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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그 무엇을 경험하고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는 중요한 접근 수단의 하나이다.
^ 개입하는 인간은 기록할 수 없다. 즉 기록하고 있는 사람은 개입하지 못한다.
^ 사진을 찍는 행위가 허구적인 소유의 행위이며, 실재가 아닌 허구의 강간인 것과 마찬가지인 이치다.
사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가정(假定)된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사진의 매력
이며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 19세기의 프랑스 미학자이며 시인이고 가장 논리적이었던 말라르메(Mallarme)는,
"세계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책으로 끝맺기 위해여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오늘날 모든 것은 한 장의 사진으로 찍히기 위하여 존재한다.
^ 뉴욕의 근대미술관이 출판한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사진첩의 머리말은 휘트먼의 글에서 '몇 줄을
인용한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미국 사진계의 가장 유명한 탐구 테마로 남아있는 말이다.
「세계의 존엄과 미는, 세계의 그 어떤 미세한 구석에도 깃들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
대수롭지 않은 것- 벌레, 속된 사람, 노예, 불량배, 잡초, 폐기물에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존엄과
미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 언젠가 부뉴엘(Bunuel)은 '왜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세상이 우리가 생각되어지는 최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였다.
아버스는 그 무엇인가 좀더 간단한 것-이 외에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 다른 세계는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로 이 세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버스는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
처럼 '색달리 보이는' 사람을 찍는데 흥미를 가졌지만 소재는 생활 주변에서 부족함 없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다.
^ 라이히(Raich)에 의하면 피학대 음란주의자(masochist)의 취미는 고통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의하여 강렬한 감각을 얻고 싶다는 기대에서 오는 것이다.
정서라든가 감각의 불감증을 앓는 사람들은 다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보다는 고통이라도 느끼는 편이
좋을 것이다.
^ 보들레르(Baudelaire)에 의하면 사진가는 도시 특유의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답사, 활보, 순회하는 고독한
산책자이며 도시에 있는 관능적 향락의 극에 달한 풍경을 발견하기 위하여 으슥한 곳을 몰래 들여다보는 그런
취미를 가진 방랑자로서 사진기로 무장한 기록자이다.
^ 사진술은 운명적으로 사라져 가는 인간의 목록이다.
이제 손가락 끝으로 찰칵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느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데 충분하게 되었다.
사진은 사람들이 반박의 여지없이 거기에 있으며, 인생의 특정적인 연령에 있음을 나타낸다.
또 한 순간이 지난 뒤에는 벌써 산산조각이 나거나 변화하여 각각 독립된 운명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나 사물
을 긁어 모은다.
^ 까르띠에-브레쏭에게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세계의 구조를 발견하는 것, 형체의 순수한 기쁨을 탐닉
하는 것, 이 혼돈에는 모두 질서가 있다'라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이었다-
완전한 세상 따위를 입에 담을 때면 아무래도 사람을 살살 녹이는 말을 한다는 것은 부득이하다.
세상의 완전성을 전시한다는 것은 사진을 지지함에 있어 너무도 감상적이며 비역사적인 미적 관념이었다.
^ 사진에 관하여 쓴 것으로 가장 좋은 것은, 사진에 이끌리기는 하지만 사진이 어쩔 수 없이 미화해 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 발터 벤야민의 글이다 .그가 1934년, 파리에 있는 파시즘 연구소에서 했던 사진기에
대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아파트는 쓰레기더미든간에 그런 것을 사진으로 찍으면 반드시 미화해 버리게 되었다. 하천에 놓은 댐
이나 전선 공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것들 앞에 서면 사진술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라는 것 이외
에는 말할 것이 없다. ......그것은 가난 그 자체까지도 당세풍(當世風)의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다룸으로써
즐거움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 까르띠에-브레쏭은 과녁을 맞히기 위해 과녁에 집중해야 하는 선(禪)의 경지에서 활을 쏘는 궁수(弓手)에
자기를 비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은 앞이든가 뒤에 할 것이고, 실제 촬영 중에는 절대로 생각하지 말라"고
그는 말한다.
^ 사람은 현실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영상을 소유할 수 있으며 영상에 소유당할 수도 있다-
그것은 프랑스의 소설가 프루스트에 의하면 사람이란 현재는 소유할 수 없지만 과거는 소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 당신의 사진은 그것을 진심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인생 기록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하는 방법을 보고 영향을 받을는지 모르며, 자신이 독자적으로 소유한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사용하는 일조차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를 찾아야 할 것이고, 니체가 "쇼펜하워의 글을 막 읽었소.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을 잊어버려야 하겠소"라고 말한 것은 이런 뜻이었다.
타인의 방식을 자기와 자기의 상상력 사이에 끼어들게 하면, 특히 그것이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격렬성을
가졌을 경우 그 얼마나 방심하면 안되는가를 니체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Paul Strand
^ 인간의 외면은 내면의 그림이요, 얼굴은 전인격의 표출(表出)이며 발로(發露)라는 추정은 그 자체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이다.
때문에 그것을 추진시켜도 틀림없는데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을 언제나 열심히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사진은......우리들의 호기심을 완전히 만족시켜 준다. -Schopenhauer
^ 말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라면 굳이 무거운 사진기를 가지고 다닐 필요성은 없다. -Lewis Hine
^ 마르세유에 갔다. 생활비가 적게 들었고 하는 일도 즐거웠다. 라이카[사진기]를 막 발견했을 무렵이다.
그것은 나의 눈의 연장으로 되었다. 때문에 그곳에 머물면서 라이카를 손에서 놓아본 일이 없었다.
반드시 삶을 포착해 보일 것이다. 생명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그대로를 사진기에 담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하루종일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어떤 상황의 에센스 전체를 포착하여 한 장의 사진속에
담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Henri Cartier-Bresson
^ 진정한 사진가가 되는 일은 마치 사자를 부리는 사람이 사자를 부리는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한
일이 아니다. -Dorothea Lange
^ 내가 단지 호기심이 강하다는 것만이었다면 그 누군가에 대하여 "댁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신상 이야기를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는 좀처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나를 보고 '미친 사람 같다'고 말할 것이고 게다가 몹시 경계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사진기는
통행허가증과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정도로는 주목을 받고 싶어하며, 또 그것은 주목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행동이다.
-Diane Arbus
^ 사진은 세계 어디에서도 이해되는 유일한 '언어'요, 모든 나라와 문화의 가교가 되어 인류를 연결시킨다.
사진은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고-인간이 자유로운 곳에서는-인생이나 사건을 충실하게 반영하며 타인의 희망
이나 절망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인류의 인간성,
비인간성의 목격자가 된다. -Helmut Gemshiem
[Creative Photography](1962)
수잔 손탁의 '감수성'
1. On Photography
손탁은 우리에게는 그녀가 1977년에 내놓은 「On Photography」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손탁은 미국의 중류 부르주아 출신 사진작가 다이안 아버스에 주목합니다.
아버스의 사진은 세상의 긍정적인 외양의 뒷면을 파고듭니다. 그녀의 사진은 갖가지 기형인간들이나 혼혈인들,
부랑자들이 뒤섞여 매우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손탁에 따르면 시인(詩人) 월트 휘트먼은 '세계의 존엄과 아름다움은 세계의 그 어떤 미세한 구석에도
깃들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문화의 민주적인 전망에 주목하면서, 보편적인 이상이 실현되는 공간인 미국이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시편(詩篇)'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1920년대 이후 사진가들은 종래의 서정적인 주제를 벗어나 평범하고 품위없는 것들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사진가들의 이런 경향은 앞서 휘트먼이 가졌던, 아름다움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인식을 실체화하는 것인데,
동시에 이는 '원래부터 주어진 피사체에 대해 어떤 가치를 부여하려는 것을 억제할 수 없는' 경향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일상에 따뜻한 정감을 덧입히는 데 반해,
아버스의 사진은 일종의 '반휴머니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녀의 사진은 어설픈 감상(感傷)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세계를 균등하게 다루라는 휘트먼식 철학을 지킨 셈이긴 합니다.
아버스의 사진은 당시 미국 중류 부르주아의 피학증적인 속죄의식을 반영합니다.
결핍된 이들, 구원받지 못하고 구렁텅이에 있는 이들에 대한 속죄의식. 애써 부정하려 하지만 사실 자신들이
세상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방조해 왔음을 알고 있는 데서 연유하는 속죄의식. 균등하고 범속한 세계가 빚어
내는 기괴한 영상의 압박. 마조히스트들은 정서적 불감증을 벗어나려고 이러한 자극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뭔가를 느끼는 대신 세상살이에서 아픔을 좀더 덜 느끼기 위해 이러한 영상을 바랍니다.
손탁은 아버스의 사진이 '교양있고 자유주의적 좌파에 속하는 미국인의 대부분에게 공통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어떤 정치적인 기분과 공모관계에 있다'라고 합니다[손탁, 위의 책].
손탁의 「On Photography」의 주된 내용은 물론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미지의 범람에 따른 생생한 감각의
결여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책을 관통하는 내용은 60년대 미국진보진영과 중류계급의 윤리의식과 그것이 현대문명의 제 양상과
엮어내는 복잡하고 회고적이고 퇴행적인 문제입니다.
손탁은 사진을 비롯한 영상이 인간을 지육(智育)함으로써 파생되는 양상들에 대해 냉정하게 서술합니다.
1945년 손탁이 열 두 살이었을 때, 그녀는 산타 모니카의 어느 책방에서 우연히 다하우 유태인 수용소의 학살
광경을 찍은 베르겐 벤젤의 사진을 접하게 됩니다.
이 사진은 그때까지 동화 속에 유령이 있고 세상이 즐겁고 명료한 것이라고 여기던 소녀 손탁의 인생을 두 동강
이로 나눠 버렸습니다.
"그 사진을 보았을 때 나의 마음 속에서는 무엇인가가 무너졌다[손탁, 위의 책]."
하지만 그 충격은 손탁 자신도 밝혔듯이, 수 년 정도밖에는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도처에는 충격적 영상이
이제 '포화점'에 이르렀습니다.
"사진은 무엇인가 낯설고,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 주는 경우에서만 충경을 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름을 할 때 판돈이 자꾸 올라가는 것처럼, 충격을 담은 사진이 자꾸 퍼져 나가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전율을
느끼지 않게 된다[위의 책]."
이 지점에서 손탁은 비판적인 태도를 분명히 합니다. 사진은 하나의 매체에 불과하고,
매체 자체가 진보적이거나 윤리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진은 도덕적 입장을 창출
하기보다는 기존의 도덕적인 태도를 강화하고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편집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상이한
목적에 복무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에 의한 현실묘사는 폭로하는 것보다는 언제나 은폐시키는 쪽이 많은 것이다[위의 책]."
사진과 영상의 충격적이고 신기한 것, 생경한 것으로 다가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영상의 힘과 함께 세계와
사물의 생생함 또한 사라집니다.
2. Camp
수잔 손탁이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복잡하고 방대한 세계입니다.
이 세계를 어떻게 개괄할 수 있을지 사실 막막합니다.
손탁이 문명(文名)을 날리기 시작한 건 그녀가 31세 때인 1964년 <파르티잔 리뷰>에 <캠프에 관한 노트
(Notes on 'Camp')>를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캠프'라는 말은, 손탁의 이 글에 대해 모 메이어 같은 퀴어(queer)진영의 평자들이 공격한 것처럼[이영철이
엮은 「21세기 문화 미리보기」에 실린 손탁의 <캠프란 무엇인가>와 모 메이어의 <손탁의 입장에 대한 비판 :
캠프의 담론을 수정한다>], 애당초 동성애적 감성과 실천을 의미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탁은 자신의 글에서 '캠프'를 동성애적 영역을 넘어 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대적인 어떤 감성을
가리키는 말로 파악했습니다(이에 대해, 모 메이어 같은 이들은 손탁이 캠프라는 말의 의미의 외연을 동성애
정체성의 바깥으로 확장시켜 버린 셈이라고 비판합니다).
손탁에 대해 정리한 강준만 교수는 '캠프'가 원래 호모들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슬랭을 [손탁이]일반화시키
고자 시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강준만, 「이미지와의 전쟁」중 <수전 손택과 '감수성의 문화'>].
손탁은 캠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58개의 단상으로 나열합니다. 그녀가 말한 대로 감성이나
취미(taste)는 '체계의 틀 속에 밀어 넣을 수 있거나 서툰 증명도구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손탁, 위의 글].
손탁이 설명하는 캠프는, 역사적으로는 19세기 유미주의의 계승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자연적인 것, 즉 기교와 과장에 대한 사랑입니다. 내용보다 스타일을 강조하고 정치적인
것에 무관심한 것입니다.
댄디(dandy)가 문화의 문제에 있어서 19세기에 나타난 귀족 대용물이듯 캠프도 현대의 댄디즘입니다.
캠프는 대중문화 시대에 어떻게 댄디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입니다.
캠프 감성의 중요한 요소를 구축한 사람은 (손탁이 그의 단상을 줄곧 인용한)오스카 와일드입니다.
캠프는 억누를 수 없는, 사실상 통제되지 않은 감성에서 비롯되지 않은 듯한 어떤 것입니다.
성실함이나 고지식함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어떤 예술작품이 탄탄한 서술적 구조를 이루고 있으면 그것은
캠프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들은 대부분 드라마라는 면에서 성공적이기 때문에 캠프가 아닙니다.
반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라도 그의 전형적인 경향에서 다소 비껴난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 1. 2)」은
캠프가 될 여지가 있습니다.
또, 아르 누보 미술은 캠프지만 아르 누보에 영향을 준 블레이크의 소묘와 회화는 캠프가 아닙니다.
재미있는 건 캠프가 된 예술은 애초 자신이 캠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자기들 딴에는 진지하고자 했던 것들 중에 캠프를 찾을 수 있습니다(반면 고의로 캠프가 되려 했던 시도
들은 대개 부자연스럽고 서툰 결과만을 낳는데 손탁은 히치콕의 영화들 몇몇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르 누보와 바우하우스는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비참여적인, 진지
하지 못한, '유미주의자의' 시각을 시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들 상반된 요소의 공존 - 정치적, 도덕적 내용을 추구하려는 성향과 그럼에도 그것과는 상관없는
듯 드러나는 유미주의적 취향의 공존 - 에 대한 손탁의 예리한 통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르 누보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모리스의 진지함과 낭만적인 성향에 대해 손탁은 '캠프'라는 용어를
통해, 거의 스쳐 지나가는 듯 하는 중에도 심도깊은 이해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수잔 손탁의 '감수성'
3. Against Interpretation
1966년 손탁은 평론집 「Against Interpretation」을 출간합니다(<Notes on 'Camp'도 여기에 함께 실린 글
입니다). 이 책의 타이틀 에세이 <Against Interpretation>에서 손탁은 예술작품의 내용에만 집착해 그것을
해석하려는 시도들을 일종의 부르주아적 속물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비평적 입장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손탁은 해석의 속물주의가 문학에서 가장 심하다면서, 음악·영화·무용·건축·회화·조각 등과 같은 우리 시대의
모범적 예술은 실제로 내용이 훨씬 적으며, 도덕적 판단에 대해 더욱 냉담한 것이라고 합니다.
해석하려는 계획은 대개 반동적이고, 마치 자동차나 중공업의 매연이 도시의 대기를 오염시키는 것처럼 예술
에 대한 해석의 범람은 우리의 감수성에 독이 해악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는 육체적 활력과 감각적 능력의 희생 위에 지성만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전형적인 모순에 사로잡혀
있으며, 예술에 대해 지성이 품은 증오가 해석이라는 행위로 발현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해석이란 세계 자체에 대한 지성의 복수이며 해석한다는 건 대상을 빈곤화시키고 세계를 위축
시키는 것입니다.
현재의 문화의 기반은 일종의 과잉, 생산과잉이고 그 결과 우리의 감각적 경험은 점차로 민감성을 잃고
있습니다. 현대생활의 물질적 충만과 인구과잉 등의 제 요소가 함께 작용하면서 우리의 감각적 능력을 둔화
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작금의 비평의 임무는 우리의 감각, 우리의 능력이 처산 상황을 살피고 평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술에 대한 모든 해설과 논의는 예술작품을 - 그리고 보다 포괄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 그 자체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삼아야 합니다.
비평의 기능은 작품 그 자체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지, 작품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해석학' 대신에 감각적이고 (거의) 표면적인 '에로틱스(관능미학)'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손탁의 「Against Interpertation」(일역본) 과 강준만의 「이미지와의 전쟁」을 참조].
4. 해방된 감성?
그녀의 글을 읽고 있자면 그녀는 그야말로 감성이 해방된 인간, 분방한 여성인 듯 보입니다.
실은 그렇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감성의 해방을 주장하는 그녀의 언어는 대단히 명료하고 정제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매혹적인 건 그녀가 드러내는 '투명한 지성'때문입니다.
즉 감성적일 것을 주장하는 그녀는 결코 감성에 자신을 그대로 내맡기질 않습니다. 그
녀에게서는 대단히 이성적이고 차분한 기질이 엿보이고, 실제 그녀 자신은 다소 뻣뻣해 보이기까지 할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허버트 미트갱이 1980년에 그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읽고 이런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트갱의 질문 : 당신이 쓴 모든 형태의 저술에 공통적으로 내재해 있는 주제는 무엇입니까?
손탁 : (즉석에서 무뚝뚝하게)문학과 사회죠.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대답의 내용만으로도 매우 팍팍한 느낌을 줍니다.
미트갱은 그녀가 아침 식탁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마치 중요한 성명서라도 발표하는 것처럼 말한다고 했습니다
[허버트 미트갱, 「작가를 찾아서 : 세계 대문호 66인과의 만남」].
「Against Interpertation」의 일본어 번역자 다카하시 야스나리(高橋康也)가 이 책에서 비교적 최근인 1994년
에 손탁을 도쿄에서 만난 이야기를 짤막하게 덧붙이고 있는데, 슬몃 웃음이 나오더군요.
(1994년으로부터)10년여 전 도쿄에서 만났을 때와 비교했을 때, 손탁은 조금만 틈을 보이면 신랄하게 파고드는
그 날카로움은 여전했지만 그것에 덧붙여서 일종의 호쾌함과 유머가 갖춰진 것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1994년이라면 손탁의 나이 60이 넘었을 때입니다. 그 나이에야 비로소 유머가 붙었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젊었을 때엔 어땠을지 거꾸로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저는 당신이 이야기하듯 그 농담을 잘 그리고 그대로 전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그 농담을 끝냅니다. [...]
그러나 전 제가 이 농담을 얘기해 줌으로써 당신이 느낀 만큼의 즐거움을 느꼈는지 의구심이 생깁니다. 저
자신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은 기술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전 재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단어들을 가지고 말을 잘 둘러댑니다. 그건 단어를 사용하는 제 나름대로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 농담은 절대로 저의 것이 아닙니다. [...]
농담에는 농담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펑 하고 나는 소리처럼, 또는 웃음, 재채기처럼 퍼집니다.
그건 오르가즘 같고, 작은 폭발,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나는 여기 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농담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충분합니다. 저는 명랑하고 그 농담을 전해 줄만큼 표현력이
있습니다." - 손탁의 소설 「화산의 연인(The Volcano Lover)」에서)
손탁의 비평활동과 지적 여로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양상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감성과 그것을 견제하고 조직화하는 - 물론 그러기에 앞서 감성과 모순을 일으켜 충돌했을 -
그녀의 어떤 이성적 기제들.
"나는 캠프에 강하게 이끌리지만 동시에 그와 맞먹을 정도로 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또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감각이 마음
깊이 녹아 들어간 사람이라면 그것을 분석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손탁의 <캠프에 관한 노트>(일역본)]."
하지만 다른 쪽에서 손탁은 '자신이 숭배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글을 쓰지 않으며 글을 쓸 때엔 열성과 당파성
을 갖고 쓴다'라고 고백했습니다[강준만, 위의 책]. 또 그녀의 사상의 엄격함은 늘 이상하게 그리고 흔쾌히
감각과 취향으로 빠져드는 것에 의해 완화되어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같은 책].
5. 스타일 그리고 나머지
<Against Interpretation>의 도입부에서 손탁은 자신이 그리도 열광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
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천박한 사람들뿐이다. 세계의 신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 속에 있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의 「거울의 역사」에 인용된 시몬 베유의 글을 인용하면서, 손탁에게서 한 발짝 접을까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은 거울을 보고는 자신이 바로 그 모습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못생긴 여인은 그게 다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손탁은 매우 아름다왔기 때문에 그녀의 젊었을 적 별명은 '전위예술의 나탈리우드'였습니다)
2002년 6월 18 - 19일 phalanx
(김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