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이태원 우사단길, 다양성 품은 공존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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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이태원 우사단길을 걷다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서울 이태원은 용산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태원’이라는
문화적 특징을 공유하는 지역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에 의하면 ‘이태원’은 남산 남쪽의 이태원1동과
그 아래의 이태원2동 그리고 한남동을 포함한다. 때로는 이태원2동 남쪽의 보광동까지 이태원 지역에 포함하기도 한다.
이태원 지역의 여러 문화적 특징 중에서도 ‘다문화 공간’을 가장 대표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아주 오래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이태원 지역은 고려 말 귀화한 거란족과 여진족이 정착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방인이 거주해온 사실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더라도 이태원 지역을 조금이라도 걸어본다면 뭔가 이국적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이태원 지역은 분명 한국임에도 때로는 한국 같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태원 지역은 폐쇄적인 시선으로 이방인을 바라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태원 우사단길이 그렇다.
(2021. 05. 03) 한남동 남산1호터널 입구 근처에서 바라본 이태원. 이슬람 서울 성원이 가장 눈에 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03) 한남동 남산1호터널 입구 근처에서 바라본 이태원. 제일기획과 이슬람 서울 성원이 있는 곳은 서로 다른 문화적 특징을 보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태원 우사단길의 이슬람 문화
우사단(雩祀壇)은 가뭄이 계속될 때 하늘에 비를 빌어 풍년이 들도록 기원하던 제단을 말한다.
서울지명사전에 의하면 용산구 보광동 인근에 기우제(祈雨祭)와 기설제(祈雪祭)를 지내던 우사단이 있었다고 전한다.
우사단길은 보광초등학교 입구에서 시작하는 ‘우사단로10길’을 의미한다. 이 길에 들어서면 우선 간판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로마자 알파벳으로 쓰여있기도 하지만 아랍어 같은 낯선 문자로 쓰인 간판도 많다.
물론 한글과 함께 쓰여 있어서 무슨 가게인지 잘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와 아랍권 나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역 회사들과 여행사들, 인도 요리와 터키 요리를 파는 음식점들,
그리고 할랄 식재료를 갖춘 식료품점들이 우사단길 양쪽을 가득 채우고 이어진다.
간판만 본다면 우사단길은 이슬람 거리로 보인다.
(2021. 05. 03) 이태원 우사단길의 가게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03) 이태원 우사단길의 가게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특히 우사단길 초입에 있는 ‘이슬람 서울 성원’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인다.
이슬람 서울 성원은 1969년 5월 한국정부가 약 1,500평의 성원 건립 용지를 한국 이슬람교 측에 기부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국가가 건립 비용을 지원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74년 10월 착공했고, 1976년 5월 21일 개원한 한국 최초의 이슬람 성원이다.
지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낯설게 보이는 이 종교시설은 당시 우리나라와 중동 산유국들과의 역학관계를 잘 보여준다.
당시 중동 산유국들은 우리나라 외화벌이의 1등 공신이었다. 특히 우리나라 건설회사들과 노동자들이 많이 진출해 있었다.
그런데 세계 에너지 위기가 닥치자 중동 산유국들과의 관계 강화가 필요했고 그 방편으로 이슬람 성원 건립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여러 자료에 의하면 이태원 우사단길에 이슬람 국가 출신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오게 된 것은 1980년대 말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출신 무슬림 노동자들이 국내 유입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1990년대 초에 이들에게 식료품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가 이슬람 서울 성원 근처에 들어선 게 이슬람 거리가 된 계기라고.
(2021. 05. 03) 우사단길의 '이슬람 서울 성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03) 이태원 우사단길의 '이슬람 서울 성원'.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이태원, 이방인들의 구역
이태원 주변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지역은 이방인들이 들어와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특히 개항 이후 계속 주둔해 온 외국군대의 영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조선말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곳이 지금의 용산고등학교 자리이고, 을사늑약 이후 일본은
용산에 군사기지를 조성한다. 그 배후 지역인 이태원에 일본인들을 위한 주택단지와 상업시설이 들어선 계기가 된다.
해방 후에는 용산의 일본군이 떠난 자리에 그대로 미군이 주둔한다. 전쟁 후에 용산 근처 이태원은 본격적으로 기지촌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용산기지 주둔 미군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이태원 외국인 지형은 조금씩 바뀐다.
특히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서구인뿐 아니라 일본인과 중국인들까지
이태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우사단길의 ‘이슬람 서울 성원’ 근처에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업소들이 늘어나자 이태원은
중동국가와 서아시아는 물론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이슬람교도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2021. 05. 03) 이태원 우사단길의 할랄 식재료를 파는 한 가게.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할랄 식품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어긋나지 않게 만든 이슬람교도에게 허용된 식품을 말합니다.
이 지역 가게에서 파는 고기들은 거의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수입한 할랄 식품입니다.”
이슬람 서울 성원 근처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후르시드(Sharipov Hurshd)’ 씨의 말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지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유학생과 회사원을 거쳐 사업을 한 지 6년 차라고.
“우즈베키스탄 사람과 중동 사람은 물론 아프리카와 미국 사람들도 찾아옵니다.
무슬림들이 좋아하는 식료품은 다 있으니까요. 간혹 한국인들도 할랄 고기를 친환경 제품이라며 사러 오기도 합니다.”
취재차 방문한 우사단길의 가게들은 기자를 경계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친절했다.
특히 파키스탄 식료품 가게의 주인 ‘왈리 칸’ 씨는 중동 사람들이 즐겨 먹는 대추야자와 차를 권하기도 했다.
찾아온 손님을 그냥 보내지 않는 게 고향의 관습이라며.
이태원, 떠나온 사람들을 받아준 곳
이태원은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기도 하지만 고향을 떠난 한국인 이주민들이 정착한 땅이기도 하다.
그들은 해방 후와 전쟁 후에 남산 남쪽 산등성이와 한강을 내려다보는 구릉에 집을 짓고 정착을 하기 시작했다.
그 흔적은 이태원 지역에 많은 골목과 계단으로 남아있다.
이태원 우사단길도 마찬가지다. 도로 양편에는 외래인과 이주민들을 위한 상업시설이 들어섰지만 골목들에는 낡고
오래된 주택들이 경사진 계단을 사이로 늘어섰다.
남쪽을 향한 계단들 사이로는 한강이, 북쪽을 향한 계단 너머로는 남산이 보인다.
(2021. 05. 03) 이태원 우사단길의 한 골목. 멀리 남산 자락이 보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03) 이태원 우사단길에서 바라본 남산.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1. 05. 03) 이태원 우사단길에서 바라본 한강.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빼곡히 들어찬 집들은 답답하게 보이지만 골목 사이로 보이는 한강과 남산의 풍경이 그 답답함을 풀어주는 듯하다.
아마도 이곳에 정주하려 마음먹은 이주민과 외래민들은 그 풍경에서 떠나온 고향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한강이 보이고 남산이 보이는 풍광 때문인지 우사단길의 목 좋은 건물에는 특색있는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런 모습들이 우사단길 초입의 이슬람 가게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낯선 변방의 거리를 걷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우사단길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정주한 이태원은 많은 사연을 품은 외국인들과 이주민들을 받아준 제2의 고향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외래인의 정주 문화를 특별한 경험으로 향유하려는 한국인들을 불러들이는 곳이 되어가고도 있었다.
물론 이 모습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2021. 05. 03) 이태원 우사단길의 재개발을 예고하는 플래카드.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