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 마태복음 11장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 11:11)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줄 세우는 법을 배웁니다. 성적, 연봉, 집 평수는 물론 도덕성이나 온유한 성품, 나아가 신앙심마저 줄 세웁니다. 우리는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매 순간 내 위치를 확인하며 삽니다. 그래서 '큰 자', '작은 자'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열을 떠올립니다. 천국에서 누군가는 금면류관을 쓰고 누군가는 개털 모자를 쓸 것이란 우스갯소리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자본주의적 보상 체계와 계급 사회의 논리를 하나님 나라에 고스란히 투사합니다. 천국을 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고 완벽한 성과급 제도의 완성판쯤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안타깝게도 그 이상을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천국에 갔는데 옆 사람의 집이 내 집보다 커서 배가 아프고 열등감이 느껴진다면 과연 그곳이 천국일까요? 반대로 내 상급이 더 크다는 사실에 우쭐해하며 작은 상급을 받은 자를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이 진정 구원받은 자의 모습일까요? 비교와 질투, 시기심이 작동하는 곳이라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의 또 다른 버전일 뿐입니다.
2차원 평면의 존재가 3차원의 부피를 묘사할 언어를 갖지 못하듯 타락한 본성에 갇힌 우리는 천국의 크고 작음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이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크다', '작다'는 인간의 어휘를 차용하신 것은 이 땅의 기준이 천국에서도 이어진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지구만 벗어나도 체중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집니다. 체중계의 눈금을 기준으로 나누던 사람의 체급이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평생을 이 땅의 저울로 모든 것을 저울질하며 사는 데 익숙한 우리는 천국에도 동일한 저울을 들이대려는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이것은 크나큰 오해입니다. 더 큰 상급을 바라는 마음 이면에는 세상에서 못해본 상위 1%를 천국에서라도 해보겠다는 지독한 보상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내가 남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평생을 붙들고 씨름했던 그 측정의 기준 자체가 완전히 폐기되는 세계입니다. 선이 아무리 길어도 면의 차원에서는 넓이가 0이고 면이 아무리 넓어도 부피의 차원에서는 부피가 0이듯 이 땅의 크고 작음의 차이, 길고 짧음의 차이가 결국 0에 수렴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이 땅과 천국에서 우열의 전복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열을 가리는 잣대 그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차원 낮은 인식과 서열 의식을 해체하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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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Q8ihCSAo04?si=q4nWySTMEJMbTL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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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경션 선생님 묵상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여환숙 선생님, 여기저기 다니며 댓글로 격려해주시는 큰 마음 깊이에 존경과 감사를 올리며 큰 힘을 얻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삶의 방식을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