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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불탑에서 본 녹야원 일대> |
사진설명: 부처님은 최초의 가르침을 이곳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상대로 펼쳤다. 2002년 4월2일 오후2시 촬영했다. |
대보리사 대탑을 처음 본 순간. 아름답고 위엄 있는 모습에 정신을 완전히 빼앗겨버렸다. 아침·점심·저녁마다 참배하며, 보고 또 보았다. 밖은 무지하게 더워도 대보리사 안은 덥지 않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깨달음을 이룬 그 날의 영광'을 생각한지 3일. 드디어 붓다가야를 떠나야할 날이 닥쳐왔다.
마침내 2002년 4월2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사진이라도 찍듯 구석구석을 살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자마자 후다닥 대보리사로 갔다. 아침 먹는 것도 잊고 구석구석 헤맸다. 부처님을 보호하기 위해 또아리 틀고 있는 '무찰린다 용왕 조각'을 살피는데, 성도한 부처님께 최초로 공양한 사람이 문득 떠올랐다. 상인 타풋사와 발리카. 이름이 생각나자 머리 속은 다시 2,60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로
<마하박가>에 의하면 그들은 마침 웃카라 마을에서 중부 인도로 가는 도중이었다. 붓다가야 라자야타나 나무 밑에 앉아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던 부처님을 보고, 보리죽과 꿀을 공손하게 바쳤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의 보리죽과 꿀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저희들은 긴 밤 동안 즐거움과 안락함을 누릴 것입니다."
부처님이 음식을 다 들자 두 상인은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과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저희들을 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며 최초의 신자가 됐다.
그로부터 7일 뒤. 부처님은 아자팔라 니그로다 나무 아래서 홀로 선정에 들어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내가 도달한 이 법은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숭고하다. 단순한 사색에서 벗어나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반면 사람들은 집착하기 좋아하며, 아예 집착을 즐긴다. 그런 이들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도리와 연기의 도리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비록 법을 설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나만 피곤할 뿐이다." 부처님은 가르침 펴는 것을 망설였다. '집착하는' 사람들이 '깨달음'을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오늘날의 우리들 눈엔 이처럼 '희의(懷疑)하는 부처님'이 대단히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깨달았지만' 부처님은 여전히 인간. 망설임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을 '집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할 때, 주저되는 것은 당연하다.
<범천권청> |
사진설명: 설법을 주저하고 있던 부처님 앞에 나타난 범천 사함파티가 설법할 것을 강력히 간청하고 있다. 파키스탄 간다라 출토. 대영박물관 소장. |
梵天 사함파티 거듭 설법 간청
범천의 간청에 설법을 결심·허락한 부처님은 사함파티에게 말했다. "귀 있는 자들에게 불사의 문을 열겠다. 죽은 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제사는 그만두어라. 범천아, 나는 단지 피로할 뿐이라고 여겨 사람들에게 덕스럽고 숭고한 법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 마침내 전법의 시동이 걸린다.
부처님이 만약 당시 설법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면 어찌 됐을까. 범천의 '간청'을 묵살하고, 가르침을 펴지 않았으면 불교도·한국불교도·우리도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 설법할 것을 결심했지만 곧바로 문제가 생겼다. "누구에게 제일 먼저 가르칠 것이냐"가 떠오른 것. 첫 설법을 들은 사람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설법하기도 힘들어지고, 결국 '깨달음'은 부처님 자신만의 것으로 끝나고 만다.
<부처님이 첫 설법한 녹야원 전경> |
2002년 4월2일 아침 7시. 상당히 이른 시간에 '부처님이 간 길'과 '첫 설법'을 생각하며,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로 출발했다. 인도는 역시 인도였다.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의 600리 길은 덥고도 먼 길이었다. 아침이고, 에어컨 달린 차를 타고 가는데도 그랬다. 하물며 부처님 당시는 어떠했을까. 가는 도중 길 가운데 무질서하게 정차된, 끝이 보이지 않은 트럭 행렬을 만났다. 트럭 안에서 조는 운전사, 길바닥에 앉아 다른 운전사들과 이야기만 하는 운전사 등 각양각색이었다. 어느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240km 달려간 부처님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인도의 트럭 운전사들은 대개 밤잠을 차안에서 잔다. 목적지로 가다 밤이 깊어지면 아무 길에서나 정차"한단다. 한 운전사가 차 세우면, 그것을 신호로 다른 운전사들도 잇따라 앞뒤로 차 세우고 잠을 잔다. 제일 앞차부터 움직여야 비로소 길이 트인다. 길이 막히건 말건 트럭 운전사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새벽 시간대의 아침엔 곳곳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들도 느긋하게 기다렸다. 많이 기다려봐야 몇 시간. 붓다가야에서 출발한 부처님은 바라나시에 도착하기 위해 최소 열흘은 걸었을 것이다. 산 넘고 물 건너는, 쉽지 않은 그 길을, 걸어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차된 트럭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차에서 내려 길옆에 앉았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새벽 안개가 자욱했다. 마치 그 사이로 부처님이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걸으면서 부처님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먼저 깨달은 이의 외로움을 느꼈을까, 녹야원에서 무엇을 어떻게 말 할 것인지를 고민했을까.
사르나트로 가던 부처님은 도중에 아지비카 교파 소속 우파카라는 고행자를 만났다. 당당한 부처님의 모습을 본 우파카는 물었다 "그대의 감관은 매우 깨끗하고, 모습은 아주 밝습니다. 그대는 누구를 모시고 있으며,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또 그대는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따르겠는가.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내가 최고의 스승이다.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고 열반을 얻었다. 법륜을 굴리기 위해 나는 카시로 간다.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의 북을 울리기 위해"(마하박가)라고 부처님이 답했다. 그러나 우파카는 "그럴 수도 있겠군요"라고 말하곤 다른 길로 사라졌다. 첫 설법 대상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가버린 것이다.
아지비카 교도 우파카 만나
<갠지즈강> |
사진설명: 사르나트로 설법하러 간 부처님이 건넜을 바라나시의 갠지즈강. |
부처님이 5비구가 머물고 있던 곳에 도착하자 비구들은 서로 속삭였다. "친구들이여! 저기 사문 고타마가 오고 있소. 그는 사치스럽게 지낸 까닭에 몸은 피둥피둥 살쪘고, 감각도 예민해졌으며, 혈색이 좋아져 이리로 오고 있소. 우리는 저 사람에게 예배 따위를 하지 맙시다. 다만 그는 위대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여기에 자리잡을 정도의 가치는 있소. 그러니 그에게 자리만은 허락합시다."(니다나 가타).
막상 부처님이 다가오자, 그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일어나 부처님을 영접했다. 한 사람은 그릇과 옷을 받아들었고, 한 사람은 자리를 준비했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발판·수건을 가져왔다.
다시 만난 부처님과 다섯 비구
<영불탑> |
사진설명: 녹야원으로 간 부처님을 다섯 비구가 맞이한 곳. 윗 부분은 영불탑이 아닌, 무굴제국 시절 악바르가 쌓아올린 것이다. |
계단을 타고 정상에 오르니 동북쪽으로 거대한 숲이 보였다. 녹야원의 다메크 대탑이 무성한 나무를 뚫고 우뚝 솟아 있었다. "부처님이 여기 영불탑에서 5비구를 만나 저곳에서 첫 설법을 했구나"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벅차왔다. 녹야원. 부처님과 가르침에 이어 승가가 탄생된 곳. 그곳이 바로 지척지간에 보였다.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의 그 먼길을 혼자 걸으며 부처님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