 새사람의 갈등에 대한 고민이 없다. 로마서 7장에 있는 자아와의 싸움에서 관심이 없다. 사탄 대항하는 군사라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은혜의 방편의 사용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성경을 읽을 때 불타는 마음이 발견될 수 없다. 거짓 확신이라는 것은 내 죄의 확신보다 외적인 요소에 의해 더 크게 흔들린다. 진정한 확신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 있을 때 더 굳게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거짓 확신을 어떻게 처해야 하는가? 중요한 치료법은 아주 강력하고 마음을 샅샅히 볼 수 있게 되는 말씀에 근거한 사역 통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 강력하게 적용할 수 있는 사역,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고 아름다움 경험이 필요하다.

참된 확신-기독론 많이 사용, 진정한 확신은 예수와 불가분의 관계 믿고, 사랑하고, 그 앞에서 살아가는 것의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본질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로부터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에 보게 되면 7가지의 온전한 확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믿음의 선진들 욥24:6에 내 구세주가 살아계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그분을 만날 것이다.

딤후2장에 바울도 이러한 확신이 있다. 나는 지금 내가 누굴 믿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성경에서 많이 발견된다.

성경에 우리는 반드시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하는 명령이 들어있다. 베후1:10에 기록되어 있다. 너의 부르심과 예정하심을 확신하라 성도의 삶 가운데서 성례전을 더 확신있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대한 표증이며 인증이다.

2-하나님이 주시는 신적인 은혜를 잘 훈련한다.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중심되라는 것이다. 다른 여러 방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할 수 있다. 요한 일서에 요한이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은혜의 표증을 볼 수 있다. 3:14절은 분명히 죽음-생명으로 옮긴 바 된 것을 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성경이 확신에 대한 증거가 성령께서 증거하시기 때문이다.

 

3-다른 종류의가능성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확신의 의식이 부족한 경우이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없다면 평화를 얻기 때문이다. 잘 느끼지 못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토마스 구들-어떤이가 온전한 확신이라는 열배 정도의 확신의 삶을 산다. 왜냐면 모든 에너지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인 것이다. 확신이 부족한 성도는 밖에 나가서 증거하는 용기가 매우 부족하다. 또한 많은 에너지를 스스로 자기를 점검하게 만들어 주저하게 만든다. 버제스가 이야기 하는 것은 충분한 확신을 확보해야 한다.

 

18장 2항-중요한 요소이다. ;확신의 기초

1-3-1 기초가 무엇이냐? 그리스도 안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뿐만 아니라 두 가지의 이차적인 기초를 이야기 한다. 내 삶 속에서 가슴속에서 영적인 역사와 성령의 증거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 약속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도 먼저 취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이다. 믿음을 얻는 기초적, 중요한 방법이다. 믿음이라는 것과 확신은 같이 연결 되 있다. 토마스 부룩이 확신이라는 것은 믿음의 크림이다. 가장 효과 있는 확신을 얻는 방법은 그리스도안의 있는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다. 복음의 약속 안에서 보호해주신 사실을 믿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계속 자라나면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고, 섭취하고, 계속 자라난다. 두 가지 예를 들면, 여기 앞에 컵이 있는데, 물이 가득 차 있다. 초신자들도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내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 지 정확히 알고 있다. 여기 용기는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자라나면서 하나님의 신뢰하는 것을 더 많이 배워간다. 그리스도께서 신실하심을 증거 하시는 것이다. 성도의 용량이 자꾸 커져 가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 행복 한다면 이해하실 것이다. 20년 전에 결혼할 때 사랑한다고 확신했다. 그 때는 그 이상의 것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약속한 것은 항상 진실했다. 20년 전에도 확신했지만, 지금은 더 큰 사랑을 느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는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중요하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객관적인 확신이 주관적인 확신보다 중요한 것이다.

시편 139편의 위로를 고난 중에 받게 된다.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께서는 동일하십니다. 하루는 이것을 느끼고 하루는 못 느끼는 주관적인 느낌에는 우리가 자라날 수 없다. 변치 않고, 고정 되있는 약속에 근거해 있는 사랑이 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나는 죄인이고, 멸망 받을 자인 것을 확신 할 때, 하나님께 최선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청교도는 약속의 신뢰 외에 진정한 성도의 삶은 약속을 믿고 있는 것을 반영해야 한다. 미국에서 연구된 것이 있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옥으로 차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하십니까? 예상되는 답은? 4퍼센트, 교회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성경 읽지 않는 자도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약속을 믿습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그것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약속을 믿는 행위 이상의 필요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객관적이 약속은 신앙생활에 반영되어 표출 되야 합니다.

 

내적인 증거와 성령의 나를 향한 증거이다

에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내주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삼단 논법 유형을 통해서 증거 한다. 좀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전제, 소전제, 결론이 있다. 요한 일서3장에서 14절에 사랑하는 자는 생명으로 갔다는 이야기이다. 대전제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구원받은 자이다. 소전제-성령의 증거에 의해서 형제를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다. 유추적으로 결론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실제적 추론/신비적인 추론->차이점은 실제적인 삼단 논법 유추전은 외적인 요소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것에 반해서 신비적인 추론은 내적이고 우리 영혼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근거한다. 요한 일서에 실제적인 유추전이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형제를 어떻게 사랑하고 취해야 되느냐에 대해 베드로 5절-10절에 산상 수훈 통해 신비적 삼단 논법을 유추할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인 온유함, 의를 향한 영적이 갈증, 이러한 표증들을 바라볼 때 성령께서 과거의 삶을 잘 조명시켜 줍니다. 내가 경험하는 것인 것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확신ㅇ르 얻는 것이 중요하지만 성령의 도우심 없이 증거,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진노로 몰아넣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용하시는 모든 것은 일종의 금사슬과 같다. 청교도의 아버지인 월리엄 퍼킨스가 여자들의 목걸이와 유사하다고 한다. 로마서 8장 28-30절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게 거룩하게 하신다. 어떠한 것이라도 갖고 있는가 -하나라도 표증을 갖고 있다면 다른 표증들도 갖고 있다. 현재는 그것을 바라볼 수 없지만 언제가는 나타날 것이다. 내적인 것을 디스커러지 한 것으로 사용하지 않고, 격려차원으로 사용한 것이다. 성령의 내적 증거가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하다.

 

마지막 확신의 기초를 보고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증거 하시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이다.

항상 어떤 신비한 일이 있을 때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다. 버제스와 마찬가지로 청교도 가운데 성령의 내적 증거가 동일한 것으로 본다. 로마서 8장 11-12절 근거로 내 영혼에 주의 성령께서 말할 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할 때 내 내적인 증거의 확증이다. 사무엘 워더포드, 토마스 구들-로마서8장 15절의 성령의 증거라는 것은 8장 16절이 증거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여기에 차이점이 있는데, 우리의 영혼에 증거하심과 내 영혼의 향한 것이 증거하심이 있다. 직접적인 성령의 증거라는 것은 너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직접 증거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능력을 통해 우리 가슴속에 그것을 알려 주신다 내 아들아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 내가 너의 구원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내적인 증거인 것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럴 때 성령께서 내적으로 증거하시기를 니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것은 혹시 신비주의에 빠질까바 반 율법주의적인 자세를 취할까바,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증거 하셨습니다. 하지만 삶을 통해 증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하게 더 좋은 것은 성령이 직접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말씀이 제일 위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믿기를 확신이라는 것은 성령의 적용하심, 성령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것이다.

말씀을 믿지만 내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마음속에 갖고 있지만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외적인 ,증거만, //성령에만 의존하고 약속과 말씀을 간과하면 신비주의와 감정주의로 빠지게 된다. 여러 종류의 것을 같이 사용해 확신이 증가한다.

 

4. 어떻게 증진시키느냐에 대해

네 부분으로 설명

4--1 시간; 청교도가 이야기 할 때, 어떤 성도들은 믿음의 확신을 얻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쉽게 빠른 시간에 확신을 얻게 된다. 전체적으로 성도들은 점진적으로 확신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고난 통해서 믿음을 증진시키는 것을 이뤄가신다. 혼잡한 영적 전쟁 가운데 확신이 더 확고해 질 수 있다고 한다. 때로는 어린 아이들도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된다. 복음의 진리를 수용할 때 이런 일이 생긴다, 첫사랑을 경험할 때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확신이 식어질 때가 있다. 이러한 상황를 초월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이 더 증진되는 것이다.

4--2 어떠한 방편으로 얻게 되는가?

은혜의 방편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특별히 버제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므로 , 성례전에 참여함으로 잘 참여하면 확신, 믿음에 대해 더 자라날 수 있다. 이제 성례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확신 받는 법이다.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이 언약이 신실하신 분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언약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신실한 성도로 교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인증된 약속을 증거하게 된다. 믿음의 더 강력한 자로서 세워 준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전 외에도 기도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데, 진정한 삶에 확신을 더하여 준다.

버제스는 확신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쌍방적인 교제가 있어야 된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기도를 통해 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 주 앞에 갈 때 하나님의 달콤한 교제를 경험하게 되는데,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더 확인 받게 된다.

4--3 확신에 대해 탐구하고, 찾아야 한다. 절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나의 확신을 확증할 때까지 게으름을 피우면 되지 않는다. 확신을 얻는다는 것은 특정한 성자와 같은 경우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적용된다. 모든 성도가 가져야할 규범적인 것이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에 비유해서 온전한 확신을 얻는 것을 버제스가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에 어떤 성도들은 나에게 별로 적용 안되는 고상한 설명이다. 버제스는 그 사람들을 통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4--4 확신의 열매; 확신이라는 것은 열매 자체가 증거하는 생산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영적인 평화이다. 기쁨의 사랑, 겸손의 자세, 기쁨으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다. 확신이라는 것은 믿음이라는 성도의 삶에 확신을 준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습관적인 교제를 가질 수 있도록 확신이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자세를 취한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살아갈 때 순수한 동기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된다. 고난 중에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 우리의 양심이 죄에 대해 큰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그날을 사모한다. 영적인 만족감도 준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통해 어떠한 삶을 살수 있게 하는지 알게하고, 기도의 응답도 알수 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지라도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다

월리엄 브릿지-내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기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이다.

어떤 청교도는 내가 울음으로 올려지는 내 기도가 울음일지라도 하나님은 울음으로 되돌아 오지 않는다. 원래 기도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엡3장에 하나님이 일을 하실 때, 내가 간구하고 요청하는 것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주신다. 모든 열매들은 종합해보면 이 모든 것을 통해 성도를 겸손하게 만들고 거룩하게 만든다. 절대로 오만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5. 버제스의 신앙고백서 18.4 확신의 회복과 상실

우리의 확신이 상실될 때가 있다. 축소될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상실하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것을 회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을 이야기 할 때 내가 상실할 것을 느끼기 시작할 때는 문제가 성도 자체에 있다. 죄에 빠져 있다거나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중요시 여기지 않는 자세거나, 미지근한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형식적, 의식적이면 그럴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비하심이 하나님의 특질을 잃을 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는 것보다 무엇보다 보복하시는 분으로 생각할 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다. 마음속의 확신을 상실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위선적인 잘못된, 바리새인적인 자세를 가질 때 일어날 수 있다. 나 개인적과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를 때 이럴 수 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청교도가 말하는 요점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향해 순정하는 삶이 아니라면, 지속적인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별로 준비가 되는 않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준 확신을 포기하게 된다. 제가 만일 아내를 잘 섬기기 못하면, 유익만 얻으려고 한다면, 무례하게 대한다면, 제가 제 자신을 대하여 내가 내 아내를 사랑하는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을 갖고 있다가 타락할 때 정신차린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내가 정말 신앙인이냐? 질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이 확신 속에 자라날 때 방해가 되는 요소는 나에게 책임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신앙고백서와 버제스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설명을 한다. 내가 확신을 덜 갖는 사실에 있어서 하나님이 개입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성도들에게 거두어 가실 것을 신앙고백서는 이야기 한다. 신앙고백서과 버제스는 분명히 동의하고 있다. 이제 버제스가 생각하기에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타락하지 않고, 열심을 내서 은혜의 방편을 잘 사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확신이 퇴색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왜 하나님은 이런 것을 허용하는가? 5가지 가능성

1-우리로부터 멀리하는 것은 죄라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는 것인가 경험하는 것이다. 타락하지 않은 성도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라는 것이 불경스러운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흔들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의 신앙의 정도를 통해 우리가 교만하지 않게 해주신다. 하나님

2-하나님이 우리를 멀리하는 것은-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게 하시는 이유이다. 더 정열적으로 기도하게 동기를 부여하신다.

3- 우리가 순종하는 삶을 잘 증거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삶 속에서 믿음 안에서

4-더 경험적인 성도로 세우기 위한 목적이 있다.

유사한 상황에 있는 성도들을 도울 수 있다 목회자들에게 영적인 경험을 허락하신다., 목자 되신 우리 주님 앞에서 더 열정을 갖도록 다른 사람들을 더 위로할 수 있도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 위로받은 자로서 다른 이를 위로하라는 것이다

신앙고백서과 버제스가 이러한 주제를 깊이 다루고 있는가?

목회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믿음의 확신을 읽어버릴 때 당황할 수 있다 잔인할 방법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는 주제이다.

성도들이 계속 점진적인 신앙을 확신을 얻게 되면 때로는 믿음에 대해 감소할 때가 있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씨앗은 말라 죽지 않는다. 성도가 삶 속에서 어려운 환경을 만들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의 은혜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밑바닥을 경험하는 경우라도, 성령께서 다른 모든 절망가운데서 성도의 마음을 지키신다는 것이다.

예화-우리의 자녀들을 다 다르게 다루는 것처럼 성도들의 환경과 특성을 고려하여 하나님은 다르게 만나시는 것이다. 근래에 10명의 아이의 부모님과 대화한 적이 있다. 아버지 두 분 10명 소유,

A-아이 키우는 게 어려움이 많았다.

나는 이해 못하겠다. 똑같이 양욱했는데, ..

B-현명한 아버지라며 모든 아이들을 다 다른 방법으로 다뤄야 하는 것이다.

 

개개인을 다 다르게 다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지속적인 사람은 자라나가다가 , 우리 가운데 감정적인 사람도 있다. 여기에 발견 되는 것은 높은 자리-낮은 자리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두 경우도 진실하게 대하는 방법을 하나님은 알게 된다. 확신에 대한 귀중한 자료인 18장은

결론 -성령께서는 정한 시간에 확신 잃어버린 자들을 부흥을 일으키신다. 우리가 제일 처음 그리스도와 만난 유사한 경험을 유사하다. 계시록 2장에 에베소 교회에 쓰신 말씀

어디서 떨어진 지 생각하고 회개하라

기억하라, 전에 무엇을 소유하고 있었는가 기억하라

동시 이 상황에서 무엇이 빠져있는가, 타락된 이 상황을 고백하라 다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비를 구하라

약속을 믿는 것을 시도하라 거룩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라

어떤 오래된 청교도가 말했다. 다시 한번 회심해라,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돌아가는 경험하는 회개를 하라

이런 삶은 전체를 통해 생겨나는 것이다.

밀물과 썰물의 삶 가운데서 우리의 의와 잘남을 포기할 수 있다, 확신을 재생산 할 수 있다. 우리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맡기고 포기하는 것이다. 확신에 대한 회복의 중요한 포인트는 회개와 은혜의 방편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조엘 비키의 목회경험

전에 섬기는 교회의 장로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려움에 처했다. 기도를 잘 하지 못하겠다. 제 영혼은 암흑으로 가득차있다. 저는 불행하고도 십분 있다가 가방과 함께 떠날 준비가 되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면서 얼마나 하나님과 같이 하기를 노력하고 있습니까?

이런 말을 했다. 일주일 있음 돌아온다. 매일 아침 30분만 하나님을 찾아 보십시오 말씀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전혀 무감각한 상태로 30분을 지내도 상관없다, 계속 암흑이라도 상관없다.

일주일 후에 한 노트가 왔는데 모든 것이 잘 됐음이다. 매일 은혜의 방편을 상응하라

 

 

결론- 교리가 상당히 복잡스러운 종합적인 교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 성도를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로서 바르게 가르쳐야 할 책임감 있다. 청교도가 성경적이며, 교리적인, 목회적인 차원에서 연구했기 때문에 유익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칼빈 연구, 요한 칼빈에 있어 확신은 약속으로부터 오고, 은혜의 표증이 증거 되야 한다. 목회적인 차원에서 확장으로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로 있는가? 믿음의 성장하고 있는가? 확신의 근거가 약속에 근거하고 있는가? 약속이 귀중하게 여겨짐을 받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해 성령께서 영혼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소금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확신 가지고 승리에 찬 삶을 살고 있습니까?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믿음은 반드시 승리의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절망 속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나갈 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에 속 한다

에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부정하지만, 그럼으로 우리는 믿음을 가질 때 약속을 붙잡아야한다 예수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질문-조엘 오스틴의 복음은 잔인한 복음이다. 성경이 우리에 분명히 증거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을 통해 히12장, 징계하시는 하나님, 이제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어려움과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해답을 준다. 기복신앙에 대해 유혹을 크게 받지 말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심판의 말에 계시록 7장에 근거하면 성자가 하늘나라 들어갈 때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인가 그것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아무 문제없이 살아간 자들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한 사람들이 그런 것이다.

존 오웬-기름 부으심이란 것은 모든 성도들이 중생을 경험할 때 나타나는 일이다. 하지만 믿음이 자라나게 될 때 기름부음이 성도를 자라나게 할 때 한 마음을 품는 것이 우리의 의식이 자라는 것은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청교도 서적을 대할 때 효과적인 방법은-릴렌 라이큰 =세상의 성자들 Leland liken

JAMES IPAKER , MEET THE PURITAN/ 사실적 증명-제임스 아이 패커

 

청교도들이 어떠한 책을 읽었는가에 대해 읽어야하는가

토마스 왓슨, 존 번연, 존 프레이버 ,토마스 구딘, 존 오웬,

 

 

 

 

 

 

 

 

 

 

 

 

6 청교도 성화에 대하여

청교도들이 왜 칭의 문제 다루지 않고 성화로 넘어갔는가?

청교도는 믿음으로 칭의 얻는 교리에 대해 상당히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유가 있는데 그 때 당시 그들이 처했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3,4의 현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1,2세대의 칭의에 대해 그 다음세대는 깊이 다루지 않고, 성도로서 성화의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다 해서 종교개혁자들에 의한 성화 이론이 크게 다뤄졌다는 것이 아니라, 더 확대해 깊은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화론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뤄졌다.

어떤 사람들은 매일의 삶 가운데서 그들에게 청교도의 세계로 인도된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칼빈주의적이고 동시에 실천적이었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에 성화의 정의에 대해,

 

성화의 정의3-2-1

성화는 거룩의 의미, 거룩 만들기, 하나님을 위해 격리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 청교도들은 구약적인 개념의 성화와 신약적인 개념의 성화와 관련있는 것을 알았다. 의식적인 것 외적인 거룩이 더 강조가 됐기 때문이다. 신약에는 내적이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거룩에 연관,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것을 살펴보면 신약과 구약은 대표적이다. 여러분 아주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정확한 성화에 대한 정의는 소요리 문답에 기록된 것을 알게 되었다. 질문 34번째이다.

 

성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거져 주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전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져 가는 것이다. 결과로 계속적으로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산다. 모든 삶 속에 이뤄지는 회심의 문제들을 이곳에서 담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가는 삶 전체를 가리킨다. 중생 통해서 이 과정이 시작된다. 성도가 맨 마지막 성화를 리우기 까지 계속된다.

36번 의 문제는 왜 성화의 주제가 중요한가의 문제가 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성화와 함께 살면서 사라에 대한 확신과 우리 양심의 평화와 성령님을 즐거워하는 것과 은혜 충만함과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35,36번의 소요리 문답을 합치게 된다면 청교도의 열성을 다. 예수 리스도의 모습을 알아가는 , 성령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성화의 열매이다.

 

성도가 됐다면 당연히 맺어야 한다. 성도는 거룩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부족함을 느끼게 되지요, 청교도들은 이러한 사실이 우리 목회자들에게 더 중요한 사실이다. 청교도들이 이야기 할 때 보통 목회자들의 영적인 상태는 성도의 영적인 상태라고 본다. 왜냐하면 성도가 그렇게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영적 삶이 낮으면 회중의 삶이 더 낮다.

 

3-2-2 성화의 정의

-하나님의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이다. 성경이 이야기 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있다면 거룩이다, 그의 지혜는 거룩한 지혜 거룩한 사랑이다. 이사야 26번 이상 거룩이 나온다.

스티븐 샤넷-거룩이 어떤 것보다 더 많이 사용된다

존 허탄-하나님의 거룩이라는 속성은 다른 속성위에 놓여져 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다른 속성을 빛나게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 가운데 거룩, 법도, 복음도 나타낸다. 하나님의 예수를 통해 놓여있는 십자가에 말할 수 없이 큰 거룩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

 

조나단 에드워즈-거룩 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다 함축해서 하는 것이 거룩이다. 햇빛 비추듯이 하나님 자신에 대한 적당한 설명이다.

두가지 진리-거룩; 하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를 이야기 한다. 이원론이 있는데, 하나님은 절대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된 분이다. -우리의 모든 죄의 가능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도덕적인 완전한 분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모든 죄로부터 격리되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는 거룩하고 피로 물들어 있는 제사 외에 아무도 갈 수 있다. 내가 죽던지, 다른 사람이 죽던지 해야 가능하다. 피를 흘리고서야, 가능한 것이다. 놀라게 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피를 흘리는 자신을 친히 주셨다.

당신의 아들을 통해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삭을 바칠 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대신 옆에 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친 아들을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게 하신 것을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들에게 손을 되지 말라, 더 큰 아들인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실 때에는 칼을 대지 말라는 소라 하지 않았다.

고후 5장 21절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 못하나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것이다.

 

 

3-3 성화의 대상

성도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그 성도가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또 청교도가 이야기 할 때는 성령께선 특별한 사역을 맡으신 것이다. 중생을 얻었을 때, 중생의 순간에는 성령께서 혼자 이야기 하신다. 그 일 이후로 성도의 삶에서 지속적인 삶을 이뤄 나가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성도의 내주하심으로 성화를 이뤄 가심에 도움을 주신다. 이제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일을 하시며, 내 안에서 성도의 자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유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 예수의 본질이 자라난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매우 중요하다. 막대기를 10살짜리가 아이가 들고 나가기는 무겁다고 생각하라, 일인치도 들지 못한다., 이 때의 이 아이의 아버지가 문으로 들고 온다. 너 분명히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무게를 들어주는 분은 아버지이다. 여러분 이 아이가 밖으로 들고 나간다. 혼자 할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 성화이다. 우리 밖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우리의 일이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성화를 이룰 수 없다. 방금 전의; 일화의 아버지의 일을 아버지가 해주신다. 성화의 모든 영역에 적용 된다.

 

성화된 기도, -누가 도와주는가? , 로마서8장에, 바울은 언급한다. 성령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하나의 중개자로 주신 것이다. 굉장히 커다란 도전이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의 어릴 적을 기억할 수 있다. 한 가지 일을 가지고 어린 아이에게 100번 이상 이야기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ㅡ자식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거야? 성령께서는 너에게 수백 번 이야기 했는데, 내 아이 때문에 이것을 못 참아? 성령께서는 청교도가 이야기 할 때 의의 습관이다. 습관화가 됐을 때 그것이 무엇인가 알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특정한 형식대로 살아가는 힘이 있을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처럼 성령은 방향 제시를 한다. 내가 습관적으로 죄를 싫어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좋아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내주하시는 중요한 목적이다. 영적인 습관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성화의 대상이 누구인가

대상은 성도들이다. 청교도들은 성도를 바라볼 때 세 가지 분류를 바라볼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을 봤을 때 세 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능력, 결정능력, 느낄 수 있는 능력

인간의 싸이 콜로지를 이야기 하면,이것은 우리의 어떤 기능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감정, 지정의

이러한 기능을 따라가고, 의지를 통해 무엇을 결정하게 합니다. 진리를 통해 마음이 흥분될 수 있도록 감정이 일으키게 한다. 내가 성도이지만, 한 개인의 성도로서 남아 있다. 어떤 사람에든지 효과 있게 설교하는 것은 세 가지 방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의식적이라도 이 순서를 따라 할 것이다.

 

타락하고 질서가 없는 성도-중생 전에 우리는 무질서한 사람들, 이성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예수 믿지 않는 자는 바보스런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중생을 경험한 이 후에도 우리 삶의 여기저기에 타락하고 무질서한 모습이 생겨난다. 설교자들이 반드시 이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영적 전쟁에 대해 소리를 높여야 한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전쟁에서 잘 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구속을 이미 얻은 자들이고 칭의를 얻은 자들이다. 계속적으로 성화에 놓여져 있는 성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얻었고, 의를 얻은 자들이다. 성령에 의해서 칭의를 얻은 자는 반드시 성화를 이뤄갈 수 있다. 로마서 6장에 근거해 그들은 죄에 대해서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을 것을 생각하라, 우리가 설교할 때 세 가지 종류 면을 항상 품어야 한다.

이것을 알고 직접으로 설교해야 할 것이다.

 

3-4. 성화의 실제

4-1 삼위 일체 하나님과 같아짐을 추구함

실천적임 면에서 우리가 육체 입은 면을 인정하지 않고, 이상적인 위대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목적이 있다. 어떠한 형식을 가추고 있는가이다. 이것은 어떤 형식인가 삼위일체하나님과 같아짐

 

정말로 거룩함에 심각성을 느낀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가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해라, 동기부여가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성에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신실한 성도라 한다면, 하나님의 의와 성실성을 닮아가려고 할 것이다. 생각의 방법의 가치에 우위를 두고 스티븐 쉬낙: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 두 번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체, 이미지에 더 닮아간다. 이것은 바울이 즐겨 사용한 주제이다 롬8, 빌2 네 마음속에 안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와 유사해야 한다. 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심지어는 겸손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모든 권세를 포기한 것처럼, 이유가 하나님 아버지 위한 순종 위한 것인데, 성화위한 우리 자신도 거부하고,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한다. 이러한 일을 위해 용기를 얻어야 하는데, 우리 자신을 바라봐라, 예수가 우리의 기초이자 걸어야 할 길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앞에 놓여 있는데, 절름거리며ㅡ 걸어가는 것이 뛰쳐나가는 것보다 낫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성황의 거울과 같이 놓아라

내가 그 보여진 예수를 세상에 반영 할수록 이뤄가라, 우리는 거룩을 이루기 위해 예수께 가야한다. 가장 최상의 것이다. 그 분은 거룩을 살았다. 자기 백성이 거룩한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분이다. 마틴 루터가 다른 보다 우리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칭의와 똑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성화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의 정신에 우리를 복종 시키는 것이다. 로마서 8장에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을 가리킨다. 죄성이 장악하는 것이고, 다른 것은 성령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성령의 일을 생각할 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드려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그리스도께 가게 한다., 동시에 우리 마음속 안에 거룩함을 위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다. 계속적인 만나를 먹이시고, 기도케 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한다. 이렇게 삼위일체 적인 접근 방법은 실체를 가르쳐 준다. 두 가지 정도에 성화에 대해 생각할 때, 죄 죽이기, 살리기, 죽거나 살리기

 

죄 죽이기-죄에 타성에 젖어 있는 것에 조심스럽게 하고 나를 물리치는 것이다. 죄에 대해 죽는 다는 것은 은혜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해주시는 것이다. 월리엄 그?-죄라고 하는 것은 여배우와 같다. 무대에서 연극을 하게 될 때 분장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화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라는 것은 위선적인 것으로 채워진다. 무대에 나오기 전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못생기고 사실적인 그대로의 모습, 성령께서 우리에게 죄를 보여주신다는 것은 죄가 얼마나 어그러진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칼을 꽂는 확신을 보여준다. 우리 마음속에 죄를 향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 능력을 얻기 위해 예수께 가는 것이다. 피를 흘리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으로 치유 받고자 하는 것을 알 것이다, 더 이상 죄가 나를 통치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죄를 죽이고 미워하는 것이다. 두 가지, 도망가던지, 대항해 싸우는 것 두 가지이다.

 

예를 들면, 음주 중독에서 치유 받는 과정에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 전하기 위행 술집에 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아주 빠른 시간에 떠나 버려라

그 자리에 서서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의 검을 들고 죄를 향해 찔러버려라,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 싸우고 도망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살리기-이것도 성령의 열매 중의 한 사람이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불타게 한다.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충동하는 것이 살리기이다. 십계명의 말씀을 지키도록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도덕적 면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울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다. 영적으로 살아라 이것은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에 대해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

 

-두개를 잘 사용하기 위해 성령은 은혜의 방편을 잘 사용하도록 한다. 거룩을 이루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어떤 기적이나 이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편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 영적 훈련이라는 것을 그들은 네 가지로 나?다.

 

개인의 은혜의 방편-가정예배

공동체, 이웃과의 관계

개인의 훈련-성경 읽는 것 긴 시간을 이것을 보냈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다. 두 번째는 묵상 하는 것인데, 기도와 행위,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과 행위 하는 것은 양쪽 의 배의 노 젓기와 같다. 하나의 노만 사용하면 기도만 하면, 그 자리에, 행위만 하면 마찬가지로 빙빙 돌게 된다. 그러므로 거룩을 이뤄가는 성도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다면,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자기에게 질문을 하라, 오늘 무엇을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 내가 연약한 부분을 이야기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바로 이야기 하라 그 날 해야 할 것을 계속적으로 본다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라, 행위에 들어설 때 도와달라고 한다. 예수를 의지한다. 하나님 앞에 예수의 기도는 다 들어주신다. 자기전의 기도는 감사하게 된다. 자기 부족과 연약 때문에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 다음날을 위해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기도에 대한 청교도 주는 다섯 가지 교훈

1-세상 사람들과 같이 교훈을 받을 수 있다.

1-무엇보다도 기도를 가장 기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라

가장 첫 번째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을 알아라

2-기도하는 데 최선 다하라 시간- 내 자신을 다 드려라 -삶의 기본이다. 우리 영혼의 상태에 대한 온도계 지침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기도의 생활이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로 드려진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간혹 이러한 것을 기피할 때가 있다. 기도할 수 있는 방을 준비하라

3-기도 방을 준비하라

우리는 이것처럼 기도를 생가가할 때가 있다, 삶의 바쁜 일로 가득채운 것처럼 기도를 생각해 많이 못 한다

4-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라

가장 좋은 기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을 다시 돌려 드리는 것이다. 여러 기도문이 서재에 꽂혀 있다. 제가 영적인 부화나 부족을 느낄 때 기도를 읽게 된다. 제 영혼을 느끼기 위해서,

재미있는 기도는 90퍼센트 이상이 성경에 있는 모양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하나님은 직접 당신이 쓰신 그 것을 경청하길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갔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다시 요청할 때 기뻐하신다. 몇 년 전에 나이 많은 장로님이 아버지가 쓴 편지를 저에게 전해준 적이 있다. 60년 전에 처음 구원 받았을 때의 편지이다. 그래서 정말 흥미롭습니다하고 받았습니다. 단숨에 세 번 네 번 읽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손으로 직접 쓴 편지였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200년 전에 주셨던 편지를 가지고 가서 보여드린다면 아버지는 기뻐하실 것이다. 그래서 암기가 중요하다. 기도할 때 구가 주신 말씀을 다시 담아서 드리는 것이다. 기도할 때 내 요구만을 올려드리지 말라, 먼저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알려드리고 초점을 하나님께 맞춰라, 기도의 출처는 영원하신 아버지로부터 온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을 통해 온다.

기도는 반드시 우리의 실행과 일과 연결되어 져야 한다. 행위 가운데 중요한 것은 내 부패와 싸우는 것이다. 기도한 다음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해라, 내일의 거룩은 오늘의 부정을 이야기 한다. 내일의 믿음은 오늘의 불신을 이야기 한다. 다른 방편으로 필수는 아니지만,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와 저널은 다르다.

일기라고 하는 것은 매일의 삶 가운데 , 저널을 쓰는 것은 거룩을 이뤄가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려준다. 저널을 묵상하고 성황의 길을 걸어가는 데 도움을 준다. 신실하고 모든 것을 잘 이뤄나가는데 도움, 관 우리 자신의 이해에 도움을 준다. 어떤 것에 우선권을 주느냐에 대해 잘 알려준다. 이러한 것을 우리의 모든 다른 영역을 포함한 영적 훈련을 도와준다. 개인의 훈련을 이야기 한다.

 

공동의 훈련을 말씀드리자, 무엇보다도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을 알려준다.

강조한다. 청교도들이 말씀의 선포와 성례참여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3-공동훈련은 영적인 교제이다. 이것은 거룩을 이루기 위해 영적인 멘토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교회라는 것은 골로새서와 말라기서에서 알려주듯이 성도들은 서로 대화를 해야 하는데, 잠언 13장에 지혜로운 자와 같이 있는 자는 지혜로워 진다. 거룩한 사람들과 함께 교제 나눠라, 어떤 사람과 교제를 나누는 것은 그 사람과 동질화를 이야기 한다. 혼자 홀로ㅡ 신앙생활 하도록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한 성도가 다른 성도에게 다른 성도가 필요 없어 라고 말하면 바르지 못한 것이다. 대화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을 포함한다. 마틴 루터가 이야기 한다. 이미 죽은 사람이 가장 좋은 친구이다. 왜냐하면 책을 쓴 자가 나의 친구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만일에 시편을 그렇게 읽으면서 다윗을 친구로 여겨라 , 요즘에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거룩이 이뤄지지 않고 있을 때마다 책을 통해 교훈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지금 네 마음을 살펴봐라 어떠한 부분이 연약한지 살펴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4-주일날을 거룩하게 보내는 것이다. 주일날은 그들에게 정말로 기쁨의 날, 특혜의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용구- 한 청교도 설; 주일날에 이 세상으로부터 안식을 해라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부르심에 대한 그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이다. 청교도가 이야기 할 때 내 개인적인 성화를 위해 이야기 할 때

복음을 전하고 섬기는 것, 예수의 명령 내용이다.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기쁨과 겸손과 사랑이다., 여러 사람을 섬기는 것이 쉽지 않다., 여러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 결국 기쁨을 준다. 남을 잘 섬기는 일이 기쁜 일이다. 내가 섬기는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을 기쁨으로 가게 해야 한다. 내 사역 가운데서 앞의 사실을 발견되면 내 자신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을 알게 되 깊은 기쁨을 알게 된다.

 

내 회심을 위해서 당신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남들을 섬긴다는 것은 나를 위한 상급을 거둬들이는 일이다. 종교의 실패에 대한 확신을 준다. 다른 사람들의 상담을 해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자신에게 직접 설교할 수 있다., 존 번연은 중요한 말을 남겼다. 존 번연이 이야기하길, 설교 전에 자기에게 먼저 설교하라

 

-세속적인 것들에서 떠나라 기독교라는 것이 정말로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설명한다. 안목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받는 것을 이야기 한다. 어떤 책을 보느냐 오락들,d 음악들, 형성하고 있는 대화의 내용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보면서 기독교가 정말이냐 아니냐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과 돈 대해서도 , --시간은 짧습니다. 남들을 위해 사용 되야 합니다. 선을 위해 해야합니다. 남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 되야 한다, 남들을 돕는 것은 예배의 행위이다. 사랑의 동기, 하나님을 위해, 우리 이웃을 한다면 우리 자신이 축복을 받습니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축복이 되어 진다.

 

-거룩한 삶에 대한 형식을 위해라

포뮬러: 고전 매일의 삶 가운데서 어떤 것을 할 결정을 할 때에 질문해 보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냐?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연결 되냐 성경적인 것과 연결?

법을 어기지 않으며 나에게 영적 유익을 주느냐?

이것이 남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남들에게 상해하는 것이 아니냐?

지금 드린 이 설명들이 청교도의 성화 실제의 연습 방법이다.

 

3-5 성화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유익이 무엇이냐?

1-나에게 유익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저는 영적인 유익을 얻는다. 그것이 살고 싶은 제 마음의 진정한 욕구이다. 리차드 백스터가 거룩에 대해 글 썼다. 6장,

제목; 거룩 이라는 것은 안전을 위한 유일한 길, 정직한 길이다, 유익을 주는 일이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게 일, 하나님을 닮게 하는 일,

에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시고 자기를 부정하셨다. 죄에 대해서 증오하고, 거룩한 기도입니다.

2-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택과 칭의를 가르친다., 너의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칭의에 부정할 수 없는 열매가 무엇이냐 그것은 성화이다. 성화라는 것은 칭의의 또 다른 칭의 이다. 우리가 칭의를 받았다는 것은 영혼으로부터 선택받은 것이다.

3-성화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ㅡ거룩하게 살면 내 삶에서 내 사역을 바라본다.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은혜가 우리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다.

4-효과 있는 하나님을 향한 섬김을 알 수 있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거룩함을 얻은 성도는 은사를 항상 사용할 수 있을 까 생각하는 자들이다.

존오웬=절대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장소로 들어가는 것을 염두에 두지만, 이 세상에서 거룩을 이루기 위한 것을 경시하지 말라,

 

 

성화가 주는 기쁨

1-최고의 기쁨 -하나님과의 기쁨 ;다윗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내가 온전히 기쁨 이룰 수 있다 죄로 인한 것은 교제가 단절되는 것이다. 내 가운데서 기쁨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ㅡ기도가 되야 한다.

2-지속적으로 계속되는 기쁨이 있다. 이 기쁨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거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나에게 닥쳐올 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을 현재를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는다. 영원한 은혜로운 우리의 위한 상급이다.

마지막 날 그 때에 예수님이 나에게 말할 때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라 잘했다 착한 종아, 주의기쁨으로 너를 인도한다. 성도가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방법은 거룩이라면 길의 종착역은 행복이다. 거룩이 완성이 되는 장소이다.

그 때 온전한 모습으로 예수와 같은 거룩을 이루는 것을 생각하라, 좋은 귀중한 사실은 우리를 향하신 뜻은 예수 와 함께 거룩을 이룬다. 그것은 이 땅에 거룩을 이뤄가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거룩하시겠습니다. 계속추구하시겠습니까? 예수와 함께 하라 예수 안에 거하라,

거룩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거룩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는 거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죄인이다. 이것은 리스트가 아니다.

율법적으로 이해하지 말라, 거룩은 리스트가 아니라 삶이다, 그리스도는 나의 거룩 이다, 진실한 거룩한 자로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질문-천국과 지옥에 고린도 전서에 차등이 있다. 평생 복음을 거부한 사람을 지옥의 중심에 간다. 하나의 별이 다른 별보다 더 빛날 수 있다. 모든 성도의 기쁨은 하늘에서 완성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더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더 많은 고통당한 사람이 그럴 수 있다. 순교당한 자들이 그렇다. 딤후1장에 귀한 상급이 받을 사람이 있다. 우리는 구원으로 다 은혜로 얻지만 영광의 상급을 더 받는 사람이 있다.

 

칭의 순간에 주어지는 거룩의 정도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

우리가 회심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을 때 죽음에서 생명의 자녀를 얻게 된다. 우리가 칭의를 얻고 성화의 길을 얻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

중생을 얻지 않았느냐 그 순간에는 똑같아 지지만, 성화의 과정에서 얻게 된다.

영적 훈련의 방편으로 성화를 얻는 방법으로 음식이나, 방법들은 청교도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금식의 예는 청교도는 금식하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두려워했다. 의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한 것이다.

물과 빵만 먹었다. 금식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 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상하게 하는 것에 조심하라

금식은 기도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n한다. 부정적인 것은 금식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못한 부정적인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 생각인데 고집하고 싶다. 뭔가 이상하다., 훈련과 행동 통해 예배를 진정으로 드리는 데 장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오순절에 있는 성도가 방언을 하면 더 나은 성도다, 라고 잘못 생각하는

나라가 어려움에 있거나 특별한 날이 있을 때 이 나은 금식하는 날이다. 선포했다.

 

교회에서도 오해해서 성화 교리 때문에 행위를 통한 것으로 오해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심정 속에서 진정한 성도로서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명령은 좋지만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 하지 말라 실제적인 반율법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교리적인 반 율법적인 사람이 아니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법적인 의무로 하느냐 감사함으로 하느냐를 간파하느냐가 중요한다.

 

 

 

 

 

 

 

 

 

 

 

 

 

 

7. 청교도 신학과 설교, (전도)

딤후 4장 1-8절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 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 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서론

 

청교도가 어떻게 복음 전파를 했는가

어떻게 신학을 설교에 사용했는가? 청교도 신학의 종류가 이것 외에도 많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다른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두드러진 것들, 강조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나누려고 한다. 다른 분야도 개혁주의 적인 분야도 있지만 현재는 잠시 접어두는 것이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개혁교회의 전통과 청교도가 전혀 다른 것이다. 생각할까 일부러 꼬집어 이야기 한 것이다. 실상에서 신학은 철저한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했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배운 것 가지고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적용에 대해 항상 깊이 마음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적용 중심의 생각을 가졌다. 재밌는 것은 복음 전도라는 것을 단어 자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전도를 많이 하고, 전도지를 사용하였다. 물론 그들의 전도지와 오늘의 전도지의 차이점은 오늘날의 것은 1-2p 그들의 전도지는 200p 밖에 안됐다.

 

리차드 백스터- 회심하지 않은 자에 대한 부르심 라는 전도지가 있다.

죠셉 얼라인 -회심하지 않은 자에 대한 경고

두 전도지는 나중에 재출판 되 50-100권 정도 재판되었다. 그래서 전도지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회심하게 하셨다. 이 전도지를 통해 청교도가 설교가 복음 전도의 중심, 모든 설교자는 복음 전도자이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는 데 쏟는 에너지가 있다. 그것을 가지고 말씀을 전할 때 고기서부터 복음 전도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주일에 설교 듣는 사람들 가운데 모두가 구원받은 자라 생각지 않았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모두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필요 한가 설명했다. 성황의 삶을 살도록 설교를 통해 노력했다.

요즘 교회 보게 되면 복음 전도에 투영 되서 그들이 나가게 한다. 미국에 구원을 얻게 되면, 6개월 정도 지나서 주일 학교 선생님이 될 때도 있다. 또한 두주 정도 지나게 되면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금방 회심한 사람들이 예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한다. 청교도는 이런 현상에 대해 강한 반대를 할 것이다.

 

금방 회심한 사람들은 아직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라 실수를 할 수 있다. 전도하기 전에 주의 제자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 현 교회는 정 반대로 너무나 복음 전도를 너무 맡기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요즘의 교회의 필요성은 양 극을 중화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의 의미는 설교자가 가장 중요한 교회의 복음 전도자가 되는 것이고, 모든 성도들이 전도자의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적용할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요즘 교회의 필요로 하는 것은 갓 회심한 새 신자들을 훈련을 잘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초신자의 회심은 급작스럽기 때문에 기쁨이 있다. 제 경우는 15살 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구속이 기뻤다. 보통 일반 교인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것이라 생각되었다. 성경에는 복음 전도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이 이웃이 되었다. 모든 방과 집을 방문하면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알맹이가 없는 열심만 있었다. 3일 후에 한 여자 분을 만나 이야기를 해봤는데, 더블류 암스트롱에 속한 이단이었다. 그들은 성령이 위가 되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 여자 분은 신학적인 기질이 있었다. 그는 성령은 인격체가 아니라 파워라고 추상적인 것을 소개하였다. 그 상황에서 답변을 찾지 못하였다.

우리는 나가서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청교도를 통해 배워야 한다.

 

청교도의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자연적으로 모든 이에게 보통 크게 평상적으로 유지되는 교회 환경 속에서는 일반적으로 보면 너무 성숙된 교인들을 나가서 전도하라는 것이 약한 역사적 사실을 본다.

청교도가 전도 시 중점을 둘 것은 그들의 설교이다. 이웃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될 때 내가 전적인 복음을 전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복음의 전부를 전할 생각을 하진 말아라, 그러나 내일 같이 주일에 교회가자라고 나올 수 있다. 그들은 전도에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설교적’이라는 것은 죄가 얼마나 더럽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는 것을 알려줬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청교도들은 광범위한 것을 생각한다. 현재 불신자에게 복음 전도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복음을 통해서 불신자가 예수로 믿는 것도 포함하고/ 초신자 들에게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칼빈의 사상을 따라간 것이다. 칼빈은 신자라고 할지라도 매주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죄 악독함과 하나님의 이상적인 사랑에 대해 계속적으로 필요해야 한다. 두 번째는 신자와 불신자 두 양면을 다 생각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는 4-5가지의 청교도의 특징을 살펴보자. 간결한 방법을 사용.

 

1. 청교도 복음 전도의 메시지

 

1-1 철저하게 성경적 메시지

그들의 메시지를 하나님 안에서 발견했다.

신실한 설교자는 예수와 마찬가지로 말씀 외에 다른 것은 전하지 않는다.

존 오엔-가장 최선의 중요한 임무는 목회자는 말씀을 계속 성도에게 먹여야 한다. 청교도의 설교라는 것은 말씀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가 그 말씀 안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설교 안에 성경구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설교 자체가 성경 구절이다 청교도의 설교를 듣는 것은 우리가 말씀 안에 담겨져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은 말씀에 능통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기본적은 원리로 삼았다. 말씀 안에서 생각,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모든 삶의 전반을 걸쳐서 말씀중심의 사람들이었다.

퍼거슨-아주 오래 시간동안 걸쳐서 적용할 목적 가지고 목회 형질에서 청교도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요소로서, 마치 보석 감정가가 다이아몬드의 여러 감정을 하는 것처럼, 많은 말씀 연구를 하였다. 조심스런 말씀 연구는 그들은 이러한 일을 통해 강단으로부터 상담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6-=70분 정도로 설교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강단에서 말씀으로 잘 목양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주제로 설교의 내용을 담았다. 타락한 자도 있고, 아직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설교를 듣는 것이다. 영적인 일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불신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열려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설교했다. 그러므로 말씀을 열어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데 탁월했던 사람들이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잘 전해, 적용을 잘했다.

물론 그들도 성경에 꼭 포함되지 않은 예화도 들었다 . 사람들마다 정도가 달랐다

토마스 부룩스-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등의 예화를 들었다.

내가 말할려는 주제가 다른 성경에 있지 않은가에 먼저 살펴봤다. 성경에 있다면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 미국의 설교자는 적용점을 위해 성경 구절을 이곳, 저곳에서 살핀다. 간단한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렇게 때문에 요즘에 복음 전달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범위적으로 초점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경륜을 다 전하지 못한다 믿으라 회개하라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좀더 다양한 방법을 수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특별히 적용점을 찾기 위해서선택한 말씀 자체에서 근원을 찾으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좀 저 말씀을 사용하고 깊이 연구해야 한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 전하는 것이 더 권위적이어야 하며, 흥미를 모을 수 있다. 성령의 도움으로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1-2 부끄럽지 않은 교리적 메시지

청교도가 생가할 때 교리적인 것은 실천 분야에 속한 것이다. 청교도의 아버지 월리암 퍼킨스는 -축복 받은 상황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과학이다. 그의 학생이었던 애임스는 하나님께 어떤 삶을 드려야 하는가가 교리이다.

조직 신학이라는 것은 의사들의 해부학과 유사한 것이다. 신성의 한 몸

말씀에 담겨 있는 진리가 영적인 의사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영적인 환자들을 어떤 질병이 있는가 찾았고 그 병의 치유를 하기 위해서 말씀을 약으로 조제해 성도에게 주기도 했다.

오늘날의 우리가 청교도의 설교와 똑같이 하는 것을 할 수 없고, 현명치 않다고 생각 한다

청교도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들의 설교가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된다. 모방하려고 한다면 문제는

1-2-1 청교도는 제일 먼저 본문에서 교리인 것은 문제가 무엇인가 찾았다. 본문이 무엇인가 찾았다. 교리에 대해 설명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 자체보다는 교리에 대해서 더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성경 전반에 걸친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문제가 있는데 본문 자체가 정확하게 다 다루지 못할 때가 있다. 또한 다른 것은 본문 쓰여 져 있는 상황에 관한 것이다. 주해를 잘못했던 사람들이 아니고, 매튜풀, 매튜 헨리를 보면 얼마나 주석을 잘 했나 알 수 있나.

주제 설교가 그들에게 더 흥미로웠다.

주제 설교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자. 현재 사회에서 필요한 것ㅇ르 주해 설교가 더 필요하다. 한 곳에서 정규적으로 하는 목회 현상에서 필요하다.

1-2-2 모방 시 둘 째 문제는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청중들이 장시간 흥미를 잃지 않고 마음을 쏟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청교도 설교자가 주제, 교리를 정해 깊게 다뤄나갈 때 그들 청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성적인 논리적인 것으로 요즘 사람들에게 교리를 전하려고 도중에 십분 정도가 지나면 예화 들던지 해서 생각을 순화시켜야 한다. 청교도가 설교를 전부 세세히 모방하려는 것이 좋은 자세가 아니다.

교리적인 설교에 있어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것은 위대한 하나님의 진리를 잘 전달해야 한다는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잘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전할 때 죄라고 할 때 두려 워 하지 않고, 죄의 사악함을 지적했다. 죄라는 것은 행함의 죄와 행하지 않는 죄를 계속 전했다.

우리의 잘못된 마음과 행동에 대해 전했다. 조엘 마이어-수십 번의 설교를 죄에 대한 것으로 하였다.

‘죄성 보다 더한 악’ 이란 제목

1-가장 소량의 죄라 할지라도 그것은 아주 커다란 어려움이 주는 악함 보다 더한 것이다. 하나님과 죄는 서로 대응관계에 있다. 죄라는 것은 모든 선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 모든 악독이다. 죄는, 특성상 영원한 면을 소유하고 있다.

2-죄는 악마를 편안하게 한다. 두 달 정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전해졌다고 생각해 봐롸 말씀에 근거해 복음 전도적인 기초가 거기 다 전해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인내하면서 잘 전했다.

리차드 십스-예수를 천상과 지상을 옮겨가는 마차와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이에게 전했다. 예수를 선지자와 왕으로 전했다.

조셉 얼라인-신실한 성도가 회심을 해서 표징을 보이면 정말 신실한 성도는 십자가 뿐만 아니라 명령도 수용하는 것이다. 잘못된 성도는 반반 수용하게 된다. 구속을 얻는 일에 그리스도에게 얻지만, 성화를 이뤄나가는 데에는 그리스도를 수용하지 않는 것이다 온전한 회심을 했다면 자신이 온전한 회개를 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데 사용된다.

위튼 -우리의 주재 되시는 그리스도‘

엠브로스-그리스도를 바라봄

조엘 비키-그리스도를 수용하는 기쁨과 행복을 신속하게 수용하는법

자존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 하나님을 귀중히 높이는 것을 관심에 가졌다. 하나님을 위엄을 가지시고, 하나님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다. 우리를 거룩한 성전으로 만들려는 성령님의 일

 

1-4 전적으로 복음적 메시지

청교도들은 복음의 전적인 전반적인 사용하여 모든 전적인 사람으로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다.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통해서 그들의 의지만을 작용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이것은 현대 복음주의자들, 강조-당장 마음에 결정하도록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복음주의자는 형식은 믿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청교도들도 믿음이 가장 중요한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믿음이 본질은 사실이다.

제일 처음에 중생할 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는 것이 , 초신자에게 풍성한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성경이 불신자에 무조건 믿어라 이사의 아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성경은 회개하라는 내용은 담고 있다. 청교도의 회개는 단정적인 느낌의 미안합니다 라는 것은 아니라 전체 행동의 열매..

잘못된 것을 중단하도록 하는 메시지도 전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해라 아직도 구원받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전달했다.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공헌하는 것 아니냐

이러한 것이 두 가지 의해 정당한 것을 판명할 수 있다.

--1 성경적인 설교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종류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설교를 하려면 선지자와 사도들의 설교 내용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속 사역을 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의식적으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은 죄가 어떤 것인가를 확실하게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한다.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 전한 후 하나님의 은혜를 전한 것이다.

롬1-3장에서 바울이 설교한 것 이상으로 율법 중심으로 죄인에게 설명했다. 로마서 3장 19절 보면 바울이 설교한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준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율법의 요구를 설교 시 죄인의 행동을 중단하기 위한 것이 모든 세상이 죄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청교도들은 죄인들이 스스로 주께 돌아올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율법, 요구로 그들을 대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들 자신이 지킬 수 없다, 처절한 인간이라는 것을 자가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었다.

복음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는 사람에게만 아주 도우미 되는 것이다. 죄에 대한 확신은 자신의 의를 죽이는 확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인도하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율법에 대한 모든 설명들은 예수께로 오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죄인은 주님께 올 수 있도록 초청 받은 자이다., 청교도들은 아픈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모두가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요즘은 죄에 대한 확신에 대해 중요치 않는 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라고 할 때 성도들은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느끼게 될 때 그리스도께 오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죄인인 자기의 양심을 찍는 것이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행한 것이다 사악한 너희가 그리스도를 못 박았다.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울부짖었다.

오늘날에 설교자는 단지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이미지만 갖게 한다, 죄로 인해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해, 로마서 8장 7절의 내용을 잊어버린다. 우리의 육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에 원수라는 것이다.

죄인들에 영혼에게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주게 될 때 하나님은 베이스음은 먼저 들려주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죄인을 이끌어 오기 위해 자기 절망감을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전도는 성경적인 것이다. 세례요한도 회개, 거룩에 대한 것이다.

보라 어린양을 보라 저가 예수를 사할 뿐이다. 마태복음 4장 17절이 우리를 증거 한다.

그리스도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오래전에 있던 청교도들은 우리가 구속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기 위해 성령님의 사역의 의존도 포함되었다. 전적인 그리스도에 대해 /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사상이라는 것은 죄인에게 죄로부터 그들을 구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다. 용서를 받는 것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죄를 고민을 많이 해서 자각을 갖고 있으므로, 자기의 칭의, 성화 문제로 예수 안에서 발견된다. 자신의 죄를 다 죽였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한 것이 동기부여가 된다. 하나님을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율법에 의해 자신의 죄를 발견하지 못한 자는 만일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은/ 죄인이 그리스도에게 오는 일이 많지만 자신을 못 박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죄의 자각이 깊은 고민이었고, 역시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낮은 기대감을 갖는다. 영광을 위해서도 마음의 확신이 없는 것이다. 회심 되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놀라운 것이다., 중생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성령으로부터 새로운 본성을 얻는 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영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간다. 로마서 8장 5절에 바울은 성령을 따라가는 자는 육체를 따라가는 자..진정한 회심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일어난다. 죄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자를 사랑, 하나님과 살게 되면, 죄악도 떠나는 삶을 산다.

확실한 것은 복음 전도를 위해 율법과 복음을 같이 사용했다. 목적은 죄인을 그리스도께 인도, 그리tm도 안에서 그들을 훈련시키는 일동 있다.

 

1-5 주의 깊게 균형 잡힌 메시지

그들의 설교는 균형적, 말씀안의 것의 내용이 독단적인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청교도가 죄에 대해 이야기 하면, 설교 전체의 내용이 모두가죄의 내용을 다루는 집중적 설교를 하였다.

천국의 설교를 한다면 천국의 내용이 온전히 담고 있는 설교를 하였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성경의 다양한 주제를 다 다룬다. 오늘 주어진 본문 통해서 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였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리가 성도들에게 스며들 수 있었다.

어떤 청교도들은 한 주에는 그러한 삶에서 도망가라 들었을 때 기뻐했을 것이다. 다음주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거져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마음의 기쁨을 가질 것이다. 매시간 한 주제의 깊은 것을 다뤘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성경의 교리적 내용이 삶 속에서 스며들게 하는 좋은 결과를 낳게 되었다. 성경이 다루는 주제를 다양하게 설교하라고 하였다. 질문을 통해 시작되는 방법이다.

기록에 예를 보면- 영적인 침체로부터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라갈 수 있나? 영적인 자만감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함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 내 안에 거룩함 모습을 잘 드러낼 수 있나?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설교한 것을 알아야 한다.

강단에 서서 청교도들이 성도들에게 영적인 상담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설교자가 다 좋은 설교자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러한 형태로의 설교를 하면서, 노트 필기를 요구했다.

기록된 설교 노트를 가지고 아이들이 문답형식으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설교를 들은 후를 적용을 위해 가정을 방문에 아빠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우리 영혼의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설명한다면 우리 영혼의 가치에 대해 먼저 말할 것이다. 이러한 설교를 받아 적은 아버지가 아이들과 둘러 앉아 물을 것 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설교를 들었니? 우리 영혼한 귀중한 이유를 말해보자 큰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말할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필기를 했다면 꺼내볼 것이다 설교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은 작은 목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청교도들이다. 설교는 일주일의 하이라이트와 같다. 오늘날 여러 가지 오락이 많이 있다. 그것은 사회적, 영적으로 가장 큰 이벤트이다. 설교를 중요하게 여겼다.

신실한 청교도 가정은 주일 예배를 위한 예배를 토요일에 드렸다. 주로 가족들이 집에 모여 좋은 책, 성경을 읽기도 하며 그 다음날 뜨겁게 예배드릴 수 있는 준비를 하였다.

 

4- 청교도의 설교는 잘 제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함께 이뤄졌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설교대로 살았다. 교리가 주는 열매와 삶 속에서의 열매가 같았다. 그들은 가르치는 선지자, 중지하는 제사장, 그들의 가정에서도 마차가지이다. 사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의 눈이 청교도 설교자에게 눈을 향하고 중요한 지도자였다.

 

질문-율법이라는 것은 막대기와 같아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 때린다. 죄 자각 시키기 위해,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 앞에 죄사함 받았다는 것을 알 때 그것이 지팡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과 청교도의 제3의 용법, 율법의 용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요리 문답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설명하면서 이 사실을 다루고 있다.

디프레션에 빠진 사람이 설교를 들었을 때, 집에 가서 홀로 침대 누워 씨름하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좋다. 우리 영혼 속에 어떤 일이 있는 가 는 수직적인 하나님과 내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관심을 가졌다. 공공의 장소보다 개인적인 인게이즈먼트가 더 중요하다.

 

 

2.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된 방법

 

2-1 간결한 방식의 설교

월리엄 퍼킨스-그 책에서 설교는 간다해야 하는 데, 간단 할 수 록 더 좋다. 이렇게 간결한 것을 강조한 것은 성공회 목사들의 설교가 치장된 것에 비교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나, 어른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해야한다

2-1-1선정한 본문 주해-중요한 단어 개념을 설명

2-1-2 교리적인 면을 강조해 설명했다.

2-1-3 적용이 단계를 설명했다.

어떻게 본문을 사용 하느냐 하여 사용법이라고 하였다. 적용의 부분에 있어서 , 매일 설교를 행할 때 청중 가운데 적어도 7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 했다.

1- 불신자. 설교자가 이야기 하는 것 어느 것도 흥미를 유발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2- 가르치면 배울 수 있을 만한 사람이지만, 무식한 사람이다. 구원받았지만 겸손하지 않아 가슴의 지식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3- 주셔서 들은 지식이 있을지 몰라도 마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구원받았지만 겸손하지 않아 가슴의 지식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4-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

5- 구원의 확신이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신앙생활 하는 자

6-타락한 자들, 구원 받아 부주의 해 살아간 사람들이다.

7-모든 것이 혼합된 종류의 사람들, 두 개 이상이 합쳐져 나타나는 사람들

절대로 청교도들은 이 7종류 사람들에게 다 모두에게 전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요즘에 구원을 받는 자와 받지 않는 자 의식하며 작성하였다.-하지만 본문 자체가 3, 4종ㄹ 이상의 사람들에게 적용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 주로 회심하도록 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고 삶의 방식을 적용하게 돼있고, 예수를 향해 가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주로 세 가지 종류의 적용이 있다.

=1 위로의 것, 살아가기 위한 방향 제시, 스스로 자가 점검의 도움 주는 것

청교도는 듣고 삶의 모든 영역에 적응 하려고 했다. 지성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그들을 향해 품을 수 있었다. 강력한 설교와 개인적인 상담도 했다. 지속적인 기도도 했다. 성경 적인 이성의 사용도 했다, 기쁨의 삶을 증거 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예로 나타냈다. 설교를 통해서 청중이 얼마나 축복을 받을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모든 설교자에게 있었다. 성경 통해서 자기 경험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죽은 죄인에게는 예수 만 의존할 수 있다는 알았다. 자기중심적 삶에서 -하나님으로 죄로부터 해방과 선포된 말씀은 절대로 공수포로 돌아가지 않는다.

칼빈은 - 1외부적인 설교자 -강단에서 설교 하는 자

2-성령께서 역사해 설교자 청중이 들을 때, 변화

확신을 가지고 강단에서 설교됨, 많은 죄인 가운데 주께로 돌아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에게 성경을 전할

 

2-2 교리문답을 통한 전도

목적-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설교를 어린아이 수준으로 맞춰가는 것이다.

--1 만일 설교자라면,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교리 문답 책을 기록할 것이다. 회중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어떤 청교도는 책을 샀는데 성도의 기초ABC를 적어 줬다. ‘존 카튼은 아기를 위한 우유, 애인 그린이라는 Ph. D학생은 청교도가 어떻게 교리문답을 사용한 것에 대해 논문을 썼다. 수백개의 이런 종류의 문답 책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답은 사도신경이 답, 거기에는 십계명에 대해서, 주기도문과 성례전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우리가 발견되는 패턴은 하이델 베르크의 신앙고백서의 형태를 그래도 따라 간 것이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유사한 방법으로 , 더 간다하게 , 청교도 목사님들은 심방을 통해 아버지가 잘 가르치는 것에 대해 모범을 보여 준다. 청교도들은 아이들은 가정에 초대하여 그날 저녁 때 식사를 같이 할 때 찾아온 목사님이 가정 예배 하도록 하셔 아버지들은 보면 배운다. 더 잘하기 위해서 배운다. 문답방식을 통해 가르친 이유는 성경의 지식을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일날의 성례전을 잘 이해하기 위해 돕기 위한 것이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신앙의 고백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도 교리문답도 외우도록 유도했다. 아직도 불신자이웃을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조셉 얼라인- 일주일 가운데 다섯 날 5일을 교인 찾아가 전도하였다. 바쁜 시대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실상은 조셉 얼라인은 한 사람 한 사람 가운데 문답시간이 되면, 이것은 그 사람 집에 가지만 주위에 불신자를 집으로 초청해서 그 말씀을 듣도록 하였다. 사실은 제일 처음에 중요한 것은 아이들 가르치지만, 실상은 주위 어른에게 말씀 전하는 도구가 된다. 당시 목사는 중요한 위치였다. 심방을 위해 길을 걸어가면, 길거리 만난 사람을 직접 전하지 않는다면, 같이 심방가자고 권유한다. 어떤 청교도들은 문답통한 일대일 관계에서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리차드 백스터- 들어도 영적 유익이 안 될 수 있다. 30분 동안 심방 받을 때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10년 정도의 설교 분량이다. /청교도 목사들은 가정에서도 이 방법을 사용했다. 위로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시간과 기술이 필요했다. 청교도 설교자들은 수용하면서 실행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13시간 씩 일주일 7일 동안 사역했다. 오래 공부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까? 우리가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교인들도 하루 종일 일하고 있다. 청교도사회를 보면 한국의 바쁜 사회와 유사하다. 주해를 하기 위해 바쁜 가운데 이것을 실행해야 했다. 이 모든 것 가운데 우선권은 무엇인가 알 수 있다. 절대로 많은 사람이 급속적으로 회심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평생에 신앙인을 만들기 위한 작정이었다. 문답을 통한 복음 전도할 때 누군가는 저 잘하기도 하였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찾아다니면 제자화 한 것이다 강단에서 이뤄지고, 개인을 만나 문답을 통한 일을 하였다. 현대 전도법은 스스로 일을 결정하게 남겨두게 된다. 이제 이러한 결과로서 성도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성숙하지 않다. 침례교 빌리 그레이엄을 도운 목사였다. 빌리 그레이엄이 행한 전도 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지만, 약 2%만 삶 속에서 신앙의 열매를 맺었다. 리차드 백스터와 고백과 대조가 된다. 자기 성도들에게 대조가 된다. 여러 길가에 한 가정만 예수를 믿었다. 나중에 사역을 한 결과로서 한 길에 많은 가정이 예수 믿는 길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백스터는 내가 사역하는 동안에 600명 정도가 사역했는데, 한 사람도 타락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청교도 식의 복음 전도가 얼마나 중요 한가 우리에게 알려준다.

 

 

3.전도자의 내적 성향

 

3-1 성령을 의존함, 진지한 기도를 동반함.

분명히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는 확신 가지고 설교한다.

2-무엇을 하든지, 최선의 기도를 하였다.

로버트 맥체인이 좋은 증거자이다. 청교도 운동의 후세대이지만 청교도 사상의 소유자였다.

성공적인 목회를 알기 위해 방문한 사람이 맥체인 찾아왔으나, 실망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목사님의 비밀을 알려주라, 집사님은 따라오라고 하였다. 맥체인의 서재로 끌고 갔다. 의자에 앉아보십시오, 소리내어 울어보십시오, 거기에서 나와서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저 강단으로 올라가 보십시오, 손을 활짝 펴시고 울고 기도해보라,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았지만 목회의 성공 비밀이다 자기의 영혼과 함께 씨름한 사람이다.

 

결론은 청교도는 완벽한 복음 전도자가 아니지만, 복음의 영역을 살펴볼 때 훌륭하게 임했다. 우리에게 남겨준 설교나 글들보다 더 깊은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설교할 때 진리가 우리를 정복하도록 해야 한다.

맥체인- 거룩한 목회자는 위대하신 손에 붙들린 위대한 무기이다.

마지막 기도할 때 우리가 죽음 앞에 설교할 때도 복음 전도를 위해 사랑하는 친구를 향한 마지막 노력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날에 가서 너는 어떤 종류의 복음 전도자인가? 물을 것이다. 그날이 심판의 날이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11:6절의 잠언.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이끌고 오는 자는 ---그의 영광이 빛날 것이다. 신실한 복음 전도라로 사용할 것을 축원합니다.

 

로이드존스로부터 청교도서적을 출판 시작, 동시에 부흥운동의 전통이 그의 삶에 나타냈다. 19-1904년도에 에빈 로버츠의 주도 아래 부흥 운동이 웰시에서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부흥을 기대하며 신앙생활을 했다. 멀리가지 않아도,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ㅡ,확인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 역량의 의해 웰즈에 있는 흥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다. 현재 성령의 사역 자체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부흥 운동에 대해서는 소수의 사람들과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극소수만,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 방법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는 것에ㅡ 대해 우리가 절망할 필요가 없다.

 

질문- 빌리 그레임의 사역에 2퍼센트의 결과가 있다고 하였는데,. 빌리 그레이엄의 사역을 따라하는 자들은 그 사역결과로 2% 신자만 있다고 봐도 되냐?

답변- [목사님들의 딜레마]라는 책에 여기에서 많이 온 사람 가운데 2퍼센트는 만 온 전한 성도라고 이야기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전에 예수 믿지 않았다가 지속적으로 교회 나오는 사람의 수가 2% 것이다. 견고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회심한 초신자들을 성숙된 신자로 만들어야 한다. 요즘에 현대 교회에 바라보는 것처럼 공통적 오류는 귀중한 복음을 값싼 것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8. 청교도의 가정관, 결혼관.

 

에베소서 5장 20-6장 4절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

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서론 -지금까지 저희들은 청교도신학의 중요한 몇가지 요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휼륭한 신학자들이 있지만 개혁주의 전통과 성경이 증거하는 진리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청교도들은 말씀을 모든 삶에 전반에 적용한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어제는 이런 맥락에서 설교의 원리를 살펴보았다

오늘 마지막에 강의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가정에 어떻게 적용하는가이다. 오늘 아침에 두가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가정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결혼에 관한 것이다. 결혼관을 갖고 있는데 아주 놀라운 관점이다 건전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리차드 벡스터가 결혼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영원토록 너를 사랑하는 친구를 얻은 것 얼마나 귀중한다. 마음과 영혼을 열어 같이 나눌 수 있는 것, 가까이에서 좋은 친구를 갖는 것이 좋은 것이다. 매일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

존 더드-아내는 마치 도피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 숨을 수 있는 대상이다. 하나님이 내 영혼에 주는 평화 버금하는 평화를 아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존 카튼-절대로 아내가 없이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정부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아내에 대한 것과 유사하게 비교할 수 있다. 정부가 없는 것보다 없는 것 보다 낫다. 아내가 필요악이 아니라 필요선이라는 것이다. 건강한 결혼관이 필요하다, 중세시대-결혼을 하찮은 것으로 보았다. 로마 카톨릭/ 청교도는 종교 개혁의 칼빈주의의 결혼 사고에 루터와 칼빈이 시작한 결혼이란 긍정적인 사고를 수용했다.

500-600P 문서를 남기기도 했고, 설교도 하였다. 이러한 것을 통해서 결혼의 네 요소를 설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살펴보겠다.

 

 

 

1 결혼의 목적:결혼관 =성경적인 목적이 무었인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어떻게 결혼이 기능해야 하는 가 성경이 말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남편과 아내가 어떠한 책임을 다하는가 알 수 있다.

목적은 -우리가 흥미로운 것은 성공회의 기도서에는 목적 세 가지가 나와 있다.

-1 아이를 낳기 위해서,

-2 죄를 억제하기 위해서

-3 서로가 쌍방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결혼의 목적

초기 청교도의 책을 보면, 이러한 순서를 따라간다. 1640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기록 시는 세 가지 가운데 세 번째 것이 첫 번째로 올라와 있다. 왜 하나님이 결혼을 세웠냐하면 부부 지간에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는 아이 얻고,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세상에 보존하기 위해서 셋째로 부정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현 이 세상의 것만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지속될 서로의 섬김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시낭고백서에 쓰여 있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느끼는 감정의 요소와도 연결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이들이 잘되고 번영될 때도 그렇고, 그렇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존로빈슨-정말로 건강한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건강하고 영적인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 결혼의 목적-아이를 낳고,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만들기 위한 것, 부모에 의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결정, 결혼한 사람들은 반드시 아이를 갖게 하였다. 이것을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잘 섬기기 위해서이다., 성도의 자녀들은 가정, 교회, 사회를 섬겨야 한다.

 

수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고 많은 수의 아이를 낳은 것이 가능했다. 보통 그 때 당시 여인들은 10명 정도의 아이들을 낳았다. 하지만 10가운데 4명은 유아시절 사망했다 세 명이나 네 명은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사망했다.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서 너명 아이가 아빠를 도울 수 있다면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 출산은 우리 자신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교회와 사회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것으로 세상에서 쓰임받기 때문이다. 만약 청교도가 한국을 방문한다면, 충격적일 것이다. 개혁주의 설교에 입각해 열심히 설교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대가족이 아니라, 소가족인가,

하나님의 것으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제 형이 있는데 13명의 아이가 있다. 누나가 있는데, 9명이 있다. 다른 형제 누나 둘은 다섯 명씩 아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35명의 손주들이 있다. 74명의 증손자가 있다. 13명이 다 확고한 신앙에 서 있다.

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교회 올 때마다 이렇게 많은 자기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서, 우리 형제, 자매가 기쁨을 누리는지 모르겠다. 청교도가 가졌던 이상이고, 꿈이었다.

어떤 청교도가 거룩한 씨앗이 잘 심어져서 모든 교회에 풍성하게 채워지는 꿈을 가지라

 

세 번째 결혼의 목적 -부정함을 예방 ,

고린도전서의 바울의 이야기- 이제 결혼이라는 것은 간음에 대한 유혹을 잘 방어할 수 있는 좋은 방도이다

이렇게 설명한 훌륭한 결혼의 목적들은 그들은 가장 근본족인 결혼에 대한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을 강조하였다. 가정생활에서 결혼 생활에서 시작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에서 시작하였다. 아내를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덜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대상이 가족이 주님보다 앞세운 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죄인 됨으로의ㅡ 결혼이다 아내가 여러분을 실망 시킬 때 사랑에 대한 배신 때문에,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것이다. 하나님, 배우자, 자녀를 세 번째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 마지막으로 우리를 사랑함으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있는데 남편과 같이 교회에 오는 세속적인 여인 이다. 어느 순간 그 여인에게 놀라운 방법으로 회심시켰다 전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두 번째로 밀렸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두 번째로 밀렸지만, 더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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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혼을 위한 과정

1-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주로 당사자가 이런 일을 했다. 항상 부모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렸다.

2-약혼식 결혼의 승낙서, 요즘에 보통 보면서, 가까운 식구들을 불러서 앞으로 우리는 결혼을 하겠습니다. 서류화 하는 것이다. 이제 롯의 딸들과 마리아의 삶을 보게 되면, 여인이 가져야 될 품행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 19장과 누가복음 1장이다. 그 다음에 이렇게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 약혼하는 증서 교회에 알린다

3-교회의 침묵의 인정, 만일에 회중 가운데서 두 사람이 결혼하는데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면, 교회의 장로나, 목사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4-종교적 의식에 대한 실제적 의식이다.

주로 결혼식에서는 서로 서약을 하고 간단한 식을 한다.

시민의 잔치가 있었다. 교회와 집 사이를 계속해서 오가게 되면 길거리 사람이 환호하게 된다

5-신랑의 집에서 갖는 회합이다. 보통 다 같이 모여서 기쁘게 노래 부르기도 하고, 건전한 유머를 가지면서 즐겼다. 좋은 시간을 나눈다.

6-결혼의 정점

 

3 결혼의 원리

-1 두 가지의 결혼의 중요한 원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원리

오늘 우리가 아침에 읽은 에베소서 5장에 말씀을 180p 에 할애해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다루시는 가하여, 남편이 신부를 잘 다루는 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신부가 그리스도를 향해 존경을 하는가에 이야기 하고 있다.

제가 의심하는 것은 누구든지 아침에 일어나서 스스로 생각하길 내가 그리스도가ㅡ 교회 섬김 것처럼 해야지 존경 해야지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이렇게 했다 만약에 남편이 되었다면, 아내를 온전히 사랑하라, 예수가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할 때 거룩하고, 깨끗한 목적으로,

실제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아내가 온전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희생하면서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28절 과 29절에 잘 기록이 되어 있다.

네 자신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해라

여러분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다고 가정해라

내가 내일 시간이 있을 때 빼낸다고 말하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아내가 남편에게 올 때 필요로 할 때 내일 한다고 말하겠습니까? 자신을 귀중히 여기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겠습니까?

놀라운 것은 다 청교도는 귀한 남편들이었다.

권위에 의해 사회가 형성 되있다. 구조에 남편이 여자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권위적이고, 아내를 위해서 다룬 사람도 있었다. 1하지만 보통 우리에게 남겨진 자료를 통해 연구해보면 청교도 남편들은 아내를 굉장히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나와 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아내들은 자발적으로 남편을 사랑한 것으로 알 수 있다.

두 가지로, 아내는 자발적이라는 의미를 알았다.

당신 나에게 좀 복종해! 이렇게 말을 하면,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께 복종 할 때에 자발적으로 하는 것처럼 그런 동기로 사랑해야 했다.

굿지-아내가 남편이 내 머리가 된 것은 불명예가 아니라 명예가 된다.

남편과 아내가 자신들의 의무에 좀더 충실 하는 것이지, 너무 강조하며 지켜보는 것은 아니다. 결혼의 실패는 남의 의무에 관심을 더 가질 때 실패 한다.

당신은 더 좋은 아내가 되야되!

두 번째 원리--언약 사상의 관계를 투영했다. 말라기 2장 14절에 근거함,

거기에 보게 되면 결혼이라는 것은 언약적 개념을 설명한다. 이제 보통 언약사상에 근거했기 때문에 쌍방의 의무에 동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결혼의 원리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청교도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결혼지침서가 있지만, 성경은 가장 좋은 지침서이다. 제이 아이 패커는 이렇게 말한다.

결혼 제도를 알기 위해서는 창세기로 가고, 온전한 결혼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청결한, -레위기, 결혼 생활 잘 영위하기 위해서는 잠언서, 도덕성-바울의 서신서, 에스더 룻기, 아가서는 이상적인 결혼이 어떤 것인가를 찾았다. 이런 방법처럼 모든 결혼에 대한 개념이 말씀 중심이 되어 있었다.

 

 

 

4 결혼의 실제 또는 의무

-1공동의 의무: 쌍방적인 의무,

근본적이며, 쌍방적으로 실행해야 될 의무가 사랑이다. 결혼의 근본정신이다. 사랑이 마음의 왕이다. 사랑이야말로 두 개인이 하나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 가정에서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1-영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영적으로 서로가 짐을 같이 져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서 서로가 충실한 삶, 은혜의 방편, 교회에 같이 출석해야 같이 성경을 읽고, 시편, 같이 기도, 그들에게 이것이 가장 중요했던 일이다.

2-최고의 것이어야 한다.

설과 사랑을 해서 그들 마음속에 내 배우자라는 자가 최고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좋은 아내, 남편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서로가 생각하기에 더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참된 결혼이다.

3-성적인 것이다.

상대에게 기쁨으로 자신을 전적으로 주는 것이다. 이러한 것도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쳐 준 바를 수용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성적인 접촉은 사악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절대로 즐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아이를 낳기 위한 행위로 국한 된다. 언제든지 죄와 연관이 있다. 로마 카톨릭이 가르칠 때 수직적이 상관관계로 높은 자리일수록 결혼과 멀어진다고 하였다. 사회에 두 가지 종류의 성도가 잇다.

한 쪽에는 목회자, 성직자, -영적인 사람들 ;결혼 안한 사람들

평신도- 영적인 사람이 아니고, 신성 모독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부정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로마 카톨릭에 대해 반대적인 사람들이 16세기에도 있었다.

정말로 좋은 결혼은 서로가 절제하는 것이 좋은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청교도 결혼관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확신, 고린도전서 7장 3절에 근거해, 귀중한 사랑과 기쁨을 당연히 상대 배우자에게 빚진 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부부관계가 친밀해주는 결과로 자녀를 얻게 된 것이다.

자녀를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보통 사역을 위해 멀리 여행 시, 떨어져 있는 아내에게 쓴 편지 내용을 보면,

토마스 후커-정말로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항상 상대를 채워주는 것이다.

여행을 할 때 마음속에 담고 여행하고, 그 아내를 밤에 꿈을 꾸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 속에서 남편의 가슴속에 묻히는 것이다. 사랑은 강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다.

결혼 안에서 볼 수 있는 로맨스에 대해서 결론을 짓는 데, 결혼 밖의 로맨스가 아니라, 안에서의 로맨스에 대해서는 근원이 청교도 시작이 되었다.

-4 남편과 아내는 서로가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상처를 잘 싸매주기 위해서 하고,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평화 가운데서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절대로 거친 말을 하면 안 된다. 진정한 우정을 유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아플 대 어려울 때 서로를 향해 좀 더 노력, 서로가 나쁜 말을 하면서 공격적인 말을 하면 안 된다.

남에게 둘의 비밀을 말하면 안 된다. 팀웍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

사랑의 결과로 다른 사람을 돕고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2 남편의 의무

아내 다룰 때 독재자가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 길잡이 역할 했다.

월리암 구즈-남편이 예쁘지 아니한 아내를 얻게 되면, 상처가 있게 될 때 그 여인의 영혼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가장 최고이고, 가장 완벽한 여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임신했을 때 특별한 사랑을 해야 한다.

헨리 스미스-아내의 뺨은 남편의 주먹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남편이 책망할 때 사랑에 근거해야 한다.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면 안 된다. 죄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한 것이다. 여인에게 어떤 직언을 하게 될 때 개인적으로 사랑에 근거해 해야 한다.

절대로 그 여인이 화가 나 있을 때는 비난과 책망하지 말라,

이제 여인이 아내가 하는 모든 기능적인 면들을 다 수용해야 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가사에서 스스로 잘 이행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인이 특별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터인데, 음식을 맛있게 하지 않아도 가급적 크게 생각지 않아야 한다

매튜헨리-하나님께서 여인을 만들 때 머리로부터 만든 것이 아니고, 그들이 도 여인을 창조할 때 남편의 발로 창조 한 것이 아니다.

 

-3 아내의 의무

존경, 복종하는 것, 아내의 가장 중요한 사역을 도움자가 되는 것이다. 사업, 어려울 때, 아플 때

남편이 하는 일에 만족감을 가져야 한다

여인은 가사를 잘 운영해 나갔다.

검소해야 하지만 절대로 너무 큰 어려움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숙한 모습도 기쁨도 줘야하고, 정조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되야한다

토마스-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준비되고, 알맞은 것은 십자가 경험 할 때, 준비된 주신 위로자가 된다. 잘 되나갈 때 같이 있을 수 있는 동료,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동반자로 잘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ㅣ 저 나라에서 동반 되 후사가 되어서 귀중한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

 

질문 -캘리포니아에서 동성결혼이 인정에 대해서 ?

그리스도인들은 미국에 50주에 동성연애를 반대 한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68%정도 동성연애 반대한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소수의 업을 주장하는 법정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법을 제정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잘 모르겠지만, 팽팽한 대결이었다. 한 주를 장악할 수 있다는 힘을 가진다는 것은 안 좋은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정해주신 사회의 모습은

좀더 인본주의 적인 정신이 미국을 더 장악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으로 제지하지 않는 한 다른 주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내년에 민주당이 내년에 선출되면, 이제 아마 동성연애 문제가 더 앞서나갈 것이다.

제가 죽기 전에 목사로서 신분으로 동성연애자의 결혼을 축복하고 승인하지 않으면 정부가 목사의 직무를 박탈할지도 모를 날이 올지 모른다. 우리는 칼빈주의자로 전적 타락을 믿는다.

우리가 교회 역사를 볼 때 많은 청교도가 감옥에 갔다. 그러나 미국의 목사도 어떤 종류의 탄압을 받지 않는다.

핍박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 까 한다. 그러므로 예수로부터 오는 고난을 다 받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교인들이 건전한 결혼 생활 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을 위해서 기도 해달라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 캔슬될 수 있도록 기도 해달라

 

이혼의 문제??- 결혼, 이혼, 재혼에 같은 생각이었다.

신앙고백서에 문서화되어 있다. 거기에서 예외라는 구절이 마태19장에 9절을 밝힌다.

만일에 이혼을 허락한다면, 오로지 한가지에만 인내하는데, 성적으로 배우자가 신실하지 못할 때 가능하다.

성적인 문란이 결혼 생활을 많이 무너뜨리고 있다고 하였다. 다시 결혼 할 수 있는 근거가 주어진다.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가장 보수적인 관심을 견해를 갖고 있다. 만일에 혹시나 보수주의에서 나오는 말 가운데 어떤 경우든지, 간음도 절대로 이혼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자유주의 신학자이다

어떤 것이든지 죄의 크기를 축소하려는 것은 자유주의적 경향이다

간음의 문제를 여러 다른 죄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면 예수의 말씀은 거부하는 것과 같다. 실상

결혼 생활을 잘 보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을 어기게 되면 결혼 생활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실제적으로 이혼한 숫자가 많지 않다.

사실은 이러한 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고,

이혼은 죽음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혼이라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것이다.

온 세대를 막론하고 유사한 일이다

청교도는 다시 한 번 종교개혁자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환경에서 이야기 한 것이다

16세기 이후에 개혁을 추구한 사람들이 오늘날 까지 이혼과 재혼에 대한 생각을 가장 표준적인 생각으로 삼아온 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다면 현재 개혁주의의 문제가 될 것이다.

질문-노름과 여러 죄로 인한 감염된 문제는(술, 여러 가지 마약등) 이혼 사유가 되는가?

이혼은 사유가 안 된다. -청교도는 안 된다.

마19:9절에 보면 간음과 도박이 있을 때라고 하지 않는다.

혹시나 육체적 가혹 이 있다면 잠시 격리가 있다.

오로지 이혼은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질문- 목사가 이혼한 후에 목사직을 수행할 수 있는가?

결혼 한 경험한 있지만 목사님으로 복귀하는 일에 있어서 과연 이 사람이 간음을 행한 사람이냐 불이익을 당한 사람이냐? 동시에 가족을 잘 섬기고 아내가 잘못된 일을 행하게 된다면? 지속적으로 회개하고 있지 않다면 목사직으로 면직 당하지 않을 수 잇다. 성경에 불이익을 당한 편이 고통당한 것이 맞지 않는다.

반대로 목회자가 간음한 경우라면 가해자인 목회자는 위치를 신분을 포기해야한다

목회로서 범죄: 어떤 청교도는 영구적으로 회복되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빨리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목회직을 회복 허락 이전에 오랜 시간 두고 자숙하며, 회복해야 하기 때문에, 회복에 대한 고려한다면, 일이 있었던 때 어떤 환경이 있었는가 정황을 잘 확인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그러한 일로 행한 것과 실수로 한 전 행한 것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종합적인 것을 보게 되면 주위 사람과 교회 사람들의 마음의 일치가 있을 때는 가능하다

질문-성경에 지시한 경우가 아닌 경우의 이혼한 평신도는 교회 안의 중역 맡을 수 있는가?

회심하기 이전에 이혼 했는가? 아닌가?

먼저 이혼을 했는데: 불신자로서 이혼 한 후에 진정한 회심을 했다면

전에 죄를 진지한 마음으로 회개한다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중역 맡을 수 있으리라 본다

 

9. 청교도의 가정관

 

서론-청교도 목사님들에게는 가정이 매우 중요하다 가정의 일이 교회에 영향을 주고, 교회에 국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각 아버지들이 어떻게 영적인 지도자로서 가정에서 많이 가르쳐 왔다. 그 가운데 어머니도 자녀를 잘 가르쳐왔다 아이들에게도 어떻게 부모를 존경 하는가 가르쳐 왔다. 가정이라는 것은 모든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청교도들은 가정이 작은 교회로 보고, 확대해 생각하길, 성도로서 아이를 잘 자라하는 것은 교회에 유익을 주고, 사회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중요하다.

제이아이 패커는 -개혁주의적인 가정에 대한 유산으로 남겨준 것은 청교도가 한 것이다.

 

1.자녀는 하나님의 선물

시편 127-128이 가정에 관계된 것

가정에 구조에 관해--

아버지가 가정의 권위를 가진 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영적으로 지도적으로 가져야한다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근거로 아내는 남편의 권위에 복정해야 했다. 위치적으로 남편이 아내의 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 전체로 봤을 때 책임 져야 할 의무가 달랐다는 것이다.

동반자인 아내가 자식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똑같이 유사한 책임이 있음을 아내에게 전하려고 했다. 현명한 남편들은 이런 책임을 아내에게 맡겼다.

여러분들이 청교도의 가정에 있어서 아내가 많이 운영해 나갔다는 것을 알면 놀랐을 것이다. 아내가 달란트가 더 있었다. 경제적인 면도 아내에게 맡겼다. 부부가 서로 언약의 관계를 맡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언약에 입장에서 성경적인 자녀로 키우기 위한 것으로 합의를 봤다.

아이들은 이런 영적인 지도력에 순종해야 한다. 구속, 구원 얻기 위해 주께 돌아오는 것과 같다. 이러한 형식으로 청교도 가정이 조직화 되었다.

 

 

 

 

2. 자녀 양육의 원리

교육의 원리- 요즘에도 사용되는 원리가 있다 그러나 17세기로 돌아간다면 혁명적인 것들이다.

 

1-수태가 되었을 때부터 태교가 된다.

태아에서 있는 아이가 원죄를 지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시편 51편5절에 다윗이 고백한 내용이다. 임신하고 있는 동안에도 부모들은 이런 어린 아이들은 구원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이를 잘 보호하도록 기도해야 했다.

남편이 아내 임신 중에 친절히 대하지 않아 유산된다면 죄로 간주될 수 있다.

에를 들어 임신 중에는 말을 타지 말아야 한다. 임신한 여인 자신이 잘 보존하기 위해 책임을 져야한다

이제 그들이 생각할 때 음식 먹어 아이에게 해를 준다면 먹지 말고, 과식, 소식하지 말아야한다

 

다친 생아가 있다면 -아이 돌보는 첫 번째 책임은 어머니에게 있다. 어머니가 가져야 할 책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례이다. 월리암 구즈가 10p달하는 책에서 설명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유를 먹이는 것에 대해 12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 한다

어린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원리는 하나님 가정에 태어난 아이가 언약의 하나님에 속해 있다면 가정 하에 있는 것이다.

구약에 보게 되면, 유대인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할레 준다

신약에 는 어릴 적에 빨리 세례를 준다.

의식적으로 정식적으로 부모들에게 아이를 향한 언약적 책임을 수행한다.

청교도들이 어린 아이들이 세례 받는 것이 모두가 구원 받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두 가지 원라-하나는 언약에 속한 것, 언약을 수여 받은 것

언약에 본질 안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들어와야 했다. 성령 이 중생 시 언약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자 하는 사실을 어린 아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세례를 받습니다. 어린 아이가 고개를 듭니다. 그러나 저에게 구원을 이루시길 원합니다라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2. 가정에서의 권위

어린 아이가 훈계와 징계를 통해 받는다.

아이가 어릴 때에 시작을 하게 된다. 글을 읽지 못할 때도 성경을 들려주기를 해야 한다

아이가 읽을 수 있는 목적이 말씀을 읽게 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자녀의 교육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거룩한 삶에 목적을 둔다

어떤 선생님에게 이 아이에게 가르칠 까 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모든 하나님 경외하는 부부는 마음속에 하나의 비밀스런 것은 장차 이 아이가 목회자로 잘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이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틴에이저로 자라나게 되면 아버지가 아이에게 목회할 마음이 있는지 묻게 되는 것이다. 이 아이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데 기본적인 은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에 스스로 은사가 없다라는 확신이 없을 때 다른 직업을 찾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아는 도구-제일 처음에 성경에 대한 입문서를 통해 , 처음부터 끝까지 신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기초를 보게 되면, 예를 들어서

a.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우리 모두가 죄를 범했다고 나와 있다.

j 삭개오가 나무에 올라서 주님을 보려 했다.

종합적인 것을 보게 되면 아버지가 아이에게 예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일주일에 한 번식 문답을 통해 아이에게 교육을 시키고,

학교에서도 하나님 중신의 교육을 행했다.

교육이라는 것은 삼각형 구조가 된다

가장 위에 --가정, -기초가 된다. 교육이라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가정이다 하지만 교회가 가정교육을 돕다 학교는 교회를 도와 교회가 가정을 도울 수 있도록 했다

귀중한 것은 학교에 있던 가정에 있던지 교회에 있던지 간에 같은 내용으로 교육을 받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의 뇌리 속에 박혀 있는 것은 우리 부모가 이런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을 알고 학교 선생님들도 알고 있다. 목사님들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참되고, 진실한 것 인줄 알게 된다.

머리와 마음에 겸손한 신앙이 새겨져 있다

잘 교육을 하는 것과 스스로 모범된 삶을 통해, 자녀 교육하였다 얼굴 표정과 무례한 태도 화난 상태의 말들,

이러한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위의 것들은 좋은 교육을 방해하고,

부모는 모범적인 삶으로 교육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읽혀지는 많은 것들은 청교도들도 인정할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사람으로 말지만, 살아가는 것이 입보다 더 많은 말을 하게 된다

 

3. 자녀 양육의 원리

-가정 예배가 아주 좋은 교육이 된다.

한 주간을 통해 주일에 예배가 가장 중요한 것을 마찬가지로, 가정교육에 있어서 가정예배가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주로 하루에 두 번 예배 아침에 간다한 예배, 저녁에는 길게

4가지 순서의 가정예배

1. 아버지가 기도

어떤 아버지는 아이에게 시키기도 했다 5-10정도 했다.

자기가 기도를 통해 아이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모범이 되기 위해 기도한 것이다.

2. 성경읽기

주로 성경을 읽는 방법은 창세기-계시록 까지 순서로 읽는다

성찬이나 가족 중에 아픈 경우가 있다면 국가적으로 금식을 선포한 날이 있다면, 하지만 가족 일원 가운데 하나가 여행을 간 경우가 있다면 순서를 따라가는 것을 멈추고 성경 구절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3. 말씀에 근거하에 교훈을 들었다

신명기 6장 6절7절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11장 18-19절

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가정예배에 대해- 말씀의 가르침에 대해 주로 문답형식을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읽는 것에 근거해 아이의 나이에 맞도록 질문한다

그들의 반응에 따라 아버지가 또 반응을 주고받아 영적인 교제를 나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잘 교육하고자 한다.

구원 받지 아니한 것이 어떤 것이냐 , 마지막에 지옥에 빠진다.

위로의 말씀도 듣고 귀중한 것도 가르친다.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도 알게 된다

 

바이필드- 아버지가 가르쳐야 할 8가지의 사항

1-하나님에 대한 경외

2-성례전의 의미

3-하나님의 율법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4-하나님의 심판

5-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소망을 얻을 수 있나

6-성령이 무엇을 의미

7-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은 무엇인가

8-주일에 준 설교를 더 강화하는 것

9-시편 노래

 

118편의 의지하는 것이다 15절이다. 기뻐하는 목소리는 의의 천막에서 들려진다.

구약성경에서 텐트 안에서 백성들이 노랜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는 가정에서 노래 불러져야 한다

청교도의 원리-모든 가정에 속한 사람은 가정예배에 참석해야 한다. 만일 내 아이가 노래하는 것을 거부하면 노래하지 않으면 밥 안준다. 가정 예배의 거부자는 악마의 훈련-가정에서 실행한다. 지옥에 온상으로 보여준다.

훈련-아이 양육하는 데 본질적인 하나

아이들을 잘 ㅡ훈육하는 것이 아이들 교육에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만일에 어린 아이들이 완고한 고집을 갖고 있게 되면 나이가 들기 전에 깨버려애 할 의무가 있다. 그 때 막대기를 들었다. 이러한 때린 일을 할 때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해부학적인 관점에서만 했다

얼굴을 절대 때리지 말라, 훈련도 좋지만 지나치게 하는 것을 반대했다.

엄한 것과 관대한 면을 잘 조화해야 한다.

아이를 훈계한 후에 그 아이와 함께 기도해야 한다 안아주어야 한다

그것으로 종결지어야 한다.

 

4. 부모의 완전한 관여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있어 부모와 함께 상의

배우자 결정시나, 주로 아이들에게 5가지를 가르쳤다.

내 딸이나 아내와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나 하는 것이다.

소개 받은 에베소서 5장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이냐?

만일에 아이가 남자라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여자도 마찬가지

소개 받은 아이가 결혼 생활 할 수 록 성숙된 모습과 동기부여가 되어 있냐는 것이다.

사회 전반에 봤을 때 높은 지위나 낮은 지위나 사회 지위도 눈높이가 맞아서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상대자가 정말로 사랑의 대상으로 중요하게 느껴지는 지 두 사람 가운데서 불꽃 튀기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이 더 커져야 한다. 결혼한 후에는

청교도들은 아이들 교육에 큰 힘을 기울였다. 가정이라는 것은 유아원과 같다. 교회와 사회를 위한 장소라고 믿었다. 제이아이 패커가 말했다. 영국의 기독교도를 만든 것을 청교도이다. 영국의 신자 만든 것도 청교도이다

청교도는 실제적이다. 칼빈주의는 실제적이다

청교도가 완전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칠 것이 많다.

모든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것을 보는 시대다 자기의 의지를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언약을 의지하고 정말로 행복하다고 믿어야 하나님이 창조할 때 영광 돌리기 위해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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